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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원문 난중일기
도서출판여해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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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원색도판
교감자 서문(序文)
『교감원문 난중일기』해제
일러두기

『교감원문 난중일기』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Ⅰ』
『정유일기Ⅱ』
『무술일기』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난중일기』교감도표

저자 소개 2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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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와 『주역』을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과 문화재청 현충사 전문위원으로서 이순신을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하여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했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를 해독한 원문(DB)이 국가기록유산 사이트(문화재청)에 올라있다. 20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와 『주역』을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과 문화재청 현충사 전문위원으로서 이순신을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하여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했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를 해독한 원문(DB)이 국가기록유산 사이트(문화재청)에 올라있다. 2015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난중일기가 베트남어로 간행되었다.

주요 역서로는 『쉽게 보는 난중일기』, 『교감완역 난중일기』, 『단양한시선』,『이충무공종가 유물도록』초역, 『충무공사료집성』, 『충무공유사』, 『한국의 차문화 천년』(공역), 『사호집』, 『교서』(현충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충무공, 최후까지 충성을 다하다〉(교보문고/길위의 인문학)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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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605g | 153*224*23mm
ISBN13
9791195315260

출판사 리뷰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초서체로 작성한 7년간의 일기이다. 친필 초고에서 발견된 미상 오독의 문제들은 후대에 해독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후대에 몇 차례 해독작업이 이루어졌지만, 판본상의 문제점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었다.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는 누락과 오독으로 친필본과 많은 차이가 있었고,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간행한 『난중일기초』에는 미상과 오독이 일부 남아 있었다. 이는 친필 초고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난중일기 전문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초서를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2004년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서간첩』대한 탈초작업을 하였고, 2005년 초고본과 전서본, 『난중일기초』의 원문 교감(校勘)을 하여 백여 곳을 바로잡아 완역을 시도하였다. 2007년 『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일기초(日記抄)에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찾아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 일기초의 내용으로 초고본의 문제점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2008년 초고본과 이본(異本)의 오류를 종합 검토하여 교감완역본을 만들었다.

2013년에는 이순신이 『삼국지연의』를 탐독하고 교훈이 되는 내용을 난중일기에 옮겨 적은 것을 최초로 발굴하였다. 국가는 어려운 때일수록 항상 인재가 필요하고 전쟁에는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또한 벽초(碧初) 홍명희(洪明熹)의 아들 홍기문(洪起文)이 1955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는 초고본을 확인하지 않고 활자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므로, 완전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초의 번역본으로서 의미가 있다.

2015년 난중일기 친필초고와 이본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종합정리한 원문책자 『종합교감 난중일기정본』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원문에는 초고본과 이본상황은 물론, 새로 발굴한 내용과 문헌으로 고증한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10여 년 동안 노승석 소장이 해독한 『난중일기』는 모두 93,011자이고 새로 발굴한 일기는 모두 37일치이다. 초고에서 미상자를 해독한 글자는 37자이고 원래 있었으나 없어진 것을 찾아낸 글자는 “戊五月日記” 5자이다. 다른 기록에서 찾아낸 일기는 〈일기초〉가 849자, 〈태촌집〉이 42자, 〈동포실기〉가 5자, 〈삼도실기〉가 22자이다. 이러한 내용을 모두 반영하고 기존 판본상의 오류를 모두 바로 잡아 그 최종 결과물로서 내놓은 책이 바로 《개정판 교감원문 난중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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