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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캡슐이 땅에 닿았다.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두세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걸어 나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모두들 웃는 얼굴이었다. 그 사람들이 다시 마주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림은 그 속에 없었다. 우리는 다음 캡슐을 기다렸고, 그다음 캡슐, 다시 그다음 캡슐까지 기다렸다. 살림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런던 아이가 한 바퀴 도는 30분 동안, 밀폐된 캡슐 안에서 살림은 어디론가, 어떤 방식으로, 지구 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 p.7~8 “나는 병에 걸린 건 아니야.” “그렇지.” “바보인 것도 아니고.”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정상인도 아니야.” “그래? 어떤 사람인 거야?” “뇌는 컴퓨터와 비슷해.” 나는 설명했다. “그런데 나의 뇌 구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작동하게 되어 있어.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 방식도 달라.” “오, 그렇군.” “그건 내가 어떤 사실이나 사물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사고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의미야. 의사들은 내가 ‘고기능성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이라고 해.” --- p.38~39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사람들이 ‘영감’이라고 부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감이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생각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신들이나 혹은 신(당신이 다신론자인지 유일신을 믿는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다.)이 우리의 머릿속에 불어넣어 주는 생각이 영감이라고 믿었다. “아홉 번째 가설이 떠올랐어.” 내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는 안 돼. 외계인이 살림을 우주선으로 납치해 갔다든지, 살림이 차원이 다른 두 세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든지 또는…….” “아니,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야. 내 생각에 가장 훌륭한 가설인 것 같아.”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내가 말하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 p.107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또 다른 예이기도 했다. 나는 또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갔다. 지구의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배수구로 빠져 나가는 물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강의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런던 아이의 회전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벌레가 암컷이냐 수컷이냐 또는 인공위성이 움직이고 있느냐 정지하고 있느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나의 뇌 속에서 무엇인가 반짝 불이 켜졌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었다. 비슷해 보이나 사실은 서로 다른 두 모습. 하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게 하나 더 있는 것. --- p.192~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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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단순하다. 런던 아이에 탄 사촌 살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살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바로 이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작동하는 ‘뇌’를 가진 주인공 테드가 살림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시계 방향으로 도느냐, 반시계 방향으로 도느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테드는 흡인력을 가진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고기능성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 흔히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하는 증세를 보이는 테드, 그는 보통 사람과 다르게 작동하는 놀라운 ‘뇌’를 가졌다. 좋아하는 것에 대단한 집착을 보이지만,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나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에는 심각한 어려움 겪는다. “내 증후군은 중요한 일들을 잘 기억하게 해. 예를 들면, 날씨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 같은 거야. 하지만 나는 사소한 일들은 늘 잊어버려. 학교에서 쓰는 체육복 가방 같은 것 말이지.” (p.40) 작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는 실제 소년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테드의 모습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그려 냈다. 일기 예보에 집착하고, 농담과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어눌한 말투와 팔을 마구 휘젓는 특이한 자세까지.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긍정적인 측면을 사건 해결의 열쇠로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테드의 탁월한 지적인 능력, 정직함, 고정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각이 바로 런던 아이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나는 언제나 런던 아이가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만약 강의 남쪽 둑 위에서 본다면, 그것이 맞다. 하지만(강력한 하지만이다.) 북쪽 둑에서 바라보면, 시계 방향으로 돈다. … 시계 방향으로 도느냐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도느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p.155) ‘보는 관점’ 혹은 ‘시각’의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미스터리 전체를 관통하며, 모든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고정 관념을 버리면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는 깨달음을 읽는 내내 곱씹게 한다. 또한 나와 다른 시각,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완벽하게 짜인 퍼즐 속에 고군분투하는 성장을 담아낸 소설 사촌을 찾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은 테드와 누나 캣. 평소 티격태격하던 관계는 점차 누그러지고, 둘은 서로 간의 차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간다. 살림의 행방에 관한 논리적인 가설들을 세우는 테드, 행동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런던 시내를 종횡무진하는 캣. 작가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활약을 통해 ‘다르다는 것이 때로는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온 테드는 누나와의 관계를 한 단계 성장시키면서 마침내 자기 안의 룰을 깨뜨리는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고, 혼자서 낯선 길을 찾아 나서며, 스스로 지하철을 타는 등 평소 해 보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한다. 스스로를 가두었던 룰과 한계에 도전하며 온 힘을 기울인 테드의 용기 덕분에 마침내 퍼즐처럼 얽혀 있던 미스터리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 “런던 아이보다 더 재미있다”(내셔널 지오그래픽)는 평을 만큼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추리 소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성장을 담아내어 나와 다른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점 또한 놓칠 수 없는 이 책의 미덕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테드, 캣, 그리고 독자들 모두가 한 뼘씩 자란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런던 아이를 타고 올라간 듯 세상에 대한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