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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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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zuka Ijuin,いじゅういん しずか,伊集院 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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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여섯 살 무렵, 어머니(요코)는 바다가 보이는 둑으로 나(다다하루)를 종종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바다 건너편 고향을 그리워했다. 아버지(소지로)의 사업 번창으로 우리 집은 상당히 부유했다. 어느 날 외삼촌(고로)이 집에 와 있었다. 도쿄 올림픽(1964년) 응원단으로 19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외삼촌은 한국에서 대령이라고 했다. 동네 요릿집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외삼촌은 제일 상석에 앉았고 마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외삼촌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작 한번 만났을 뿐이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버지보다 외삼촌이 더 영웅이었다.
17년 후,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내게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편지가 왔다. 어머니는 옛날에 외삼촌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1년 가까이 집 마당에 굴을 파고 숨어 살았다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우리 집에서 집사로 일했던 겐조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라면 우리 집 일에 대해 뭐든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외삼촌에 대해 물으러 갔던 것이었다. 나는 외삼촌의 죽음을 알리며 우리 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입을 열었다. 요코(‘나’의 어머니)는 남편 소지로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8월 15일 라디오에서 천황이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고 연합군이 승리한 것이다. 요코의 아버지는 세토나이카이의 염전에서 일용직을 알선해주는 일을 했다. 조선인이었지만 사업수완이 좋아 돈을 많이 벌었고, 요코와 동생 고로에게 공부를 많이 시켰다. 요코가 열일곱 살이던 해, 요코에게 첫눈에 반한 소지로가 요코의 아버지에게 혼담을 넣었다. 몇 차례 거절 후 아버지는 결혼을 승낙했고, 소지로는 1년 후 요코를 아내로 맞이했다. 둘은 검소하게 생활하며 열심히 살았다. 1945년 9월, 아버지는 조선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염전 소장이 조선인을 반동분자로 몰아 세 명이나 죽여서 아버지가 이 사건을 중재하려고 나서자, 오히려 아버지가 선동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화를 냈고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코는 남편 소지로에게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지만 소지로는 일본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요코와 소지로에게 아버지는 계속 함께 떠날 것을 권했지만 어머니는 일단 시집을 갔으니 남편 말에 따르는 게 도리라고 했다. 떠나는 날 어머니와 동생 고로가 먼저 배에 탔다. 고로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걸 기뻐했지만 누나와 헤어지는 게 싫었던 모양인지 배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이미 조선은 북쪽은 소련과 중국, 남쪽은 미국에 점령당한 상태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