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일본이라는 나라의 핵심을 파고드는 책
프롤로그

1장 삼월의 여행
베일에 싸인 소집명령
총력전연구소 입소식 풍경
총력전이란 무엇인가?
근대전의 위기감이 부른 초조함
총력전연구소의 일상, 그리고 밀려오는 전쟁의 먹구름

2장 이카루스의 여름
일본은 어떻게 무모한 전쟁에 뛰어들었나?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다
현재 정세를 반영하라
“미일 개전, 일본 필패”
문제는 석유다!
숫자 짜 맞추기의 힘 또는 재앙
1945년 패전의 기시감
드디어 예정된 절망 속으로

3장 황혼 빛 하늘
극동국제군사재판법정에서
법정에 선 총력전연구소
총력전 연구소, 그 후

에필로그
후기-참고문헌을 대신하여

저자 소개 2

이노세 나오키

관심작가 알림신청
 

Naoki Inose,いのせ なおき,猪瀨 直樹

1946년 일본 나가노 현 출생. 1983년에 《천황의 영법사》,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일본범인전》으로 데뷔하여, 1987년에 《천황의 초상》으로 제18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1996년에 《일본국 연구》로 문예춘추 독자상을 수상했다. 평전소설로 정평이 나서 《페르소나 미시마 유키오 전?》, 《피카레스크 다자이 오사무 전》, 《마음의 왕국 기쿠치 칸과 문예춘추의 탄생》 등을 출간했다. 2002년 고이즈미 내각 시절 도로공단 민영화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그 투쟁의 궤적이 《도로의 권력》, 《도로의 결착》에 자세히 나와 있다. 2006년에는 도쿄공업대학 특임교수, 200
1946년 일본 나가노 현 출생. 1983년에 《천황의 영법사》,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일본범인전》으로 데뷔하여, 1987년에 《천황의 초상》으로 제18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1996년에 《일본국 연구》로 문예춘추 독자상을 수상했다. 평전소설로 정평이 나서 《페르소나 미시마 유키오 전?》, 《피카레스크 다자이 오사무 전》, 《마음의 왕국 기쿠치 칸과 문예춘추의 탄생》 등을 출간했다. 2002년 고이즈미 내각 시절 도로공단 민영화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그 투쟁의 궤적이 《도로의 권력》, 《도로의 결착》에 자세히 나와 있다. 2006년에는 도쿄공업대학 특임교수, 2007년에는 도쿄도 부지사에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노세 나오키의 다른 상품

朴姸貞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대학교 비교문학비교문화연구과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고려사이버대학교 실용어학부 교수이다. 주요 역서로는 『구칸쇼(愚管抄)』(공역), 『청춘표류』, 『지의 정원』, 『굿바이』,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 『러시아 통신』,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선진국 한국의 우울』 등이 있다.

박연정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570g | 153*224*30mm
ISBN13
9788992355711

책 속으로

1941년 3월 26일 저녁 무렵. 만주국 국무원 총무청 참사관인 미야자와 지로가 방한외투 차림에 진흙투성이 긴 장화를 신고 히비야 공원에 서 있다. 총력전연구소 입소식인 1941년 4월 1일을 불과 엿새 앞둔 날이었다. 미야자와는 이제 막 두 돌을 맞은 장남을 품에 안고 있었고, 아내는 몸빼 차림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환경 변화에 그들은 햇빛 아래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세 사람은 불과 여섯 시간 전까지만 해도 흰 눈이 흩날리는 만주에 있었던 것이다. 만주에 뼈를 묻을 각오를 했던 미야자와였기에 귀국은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과 마찬가지였고 당혹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 p.19「베일에 싸인 소집 명령」

구보타 ‘총리’는 다마키 ‘기획원 총재’, 사사키 ‘일본은행 총재’, 노미야마 ‘상공대신’ 등과 함께 서둘러 호리바 중령을 비롯한 연구소원이 대기하고 있던 수상 관저 내 서쪽 뒤 계단을 뛰어 올라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 구보타 ‘총리’는 교관들에게 전했다.
“개전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결론이 나왔습니다.” --- p.171「“미일 개전, 일본 필패”」

로이즈의 '로이즈 레지스터 선박 통계'를 근간으로 마에다가 제출한 숫자가 20~50퍼센트 더 크다. 조선 능력은 높게 견적을 내더라도 한 달에 5만 톤, 한 해에 60만 톤은 줄어든다. 3년이면 약 3분의 2가 침몰해버리는 셈이다. 남방 자원을 구멍이 뚫린 양동이에 넣어 줄지어 나른다고 하는 건 헛된 짓이었다. (…) 《일본 상선대(商船隊) 전시 조난사》에 의하면 1942년도에 89만 톤, 1943년에 167만 톤의 선박이 침몰됐다. 두 해의 선박 소실량은 마에다가 예상한 숫자와 거의 동일했다. 또한 1944년도에는 369만 톤으로 일본 상선대는 전멸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승패가 무의미해지는 단계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 p.181 「“미일 개전, 일본 필패”」

‘전쟁을 한다’는 기세가 앞서가고 있었다고는 해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모두 숫자에 매달렸지만, 그 숫자는 짜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이른바 전원일치라는 의식을 거행하는 데 그런 도구가 필요한 것에 불과했다. 결단의 내용보다는 ‘전원일치’가 더 중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서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일본식 의사결정 시스템의 실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221 「숫자 짜 맞추기의 힘 또는 재앙」

정부는 통수 행위를 억제하고 또한 지도할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단순히 연락회의, 어전회의 등의 수단에 의해 그 조정을 도모할 뿐이다. 더구나 그 조종이라는 것도 전쟁 지도의 본체인 작전 용병에 대해 따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그 결과 군부가 독주했지만) 일본에는 이와 같은 제도가 있어서 통수가 국가를 전쟁으로 지향케할 때 이를 억제할 기관이 없으며 특히 이에 대해 정치적인 억압을 가하거나 자유롭게 구사할 기관이 없게 되었다. --- p.254 「극동군사재판법정에서」

도조는 진주만 공격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분명한 사실은 모르지만 육군대신의 자격으로 그 계획을 참모총장으로부터 들었다고 했으며 이를 천황에게 전하는 것은 참모총장이나 군령부장의 책임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도조는 메이지 헌법 조문 그대로 대답했음에 불과하다. 전쟁이라는 것을 조각조각 나누어 여기까지는 외교, 여기부터는 통수, 이것은 문관, 저것은 군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사실에 입각해서 설명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최고의 ‘정치’가 아니라 관리의 ‘사무’가 된다. 만주사변 이후 모든 전쟁은 그 이외의 것이 아니며, 단 한 사람의 정치가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p.258 「극동군사재판법정에서」

일본제국주의에는 백인 지배에서 유색인종을 해방한다는 아시아 해방 사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아시아 해방 사상이 상당히 제멋대로 된 물건으로, 중국인, 조선인을 마음대로 학살하는 결함 사상이라는 점에서 변명은 허락되지 않는다. 특히 최전선에서 학살에 종사한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가 가해자인데도 도조만을 악인으로 만들어서 내세우고 자신은 피해자의식의 방패 뒤로 숨어버렸다.

--- p.259 「극동군사재판법정에서」

출판사 리뷰

진주만 폭격에서 독도 도발까지,
왜 일본은 무모한 도발을 계속하나?

장면1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의 진주만 미군기지를 기습공격하여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총력전연구소가 이미 객관적인 전력상 ‘필패’한다고 결론을 내렸듯이 시종 열세에 밀리게 되고 미국의 원자 폭탄 투하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자 끝내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장면2
2011년 8월 1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한국 입국을 시도하는 도발을 감행한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자민당 의원들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다며 입국을 불허하자 공항을 나오지도 못하고 돌아감으로써 그들의 돌출 행동은 한바탕 소란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양국의 외교관계는 긴장감이 흘렀고, 우리나라 국민의 반일 감정은 극에 치달았다.

진주만 폭격에서 독도 도발까지 일본은 왜 끊임없이 도발을 계속하고 있을까? 국가의 정책이 전쟁처럼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때, 이를 견제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 장치가 일본 내에 없는 것은 아닐까?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은 일본이 1941년 미국과 전쟁을 일으키기 전 극비로 총력전연구소를 설치,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 ‘필패’로 결론이 났음에도 무모하게 전쟁이 뛰어든 과정을 밀도 높게 그려내고 있다. 이를 통해 왜 일본이 무모한 도발을 계속하는지, 그 본질을 고발한다.

총력전연구소의 실체와 전쟁 시뮬레이션

1941년, 일본은 유능한 인재 서른다섯 명을 극비 소집하여 연구소를 설립한다. 이른바 총력전연구소이다. 이름 그대로 총력전을 연구하는 연구소이다. 이곳의 임무는 미국과 전쟁을 할 경우 현재 국내물자와 국제정세를 반영하여 그 예상 경과와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바로 총력전 시뮬레이션이다. 이 책은 한편에서 역사적으로 그런 조직이 존재했었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생경하기만 한 총력전연구소의 실체에 다가서고 있다. 그들의 구성 과정, 완수한 역할, 구성원의 성격, 일화 등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거의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고 있다.
총력전연구소는 총력전 시뮬레이션 결과, 미국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진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일본의 패전을 예고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미국과의 전쟁을 결정하였다. 이처럼 이 책은 또 한편에서 실제 내각과 군부 등 정책 결정권자들이 미국과 전쟁에 나서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들은 끝내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 미군기지를 기습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에 이르지만 전황은 총력전연구소의 예측대로 흐르고 1945년 천왕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참패하고 만다. 책 제목 ‘쇼와 16년(1941년) 여름의 패전’이 말해주듯 일본의 패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일본 지식인 사회의 ‘도발자’, 이노세 나오키
문제작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으로 일본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다!


저자 이노세 나오키는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으로 우리나라에 작가로서 처음 소개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로서, 또 현 도쿄 부지사로서 일본의 관료제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정부 관계 법인의 민영화를 촉구하며 공공사업 분야에 얽힌 흑막을 파헤치는 리포트를 연재하는 과감성을 보여주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저자의 저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은 일본의 치부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도발적인 책이다. 1983년 출간 이후 일본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30여 년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켜왔다. 또한 후지TV 개전 5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로 제작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핵심을 파고드는 책

미국과의 전쟁을 결정하기 전 일본 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정부인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헌법으로 보장된 ‘신성불가침’한 통수부의 결정을 저지할 수 없었다. 미국과의 전쟁이 무모하다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말이다. 일본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오늘날은 어떠할까?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펼치며 ‘정의’에 어긋난 행보를 걷고 있는 일본정부. 제국 시대의 통수부의 ‘신성불가침’한 권위는 사라졌지만 정부의 무모한 도발을 견제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 장치가 일본 내에 없다는 점에서 제국 시대의 일본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이 전하는 핵심은 바로 일본의 이러한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잘못된 의사결정이 채택되는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가장 경계해야 틇 것은 바로 이해 조직 간의 집단이기주의, 소속 집단이나 본인의 일 외엔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분할주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체 등 모든 조직이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한 구절, “최전선에서 학살에 종사한 일본인 한 사람은 스스로가 가해자인데도 도조 히데키만을 악인으로 만들어서 내세우고 자신은 피해자 의식의 방패 뒤로 숨어버렸다”를 읽은 것만으로도 현대 일본이 취하고 있는 외교 행보의 실체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리뷰/한줄평8

리뷰

6.8 리뷰 총점

한줄평

9.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