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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뿌리는 소녀
옮긴이의 말 |
Kanako Nishi,にし かなこ,西 加奈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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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에는 어느 날 갑자기 아카쓰키칸에 왔다.
고즈에의 엄마라는, 고즈에와 마찬가지로 피부는 뽀얗지만 전혀 닮지 않은 여자가 아카쓰키칸의 입주 종업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표현이 이상할 수도 있다. 고즈에의 엄마는 엄마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둘의 얼굴이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즈에의 엄마는 왠지 전혀 ‘엄마’답지 않았다. ‘엄마로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그런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즈에도 마찬가지였다. 고즈에는 ‘딸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애’였다. --- p.10 하지만 고즈에는 지금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 그 번진 듯한 갈색 눈동자로 똑바로. “집에 같이 가자.” 고즈에 너머에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몇은 얼굴이 빨개져 시선을 피했고, 몇 명은 진지한 눈으로 내 눈길을 되받았다. 모두 필사적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특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 p.23 갈대발 너머로는 벌거숭이들이 우글우글했다. 남탕에는 녹아 내린 양초 같은 성기를 늘어뜨린 할아버지며 수영 선수 같은 다부진 체격을 한 아저씨가 있었고, 여탕에는 젖가슴이 수박 같은 사람이며 배꼽 위까지 늘어진 할머니도 있었다. 우리는 그걸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이 다른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센마쓰 뒤뜰에 가면 안 된다는 금지령이 떨어졌다. 작년, 우리가 열 살이 됐을 때다. 그리고 5학년이 되자마자 우리는 그 끔찍한 성교육이란 걸 받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점점 이해하게 되는 내가 싫었다. 벌거벗은 누군가의 몸을, 특히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어쩐지 몹시 더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 p.64 “사토시, 너도 알갱이로 돼 있어.” “나도?” “그래. 너는 알갱이가 모여 이뤄진 거야. 이 돌담처럼. 돌 부스러기가 모이고 모이고 계속 모이면 형태가 생기잖아. 그런데, 그 알갱이가 변하기 때문에 넌 나이를 먹는 거고, 나무는 마르고, 건물은 무너지는 거야.” “내가 나무나 돌담과 같은 알갱이로 돼 있단 말이야?” “그래, 작디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알갱이는 다 같은 거야. 우리는 같은 알갱이로 돼 있어.” “말도 안 돼.” “너의 알갱이는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해. 네가 성장해 가는 건, 자신의 알갱이를 내놓고 다른 알갱이를 얻기 때문이야.” “다른 알갱이를 얻어?” “그래. 너나 지구에 있는 것들은 그 알갱이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 서로 변해 가는 알갱이를 주고받으면서.” --- p.99 주방에 있는 아버지는 작아져 있었다. 워낙에 홀쭉했던 사람이 더 야위었다. 그렇다, 그때의 아버지와 엄마는 참 장관이었다.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그런 조합은 웃기는 개그맨 콤비처럼 보였지만 나는 둘이서 개그맨처럼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날부터 누군가에게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팠다. 강한 힘에 짓눌린 것처럼 바스러질 듯이 아팠다. 이를테면 키가 작았던 나에게 누군가가, “아버지처럼 키가 크면 좋겠구나.”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바보 같겠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 p.114 |
가느다란 다리, 쭉 뻗은 등줄기에 눈이 아름다운 미소녀
그런데 실은 다른 별에서 왔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녀 고즈에가 찾아왔다! 주민 대부분이 숙박업을 하며 살아가는 작은 온천 마을. 사토시는 이 조용한 시골에서조차 스스로 투명인간이라고 여길 만큼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눈에 띄는 미소녀 고즈에가 사토시네 여관에서 묵게 된다. 고즈에를 만난 뒤 사토시의 평화는 깨지고, 마음은 매일같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등장과 동시에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고즈에는 아주 이상한 4차원 소녀다.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이 신기해하고, 분필 가루를 핥기도 하고, 뿌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 뿌리기를 좋아한다. 급기야 고즈에가 조심스레 털어놓은 비밀이란 ‘아무도 죽지 않는 별에서 죽음을 배우러 지구에 왔다’는 것이다. 사토시는 바보처럼 믿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고즈에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해 줘야겠다고 생각한다. 고즈에는 시종일관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11살 고즈에는 우리가 지나 온 순수함, 어른을 모방하여 살면서 잊어버린 경탄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고즈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그저 순수하게 경험할 뿐이다. 새하얀 백지와 같은 고즈에의 영향으로 사토시는 살면서 스쳐가는 매순간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아름답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내가 있는 세계 밖, 경계 너머의 삶에서 찾은 희망 한때 아이였던 우리를 위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다 큰 어른이지만 초등학생들 앞에서 만화를 크게 읽는 도노 형, 괜히 어린아이들을 겁주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미라이 아저씨. 한마을 여자들과 두 번이나 바람을 피워 웃음거리가 된 아버지, 아침부터 밥을 네 공기나 먹는 뚱뚱한 엄마. 사토시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하나같이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사토시는 야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어른 따위 되고 싶지 않다. 변해 가는 자신의 몸이 혐오스럽다. 언제까지나 예전 그대로 남아 있고 싶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사토시는 때로 어른과 아주 흡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른 별에서 왔다는 고즈에의 말을 대번에 거짓말이라 여기고, UFO를 봤다는 루이를 친구들의 환심이나 사려는 거짓말쟁이로 취급한다. 두 사람의 말을 온전히 믿은 건 바보 같은 도노 형뿐이었다. 평소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아랑곳 않던 도노는 두 사람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사토시에게 평소와 다른 맑은 눈빛과 단호함으로 응대한다. 형의 낯선 모습에 놀란 사토시는 자신이 믿고 있던 생각들을 곱씹고, 이어 평소 마땅찮게 여기던 이들에게서 자신이 가진 경계 너머의 삶을 보게 된다. ‘어른들은 누구나 사정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처럼 이들에게는 삶을 짓누른 커다란 무게가 있었고, 저마다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토시에게는 바보로만 보였던 그들은 오히려 무언가를 진짜로 믿고, 헤아릴 줄 알았으며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았다. 『사라바』로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가 니시 가나코 152회 나오키상 수상 이후, 최신작!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니시 가나코. 오다사 쿠노스케 상, 나오키상 수상 등으로 평단의 인정을 두루 받았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해 대중성까지 확인 받았다. 문학 집필 이외에도 TV토크쇼 및 라디오 출연, 일러스트 작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인기를 누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니시 가나코의 작품 세계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게 된 것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와 섬세하고 깊이 있는 통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이끌어 낸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마을 사람들 전부를 좋은 사람들로 그렸다. 판타지라 불려도 상관없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소설에는 악의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로 이 이야기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위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이미 무언가를 단정 짓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토시의 성장기는 잊고 있던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나와는 결코 엮이지 않을 것 같았던 누군가와, 혹은 방관이나 배척으로 일관했던 누군가와도 실은 서로 알갱이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와닿는 순간, 사토시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기적은 우리의 삶에도 마음을 울리는 묵직한 메시지로 남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어릴 땐, 어른들은 웬만한 일에는 불안해하지 않는 줄 알았다. 어지간히 내면을 뒤흔드는 일이 아니고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나는 내가 알고 남이 알 정도로 뚜렷한 변화를 겪자 몹시 불안해하는 자신이 있음을,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자신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저항해 본들 다 부질없는 짓이란 걸 이제는 알지만 어리석게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은 변화한다. ‘사람은 죽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다. 몸이 변해 가는 것에 대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건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죽음에 더 가까운 어른의 공포가 크지 않을까. 그러한 변화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는 것,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