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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그토록 한기에 떨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손, 손들이었다. 나의 눈앞에는 손들이, 얼핏 헤아려 열도 스물도 넘을 많은 손들이, 바로 나를 겨냥하여 금방이라도 바짓가랑이며 티셔츠자락을 휘어잡을 듯한 기세로 불쑥불쑥 솟구쳐 오른 것이었다. 그렇게 솟구친 손들에는 손가락 마디들이 떨어져 나갔거나 아니면, 아예 손가락이며 손바닥 따위도 없이 손목만이 울툭 솟아오른 문둥이손도 적지 않았다. 거기다가 미처 제대로 펴지지도 않은 갓난아이의 고사리손 또한 몇 군데 섞여 있었다.
내가 예의 문둥이손이며 고사리손 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의 눈길이 나를 향해 내밀어진 손들에서 바로 넓혀지자, 공항 대합실 바닥을 메우다시피하며 질펀하게 누워 있는 일단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p.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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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현실인식과 탐미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송기원 씨가 인도여행 이후 쓴 첫번째 소설 이 출간되었다. 오랜동안 국선도에 심취해 왔던 작가가 인도에서의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과정을 소설로 엮어낸 이 작품은 자아와 세계간의 관계를 외부에서 조망해 왔던 기존 문학의 관심 대상을 개인의 내면 세계로 바꾸면서도 리얼리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마흔이 넘도록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빈 껍데기였을 뿐이라는 생각에 술, 여자에 빠져 살던 박연호는 어느 날 회사에 사표를, 아내에게 이혼서류를 넘겨주고 인도로 떠난다. 힌두 성지 리시케시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대학동창 한태인을 우연히 만난 박연호는 그를 안내자 삼아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해 나가고자 하나 여자를 탐하고 대마초를 피우며 세속에서 삶의 진리를 찾으려는 한태인과는 또다른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보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한태인의 말을 가슴에 담은 채, 강고트리의 요가 니케탄에서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우며 명상을 통해 긴 수행길에 접어든다. 언뜻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면서도 계속해서 독자를 끌고 나가는 힘은 송기원 소설 특유의 재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타성만 남은 결혼과 직장생활에서 유일한 구원이었던 여인과의 짧고 격렬했던 사랑, 뜻하지 않게 만난 대학동창의 변신, 깨달음을 찾아 인도에서 함께 떠돌게 된 서양의 여러 소녀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등 내면의 격렬한 변화와 신비한 체험 못지 않게 낯선 외부세계에 대한 묘사 또한 섬세하고 위트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하루하루의 의미를 잃어 버린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에 고요하고도 차가운 파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