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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여성의 목소리 담은 김숨 소설집
우리’라는 폭력적 명명이 아니라 ‘나’와 ‘너’로 온전히 존재하길 바라며 쓴 소설집.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라는 민정의 외침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받는 여성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아냈다. 삶이라는 통과의례가 우리에게 불행이 아니기를.
2017.11.03.
소설/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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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읍산요금소 새의 장례식 해설│양윤의(문학평론가) 불완전한 사랑의 그림자_김숨, 『당신의 신』에 부치는 마흔아홉 개의 주석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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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뭔지 모르겠어. 그 사람과 내가 이혼한 게 꼭 자식이 없어서였을까? 어머니는 둘 사이에 자식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지만 정말 그랬을까? 어머니 말대로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결혼해 사는 내내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처럼 서로 겉도는 느낌이었거든. 주말부부로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새벽에 잠에서 깨, 그 사람 손을 슬그머니 그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옆에 누워 잠든 그 사람이 이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고멀게 느껴져서.”
---「이혼」중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앞에 놓고 그녀는 철식에게 물었다. “악랄한 포주처럼 자신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의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어떤 걸까? 그런 여자들은 자신의 아이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럽지 않을까? 더구나 아이가 아버지의 눈빛을 하고 있으면 그 아이가 끔찍하지 않을까?”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이혼」중에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아니었어?” “영혼……? 나는 당신과 이혼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날 버리겠다는 거 아니야?” “버리다니? 누가 누구를?” “네가, 나를!” “나는 지금 당신을 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당신과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억지 부리지 마!”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 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이혼」중에서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 “이혼이 나는 통과의례 같아. 나도, 당신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시속 백이십 킬로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만난 터널처럼……” “그래……” “나는 이혼이라는 통과의례가 내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 “그래야겠지……” “당신에게는 더더구나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라……” “그래, 그래야겠지……” ---「이혼」중에서 성냥이 스스로 타오르듯, 폭죽이 저절로 터지듯,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던 폭력의 근원에 대해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진돗개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 적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다시 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은 진돗개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강박에 문득문득 시달리고는 한다고 그녀 에게 고백했던가. 시작이 있었다면, 그것이 그녀와 나의 시작이었다. ---「새의 장례식」중에서 나는 그에게 사는 곳을 물으려다 말았다. 그가 사는 곳이 그녀가 사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그녀가 사는 곳이 내가 사는 곳이기도 하던 시간. 그 시간 속에 있을 때 나는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새의 장례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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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이 보여주는 숨막히는 강박성은 우리를 압도한다. 건조한 문장 속에 감춰진 충동과 정념은 폭발하기 직전이다. 이 광물적 삶 속에서 나가기, 서로 다른 둘을 하나로 세지 않고 둘로 세기, 그것이 「이혼」으로 제시되었던 셈이다.
_양윤의, 해설 「불완전한 사랑의 그림자?김숨, 『당신의 신』에 부치는 마흔아홉 개의 주석」에서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우리’라는 폭력적 명명이 아닌 ‘나’와 ‘너’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그녀는 쓴다. 『당신의 신』에는 「이혼」 「읍산요금소」 「새의 장례식」 세 편이 묶였다. 첫머리에 놓인 「이혼」은 김유정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후보작에 오르며 평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 이혼을 앞둔 ‘그녀(민정)’와 남편 ‘철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결혼생활의 양태가 펼쳐진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다양한 양태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받는 여성의 목소리가. 평생 남편의 무시와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이 셋을 낳고 오십삼 년을 함께 산 민정의 어머니. “스스로가 이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알게 된 민정은 절망하지만, 결국 지긋지긋한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는 날까지 지속적인 학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편과의 이혼이 이천 명이 넘는 신도들과의 이혼이기도 해서. 모태에서부터 믿은 신과의 이혼이기도 해서” 남편과 헤어지지 못한 목사 사모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탈하나 뒤틀린 채 곪아가는 부부도 있다. ‘최’와 ‘최의 아내’이다. 아내가 “맏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시아버지 병시중까지 마다하지 않”는 동안 남편은 여자 문제로 아내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민정은 안다. 그러나 ‘최의 아내’는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어쩌겠어요. (…) 우리 아내들 말이에요. (…)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너그러워져요”라며 애써 태연한 척 민정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라 묶어 말해버리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최의 아내’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혼 후 추문에 휩쓸려 해고당한 민정의 선배 영미. 소문의 당사자 남녀 둘 중 영미만 해고되었고 상대 남성에게는 그 소문이 “구두 밑바닥에 들러붙은 껌이나 양복바지에 튄 구정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민정은 뒤늦게 깨닫는다. “이혼으로 한 차례, 추문으로 또 한 차례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영미의 이미지. 학습지 교사로 일할 때건, 감자탕집에서 음식을 나를 때건 ‘이혼녀’라는 사실은 낙인처럼 따라와 영미를 절망시켰다. “자다가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지면 여자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끝났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는 영미의 말, 어쩌면 민정이 마주할 미래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정은 이혼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깊은 밤 철식에게 만두를 쪄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으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철식과 함께할 수 없다.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을 들을지라도, 더는 ‘우리’라는 말로 그와 묶일 수 없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_64쪽, 「이혼」에서 민정은 어째서 이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민정에게 이혼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다.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통과의례. 민정은 이혼이 자신과 철식에게 불행이 아니기를, ‘우리에게’가 아닌 ‘나’와 ‘당신’에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란다. 뒤이어 만나게 될 「읍산요금소」의 요금소도 통과의례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이혼 후 친권도 포기한 ‘그녀’가 일하는 곳. 그녀는 부스 안, 폐쇄된 공간에서 가족도 연인도 없이 혼자 지낸다. 읍산요금소를 지나면 바로 햇빛요양원이고 이어서 화장터와 납골당이 있다. “부스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는 그녀,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잘 알 수 없는 채 그녀는 도로에 석양이 깔리는 것을 지켜본다. 미발표작인 「새의 장례식」에서는 남성 화자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아버지의 폭력 성향을 물려받아 ‘그녀’를 폭행했던 ‘나’, 결국 ‘나’와 이혼한 뒤 ‘그녀’가 재혼한 ‘그’. 소설은 나와 그, 두 사람의 만남을 담았다. 이혼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졌다 해도 삶은 이어진다. 현재의 그녀를 만드는 데 전남편의 영향이 없을 수 없고, 현남편인 그는, 그녀와 내가 부부였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래야 그녀가 겪는 불안 증세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과연 그는 그녀를 좀더 이해하게 될까, 나는 그녀와의 시절을 이제라도/이제야 온전히 끝낼 수 있을까. 이혼이라는 통과의례를 앞두거나 겪고 난 김숨의 그녀들. 낯설지 않은 얼굴들,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이슈화’되면서 수면 위로 더 많이 드러난 얼굴들. 사회/제도적 굴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고 구원의 가능성은 희미하지만, 그녀들이 ‘우리’라는 폭력적 명명이 아닌 ‘나’와 ‘너’로 온전히 존재하길 바라며 작가 김숨은 쓰고 또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