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내가 쓴 다른 이의 글들 1부 · 여름보다 뜨거운 겨울 남자 · 물 위에 뜬 촛불 하나 · 서울이라는 욕망의 잠수함, 또는 변두리 잠망경 · 취미가 뭐냐고? · 아담이 되고 싶었던 때 · 그건 대체 누가 썼던 걸까 · 동물원, 지도에도 없는 지구의 표본 · 나는 왜 모조 라이진 씨(Mr· Mojo Risin’)에게 다시 열광하는가 · 돌의 웃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과연? · 내 어둠이 당신에게 빛의 소리로 울릴 수 있다면 · 가능한 미혹들 · 울고 싶은 여자의 못 우는 울음 · 침묵의 춤 · 그것은 과연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을까 · 아픈 말, 취한 말, 죽음이 외면할 말 · 죽음의 원펀치 - 소설가 박상륭 송사 2부 · 소녀시대를 보며 잠들다 · 엘리베이터가 만약 옆으로 움직인다면? · 코끼리를 이해하려면 코끼리 그림을 멋대로 그리지 말라 ·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당신만의 사막으로 가라 · 우리의 ‘똥배’는 얼마나 불가해한 진실인가 -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 부쳐 · 꿈을 꿈꾸다 · 이것은 용龍이 꾸는 꿈 · 내가 ‘그것’을 ‘노인’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 ·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 관한 단 한 편의 소설 · 검은 영혼의 강에서 건져 올린 ‘자수정’의 언어들 - 영화 [슬램]에 부쳐 · 목 마르요, 차라리 죽음을 주소! · 시의 허방, 혹은 세계라는 영사관 - 시에 관한 몇 개의 변설 수록 작품 |
강정의 다른 상품
|
‘외로움’은 어딘가 기댈 곳을 찾아서 휘청거리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고독’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그리게 만든다.
--- p.102 몸 아래 깊숙이 내장돼 있던 슬픔의 물고기들이 조심스럽게 낚싯줄을 건드리는 듯싶다. 그러나 여전히 모자라다. 슬픔의 윤곽만 물수제비뜨듯 희롱했을 뿐, 더 큰 슬픔의 공명통이 터지기에는 가슴을 가로막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문득, 우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 조금 공허해진다. 인간을 포함, 모든 짐승의 목소리는 결국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전면적 자기 성찰이자 그 고통의 표현이어야 하지 않겠나. --- p.135 말을 믿기보다 표정과 동작을 신뢰하고, 드러난 감정과 구축된 질서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말의 형태를 애써 갖추려 몸을 뒤채는 안간힘이 더 강력한 진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넘어 짐승의 윤리에서도 검증되는 유일한 생명의 표본이다. --- p.165~166 그럼에도, 쓴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아프고 삶이 아프고 죽음이 아프고 세계가 아플 것이기에. 모두가 아프면 정말 아파야 할 것들에 대해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를 그러한 이생이기에. --- p.166 작은 거실에 커다란 럼주 병이 하나 놓여 있다. 3년 전, 일산 술자리에서 선생이 꺼내신 술병을 만취한 상태에서 서로 가져가겠다며 한 시인과 실랑이 벌인 끝에 끌어안고 온, 이제는 유품으로나 되새겨질 물건이다. 1년 전 누가 건네준 꽃을 거기 물을 담아 꽂아뒀었는데, 꽃은 오래전 죽었으되, 색과 형태는 흐릿하나마 여전하다. 물도 여전하다. 이른바 ‘살아 있는 죽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렇게 여기기로 한다. 선생은 기어이 한 죽음을 스스로 이룩하셨고, 그렇게 일생의 큰 연구를 다 마치셨으며, 이제는 너 자신의 허물과 오욕을 되새김질하고 스스로 나사못을 죄이며 너만의 죽음을 연구하고 완수하라는 숙제를 남기셨다고. --- p.173~174 |
|
어릴 땐, 울음에 관한 한 도사였다. 삼촌과 삼촌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 ‘짬보’였다. 아침 식탁에 계란 프라이가 없어서 울고, 혼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 울고, 어머니가 집을 비워도 울었다.
세상의 눈치와 분별 탓일까. 어느 날 나는 울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가슴을 가로막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 속에 오래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강정은 “어른의 심정”으로는 더 이상 낼 수 없는 “몸 안에 오랫동안 내장된”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그러나 울음을 토해내고 싶은 충동은 자꾸 우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우는 모습에 거울을 들이대는 “계산적인 울음”으로 나타날 뿐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조건 아래 “전면적 자기 성찰”이자 “고통의 표현”으로서의 울음은 점점 사라져버리는 시대에 강정은 슬픔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나’ 속에 오래 갇혀 있었다는 느낌. 그건 스스로 만든 감옥이자, 스스로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그어놓은 불합리한 관계의 굴레이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강정은 사진을 찍는다. 화가 고흐가 머물렀던 프랑스의 작고 조용한 마을 오베르쉬르와즈의 어느 골목, 어떤 사람, 사물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비로소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을 마주한다. “화가 반 고흐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밤하늘 별들의 소용돌이를 그렸다면, 시인 강정은 보이지 않되 계속 뛰고 있는 심장을 건져내어 글로 그린다. 홀로 고독하고 아름답되, 바람에 휘둘리고 버팅기며 조용히 울고 있는 듯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자. 무엇이 들려오는지…….” - 강금실, 前 법무부장관 現 법무법인 원 변호사 고흐가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밀밭에 ‘고독’을 그려 넣었듯이 시인 강정은 타국에서 느끼는 고독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나’에서 잠시 벗어나 해방감을 느낀다. 동물원을 묘사하는 대신 동물원을 빠져나가는 우리의 길고 긴 그림자를 묘사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시인 강정은 “못 우는 울음”을 품고 사는 우리에게 그 해방감과도 같은 위로를 건넨다. 나이를 먹어서도 찾아오는 사랑, 이별 후의 울음, 혼자 부르는 쓸쓸한 노래, 말이 아니라 침묵과 표정으로 드러나는 마음 상태를 스스로 차분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강정은 우리에게 울음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누굴 사랑하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3일간의 식음전폐 끝에 써내려간 박상륭 소설가 송사 무엇보다 울음의 끝에 놓인 영원히 풀 수 없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곡진하다. 7월 1일 타지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 박상륭 소설가에 관한 일화(「죽음의 원펀치?소설가 박상륭 송사」)는 인간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경외해 마지않았던 선생을 향한 절절한 슬픔과 그리움이 녹아 있다. “나를 위해 울지도 슬퍼하지도 말라, 차라리 축하나 하라”는 선생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강정은 울음을 터뜨린다. “이제 너만의 죽음을 연구하고 완수하라”는 의미로 선생의 죽음을 받들고 한동안 몸과 마음을 앓으며 끝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죽음을 감축드립니다.” 침묵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던 말, 언제든 내뱉으면 “아픈 말”이 되어버리는 4월의 세월호 사건과 생존자 학생을 이야기하는 「아픈 말, 취한 말, 죽음이 외면할 말」은 “내가 아프지만 그 아픔이 결코 당신의 것으로 이전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진실”을 보여주면서도, 고통의 시절에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럼에도, 쓴다”는 자세를 지닌 시인 강정의 다짐을 보여준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아프고 삶이 아프고 죽음이 아프고 세계가 아플 것이기에.” 그것이 바로 “더 큰 슬픔의 공명통”을 울리는 시인 강정의 울음이다. “울고 싶다. 더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 테다. 노래하고 싶다. 더 잘 죽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 테다.” - 본문 139쪽 내 어둠이 당신에게 빛의 소리로 울릴 수 있다면 강정은 주위의 풍경과 사람뿐 아니라 지극한 영감으로 다가오는 노래와 영화 이야기 또한 들려준다. 한때 많은 여성들의 로망이었던 에단 호크의 “똥배”가 나오는 영화 [비포 미드나잇]을 보며 느낀 늙어감의 슬픔, 만인을 향해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억압받은 흑인들의 육성이 담긴 영화 [슬램], 노래가 되고 시가 되는 삶 그 자체를 살아온 패티 스미스와 마약 같은 열기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록가수 한대수의 노래들이 2부에 실려 있다. 모두 한 시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품게 된, 그 “못 우는 울음”과도 같은 내면의 어둠을 비춰주는 “빛의 소리”에 관한 글이다. 한때 스쳐간 소중한 인연처럼 이 노래와 영화들이 시인의 마음에 두고두고 영향을 주었듯, 5년의 기다림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시인 강정의 산문 또한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우리에게 표현할 수도 번역할 수도 없는, 그러나 잊지 못할 울음으로 다가온다. “다시, 울음소리를 듣는다. (…) 이 삶이 사실은 거대한 죽음의 밭에서 피어난 짧은 기간 동안의 현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울림과 파동.” - 본문 13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