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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어느 날 시베리아가 가슴속에 들어왔다
1부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 1장 / 블라디보스토크 2장 / 우수리스크 3장 / 하바롭스크 4장 / 치타-울란우데 5장 / 이르쿠츠크 6장 / 크라스노야르스크 7장 / 노보시비르스크 8장 / 예카테린부르크 9장 / 모스크바 2부 국경을 넘는다는 것 10장 / 상트페테르부르크 11장 / 베를린 에필로그 참고 문헌 부록1 / 여행이 내게 남긴 것들 부록2 / 시간여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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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58~59
기울어 가는 나라를 지켜보며 울분에 찬 조선인,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유랑하는 조선인, 만주에 침을 흘리며 새로운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일본인, 청나라 북쪽의 이권을 잃지 않으려는 러시아인, 모든 이민족을 불안한 눈으로 감시하는 청나라 관헌과 주민들이 한꺼번에 모이던 유일한 공간이 바로 열차 안이었다. 근대 문명의 대전환을 이룬 철도에 몸을 맡겼던 사람들은 차창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인생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모두 불안한 현실에 하염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 p.107~109 여행자가 원하는 것은 현지인과 만나 그들의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다.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같은 행성에 사는 인류로서의 공통점과 지리적·문화적 차이를 살펴보는 일은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현지인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이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연히 열린 작은 시공간의 틈으로 들어간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남과 북의 여행자를 자연스럽게 섞어 놓았다. 분단 이후 평범한 남북의 노동자들이 이토록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 p.170 바이칼 순환 열차는 느린 속도로 달렸다. 절벽을 끼고 이어진 선로 변의 나뭇잎들이 유월의 햇살을 받아 초록의 빛살을 한껏 반사했다.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서 여행자들은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으로 바이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우수에 젖은 사람, 연신 감탄하는 사람, 바삐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긴 호흡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여운형과 김규식도 이 길을 달렸다. 그들은 바이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바이칼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었다. --- p.197 나는 인적 없이 잡초가 우거진 강둑의 한 지점에서 예니세이 철교를 향해 소리쳤다. “너를 보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왔어! 정말 반갑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었으면 신고라도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100년 된 철교뿐이었다. --- p.239 블라디보스토크역을 떠난 지 12일 만에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역에 도착했다. 9,288킬로미터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본선을 모두 주파한 것이다.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별명만큼 복잡한 심경으로 승강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 도시를 헤매는 일이 익숙해진 우리는 여유만만하게 길을 물어볼 행인을 물색했다. 우리가 지도 위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 p.250~251 홍범도가 트로츠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방에는 레닌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범도가 들어오자 레닌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홍범도 동지! 당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 레닌과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의 두 거두와 단독으로 만난 사람은 민족대회에 참가했던 한인으로서는 홍범도가 유일하다. 레닌은 홍범도가 항일 투쟁 전선에서 러시아와 함께 일본에 대항해 혁혁한 전과를 세운 것을 치하했다. 회동이 끝날 무렵 레닌은 미리 준비해둔 선물을 홍범도에게 전달했다. 고려혁명군 대장의 격에 어울리는 군모와 군복, 레닌과 홍범도 장군의 머리글자가 새겨진 권총, 금화 100루블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열차에 타고 내린다. 열차 문이 닫히고 달리기 시작하자 선로 양쪽으로 내내 걸었던 길들이 보였다. 벌써 눈에 익은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인천에서 출발한 뒤로는 내내 서쪽으로만 달렸다. 계속 집에서 멀어지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집으로 향하고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집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 p.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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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도 과거로도 달려갈 수 있는 여행
전작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에서 철도의 역사를 통해 ‘근대’를 설명했던 박흥수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기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3개국(한국-러시아-독일) 13개 도시(인천/양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롭스크-치타-울란우데-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노보시비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베를린)를 관통하는 18박 19일의 여정을 중심으로, 길고 짧은 몇 차례의 여행의 경험들을 보태 한 권의 책에 담았다. 2000년 7월 31일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경의선 연결이 합의되자, 발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한 번은 기관사인 저자에게 경의선 공사 현장으로 자재를 나르는 화물열차 운행 업무가 주어졌다. 문산역을 지나 임진강 철교와 비무장지대를 넘으며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과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교각을 본 저자는 의문을 갖는다. “앞으로 철길이 이어지면 어디를 달리게 될까? 예전엔 누가 이 길을 달렸을까?” 그는 도서관으로 가 철길로 이어진 대륙과 관련된 소설, 기행문, 역사서, 평전, 사료집 등을 뒤졌고, 독서를 통해 전에는 몰랐던 귀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만났다. “경의선에서 시작되는 사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경의선이 만난 땅은 만주였고 시베리아였다. (…) 기구한 역사의 수레 위에 올라타야만 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의선에 탄 사람들, 만주와 시베리아를 달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한 권씩 덮을 때마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분노가 일기도 했고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이러기를 반복하다가 그곳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프롤로그’). 현직 철도 기관사이자 ‘철도 덕후’인 저자에게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은 막연하지만, 늘 지니고 있던 꿈이었는지 모른다. 마음먹은 지 15년 만에 꿈을 이루었으나, ‘시베리아 앓이’라는 그의 병증은 가시지 않았다. 이제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에게 “시베리아는 ‘타임머신’이다. 열차를 타고 미래로도 과거로도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327쪽). 전방위한 책을 들고 색다른 여행을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은 시베리아 횡단 편이다. 2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국제 열차를 타고 오가는 월경(越境) 편이다. 10개의 장에는 여정 순으로 도시 이름이 붙어 있다. 열차 안과 정차 역, 정차 도시를 교차하며 전개되는 시간여행 중간중간에는 반드시 들렸으면 하는 저자 추천 명소들의 간략한 정보를 실었다. 책의 말미에는 ‘여행이 내게 남긴 것들’과 ‘시간여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내서’를 붙여, 여행에서 남기면 좋을 기념품, 승차권 발권과 비자 발급 등 여행 전 준비에서 알아야 할 사항과 열차의 구조, 승차권 보는 법, 열차 사용법, 유심카드 사용법 등 횡단 열차 안이나 여행지에서 참고할 만한 매뉴얼을 ‘최소한’으로 정리해 실었다. 『시베리아 시간여행』은 철도를 사랑하는 현직 철도 기관사가 달리는 열차에 제 몸을 싣고, 어디에서도 다 찾아볼 수 없던 놀라운 이야기들, 보석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책이다. 인문서로나 여행서로나 손색없는 전방위한 이 책을 들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여정을 시작해 보길 바란다. “인천에서 출발한 뒤로는 내내 서쪽으로만 달렸다. 계속 집에서 멀어지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집으로 향하고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집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31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