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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일기
극동공군 사령관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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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EF 안보총서

책소개

목차

서문
엮은이의 말
들어가는 말

제1부 암울한 시기
1950년 6월 25일~1950년 9월 14일

제2부 열정의 나날들
1950년 9월 15일~1950년 11월 25일

제3부 혹독한 나날들
1950년 11월 26일~1951년 6월 20일

저자 소개

저자 :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George E. Stratemeyer)
1950년 6월 25일부터 1951년 5월 20일까지 미 극동공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은 한국전쟁 참전 기간 동안 자신의 활동을 일기에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장군들이 이와 같은 일기를 썼으나, 일반적으로 일기 쓰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이 책은 그가 미 극동공군 사령관의 위치에서 한국전쟁과 그 특징을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편저자 : 윌리엄 T. 와이블러드 (William T. Y'Blood)
제2차 세계대전을 주로 연구하고 글을 쓴 미국 전쟁사가(戰爭史家)이다. 미 공군 최초의 보잉 B-47 조종사이자 이후 콘티넨탈 항공(Continental Airlines)의 조종사로서 그가 겪은 경험들이 그의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임무 중인 스트라토젯(Stratojet in Action)』은 그의 전문 분야인 B-47에 대한 사진기록서이다. 『붉은 석양(Red Sun Setting)』은 필리핀 해 전투를 기록한 것으로, 전투 기간 동안에 있었던 공중전(dogfights)과 일본 항공모함에 대한 공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후 그는 호위 항공모함에 관심을 돌려서 『헌터-킬러(Hunter-Killer)』와 『작은 거인들(The Little Giants)』를 쓰게 되었는데, 이 책들로 그는 미얀마 스타 협회(Burma Star Association)와 호위 항공모함 공군 병사 및?수병 협회(Escort Carrier Airmen and Sailors Association)로부터 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미 국방부에 있는 공군역사실(Air Force History Office)에서 역사담당으로 2006년 작고할 때까지 근무했다. 그는 공군역사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에어 파워 저널(Air Power Journal)》의 한 비평가는 그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와이블러드의 책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정확하다. 한마디로 최고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역자 : 문관현
1995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합통신사(현 《연합뉴스》)에 입사했다. 2008년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로 국방부와 외교통상부, 통일부를 출입했고, 2006년 미 국무부의 공식초청을 받아 미국의 외교안보 부서와 연구소, 군사시설 등을 방문했다. 남북 장관급 회담과 군사 회담, 적십자 회담, 이산가족 상봉행사, 대북지원단체 행사 등을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 한국기자협회 부회장과 국제교류위원장, 통일분과위원장을 역임했고,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보통신방송정책 과정(AIC)을 수료했다. 현재는 《연합뉴스》의 기획조정실 미디어전략팀에서 일하고 있다.
역자 : 손석주
동아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코리아 타임스》, 《연합뉴스》 기자로 일했다. 국방부,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을 출입했다. 제34회 한국현대문학번역상, 제4회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을 받았고, 2007년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번역지원금을 수혜했다. 현재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탈식민지 영문학의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로힌턴 미스트리(Rohinton Mistry)의 장편소설 『적절한 균형』을 번역했으며, 김인숙의 단편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을 영역했다. 계간지 《아시아》 등에 단편소설, 에세이, 논문 30여 편을 국역 및 영역했다.
역자 : 김택
1995년 공군사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임관하여 공군군수사령부, 제11전투비행단, 한미연합군사령부 공보실 등에서 근무했다. 2001년에는 미국 국방공보학교(Defense Information School)에서 공보장교과정을 졸업했고, 2007년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에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다국적군 참가 연합훈련인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에 대한민국공군 공보참모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2010년에는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 저널리즘 스쿨(School of Journalism)에서 방문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공군 본부 공보과에서 언론담당으로 근무 중이다.
역자 : 오충원
1999년 공군사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KF-16을 주기종으로 전투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공군대학교 초급 지휘관 참모 과정을 차석으로 졸업했으며, 2008년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에서 군사전략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군 작전사령부 합동훈련 담당관을 역임한 뒤, 현재 군산기지 KF-16 비행교관으로서 영공방위 임무의 최일선에서 근무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820쪽 | 1056g | 153*224*40mm
ISBN13
9788992326995

책 속으로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중국-버마-인도 전역에서, 한국전쟁 때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극동군사령부에서 만연했던 복잡하게 얽힌 음모와 싸움에 휘말린 지휘관 치고는 놀라울 만큼 이성적이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알며, 온화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팀버레이크 장군은 “누구라도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트레이트마이어를 이커와 두리틀 장군과 함께 자신이 모셨던 최고의 상관 3명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할러웨이는 스트레이트마이어가 “모든 사람에게 부담 없이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으며, 패트리지는 그를 “관대하고 사려 깊고, 겸손한 보수주의 신사”라고 평했다. 크레이기는 “내가 그와 같은 팀이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사람들을 아끼고 그들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부하들은 진심으로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 또한 자신의 상관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할러웨이 장군은 “그는 의견을 피력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매우 진지하고 분명하게 의견을 표명하되 항상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만약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명령에 따랐으며 공적으로는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p.27 중에서

스트레이트마이어와 공군, 그리고 다른 군에게 한국전쟁은 힘든 전쟁이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은 민감한 전쟁이기도 했다. 물자가 충분치 못하여 자주 한계상황에 직면할 정도로 아주 가혹한 전쟁이었다. 미 극동공군사령부의 많은 비행기들이 사용되지 않거나,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 이미 시대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예산 삭감으로 미 공군은 많은 분야에서 인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 많은 예비군들과 주방위군들이 한국전쟁 때 소집되었으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산 문제 때문에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이트마이어는 그의 병력이 가능한 한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예산 삭감으로 훈련 양이나 내용에 심각한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었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일본에 있는 미 육군이나 해군에 비해서 미 극동공군사령부의 전시작전 대비를 훨씬 더 잘 갖추어놓았다. 물론 실수와 병력 손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한국전쟁 동안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p.50 중에서

게다가 한국전쟁은 민감한 전쟁이었다. 이른바 ‘제한전’이라고 불리는 전쟁 중에서 첫 번째였던 한국전쟁은 미국의 세심한 군사적ㆍ외교적 손길을 필요로 했다. 극동지역은 미국이 전쟁을 계획했던 곳이 아니었고, 전쟁을 치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워싱턴의 초점은 소련이 군사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유럽에 맞춰져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 합참과 트루먼 행정부 고위 보좌관들은 대부분 이시오프 스탈린 소련 수상의 구체적인 명령에 따라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위협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전 세계에 공산주주의의 악행을 공개적으로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과잉 반응을 보이면 유럽이 공격에 취약해질 수도 있었다. 따라서 제한전에서 작전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민감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했다.

한국전쟁 때 내려진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살펴보면, 정책수립 과정에서 상당히 신중했음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유엔군이 북진할 때 38선을 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를 상당히 우려했고, 트루먼 행정부 내에서조차도 38선을 넘게 되면 소련 국경선에 대한 위협으로 비쳐져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그것은 소련과 중국을 갈라놓고 극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다른 의견들 때문에 관점의 차이를 조정하여 통일된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능수능란한 조정능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조정능력의 부족은 압록강 진격 결정에서도 잘 드러났다. 다양한 정보원으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통해 볼 때, 유엔군이 압록강에 너무 가까이 진격하면 중공의 참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K. M. 파니카 주중 인도대사의 정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정보가 왜곡되었고, 신뢰할 수 없다면 무시해버렸다. 또한 워싱턴과 극동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말을 빌리자면, ‘승리 병’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맥아더의 낙관적인 보고서들과 함께 변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워싱턴 정책입안자들이 개탄할 만큼 느렸기 때문이었다.

---p.51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극동공군 사령관이 기록한
살아 있는 한국전쟁의 교훈

“나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세 가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것은 바로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 ‘언론과의 전쟁’,
‘미 육군 및 해군과의 전쟁이었다!”

3군 합동성 강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전쟁기록서

‘잊혀진 전쟁’, ‘제한전’으로 불리는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과 서가 처음으로 부딪친 전쟁으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1년 6ㆍ25전쟁 61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당시 미 극동공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이 기록한 한국전쟁 일기와 함께 당시 극동군 사령관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각 군의 수뇌부 주요 인사들과 주고받은 비밀전문과 사적인 전문들을 공개한 귀중한 전쟁기록서로, 우리 전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미군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료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을 단순한 지상전으로 간주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전쟁은 미 공군이 1947년 9월 18일 미 육군으로부터 독립하여 육군 및 해군과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의 독립된 군으로서 전투에 참가한 첫 번째 전쟁이었으며, 미국의 각 군 항공 전력이 힘을 합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전쟁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적군에 맞선 상황에서 미 공군이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지상군은 공습에 노출되어 처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미 극동공군 장병들과 항공기, 그리고 해군과 해병대 항공 전력이 없었더라면, 한국전쟁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처음부터 기록한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는 극동공군 사령관이라는 지위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본 그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다. 그의 일기에는 극동군 사령관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세운 작전, 문제점, 그리고 성공과 실패 사례들이 담겨 있으며
한국전쟁 동안 미국 각 군의 막후 활동과 언론 홍보 활동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이 일기에 쓴 적절한 군사력의 규모와 장비,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정보, 다른 군과 협조, 그리고 언론의 전쟁 보도 영향력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욱이 6ㆍ25전쟁 61주년을 맞는 2011년 ‘3군의 합동성 강화’가 우리 군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한국전쟁 동안 미 육ㆍ해ㆍ공군이 불협화음 속에서 합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서로 조율해나가는 모습은 우리 군이 합동ㆍ연합 전력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가 아닌 전시지휘권 문제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료
조지 스트레이트 장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1951년 5월 20일까지 한국전쟁 참전 기간 동안 자신의 활동을 일기에 상세하게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장군들이 이와 같은 일기를 썼으나, 일반적으로 일기 쓰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한국전쟁을 기록한 일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놀랍게도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과 당시 미 제5공군 사령관이었던 얼 E. 패트리지 소장(이 책에 일부가 실려 있음), 그리고 제5공군 부사령관 에드워드 J. 팀버레이크 소장이 쓴 3권의 일기가 존재한다. 미 극동공군 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를 담은 이 책은 군 수뇌부의 계획과 전략,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14일까지, 그리고 2부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된 9월 15일부터 11월 25일 대규모 중공군 공격 개시까지, 그리고 3부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스트레이트마이어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극동공군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1951년 5월 20일까지로 되어 있다.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에는 당시 공군 최고 야전사령관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전쟁과 미 공군의 역할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인적ㆍ물적 자원의 부족, 다른 군과의 갈등관계, 갈등관계라기보다는 애증관계에 더 가까웠던 언론과의 관계, 그리고 상부의 지시들이 모순되거나 배치되는 상황에서 전투를 치르는 문제, 그리고 3군의 불협화음 속에서 합동작전을 위해 조율해나가는 과정 등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스트레이트마이어가 한국에서 치른 제한전의 경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저강도’ 게릴라 작전에서부터 핵전쟁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는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전쟁을 연구하는 학생들과 모든 계급의 장교들이 전시지휘권 문제와 3군의 합동작전 조율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귀중한 전쟁기록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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