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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의 글
전투의 배경 양측 작전계획 양측 전력 시리아군 / 전투서열 : 시리아 육군, 요르단군, 이라크군 이스라엘군 / 전투서열 : 이스라엘 북부군 양측 지휘관 시리아군 지휘부 / 이스라엘군 지휘부 골란 고원 전투 시리아군의 공세 / 눈물의 계곡 / 이스라엘군의 반격 전쟁의 여파 전장의 현재 모습 연표 참고 문헌 |
Howard Gerr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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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VS 이스라엘, 골란 고원에서 기갑전투 사상 최고의
방어전이 펼쳐지다! 이스라엘은 일선 지휘관들과 정보당국의 조언으로 전쟁이 발발하기 얼마 전, 188‘바락’기갑여단이 수비하고 있던 골란 고원에 7기갑여단을 추가로 배치한다. 7기갑여단의 1개 대대, 77 OZ대대는 눈물의 계곡에서 15배가 많은 시리아 전차를 맞아 36시간이나 버티기도 했다. 이들은, IAF(이스라엘 공군)가 시리아의 잘 구축된 방공망체계 때문에 ‘6일 전쟁’ 때처럼 위력적인 공격을 펴지 못하고 전략 요충 헤르몬 산 관측기지가 시리아군 특수부대에게 점령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골란 고원으로 쇄도해오는 1,200여 대의 시리아 전차를 맞아 말 그대로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쳐야 했다. 전차 위에 몸을 내놓고 관측과 지휘를 하던 전차장들은 목이 날아간 채 전차 안으로 굴러떨어지기 일쑤였고, 그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전차를 버리고 달아난 승무원들도 부지기수였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상황에 놀라 골란 고원에서 후퇴하자고 건의했고, 골란 고원의 점령과 뒤이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의 재앙은 피할 길이 없어보였다. 간발의 차이로 갈린 희비! 먼저 등을 보이는 자, 그저 밀어붙이는 자, ‘교본’에 얽매이는 자, 승리를 얻지 못하리라! 이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애국심’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 군인들의 의지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벤 한난 중령은 신혼여행 도중 전쟁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 공항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장으로 직행했다. 단 라너 장군은 직접 야전헌병 역할을 하며 동원병력이 집결하는 족족 전장으로 투입했다. 많은 병사들이, 어떤 이들은 부상을 입은 채로, 수십 시간이나 잠을 자지 못한 채 전투를 계속했으며, 마찬가지로 지원부대와 공군 조종사들 역시 그렇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전차가 불과 몇 대도 남지 않은 전멸의 순간에, 거짓말처럼, 그들은 시리아군이 400여 대의 불탄 전차들을 남긴 채 전술적 후퇴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골란 고원이 점령을 모면하는 순간이었다. 벤 갈 대령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상대방이 어떤 처지인지는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언제나 자기보다 나으려니 생각하기 마련이죠. 시리아인들은 성공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헛짚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저자는 만일 시리아군이 ‘전술적 미숙함’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저 상대를 뚫고 나가려고만 했던 ‘우직함’, 즉 ‘교본’대로만 전투하려던 시리아군의 경직된 전투방식이 가장 중요한 패인이라는 것이다. 시리아 육군 틀라스 장군은 급박한 상황에서 명령을 전달한답시고 전방지휘관들을 소환하는가 하면, 필요한 곳에 병력을 집중하는 유연성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한 시리아 부대는 목표지점에 다다르자 다른 방해가 없는데도 멀뚱히 서서 후속부대의 도착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것은 소대나 중대 규모의 동원전차들을 도착하는 족족 신속하게 전장에 투입하며 전술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했던 이스라엘군과는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대들이 이스라엘을 구했다.” 제4차 중동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골란 고원의 혈투! 전투 직후 이스라엘군의 한 사단장은 7기갑여단 지휘관 벤 갈과 그의 병사들에게 “그대들이 이스라엘을 구했다”고 치하했다. 골란 고원 전투는 제4차 중동전쟁 전체의 흐름을 결정한 군사적으로 중대한 전투였다. 뜻밖에 강력한 저항을 받은 데다 오히려 반격을 저지해야 할 형편에 처한 시리아는 급박한 나머지 이집트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이집트가 계획에 없었던 무모한 공격을 시작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양쪽 전선 모두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 영토로 침입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포격권에 넣었고 전투 초기에 빼앗겼던 헤르몬 산의 관측지점까지 탈환하면서 전투를 종결짓는다.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이……. 이스라엘은 전쟁 중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고 실제로 1개 팬텀 비행대대에 핵무기들을 장착시켰을 만큼 절박한 상황 하에 있었다. 비록 군사적으로는 시리아와 이집트 양 국가의 공격을 격퇴하고 오히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포격권에 넣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이 겪었던 공포와 혼란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다. 전쟁 수행과정을 조사한 아그라나트 위원회는 골다 메이어 총리를 비롯한 군 지도부의 주요 인사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고, 국민들 역시 총선에서 노동당의 30년 집권에 종지부를 찍어 그 책임을 물었다. 저자는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이스라엘 사회의 혼란이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이 전쟁이 이스라엘이 미국의 군사, 외교, 경제적 지원에 전례 없이 의존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고 갈파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와 이집트는 이 ‘10월 전쟁’을 군사강국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 세계에 아랍세계의 자존심을 세운 계기로 평가한다. 특히 가장 실리를 챙긴 것은 이집트라 할 수 있는데,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으며 결국 시나이 반도를 반환, 1978년에는 이스라엘 메나헴 베긴 총리와 사다트 대통령이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1년 10월 6일, 사다트 대통령이 자신이 주도한 1973년의 수에즈 운하 도하를 기념하는 식장에서 한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의 손에 암살당하는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곰씹게 한다. 세월이 흘러도 빛나는 사람들의 리더십과 용기! 개인의 행위가 전쟁의 결과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현대전에서도 언제나 사태의 균형을 바꿔놓는 특별한 결단과 사건들이 있기 마련이며, 개별 전투에서는 무엇보다도 지휘관의 판단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 제4차 중동전쟁은 일선 리더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수 있다. 현장 지휘관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즉각 반영하고자 노력―그들은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격렬한 논쟁을 벌여 서로 감정이 상하기 일쑤였다―했던 이스라엘은 위기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고 전과를 확대할 수 있었다. 반면 시리아와 이집트는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권과 역할을 무시하거나 절박한 요청들을 묵살함으로써 확실해보였던 승리를 날려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