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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1942
세계사의 균형추를 움직인 사상 최대의 해전 양장
김홍래
플래닛미디어 2008.07.11.
베스트
국방/군사 top20 3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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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쟁

책소개

목차

감수의 글

1. 미드웨이의 서막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승전병 | 최종 준비

2. 미군의 대비

3. 양측 작전계획
일본군 작전계획 | 심각한 정보결핍 | 미군 작전계획

4. 양측 지휘관
일본군 지휘관 | 미군 지휘관

5. 양측 해군 항공전력
일본 해군 | 미국 해군

6. 6월 3일의 전투
전투 개시 | 미드웨이 공략부대 발견 |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 | 제1항공함대

7. 6월 4일의 전투
제1항공함대의 미드웨이 공습 | 미드웨이 섬 03:00~07:00 |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 04:30~08:38 | 제1항공함대 07:00~09:20 |
용감한 희생 | 응벌 | 요크타운 함의 최후 | 히류 함의 최후 | MI작전 취소 |
6월 5일 미쿠마와 모가미의 침몰

8. 전투의 영향

연보
추가자료·참조문헌

저자 소개 1

한양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베어 & 드래곤』과 『레인보우 식스』, ‘넷포스’ 시리즈, 『당신네들의 조국』, 『나는 하루를 살아도 사자로 살고 싶다』,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인천 1950』, 『워털루 1815』, 『미드웨이 1942』, 『진주만 1941』, 『레이테만 1944』를 비롯해 『로마 전쟁』, 『퍼시픽』, 『모든 것의 가격』, 『넥스트 디케이드』, 『니미츠』, 『첩보의 기술』 등이 있다.

김홍래의 다른 상품

저자 : 마크 힐리
1953년생으로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정치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머싯의 명문학교에서 인문학부 학장을 맡고 있다. 고대사와 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엘리트(Elite) 시리즈 40 『새로운 왕국 이집트(New Kingdom Egypt)』와 캠페인(Campaign) 시리즈 16 『쿠르스크(Kursk) 1943』을 포함해 오스프리(Osprey) 출판사의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도싯(Dorset)에 살고 있다.
감수 : 남도현
1991년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럭키금성상사, 한국자동차보험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DHT AGENCY라는 국제무역 및 물류 대행회사를 운영 중인 비즈니스맨. 국내 최고의 밀리터리 사이트 ‘유용원의 군사세계 bemil.chosun.com’에 august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고 있으며, 전사와 관련된 책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7월 1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55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2326384

책 속으로

힘의 절정에서 불지옥까지

처음 세 발의 폭탄은 가가를 비껴갔다. 그러나 네 번째는, 완전 무장하고 연료를 만재한 채 비행갑판 후미에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던 항공기 집단 가운데에 수직으로 떨어졌다. 연료와 무기가 폭발하면서 항공기 승무원들은 자신의 조종석에서 화장(火葬)을 당했고 비행갑판은 화장장으로 변했다. 불붙은 연료가 비행갑판에서 흘러내리며 통로를 메워버리자 항공요원들은 비행갑판에 고립되고 말았다. 두 발의 폭탄이 함수 엘리베이터 근처에 떨어졌는데 그중 한 발은 격납고 갑판까지 뚫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2차 공습부대의 항공기들이 재급유와 재무장을 받고 있었다. 폭발은 연료탱크와 함께 다수의 250킬로그램 폭탄들을 유폭(誘爆)시켰는데, 마침 폭탄들은 이른 아침의 첫 번째 무장교체 후 너무나 부주의하게 쌓여 있던 터였다. 고옥탄가 연료는 폭발하면서 격납고에 대화재를 일으켜 작업 중이던 정비사와 무장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비행갑판은 지옥으로 변했다. 네 번째 폭탄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충격파가 연료펌프를 파열시킨 것이었다. 다시 연료펌프가 폭발하면서 함교에 있던 함장 오카다 대령과 그의 항공모함 지휘부가 전멸했다.
이제 가가는 함수부터 함미까지 모두 불길을 내뿜고 있었다. 대공포는 이제 저절로 발사되었다. 강렬한 열기에 탄약 속 장약이 발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발전기가 멈추면서 모든 전등이 꺼졌고, 선체는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승조원들이 이미 바다에 뛰어든 상태였지만 아마가이 대령은 배를 포기하라는 최종명령을 내리지 않고 16:40시까지 버텼다. 가가는 홀로 외롭게 떠 있었고, 구축함 마이카제와 하기카제만 남아서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었다. 최후는 19:25시가 되어서야 찾아왔다. 불길이 탄약고에 이르면서 두 번의 거대한 폭발과 함께 가가의 선체가 갈라졌다. 잠시 뒤 불길에 휩싸인 폐선은 뒤집히며 심해로 가라앉았고, 800명의 승조원과 사실상 거의 모든 항공요원들을 함께 데려갔다. --- 본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중요한 것은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

아시아와 미주 양대 대륙의 중간 섬 미드웨이…
태평양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동양과 서양의 최강 함대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을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의 판도를 바꾼 최고의 정보전

하와이 북서쪽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미드웨이는 태평양에 널려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제도 중 하나다. 그러나 전사를 넘어 세계사에도 뚜렷한 발자국을 남길 만큼 거대했던 해전 하나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곳을 과분할 만큼 유명하게 만들어버렸다.
1941년 12월 7일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습한 일본은 그 후 6개월간 승승장구하며 기세를 올리지만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를 기점으로 전쟁의 주도권은 미국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따라서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몰락의 결정적인 전투가 되었다.
미드웨이 해전은 ‘정보전의 승리’로 요약할 수 있다. 미드웨이에서 미군이 승리할 수 있게 한 요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공적이 가장 큰 것은 해군 전투정보실 하와이 지국(하이포Hypo)이 일본 해군이 운용하던 암호체계 JN25를 해독해낸 것이었다.
일본군이 사용하는 암호 ‘AF’가 미드웨이를 가리킨다는 심증은 있었으나 아직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던 하이포는, ‘미드웨이에 식수가 부족하다’는 보고를 올리게 해 일본의 무전 감청반을 유인했다. 바로 이틀 뒤, 감청반이 일본 함대 지휘관들에게 ‘AF에는 식수가 부족하다’라는 전문을 발송하는 순간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는 이미 결정나버린 것이었다.
미국이 이미 4월 초부터 미드웨이 작전의 냄새를 맡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일본이 그렇게 낙천적인 전망을 갖지는 않았겠지만, 일본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작전이 거의 치명적인 수준까지 누설됐으며, 미국이 일본의 계획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미드웨이 전투는 또 전함끼리 맞붙는 해전이 아니라 항모끼리 싸운 해전으로, 미드웨이 이후의 해전에서는 기함이 전함에서 항모로 바뀌게 만들기도 했다. 이 해전은 처음부터 전투함의 포격전 없이 항공모함 함재기들에 의해 치러진 최초의 전투라는 의의와 상징성을 갖고 있다.

‘니혼 세이신日本精神’ 바이러스

일본인을 지배하고 있던 특유의 사고는 일본인들 자신과 자신의 나라에 대해 품고 있던 독특한 신화적 관점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그 관점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가 ‘세카이 다이 이치’, 즉 세계제일(世界第一)이 될 운명이라고 믿었다. 본토가 아직까지 난공불락인 것이나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까지 거두었던 군사적 성공에 대해 그들은 전쟁장비나 기술적 요소보다 정신적 영역을 더 강조하는 쪽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 유별난 사고방식, 즉 니혼 세이신(日本精神)이라는 선천적인 일본인의 정신으로 인해 그들은 어느 누구와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나라 전체가 사무라이 정신에 깊이 물들어 있었던 일본은 미국을 약하고 퇴폐적이며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서구의 이 거대강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아무런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자신하게 되었다. 미국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거대한 적국의 군사적?산업적 역량과 함께 정신적 잠재력까지 평가절하하는 치명적 오판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초반 4개월에 걸친 태평양전쟁의 눈부신 승리는 적국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교만을 더욱 심해지게 했고, 미드웨이 해전 무렵에는 이 자만심이 최고조에 달해 전투부대 장병들의 사고나 행동에도 만연해 있었다.
이런 자만심은 해군 고위지휘부도 예외가 아니어서, 앞으로의 작전에서 일본은 완전하게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미국 함대는 미드웨이가 함락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출격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을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신봉하고 있었다. 미군의 항공모함들이 바다에서 일본 함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우발사태로서 대단히 단호하고도 용감하게 무시되어버렸다.
워게임에서는 항공모함 가가와 아카기의 침몰을 판정한 훈련관찰관의 결정이 멋대로 뒤집어져, 가가만 침몰하고 아카기는 경미한 피해만 입은 채 전쟁연습에 계속 등장하기도 했다. 그나마 미드웨이 이후 방안을 연구하는 워게임에서는 가가마저 부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수상기로 구성된 항공전대에서는 6월 중순 이후 자신에게 오는 모든 우편물을 미드웨이로 전달하라는 너무나 경솔한 전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만한 낙관주의의 정점은 해군 군령부 대변인이 발표한 다음과 같은 성명서였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적이 우리 함대에 맞서기를 꺼려서 자신의 기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태평양의 전력이 영원히 뒤바뀌기까지 단 5분이면 충분했다

1942년 6월 4일 오전 10시 20분에서 25분 사이, 미 해군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일본 해군 제1항공함대 소속 항공모함(아카기, 가가, 히류, 소류) 4척 중 3척을 대파했다. 같은 날 나머지 함대 히류도 공습을 받아 4발의 폭탄에 명중되었다. 단 한 번의 강하 공습으로, 미 해군의 급강하 폭격기 던트리스는 광대한 태평양 전구에서 일본이 절대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던 해군 항공력 상의 압도적 우위를 무위로 돌려버렸다. 바로 그 5분으로 일본은 힘의 절정에서 패배와 파멸을 마주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1항공함대 소속 항공모함 4척은 일본이 태평양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최고의 공세용 병기였으나 그들의 괴멸과 함께 항공전력에서 일본의 우월성, 즉 광대한 태평양 전구에서 공세적 전투를 펼치는 데 필요한 핵심요소는 사라져버렸다.
작전계획을 세우는 것과 승리를 거두는 것 사이에는 예상치 않았던 엉뚱한 일이 끼어들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전투에서 미국 측이 전혀 실수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최종분석 결과 일본의 실수들은 미국이 한 것에 비해 엄청나게 큰 차이를 보였다. 횟수도 훨씬 많았고 그 정도도 더 강했다.
또 보유한 항공기들의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미드웨이 해전이 전개될 무렵 일본 해군의 항공대에는 커다란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제1항공함대의 항공모함들은 진주만 이래 거의 연속적으로 작전행동 상태에 놓여 있던 상황이라 항공요원들의 체력고갈 상태가 위험한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감행한 진주만 공습은 정치적 성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던 미국인들을 어떤 국내 정치가도 이룰 수 없는 수준으로 단결시켰다. 일본군 조종사들에 의해 초토화된 전함과 사상자들의 사진은 그 공격을 저지른 이들을 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괴멸시키겠다는 매서운 결의를 다지게 했으며, 그에 따른 대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만들었다.
만약 일본이 미드웨이에서 승리했다면, 미국은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을 받아 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명과 재산상의 비용부담도 훨씬 더 커졌겠지만, 그래도 일본제국의 필연적이고 전면적인 붕괴라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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