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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찰일 시말의 문제적 국면-상징의 위치
고통이라는 마물에 투시된 시말 혹은 인간학의 위치 인식의 전회 혹은 이항대립의 해체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그 존재적 의미의 양태 [모자나무] 다시 읽기를 통해서 의식 혁명을 추동하기 지상으로의 귀환-그래도 살아야 한다 알레고리적 환상에 비추어진 사유의 바깥-인간학적 결단 인류학적 상상력에 기입된 아비투스에 대한 단상 환유적 글쓰기 혹은 원근법적 사유 아름다운 도반 혹은 모레의 초극(글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화두냐 향락이냐 박찬일 시인과의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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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유희에 굴복되어진 운명
어쩌면 글이란 운명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쓰는 행위는 일종의 구원과 불행 사이를 종주하는 이중의 휨 작용인지도 모른다. 때론 정전이라고 불리우는 언어의 제국에 도전하면서, 때론 저 언어의 정전으로 간주되는 말의 제국 앞에 절망도 하면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글을 쓰고 있다. 다시 절망이 밀어닥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글이 글쓴이를 조롱하고 기롱하면서 더 나은 글을 쓰기를 종용한다. 다시 미문 앞에 절망하고, 위대한 말의 논리 앞에 절망한다. 내게 글쓰기가 운명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머리에서 시인 박찬일이 보여준 시세계의 본질 본 저서는 박찬일 시인의 일련의 시적 궤적을 점검하면서 그가 지향했던 시적 위의를 되살리고 있다. 시인이 한 세계를 독이적인 의식으로 시말화할 때, 혹은 인간학의 내포와 외연을 동시에 아우를 때, 우리는 박찬일의 시말운동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아니 박찬일 시학이 겨냥하는 저 지고한 의식 세계를 우리는 말해질 수 있는 말로 언표 가능한가. 박찬일의 상징에의 저항법은 니체의 아포리즘적 전복 이후 가장 극렬한 시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가 어느 길로 휘돌아갈지 예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제까지 시인이 실천했던 범상치 않은 시살이에 경의를 표해야야 할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시말길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분명 간단치 않은 생명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반복적 리듬 속에 응고된 전복적 운명의 귀결처럼, 이 책은 박찬일의 시세계가 보여주는 상징과의 대면함으로써 그가 운명의 시인임을 예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