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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나?
1장 터미네이터는 인공지능의 미래가 아니다 - 김운하 2장 포스트휴먼, 그는 누구인가? - 김종갑 3장 인간의 몸과 인공지능의 몸은 어떻게 다를까? - 김종갑 4장 트랜스 휴머니즘의 호모 데우스 프로젝트 - 주기화 5장 인간 능력 향상 기술의 현기증 - 주기화 6장 호모 사피엔스는 장차 무엇이 되어야 할까? - 김운하 7장 늙음과 죽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심귀연 8장 포스트휴먼 사회는 살 만한 세상인가? - 서윤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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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인류가 발명한 그 모든 신화와 종교, 철학, 예술, 심지어 과학까지도 궁극적으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지 않을까? 과거에 이 질문은 그저 어떤 삶이 좋은지에 관한 윤리적인 문제였고 종교와 철학이 거기에 답을 주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른 지금은 과거와 달리 매우 기술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 p.10
30여 년 후에 외모가 영락없는 김태희나 스칼렛 요한슨인 알파고2.0 신버전이 인간과 어떤 게임을 해서 이긴 후에 “와우! 정말 너무 기뻐요! 하지만 이 승리는 또한 인류의 승리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저는 인류의 후손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면, 우리는 그녀에게 기계적인 의식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 맛깔난 대사가 미리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솔직히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누가 확실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p.34 그렇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하고 그것의 종말을 기꺼이 인정하는 입장이다. 인간을 정점으로 서열을 매겼던 종차별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위계적 차이를 철폐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과 쥐, 강아지, 로봇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그러한 차이를 위계적 차이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 p.64 최근에 인간의 몸이 시작하고 끝나는 경계를 묻는 질문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가까운 미래에 두뇌의 이식이 가능해질 것이 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말에는 신경외과 의사 세르지오 카나베로의 두뇌 이식 수술이 진행될 예정이다. 만약 이 수술이 성공한다면 이 새로운 인간의 주체는 뇌일까, 몸일까? 아니면 그는 새로운 제3의 존재가 되는 것일까? --- p.88 인간은 비인간과 이질적인 연결망을 이루는 존재, 하이브리드, 괴물, 즉 ‘호모 몬스터쿠스’다. 이제 더 이상 전통적 개념의 정화된 인류는 생각하지 마라. 순수 인간은 환상이며 향수에 불과하다. ‘호모 몬스터쿠스’, 괴물만이 진화 중이다. 이러한 트랜스휴먼, 호모 몬스터쿠스는 먼저 영화 속에서 실현되었다. --- p.107-108 이제 좀 더 본격적인 포스트휴먼 사회로 들어가보자. 4차 산업혁명이 더욱 심화되면, 기술적 특이점을 전후로 해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술적 특이점은 일반적으로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과 같아지는 시점을 가리킨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초월하게 되어 인간은 결국 자신이 만든 초월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특이점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거나 신기술을 이용해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기계와 인간의 융합체인 신인류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다다르게 되면 우리는 분명하게 포스트휴먼 사회의 주민증을 발급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p.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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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의 최전선에 선 인간 얼마 전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연구소에서는 인공지능 작동 장치의 전원을 강제로 끄는 일이 발생했다. 두 인공지능이 인간이 알 수 없는 언어를 개발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걸까? 혹시 자신들의 대화에 인간들이 어떻게 당황할지를 두고 내기를 벌이고 있진 않았을까? 최근 대두된 인공지능 위협론은 이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과 로봇은 과연 터미네이터가 되어 인간을 공격하게 될까? 이러한 기술 발전은 인간을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할까? 우리는 이미 기존의 인간을 넘어선 포스트휴먼으로 진화 중이며, 새로운 인류 종의 미래를 모색할 시점에 서 있다.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 잡기 고대 세계에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은 없었다. 단군만 해도 환웅과 곰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휴머니즘의 등장은 인간 종이 비인간 위에 군림해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중심적 우월감이 내포될 수밖에 없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것, 바로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이 새로운 이념은 인간중심주의를 허물며 혼종적인 세계관을 추구하고, 기술 향상을 통해 질병과 노화 같은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지워나간다. 여기에는 최첨단 과학기술로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이 포함된다. 하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모든 기계를 청소 도우미 로봇을 대하듯 인간이 일방적으로 명령할 수 있는 욕망 충족의 도구로 파악하며, 인간이 창조주가 되어 기계를 비롯한 비인간 종을 지배하길 바란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이처럼 신격화된 인간관을 근본적으로 거부한다. 현재의 우리는 이런 포스트휴머니즘의 세계 속에서 생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또 그밖에 모든 면에서 현생 인류를 초월해가며 변화 중인 포스트휴먼들이다. 인간 강화 기술의 현재와 포스트휴먼 사회의 이슈를 짚어보기 이 책은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얼마만큼, 그리고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어 가고 있을까? 생명공학의 발달은 인공 장기의 상용화와 유전자 조작 아기의 생산이 가능한 지점에 이르렀다. 2017년 말에는 세계 최초의 인간 두뇌 이식 수술이 예정되어 있을 정도다. 또한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한 하반신 마비 청년이 월드컵 개막식에서 시축을 하는 등 인간 강화 기술은 영화 속 상상을 날로 현실화하는 추세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와 쟁점을 통해 이러한 현실을 자세하게 소개하며, 나아가 기본소득이나 로봇세 논쟁과 같이 기술 발달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들도 상세히 짚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