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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의 글
전투의 기원 소모전 전쟁을 향한 첫 걸음 양측 작전계획 이집트군 / 이스라엘군 양측 전력 이집트군 / 이집트 육군 전투서열(1973년 10월) 이스라엘군 / 이스라엘 남부군 전투서열(1973년 10월) 양측 지휘관 이집트군 지휘부 / 이스라엘군 지휘부 10월 전쟁 바드르 작전 / 쇼바크 요님 / 이스라엘군의 초기 반격 / 복수혈전 / 가젤 작전 / 대단원 전쟁의 여파 전장의 현재 모습 연표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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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VS 이스라엘, ‘철옹성벽’을 믿고 자만하던 이스라엘,
이집트군의 기습적인 도하에 허를 찔리다! 아랍 연맹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는 외교와 군사 양면에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냉철하고도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그런 면에서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최대맞수는 시리아보다도 이집트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이집트는 전쟁 개시 몇 시간 만에, 이스라엘군의 자동화기가 불을 뿜고 있는 가운데서, 수만 병력과 기갑차량 수천 대를 수에즈 운하 건너편으로 도하시킨다. 이스라엘의 마지노선으로 운하 기슭에 거대하게 솟아 있던 모래방벽은 미리 준비한 고압 호스에 씻겨나가 뻥 뚫려버렸고, 기갑차량에 탄 이집트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 통로를 지나 이스라엘의 ‘철옹성벽’ 바레브 라인을 함락시키고 운하 동쪽 지대를 장악한다. 이집트군의 치밀한 준비와 막강한 전력, 그리고 이집트 보병들의 강한 투지와 손에 쥔 대전차무기를 얕본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어설픈 반격을 가했다가 200대에 가까운 전차를 잃으며 일패도지하는데, 이것은 건국전쟁 이래 이스라엘이 개별 전투에서 맛본 최악의 패배라 할 수 있었다. 이집트는 더 이상 무모한 공격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작전 목표를 달성했으며, 이스라엘의 어떠한 공격도 격퇴할 수 있는 준비를 끝마쳤다. 정교하게 준비되고 실행된 이 ‘바드르’ 작전은 사상 최고의 도하작전으로 불릴 만큼 성공적이었고, 더 이상 이스라엘이 이 남부전선에서 어찌해볼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정치적 논리와 과욕이 부른 실패! 현장의 소리를 듣지 않는 자, 패배하리라! 그러나 이러한 이집트군의 성공은 골란 고원에서 수세에 몰린 시리아를 지원한다는 정치적논리로 무모한 추가 공격명령이 내려지면서 상당 부분 빛이 바래게 된다. 군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며 거듭 철회를 촉구한 현장 지휘관의 요청은 묵살되고, 이집트군 지휘부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이스라엘 공군의 무시무시한 폭격을 막아주던 SAM(지대공 미사일) 우산을 벗어나 공격을 감행하라는 ‘자살 명령’을 내렸다. 이집트의 자충수로 천우신조의 기회를 잡은 이스라엘군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아리엘 샤론을 비롯한 현장 지휘관들의 주도로 운하를 역도하하여 이집트 내지를 공격한다는 과감한 작전이 입안되고 진행된 것이다. 결국 다급해진 이집트가 먼저 외교 협상에 응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리아가 이에 뒤따르면서 이스라엘을 급박한 위기로 몰아넣었던 제4차 중동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이……. 이스라엘은 전쟁 중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고 실제로 1개 팬텀 비행대대에 핵무기들을 장착시켰을 만큼 절박한 상황 하에 있었다. 비록 군사적으로는 시리아와 이집트 양 국가의 공격을 격퇴하고 오히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포격권에 넣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이 겪었던 공포와 혼란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다. 전쟁 수행과정을 조사한 아그라나트 위원회는 골다 메이어 총리를 비롯한 군 지도부의 주요 인사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고, 국민들 역시 총선에서 노동당의 30년 집권에 종지부를 찍어 그 책임을 물었다. 저자는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이스라엘 사회의 혼란이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이 전쟁이 이스라엘이 미국의 군사, 외교, 경제적 지원에 전례 없이 의존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고 갈파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와 이집트는 이 ‘10월 전쟁’을 군사강국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 세계에 아랍세계의 자존심을 세운 계기로 평가한다. 특히 가장 실리를 챙긴 것은 이집트라 할 수 있는데,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으며 결국 시나이 반도를 반환, 1978년에는 이스라엘 메나헴 베긴 총리와 사다트 대통령이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1년 10월 6일, 사다트 대통령이 자신이 주도한 1973년의 수에즈 운하 도하를 기념하는 식장에서 한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의 손에 암살당하는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곰씹게 한다. 세월이 흘러도 빛나는 사람들의 리더십과 용기! 개인의 행위가 전쟁의 결과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현대전에서도 언제나 사태의 균형을 바꿔놓는 특별한 결단과 사건들이 있기 마련이며, 개별 전투에서는 무엇보다도 지휘관의 판단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 제4차 중동전쟁은 일선 리더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수 있다. 현장 지휘관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즉각 반영하고자 노력―그들은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격렬한 논쟁을 벌여 서로 감정이 상하기 일쑤였다―했던 이스라엘은 위기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고 전과를 확대할 수 있었다. 반면 시리아와 이집트는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권과 역할을 무시하거나 절박한 요청들을 묵살함으로써 확실해보였던 승리를 날려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