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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감사의 말 제1장 : 도입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으로 변할 때: 신발 문제 외모를 위해 치르는 대가와 그 결과 근간을 살펴보자, 사회적, 생물학적, 경제적, 기술적 세력과 미디어의 힘 페미니즘의 도전과 응전 / 외모에 의한 차별 ?사회적 불의와 법적인 권리 법률적인 프레임워크 / 개혁을 위한 로드맵 제2장 : 외모의 중요성과 세상에 순응하기 위한 대가 예쁘다는 것의 정의와 차별의 여러 형태 / 대인관계와 경제적 기회 자존감, 낙인, 그리고 삶의 질 / 남자와 여자의 차이 / 외모를 유지하는 대가, 시간과 돈 / 건강 리스크 / 편견 제3장 : 아름다움의 추구 사회생물학적 기반 / 문화적 가치, 지위, 그리고 아이덴티티 시장 요인 / 테크놀러지 / 미디어 / 광고 아름다움만 찾는 문화 제4장 : 비난, 그리고 비난에 대한 비난 19세기 및 20세기 초의 비판론자들 / 오늘날의 여성운동 / 여러 가지 비난들 이런저런 반응 / 개인적인 이해, 정치적인 서약 / 교착상태를 극복한 다음 제5장 : 차별이란 이름의 불의 기회균등의 확보, 낙인찍기와 고정관념에의 도전 계급, 인종, 민족, 성, 장애, 성적 취향 때문에 사람을 억누르다니? 자기표현의 보호: 개인의 자유와 문화적 정체성 차별하는 편의 논리와 차별 금지에 대한 저항 성희롱에 버금가는 것 / 법률이 해줄 수 있는 것 제6장 : 법률적인 프레임워크 주된 법적 프레임워크의 한계 / 외모로 인한 차별의 금지 비교 접근방법, 유럽은 외모로 인한 차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외모로 인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할 때, 긍정적 효과와 한계는? 소비자 보호, 허위 마케팅과 사기성 마케팅 관행의 금지 / 개혁의 방향 제7장: 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전략 목표 설정 / 개인들 / 비즈니스와 미디어 / 법률과 정책 |
Deborah L. Rh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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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역자입니다.
2011-01-23
(딱히 근거도 없는) 아름다움에 맹목적으로 홀려서, 인격이나 능력보다는 겉모습에 좌우되는 우리의 천박한 문화! 방학만 되면 성형수술 예약으로 분주한 대학생들에다가, 외모만 화려하면 공부도 인격수양도 필요없다고 믿는 꼬마들! 보톡스에다 효과도 의심스런 노화방지 약품 따위에 수십억을 쏟아부으며, "우아하게 늙기"를 아예 포기한 중산층들!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기면 서슴없이 '루저'라는 낙인을 찍는 기업과 사회 풍조!
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천박함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인한 경제적, 문화적, 산업적, 의학적 폐해는 걷잡을 수 없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건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구요? 그럼,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고 판단해보시죠.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후손들 -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외모지상주의의 폐단을 직시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즉각적인 개선책을 찾아서 실행해야 합니다. 이 책이 너무나도 중요한 까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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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성들은,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끔 그들을 세뇌하고 있는 얼토당토않은 미의 기준에 얽매인 채, 남자들의 인정을 받을 것을 매일같이 강요당하고 있다.
외모에 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금액으로 따져볼까. 전 세계적으로 외모 가꾸기에 투자되는 돈은 적어도 136조 8,500억 원이다. 머리 가꾸는 데 대충 45조 2,200억 원, 스킨케어로 28조 5,600억 원, 성형수술 비용으로 23조 8,000억 원이 들어가고, 화장품 및 향수에 소비되는 돈이 각각 21조 4,200억 원과 17조 8,500억 원이다. 그뿐이랴, 미국인들은 다이어트로 47조 6,000억 원을 쏟아 붓고 있으며, 살빼기를 위한 피트니스에다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소비한다. 그러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 한다. 다이어트를 했던 사람들 중 95퍼센트는 1~5년 사이에 다시 몸무게가 늘어나며, 화장품 중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혜택이 전혀 없는 것도 너무나 많다. 외모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외모의 개선에 신경을 쓰는 것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이건 참으로 역설적이 아닌가! 외모에 대한 투자는 다른 형태의 소비처럼 지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그 새로움이나 참신함이 없어지면, 혹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됐다 싶으면, 새로운 형태의 자기표현이나 개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니까. 이러한 패턴을 사회학자들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른다. 월터 크롱카이트나 톰 브로코 같은 앵커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자 배우들은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연애영화의 주연을 꿰찬다. 숀 코너리는 60대에 피플지가 선정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여자는 어떤가? 젊었을 땐 자기 나이의 두 배인 남자들을 상대로 연기하다가, 노화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아하게 퇴장하거나 온몸에 “손을 봐야” 한다. 어떻게든 열심히 노력해봤자, 어느 칼럼니스트가 짙은 화장을 하고 나온 여성 정치인을 두고 했던 핀잔이나 듣기 일쑤다: “엔간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등바등 붙어 있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그녀에게는 어딘지 굴욕적이고, 슬프고, 필사적이며, 보기에 민망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그가 말했던 그 “엔간한 나이”는 기껏 43세였다! 스튜어트 이원의 유명한 표현처럼, 광고주들은 단순히 상업의 캡틴이 아니라 “의식의 캡틴”이다. 사회적인 의미를 창조하고 개인의 욕망과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젊음을 격려해주는 건 좋지만, 젊겠다고 아등바등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린 게 아님”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중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여자들이 외모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만 없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마디로 논센스다.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법적이고 사회적인 권리와 특전을 얻게 될 때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한층 더 생기를 잃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아름다움에 얽매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여자들에게 힘을 주는 원천의 하나를 깎아 내리는 데 급급하지 말고, 페미니스트들이 여자들의 힘의 모든 원천을 고양시키는 노력을 한다면 좀 더 유용할 것이다. 외모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야지, 수치심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모에 대한 우리의 이상은 인종, 연령, 몸의 크기에 따른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외모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평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취업과 교육이란 장으로 외모의 중요성이 넘쳐흐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성에 따라 차별화된 그루밍을 강요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성의 자존감은 외모가 아니라 성과에 직결될 것이다. 외모로 인한 차별을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예는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축적될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그러한 편견은 능력의 원칙에 위배되며, 기회 균등을 잠식할 뿐 아니라, 오명을 악화시키고, 자존감을 갉아먹는데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계급, 인종, 민족, 성, 성적 취향에 근거를 둔 불이익을 한층 더 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모를 위한 제품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상식뿐이다. 사람들은 광고에서 주장하듯이 주름살이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도 받아들이는 인간의 수용력 또한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코즈메수티컬’ 스킨 케어 제품의 시장이 연 640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은, 소비자가 ‘알아야 할’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말해준다. 진보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초점을 단순히 그들의 선택에 맞추어선 안 된다. 진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너그러움과, 사회적 태도 변화나 외모에 관한 정책의 변화를 위한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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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전에는 사회 정의를 논하지 말라!
미국 최고의 지성이 제안하는 외모지상주의 극복 로드맵 우리 모두의 서가에 꽂혀야 할 허영과 편견에 관한 인문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선호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본능일까? 따라서 그것은 비난하거나 개탄할 수 없는 일일까? 하지만 미모라는 개념이 허망하고 부당하게 정의되었다면, 그리고 그 왜곡된 이미지가 위험하게도 인간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한다면, 그냥 방치해도 좋을까? 근거 없는 아름다움의 이상 때문에 상상을 불허하는 경제적자원이 낭비되고, 사기성 광고가 판을 치고 건강을 위협하며, 외모로 인해 혹독한 차별이 자행되고, 수많은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데도 (특히 어린이들부터 그런 편견에 물들고 시달리고 있는데도) 국가와 사회는 이를 수수방관해도 좋은 걸까? 미국 최고의 지성인으로 꼽히는 저자는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해온 내력을 꼼꼼히 살펴보고, 소위 ‘루키즘’으로 불리는 외모지상주의의 엄청난 폐단을 세심하게 따져본 다음, 법률적-정책적-사회적 조치를 통해 이를 최소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의 아이디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외모를 단순히 심미적 이슈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법적-정치적 이슈로 취급할 때 비로소 외모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진정한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모로 인한 차별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편견은 아니다. 하지만 그 피해와 영향은 너무나도 심각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즐거움의 원천이요, 당당한 정체성의 표현 방식이어야 할 외모가 수치심의 원천, 피눈물 나는 투쟁의 목표로 변해버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조차도 외모에 대한 집착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이 악화되었다고 개탄한다. 이 책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머리를 가꾸는 데 쓰는 돈만 매년 총 45조 2,200억 원,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화장품에 허비되는 돈은 21조 4,200억 원, 오프라 윈프리조차 살빼기 스트레스로 넘어진다, 모든 의학 분야 중에서 발군의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성형외과, 발이 뭉그러지는 한이 있어도 ‘킬 힐’은 신어야 한다, 5세~10세 소녀들을 위한 미인대회만도 3천 개, 자, 이러고도 이 세상이 과연 제정신인가 ?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씩은 개탄해 마지않으면서도, 다음 순간 한숨과 함께 잊어버리기 십상인 외모지상주의 혹은 ‘루키즘’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나아가 그 개선과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탁월한 인문서다. 외모라는 편견의 오랜 역사, 그 가공할 폐단과 피해, 우리의 일상에 나타나는 그 편견의 모습들, 이로 인한 차별과 눈물겨운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법조계와 학계에서 쌓아올린 치열한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이 괴물과도 같은 외모의 편견을 타파할 현실적인 전략을 제안한다. 특히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의 고민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아름다움의 허상에 온통 넋이 빠져버린 우리의 문화 ! 청소년들까지 미모의 노예로 전락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 ! 이 책으로 그 탈출구를 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미모에 집착하는 편견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회 정의와 도덕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은 우리 모두의 책꽂이에 반드시 꼽혀 있어야 할, 허영과 편견에 관한 최고의 인문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