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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명상소설
송기원
마음서재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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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사마타 위빠사나
존재의 부재
마음
실존의 흔적 1
아나빠나 사띠
바로 여기
실존의 흔적 2
니밋따
실존의 흔적 3
색계 사선정
실존의 흔적 4
우실라 사야도
실존의 흔적 5
뼈의 흰색 까시나
실존의 흔적 6
죽음에 대한 명상
실존의 흔적 7
자애심 명상
실존의 흔적 8
무색계 선정
실존의 흔적, 마지막
사대요소 명상과 깔라파
나는 어디에 무엇으로 사라진 것일까
나가는 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경외성서(經外聖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함께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예리한 현실인식과 탐미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과 2001년 제9회 오영수문학상을 받았고 "경험의 진정성과 표현의 진정성을 아울러 갖"는 작품세계로 "원초적 호소력"를 지닌다는 평을 받으며(유종호, 문학평론가) 1993년 제24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24년 7월 31일 7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경외성서(經外聖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함께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예리한 현실인식과 탐미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과 2001년 제9회 오영수문학상을 받았고 "경험의 진정성과 표현의 진정성을 아울러 갖"는 작품세계로 "원초적 호소력"를 지닌다는 평을 받으며(유종호, 문학평론가) 1993년 제24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24년 7월 31일 7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 『저녁』,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그리고 명상소설 『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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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58g | 135*200*19mm
ISBN13
9791165343521

책 속으로

내가 처음으로 유서를 쓴 것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 유서의 첫 문장이 “내 피는 더럽다”였다.
--- p.11

서른을 갓 넘긴 딸이 치료약이 흔하지 않은 악성 바이러스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생명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벼락을 맞은 듯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더러운 피가 바이러스가 되어 딸에게 전이되었다.’
--- p.20

딸의 유골을 다 뿌렸을 때, 어느새 남해안 일대에는 이른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바닷가 낮은 언덕마다 샛노랗게 피어나는 유채꽃이며 수선화를 뒤로하고, 딸의 유골과도 헤어졌다. 당장 딸을 따라서 죽는 대신, 섬망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엉뚱하지만 딸의 유골을 품고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딸의 섬망에 차츰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 p.27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사마타의 선정이 다름 아닌 딸의 섬망과 하나로 여겨졌다. 딸의 섬망을 옆에서 지켜본 나의 눈과 귀에 들어온 것은 사마타의 삼매와 그 삼매를 넘은 곳에 있다는 선정뿐이었다. (…) 나는 사마타 선정의 세계가 섬망의 세계와 뿌리가 같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록 그 뿌리가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빛과 그림자 혹은 선과 악이라는 명암으로 뚜렷하게 나누어질지라도.
--- p.33

파욱명상센터에서 가부좌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괴물과 마주앉은 셈이었다. 내 안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똬리를 튼 채 꿈틀거리는 추악한 괴물. 그 괴물은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훈련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방치했던 마음이리라.
--- p.47

들숨과 날숨을 흉내 내기는 했지만, 눈을 감은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들숨과 날숨 따위가 전혀 아니었다. 내 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괴물뿐이었다. 괴물은 자신이 꾸며낼 수 있는 온갖 형상으로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가며 나타났다. 그리하여 내 시야를 아예 놀이터로 삼아버렸다.
밤늦게 꾸띠에 돌아와 침대에 무거운 몸을 던지면, 내 작은 눈에서는 구정물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런 자신에게 한마디를 빠뜨리지 않았다.
‘울지 마라, 괴물아. 결국 네 자리를 찾은 것이니.’
--- pp.51-52

이승에서 벌어지는 일에 더는 놀랄 것이 없는데도, 나는 아빠를 따라 덩달아 놀랍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내가 아빠에게 보이는 거지?’
그때까지 아빠와 나는 달리는 평행선처럼 서로 닿을 수 없는 두 개의 시공간에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렇다. 존재의 부재라는 시공간과 실존의 흔적이라는 시공간.
--- p.82

명상센터를 찾은 여행자 중 몇몇은 반드시 명상홀에 앉은 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울부짖고, 소리치고, 욕설을 내뱉고, 미친 것처럼 날뛰다가, 끝내는 맨발로 뛰쳐나간다는 것이다. 미쳐서 날뛰다가 맨발로 명상센터를 뛰쳐나가는 누군가는 나처럼 자기 안에 꿈틀대고 있는 추악한 괴물을 본 것이 틀림없다.
‘저건 절대로 내가 아니야. 어떻게 내 안에 저렇게 끔찍한 살기와 분노와 질투와 증오와 성욕 따위가 들어 있단 말인가?’
--- p.100

나에게 ‘몸의 서른두 부분을 바라보는 명상’이란 결국 늙은 괴물이 웅크리고 있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바로 그 문을 지나쳐서 늙은 괴물을 만나야 진정으로 딸과 하나가 되고, 딸의 실존의 흔적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 p.189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온몸의 뼈들이 차츰 하얗게 바뀌더니 드디어 깊고 맑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가부좌하고 있는 나의 온몸에서, 결가부좌한 모습 그대로 한 덩이가 된 뼈들이 빛을 내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그 빛은 새벽별이라기보다는 손으로 건들면 청아한 방울 소리를 낼 것 같은, 푸른빛이 감도는 새하얀 빛이었다. 온몸의 뼈에 달라붙은 힘줄이며 지방, 뼛속에 든 느글느글한 골수마저 새하얗게 빛나는 것이었다.

--- p.233

출판사 리뷰

“문학은 내가 여전히 더러운 피를 간직한 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와도 같았다.”

1974년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나란히 당선되며 출발부터 비범한 천재임을 알렸던 작가. 이후 단편집과 장편소설, 시집을 꾸준히 출간해 신동엽창작기금,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송기원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경험의 진정성과 표현의 진정성”이 빛나는 작품세계로 굵직한 문학상들을 휩쓸었던 송기원 작가가 오랜 침묵을 깨고 8년 만에 신작을 냈다. 명상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장편 《숨》은 소설가이자 구도자로서 그가 도달한 세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자전적 작품이다.

어느덧 반세기 가까운 문학 인생을 맞이하는 송기원 작가는 삶의 궤적이 여느 작가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건달의 사생아이자 가난한 장돌뱅이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그를 방황과 출분으로 내몬 운명의 굴레였다. 이 꼬리표는 저주였으나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으로 굴절된 삶을 통과하며 그는 밑바닥의 삶을 보듬는 작품세계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왔다.

네 차례나 투옥되며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는 90년대 들어 국선도와 단전호흡, 요가, 명상에 빠져들었다. 인도와 히말라야 언저리, 미얀마의 명상센터, 계룡산 토굴 등에서 구도적 삶을 이어간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성찰을 거듭해온 작가는 드디어 이 소설 《숨》에 이르러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툭 끊어내고 고요와 평온이 충만한 세계에 도달했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작가가 온몸으로 써내려간 치열한 구도기나 다름없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으로 찾은
‘닙바나의 눈부신 보물’

이 소설은 백혈병으로 딸을 먼저 떠나보낸 화자가 초기불교의 수행법인 사마타(삼매)와 위빠사나(지혜) 명상을 통해 자기혐오와 죄의식, 상실의 고통을 뛰어넘어 완전한 평온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명상하는 아버지의 시선과 이승을 떠나 영혼으로 떠도는 딸의 시선이 교차하는 독특한 구조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화자는 바로 수년 전 딸의 죽음을 겪은 작가 자신이다.

운명과 비로소 화해한 그에게 느닷없이 닥친 딸의 죽음은 또 한 번 그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자신의 “더러운 피”가 딸에게 전이되어 결국 죽음으로부터 딸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명상을 통해 딸의 실존의 흔적을 만나려 애쓴다. 백혈병에 걸린 딸이 마지막으로 앓았던 병은 섬망이다. 그에게는 명상에서 만나는 선정과 섬망이 다르지 않다. 선정에 들 수 있다면 딸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섬망의 세계에 자신도 다다라 딸의 실존의 흔적을 만날 수 있으리라 염원한다.

열대 수림 속 명상센터에서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집중하여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 그는 암흑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추악한 괴물”과 맞닥뜨린다. “제멋대로 여러 사람을 파멸시키다가 급기야는 딸의 목숨까지 빼앗은 한 마리 늙은 괴물.” 그 괴물이란 “한 번도 훈련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방치한” 마음이다. 황홀감과 기쁨, 행복, 고요가 찾아드는 사선정에서 딸의 실존의 흔적을 만난 그는 몸과 죽음에 대한 명상을 고통스럽게 수행한 뒤 마침내 “닙바나의 눈부신 보물”을 찾아낸다.

“자신이 순간마다 변하는 과정이 바로 무상이고, 그런 순간의 변화에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느끼는 과정이 고통이며, 그런 순간의 고통 속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무아가 아니고 무엇이랴.” _p.311

작가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의 세계를 놀라우리만치 생동하는 언어로 독자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들숨과 날숨을 그저 지켜보는 아나빠나 사띠를 시작으로 색계 사선정, 몸의 32부분에 대한 명상, 죽음에 대한 명상, 자애심 명상, 사대요소 명상, 깔라파 명상 등 화자가 단계적으로 수행하는 명상체험이 고스란히 독자의 체험인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방황과 구도의 삶 끝에서
안으로 안으로, 더 깊고 고요하게,
노작가의 회광반조

선사(禪師)들의 어록 가운데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는 뜻인데, 이 소설이야말로 노작가의 ‘회광반조’가 아닐까 싶다. 궁극으로까지 자신을 몰아치는 명상수행을 통해 작가는 끝끝내 자기 안의 괴물을 대면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고, 마침내 생사고生死苦까지도 초월한다. 작가 자신의 사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했으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생사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 작품이다.

해남에 자리한 백련재 문학의집에서 이 소설을 탈고한 작가는 “비로소 삶의 마지막 숙제를 마쳤다”고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앞으로 그의 신작을 또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중한 주제의식을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가 평생에 걸쳐 채우고 또 비워낸 눈부신 문학적 성취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비보다 먼저 딸이 이승을 떠나고, 그렇게 집을 떠나 부유하듯 돌아다닌 시간이 10년 가까이 된다. 더 이상 글을 쓰리라는 작정도 없이 절필 비슷하게 지낸 것도 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쑥스럽게도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 나름대로는 이승에서 마지막 업을 지우는 일이라고 변명한다. (…) 인연이 되어 책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면, 한두 번이 아니라 열 번, 백 번을 펼쳐서 그이들 깊은 곳에 못 박힌 고통까지 녹아나게 되기를.”
― ‘작가의 말’에서

추천평

소설이라고 다 소설은 아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도의 궁극을 직접 제 몸뚱어리로 생생히 겪고 그 체험을 피로 기록한 수행일지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살아서 두 눈 부릅뜬 채 중음(中陰)의 딸과 함께 그 아득한 바르도를 찬연하게 건넌 한 아비의 지극한 천도재다. 이 책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아니 생사와 유무중도(有無中道) 따위마저 초월하고, 그 초월의 굴레마저 넘은 자의 백골처럼 형형한 축문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알 것인가. 그 참혹하고 독한, 그 죽음의, 그 망자(亡者)들의 세계에 침잠하기 전까지.
그리고 작가는 다시 살아 돌아왔다. 다만 눈은 옆으로 째졌고, 코는 세로로 서 있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오늘도 묻고 묻는다. 몸이 있는가, 몸이 없는가. 이것이 나인가, 내가 아닌가……. 그리고 그는 본다. 서리는 누렇게 시든 잎을 벗기고 파도는 썩은 뿌리에 철썩이는데, 누군가 벌써 자신의 시체에 술이며 과일을 차리는 것을. - 박규리 (시인,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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