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감수의 글
벌지 전투의 배경 벌지 전투의 시간별 진행상황 양측 전투계획 독일군의 계획|미군의 계획 양측 지휘관 독일군 지휘관|미군 지휘관 양측 전력 독일군 부대|미군 부대|전투서열-벌지 북부지역 전투 개시 돌파구의 확대 파이퍼 전투단|특수작전: 그리프 작전과 슈퇴서 작전|생비트 방어전 전투의 영향 오늘날의 전장 참고문헌 |
Steven J. Zaloga
스티븐 J. 잴로거의 다른 상품
강민수의 다른 상품
|
정예병들을 대부분 잃은 독일군 오합지졸들과,
낙관에 젖어 있다가 의표를 찔린 연합군들이 빚어낸 좌충우돌 싸움판이 바로 벌지 전투였다. 하지만 양측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예상치 못한 조우 및 근접전을 반복하는 상황 속에서도 영웅은 탄생했고, 신화와 전설은 피어났다! 벌지 전투[벌지(bulge)는 돌출부를 뜻하는 말로, 벌지 전투는 당시 전선의 모양에서 유래한 아르덴 전투의 별칭이다]는 서부전선의 명운을 건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이자,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치른 전투 중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전투이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추축국의 중핵이자 한때 무적을 자랑했던 제3제국 군대는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한 후, 유럽의 서부전선에서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연합군은 원래 194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고, 사실상 전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군은 당시 상황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연합군의 의표를 찌르는 대반격작전에 나선다. 이 대대적인 기습작전은 사실 독일군 지휘관들조차 ‘잘 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무모한 것이었으며, 히틀러의 과대망상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즉 정예병들을 대부분 잃은 독일이 마구잡이로 인원수만 채워 전장에 내보낸 오합지졸들과, 낙관에 젖어 있다가 의표를 찔린 연합군들이 빚어낸 좌충우돌의 싸움판이 바로 벌지 전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양측이 모두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예상치 못한 조우 및 근접전을 반복하는 상황 속에서도 영웅은 탄생했고, 신화와 전설이 피어났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만일 독일군이 벌지 대작전을 벌이지 않고 본토수비에 주력했다면 이후 전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훗날의 군사 전략가들은 대부분 독일군이 벌지 전투에 투입한 이 ‘마지막 전투력’으로 본토방위에 주력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벌지 전투에서의 전력 소모가 이후 연합군의 진격을 더 용이하게 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이 전투야말로 전후 서독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군사적 요인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