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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머리에 1부 운명과 묵종이라는 베토벤적 명제 앞에서 베토벤의 ‘패밀리 로맨스’ 환상 베토벤의 질병과 정신세계 베토벤의 ‘매독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장엄미사〉에서 표출된 베토벤의 신앙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들으며 생각한다 2부 동시대인들이 본 베토벤 머리글 - 고트프리트 피셔 위대한 천재도 어린 시절엔 개구쟁이였다 - 크리스찬 고틀로프 네페 “이 어린 천재는 ‘제2의 모짜르트’가 될 것이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어느 땐가 그는 세상의 화젯거리가 될 거요.” - 요한 셴크 나는 베토벤에게 비밀히 대위법을 가르쳤다 - 카를 체르니 “나는 왜 작곡을 하는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 페르디난트 리스 〈F단조 피아노 소나타〉의 마지막 ‘알레그로’를 위한 주제가 떠올랐을 때…… - 아우구스트 뢰켈 17년 동안 ‘잠자는 미녀’로 있었던 오페라의 신세계 〈피델리오〉 - 트레몽 남작 음악가들을 깜짝 놀라게 한 남작과의 우정 - 이그나쯔 모셜레즈 “오오, 인간이여! 그대 자신을 도울지니!” - 루트비히 쉬포어 베토벤의 지휘 스타일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 요한 벤 토마셰크 “소송이 끝나자마자 나는 〈레퀴엠〉을 작곡할 작정이었어요.” - 자키노 로시니 빈에선 어딜 가나 베토벤이 화제였다 - 프리드리히 로흘리쯔 베토벤은 가극 〈파우스트〉와 〈제10교향곡〉, 〈오라토리오〉를 작곡할 계획이었다 - 프란츠 그릴파르쩌 베토벤은 평판 나쁜 시골 미녀에게 홀딱 빠지기도 했다 - 카를 마리아 폰 베버 〈자유의 사수〉를 격찬하며 베버를 연인처럼 대하다 - 프란츠 리스트 거장께선 어린 나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 조지 스마트 경 바덴의 베토벤 집에서 최고의 환대를 받다 - 게르하르트 폰 브로이닝 조카의 ‘자살미수’는 노(老) 베토벤을 광란상태에 빠뜨렸다 - 프리드리히 비크 베토벤의 즉흥연주는 최고로 매혹적이었다 - 모셜레즈에게 보낸 쉰틀러(Schindler)의 편지 베토벤의 최후 - 베토벤의 의사 바브루흐(Wawruch) 박사의 회고 - 베토벤의 장례식 3부 베토벤의 편지들 콜로뉴의 선거후(侯) 막시밀리언 프리드리히 대공에게 보낸 헌정의 편지 프란츠 베겔러에게 F. G. 베겔러 박사에게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쿨란트의 카를 아멘다에게 탈젠의 카를 아멘다에게 글라이헨슈타인 남작에게 런던의 페르디난트 리스에게 다시 리스에게 베토벤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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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마찬가지로 콜로뉴의 궁정 음악가였던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은 범용한 재능의 테너요 평범한 교사로서 부친이 자기를 위해 마련해둔 길을 충실히 따라갔지만, 집안에서도 궁정에서도 그는 언제나 거인 같은 부친의 위력에 눌려 위축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카리스마적인 존재였던 부친이 없어지고 자신이 일가의 가장이 되자 오랫동안 부친의 권위에 억눌려왔던 심리적 반동으로 그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을 아들을 향해 행사하려고 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였지만 참으로 베토벤을 위해선 끔찍한 재난이었다. 아들에게 스스로 음악을 가르쳤던 요한은 부친에 대한 적의와 열등감을 어린 베토벤에 대한 왜곡된 교육법으로 보상하려 했기 때문이다. --- p.19 「베토벤의 ‘패밀리 로맨스’ 환상」
베토벤이 남긴 순수한 연애편지는 소위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것으로, 단 세 통밖에 없다. 그것은 베토벤의 사후 그의 캐비닛의 비밀서랍 속에서 발견된 것인데, 베토벤의 숭배자로서 그의 만년의 비서 겸 친구였던 안톤 쉰틀러가 베토벤의 다른 유품과 함께 슬그머니 그의 집으로 가져가 오랫동안 아무도 그걸 볼 수가 없었다. 베토벤은 이들 편지에서 고의로 수신인의 이름과 장소 및 연도를 기입하지 않았지만, 이같은 사실은 수년 동안 숨겨져 있었다. --- p.64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어느 땐가 그는 자신이 소년이었을 땐 태만해서 그다지 호된 과업에 매달리지 않았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또한 그의 음악적 훈련은 빈약한 것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내겐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었지”라고 그는 덧붙였다. 온갖 진지함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그에게 나는 감동했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선 아무도 그와 달리 의심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어느 땐가 또 화제가 그의 이름이 전세계를 석권한 명성에 미쳤다. “넌센스야.” 그가 말했다. “나는 한 번도 명성과 영예를 위해 작곡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와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 작곡을 하는 거야.” --- p.166 「“나는 왜 작곡을 하는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자필 악보를 조금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일단 그것들이 인쇄됐을 땐 곁방이나 혹은 서재 한가운데 마루 위에 흩어져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뒹굴었다. 나는 자주 그의 작품들을 정리했다. 그러나 베토벤이 뭔가를 찾고 있을 땐 모든 것은 다시 뒤죽박죽이 되었다. 당시 나는 이미 인쇄된 작품의 모든 자필 원고를 죄다 가져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그에게 그것들을 요구했다면 그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것들을 내게 주었으리라 확신한다. --- p.184 「〈F 단조 피아노 소나타〉의 마지막 ‘알레그로’를 위한 주제가 떠올랐을 때」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이 위대한 인물을 방문한 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죠. 이 방문이 내게 남긴 인상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므로 - 그와 같은 빈곤과 누추함을 생각하니 - 나는 눈물을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었어요. “아아!”라고 카르파니가 말했어요. “저건 바로 그가 원하는 것이에요. 그는 염세가이며 까다롭고 친구를 사귈 수 없답니다.” --- p.248 「비엔나에선 어딜 가나 베토벤이 화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