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앨리포어 감옥 이야기
감옥과 자유 인도민족의 이상과 세 가지 기질 새로운 탄생 우타파라 연설 옮긴이 해제 옮긴이 후기 |
Aurobindo Ghosh
金相俊
김상준의 다른 상품
|
다음 순간 그 조그마한 방은 무장한 경찰들로 가득 차버렸다. 형사 반장 크리건, 24지구 경찰대의 클라크, 늘 귀엽고 신나는 표정의 낯익은 베노드 굽타, 몇 명의 형사들, 붉은 터번을 쓴 군인들, 밀정들, 그리고 수색의 증인으로 동행한 몇몇 주민들. 저마다 피스톨을 쥐고 마치 무슨 중무장한 요새를 대포와 소총으로 포위 공격하러 달려온 영웅들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사뭇 살기등등하고 의기충천한 모습이었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가운데 백인 영웅 하나가 어린 내 여동생의 가슴에 피스톨을 겨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가 오로빈도 고슈냐? 너냐?”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침대에 앉아 있는 내게 크리건이 물었다. “그렇소. 내가 오로빈도 고슈요.” 크리건은 즉각 경찰에게 날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 p.12 수감 생활의 후반부에는 이런 점에 관해서는 약간의 개선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식 개혁이라는 것이 시행상의 작은 변화는 있더라도 오랜 원칙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는 법이다. 그 좁은 방에 그런 방식으로 배치한 덕에 특히 밥을 먹을 때나 밤에 잠을 잘 때 심각한 불편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은 굳이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화장실이 거실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서양 문화의 일부라는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다. 그러나 그 좁은 감방에 침실과 식당과 변소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말려 있다는 것, 것이야말로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지나친 것이라는 이야기를 증명해주는 사실 아니겠는가. 그처럼 극히 고도로 문명화된 시설에서 지낸다고 하는 것은, 특히 우리처럼 개탄스러운 비문명화된 관습에 절어 있는 인도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 p.39 당시 벵골에는 두 종류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고, 무해하며, 선량하고, 소심하면서 자기존중이나 높은 목표가 없는 부류이거나 아니면, 악하고, 난폭하고, 요란스러우면서 자제력과 정직함이 없는 부류였다. 이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부류가 있겠지만 단지 열 명 내외의 이례적으로 뛰어난 이들을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집단은 보이지 않았다. 벵골인들은 지성과 재능은 있지만 남자다운 힘과 기백은 부족하다. 그러나 앨리포어의 이 젊은이들을 보면서 난 마치 새롭게 단련된 자유로우면서도 과감하고 힘에 넘치는 젊은 세대가 인도에 되돌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 눈빛에 비치는 두려움 없음과 순진무구함, 힘 있는 어투와 숨결, 자유분방하고 거리낄 것 없는 웃음, 그토록 위태로운 순간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용기, 슬픔도 절망도 모르는 마음의 그 활달함, 이 모든 것은 이 시대의 생기 없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약동의 징후였다 ...... 그리고 참으로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자신에게 교수형이 선고될 수도 있고, 종신형이 떨어질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신의 운명과 사활을 건 심각한 공판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데, 막상 그 형을 언도받을 당사자들인 이 젊은이들은 공판 과정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태연하게 앉아서 반킴찬드라의 소설이나 비베캐난다의 『라자 요가』 또는 『종교의 과학』, 혹은 『바가바드기타』, 『푸라나』, 아니면 유럽 철학서를 읽으며 삼매에 빠져 있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그런데 영국 하사관들도, 인도인 경찰들도 이 독서삼매를 제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 안에 갇힌 이 호랑이들을 아무튼 조용하게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가만두어도 누구한테 해될 일은 전혀 없었으니까. --- pp.115-117 |
|
모든 억압에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발칙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건, 하지만 유쾌했던 도전 이야기. 1900년대 식민지 인도의 젊은이들. 영국 제국주의의 지배에 맞서 무장투쟁을 감행하지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이들은 열악하고 공포스러운 감옥이라는 환경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열정과 패기가 가득 찬 자기성찰과 명상에 빠진다.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일상된 요즘 이들의 옥중스토리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목숨을 건 젊은이들의 도전 1908년 식민지 인도의 벵골. 영국의 인도 통치에 반대하는 인도 젊은이 두 명이 영국인 행정장관을 향해 폭탄을 던지지만 암살은 실패로 끝난다. 폭탄을 던졌던 두 젊은이 가운데 한 명은 현장에서 자살하고, 다른 한 명은 체포되는데, 이 일로 당시 벵골을 뜨겁게 달구던 반영(反英)무장투쟁 그룹의 지도부가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일제히 검거된다. 이 책의 저자 오로빈도 고슈는 반영무장투쟁 그룹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역시 투옥된다. 인도의 독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간디의 비폭력운동이다. 비폭력운동은 이름의 뉘앙스와는 달리 영국의 법률과 제도를 지키지 않겠다는 매우 급진적인 운동이었지만 방법에 있어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디가 등장하기 전 인도에는 영국의 지배에 무장투쟁으로 맞서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일찍부터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진출해 있던 벵골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무장투쟁 운동은 매우 활발했다. 이 책의 저자 오로빈도 고슈를 포함한 무장투쟁세력의 지도부는 구체적으로 신문을 창간해 여론 장악, 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지하조직 건설, 투쟁의 물리력이 되는 무기 조달 등 무장투쟁의 기초를 닦았다. 콜카타 치안 장관을 지낸 찰스 테가트가 자신의 영국인 동료에게 이들 그룹 중 한 명인 바가 자틴에 대해서 평가한 말은 이들의 활동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만약 자틴이 영국인이었다면,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넬슨 동상 옆에 그의 동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오로빈도 고슈의 유쾌한 옥중수기 이 책에서 오로빈도는 자신이 겪은 감옥에서의 경험, 함께 수감되었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 감옥 안에서 명상과 성찰을 통해 얻은 진리를 풀어놓는다. 「앨리포어 감옥이야기」가 오로빈도의 옥중수기라면, 「감옥과 자유」, 「인도민족의 이상과 세 가지 기질」, 「새로운 탄생」의 세 에세이는 감옥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성찰에 대한 서술이다. 마지막으로 「우타파라 연설」는 이 모든 것들을 압축해 인도 민중들에게 실제로 행한 연설이다. 하지만 오로빈도의 서술이, 인도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그런 이미지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속된 말로 하자면 하늘을 붕붕 떠다니지 않는다는 얘기. 괴상한 자세로 요가를 하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혼이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오로빈도는 시종일관 영국의 식민통치 기관을 경쾌하게 조롱한다. 특히 그를 구속하고 재판하던 사법기관, 즉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있던 자들에 대한 조롱은 ‘웃으며 욕하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새벽에 집에 난입해 자고 있는 오로빈도를 수십 명이 납치하듯 체포하는 장면, 식기에 용변까지 보게 만드는 열악한 수감시설에 대한 묘사, 억지 증거와 증인들을 어떻게든 꿰어 맞추려는 검사와 여기에 동조하는 판사는 사실 분노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유쾌하게 비틀어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한 이런 느낌은 「앨리포어 감옥」이야기 전편에 흐른다. 모든 억압에서 우리는 독립할 수 있는가? 이어지는 에세이들에서 이런 유쾌한 분위기는 다소간 잦아들면서 명상과 성찰의 결과물들을 열렬한 웅변으로 토해낸다. 오로빈도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껏 고도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던 인도는 왜 지금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가? 인도가 타마스(Tamas, 게으르고 무력한 기운)에 빠져 있었던 반면 영국은 라자스(Rajas, 뜨겁고 공격적인 기운)가 충만하기 때문에 영국은 인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도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타마스를 버리고 라자스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라자스는 지나치면 독이 된다. 서구 제국주의가 바로 그 전형적인 결과물이다. 따라서 라자스를 통제하고 사트바(Sattwa,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맑고 차분한 기운)를 발현시켜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 그렇다면 당시 인도에서 영국을 몰아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거대한 영국 제국주의 앞에 무기력한 나머지 영국의 지배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인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곳에서 라자스니 사트바니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오로빈도는 가장 절망적일 것 같은 감옥에서 새 희망을 찾았다. 무자파푸르 사건으로 인해 함께 수감되었던 젊은이들과 감옥에 갇혀 있던 밑바닥 인생의 인도 민중들을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생사의 기로에 선 공방이 벌어지는 재판정에서 이 발칙한 젊은이들은 철학책을 읽으며 명상에 잠기고, 지극히 열악한 환경의 감옥에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토론을 펼친다. 용기가 충만했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게 통제되었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데 있어 차분했던 그들은 새로운 인도의 미래였다. 한편으로 영국 식민통치에 순응한 고위층들은 이 젊은이들에게 냉담했지만, 감옥에 갇혀 있던 인도의 밑바닥 인생들은 이 젊은이들을 존중했다. 영국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행동이 옳다고 믿었으며, 이 젊은이들을 위해 호의와 존경을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신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오로빈도는 그 신을,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희망’을 감옥에서 다시 찾은 것이다. 사는 게 감옥 같다면, 그 감옥 유쾌하게 즐겨라 오로빈도의 이런 발언은 100년 전 먼 나라 인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압제에 시달리는 것은 반드시 식민지 지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삶과 사회의 모든 지점에서 여전히 우리는 압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또 너무 쉽고도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그 한 마디에 무릎을 꿇는 일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다. 진정한 용기와 패기, 도전과 열정, 그리고 유머가 사라진 시대. 새로운 희망을 찾는 길에서 오로빈도의 감옥은 너무도 유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