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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2
제1장 신간회 창립의 배경 17 1. 신간회 창립의 국제적 환경 2. 신간회 창립의 국내 사회적 배경 제2장 신간회의 창립과 민족협동전선의 성립 55 1. 신간회 창립의 준비와 창립 발기 2. 신간회의 창립과 민족협동전선의 성립 제3장 신간회의 이념과 강령 71 1. 신간회의 강령 2. 신간회의 사상과 이념 3. 신간회의 정책과 노선 제4장 신간회의 중앙조직의 변동 85 1. 신간회 조직의 기본 구조 2. 제1단계 창립기의 중앙조직 3. 제2단계의 중앙조직 4. 제3단계의 중앙조직 5. 제4단계 해소기의 중앙조직 제5장 신간회의 지방지회 103 1. 지방지회 조직의 급속한 발전과 회원의 직업 2. 국내의 군별 지방지회 3. 신간지회 도(道)연합회 4. 해외의 신간회 지방지회 제6장 신간회 중앙본부의 민족운동(I) 177 제7장 신간회 중앙본부의 민족운동(II) 203 13. 원산 총파업과 노동운동 지원 14. 함남 수력발전소 매립지구 토지보상운동 15. 화전민 권익 옹호와 갑산 화전민 방화 방축사건에 대한 항쟁 16. ‘밀러’박사 연설회 개최 17. 언론·출판·집회·결사 탄압 규탄운동 18. 재일본 한국인 노동자송환 항의운동 19. [신간(新幹)] 잡지의 간행 추진 20. 광주 학생독립운동 옹호, 지원활동 21. 민중대회 운동과 전국 학생독립운동의 지원 22. 청년동맹과의 연합활동과 지원 23. 청진청년 단식동맹사건 지원 24. 단천 산림조합사건 지원운동 25. 전국 노동운동 지원 26. 일본인 신문 [전북일보]의 한국민족 모욕 기사 규탄 27.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지원 28. 조선인 본위의 민족교육운동 29. ‘문자보급’운동의 지원 30. 정평 농민조합 운동 피검자 지원 제8장 신간회 지방지회의 민족운동(I) 235 1. 지회 운동방침의 제정 2. 독립운동 지원·연락·참가 3. 철산(鐵山)신간지회 사건 4. 익산(益山) 신간지회 사건 5. 조선총독 폭압정치 반대운동 6. 미국정부에 사회운동자 처벌 항의 7. 시국강연회, 계몽강연회의 활동 8. 인권변호사에게 격려전보 발송 캠페인 9. 지주비판 및 소작제도 개선 요구 10. 소작쟁의, 농민운동 지원 11. 동척(東拓) 일본인 이민 반대운동 12. 지방열 단체 박멸운동 13. 일본 미쓰비시(三菱)회사의 농민토지 강제매수 규탄 14. 일제 수립조합 반대운동 15. 산림조합 반대운동 16. 군농회 반대운동 17. 해태조합 반대운동 18. 어민권익 옹호활동 19. 전매제도 반대운동 20. 일제 지방행정 규탄운동 21. 민족교육 외면하는 유림단과 향교(鄕校)관리 비판운동 제9장 신간회 지방지회의 민족운동(II) 271 22. 한국인본위 교육과 교육개선 운동 23. 야학운동 24. 금릉학원(金陵學院) 폐쇄 및 사립학교 허가제 반대 25. 학생운동 지원활동 26.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자유의 쟁취 운동 27. 3총(三總, 노동총동맹·농민총동맹·청년총동맹) 해금(解禁)운동 28. 일제 경찰의 폭행사건 규탄 29. 영암 신간지회사건 변론 활동 30. 이재민(罹災民) 구제운동 31. 빈민구제사업 32. 차가인동맹(借家人同盟)운동 지원 33. 미신타파 운동 34. 색의(色衣)착용, 생활개선운동 35. 여성, 부인운동과 근우회(槿友會) 활동 지원 36. 노동운동 지원 37. 제주 신간지회 사건 38. 안동 신간지회사건 39. 괴산(槐山) 신간지회 사건 40. 대전 신간지회 사건 41.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 성토 제10장 일제의 신간회 민족운동에 대한 탄압 301 1. 신간회 중앙본부 간부들의 검거·투옥과 집회·대회 금지 2. 신간회 지회 설립과 활동을 마비시키기 위한 검거, 투옥 제11장 신간회의 해소 347 1. 신간회의 해소의 일반적 요인 2. 코민테른 및 프로핀테른의 정책과 지시 3. 신간회 내부의 해소운동의 대두와 논쟁 4. 일제의 신간회 해소 공작 5. 신간회 ‘1931년 5월 전국 전체대회’의 신간회 해소 결의 6. 신간회 해소에 대한 반성 제12장 신간회 창립과 민족운동의 역사적 의의 373 1. 신간회 해소의 통탄 2. 신간회 창립과 민족운동의 역사적 의의 주요 참고문헌 383 찾아보기 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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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탄압과 항거
뒤늦게 신간회의 성격을 파악한 일본은 신간회의 활동을 계속적으로 ‘금지’, ‘탄압’하였다. 특히 일제는 이때 한국인에게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무권리 상태에 두는 정책을 최대로 악용하였다(제10장). 각주 곳곳에 달린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기사가 ‘압수당해 미발행’되었다는 표시(제1장, 제5장, 제6장)는 언론 자유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간회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이러한 탄압에도 신간회는 각종 민족운동을 벌여서 민족 독립의 그날을 소망했다. 신간회 민족운동의 성격을 대별하면 첫째, 조선 민중들의 처우와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사형(私刑)이나 동척(東拓)의 한인 소작농 탄압 금지운동, 만주군벌 당국의 박해를 받던 재만동포 옹호 운동, 수재민·소작민·어민 권익 보호 등이 그것이다(제6장). 둘째, 신간회는 문자보급운동, 생활개선운동 등을 벌여 우리 민족의 민지(民智)를 양성시키고 사회경제적 여건을 개선시키는 데에도 앞장섰다(제7장). 신간회는 왜 해소되었는가 신간회 해소 원인에 대해서 지은이는 기존의 학설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견해를 내놓아 주목된다. 신간회의 ‘약화’ 요인과 ‘해소’ 요인을 준별해야 하며. 코민테른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분리 준비 및 민족주의자 비판을 지시한 것은 좌우 합작으로 결성된 신간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로서, 일제의 해소 공작과 함께 신간회 ‘해소’의 직접적 요인이라는 것이다(제11장). 사회학자이자 한국민족 독립운동사에 정통한 석학으로서 실증적이고 예리한 논리가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간회 창립 주역의 하나인 안재홍과 같은 비해소론자들이 해소론의 부당성을 지적하였음에도 安在鴻, 〈解消論 冷眼觀-非國際延長主義〉, 《조선일보》 1930년 12월 26일자 [사설] ; 《민세안재홍선집》 제1권, 지식산업사, 1981, pp.369~371 참조. 불구하고, 신간회는 창립된 지 4년 만에 ‘어이없이’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독립운동 노선의 분열을 막고 ‘완전독립’의 민족운동 노선을 확고하게 정립하여 실천에 옮긴 신간회의 빛나는 성과는 지은이의 펜을 통해서 오늘날까지도 선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신간회 90주년을 기념하여 선배들의 성취와 과오를 가려 깊이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머지않아 ‘단일민족국가’를 이룩해야 하는 과제를 비추어 볼 때 우리 겨레의 통합된 역량을 마련하는 데 영감을 주는 좌표로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