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면서
제1장 사도세자의 마지막 1년 1. 사도세자 최후의 날 2. 세자의 모역사건 3. 세자의 모역과 나경언 고변사건 제2장 세자의 출생과 굴절된 유소년기 1. 세자의 유년기 2. 10세에서 14세까지 제3장 세자의 대리청정 1. 세자 15세 2. 세자에게 탕평과 애민을 당부하다 3. 세자의 16∼18세 시절 4. 18세 시절의 세자 5. 19세 시절의 세자 6. 20세 시절의 세자 7. 21세 시절의 세자 제4장 후계자 구도가 세자에서 세손으로 옮겨가다 1. 세자 22세, 원손 5세 시절 2. 세자 23세, 원손 6세 시절 3. 세자 24세, 원손 7세 시절 4. 세자 25세, 원손 8세 시절 5. 세자 26세, 세손 9세 시절 6. 세자 27세, 세손 10세 시절 제5장 임오화변, 세자의 죽음 1. 영조 38년(1762) 2∼4월 2. 영조 38년(1762) 5월 22일 3. 영조 38년(1762) 윤5월 13일∼21일 4. 세자는 왜 죽었는가? 제6장 험난한 세손의 시대 1. 세자를 사도세자로, 세손을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 2. 영조, ‘금등’을 말하다 3. 세손 학문의 성숙, 영빈 이씨 타계, 왕비와 고모의 권력 확대 4. 18세 세손의 사춘기 외도 5. 정후겸과 왕비족의 홍봉한 공격 6. 세손 22∼24세 7. 세손 24세 11월 8. 세손 24세 12월 7일 9. 영조 리더십의 특징 제7장 정조대왕 이야기 1 ― 끝없이 백성을 사랑한 성군의 길 1. 즉위년(1776) 2. 정조 원년(1777) 3. 정조 2년(1778)《 4. 정조 3년(1779) 5. 정조 4년(1780) 6. 정조 5년(1781) 7. 정조 6년(1782) 8. 정조 7년 (1783) 9. 정조 8년(1784) 10. 정조 9년(1785) 11. 정조 10년(1786) 12. 정조 11년(1787) 13. 정조 12년(1788) 찾아보기 |
韓永愚
한영우의 다른 상품
|
열한 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무게를 짊어지다
이 책은 먼저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기대와 갈등 관계를 상세히 다룬다. 지은이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학계의 여러 해석들 가운데 하나만을 근본 원인으로 보면 안 되고, 여러 가지 관찬 문서와 사사로운 기록까지 종합하여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천한 신분 콤플렉스와 선왕 독살설에 시달린 영조가 자신과 정반대의 성정을 지닌 자식을 지나치게 압박했고, 그 결과 세자는 질병을 얻었으며,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노론에 의해 반역 행위가 고발되어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것이다. 윗대에서 벌어진 수난이 정조에게 멍에로 남아 이후 행보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했다. 정조는 아버지를 죽였으나 자신을 끊임없이 지도해 준 할아버지 영조에게 모순된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었다는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지은이는 이러한 짐을 진 채로 왕위에 오른 세손 ‘이산’이 24년 동안 해마다 내린 명(命)과 행적을 바탕으로 ‘임금 정조’를 묘사해 낸다. 정조는 영조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탕평을 이룩하고 정학(주자학)을 바로 세우며 백성을 사랑하는 성군이 되어 민국(民國)을 건설하고자 했다. 영조가 나중에 사도세자가 모함 받은 것을 알고 후회했다고 주장하여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면서도 아버지를 높였다. 수원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화성을 지어 끊임없이 효도를 바쳤다. 정-반-합의 경지를 이룩한 성군의 길 정조는 일평생 애민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린 성군이되,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정도(正道)가 아닌 권도(權道)를 사용하는 것도 꺼리지 않은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임금이었다. 지은이는 정조가 매우 다혈질이었으며, 신하를 길들일 때 욕설이나 협박을 한 적도 있다는 점을 짚었다. 또 효도하려고 없는 《금등》을 만들어 냈고, 남몰래 이복동생을 만날 때 여러 번 임금이 주도한 군사훈련으로 위장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민국 건설에 힘쓴 임금이지만 이러한 방법은 얼핏 성군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조는 이를 ‘도’로써 활용하고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기에 결국 ‘성군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되었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장점만을 흡수하여 정-반을 거쳐 ‘합’의 경지에 이른 인물인 것이다. 정조에서 21세기 삶의 방식과 리더십을 엿보다 정조의 통치방식은 지나치게 임금 개인의 리더십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성하며 쓴 일기만 수백 권에 달하며, 말년에는 ‘수많은 개울을 비추는 밝은 달과 같은 존재[萬川明月主人翁]’라고 스스로 일컬으며 자신의 정책을 우주 만물의 이치를 담은 이론으로 정립해 냈다. 또 전국에 바른 풍토를 세우고자 끊임없이 도서를 간행·보급하여 기록문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정조에 대한 모든 답을 내놓는 《정조평전: 성군의 길》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자 지닌 삶의 무게와, 그 무게를 진 채로 일구어 나가는 삶의 가치를 깨우쳐 준다. 더욱이 지금 21세기의 위정자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살다 간 이백 년 전의 위대한 임금 정조가 던지는 교훈은 무거우면서도 각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