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보재 이상설 평전
우리가 기억해야할 독립운동가
이창호
벗나래 2018.01.05.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 머리글_우리가 기억해야 할 보재 이상설
· 추천사_우리의 정신 속에 살아 있는 독립지사, 이상설

1장. 출생과 학문 연구
1.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다
2. 학문에 힘쓰다
3. 한학과 전통 유학사상
4. 신학문을 접하다
5. 구국 독립운동 사상

2장. 과거 급제와 관직 생활
1. 과거 급제와 출사
2. 일제 황무지개척권 반대상소
3. 을사늑약을 막고자
4. 이상설이 펼친 늑약 저지 활동
5. 고종에게 ‘죽음으로 비준 거부하라’ 상소
6. 이상설이 기록한 을사늑약

3장. 구국운동에 앞장서다
1. 벼슬을 던지다
2. 을사늑약 파기운동 주도
3. 민족교육 효시인 ‘서전서숙’ 설립
4. 서전서숙의 설립과 무상교육 실시
5. 일제의 ‘서전서숙’ 관련 정보보고
6. 독립정신의 요람
7. 서전서숙의 폐숙 후 활동

4장.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선정되다
1. 헤이그특사를 준비하다
2. 헤이그특사들의 밀회
3. 헤이그에 도착하다

5장. 만국평회회의의 참석이 가로막힘
1. 만국평화회의 문건의 준비
2. 만국평화회의에 참석 못 함
3. 각국 언론을 통한 활동
4. 동지 이준의 순국

6장. 구미를 순방하며 활동을 펼침
1. 루즈벨트와의 면담 실패
2. 조선의 영세중립화 주장
3. 광무황제의 퇴위 강요
4. 사형선고를 받다

7장. 연해주에서 활동을 시작하다
1. 블라디보스토크에 둥지를 틀다
2. 신흥촌 건설
3. 문화계몽사업을 펼침
4. 안중근과의 askska
5. ‘13도의군’을 편성함

8장. 국권회복투쟁의 선봉에 서다
1. 고종의 연해주 망명을 꾀하다
2. 불합리한 ‘합병조약’
3. 한일합병의 경과와 체결
4. 성명회 조직과 항일투쟁
5. 병탄반대 조약무효 선언
6. 니콜리스크에 유폐당해

9장. 권업회 창설과 [권업신문] 발행
1. 권업회 창설
2. [권업신문]의 창간
3. 내부갈등과 사이비 애국자들

10장.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다
1. 대한광복군정부 수립
2. 임시정부의 해산
3. 신한혁명당의 창설
4. 신한혁명당의 좌절

11장. 애통한 서거
1. 망명지에서 순국함
2. 각계의 추모 물결
3. 이상설의 한계
4. 독립유공자 추서, 향리에 추모비
5. 이상설의 혼백을 부르다

·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李昌虎

현재 전 세계는 문명의 대변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저자는 1998년 이후부터 중국과 교류해 온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경험을 쌓았으며, 중국의 문화 이념과 정치체제, 일대일로 사업, 진정한 다자주의 등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경계를 넘어 중국을 바라보게 됐다. 현재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The International Multilateral Diplomacy Council) 대표(의장), 대한명인(연설학), 대한민국 신지식인(교육학)이며 국정교과서 초등학교 6학년 읽기도서 및 고등학교 국어교사용 지도서 등에 글이 수록됐다. 새로운 시대의 칼럼과 MBC-T
현재 전 세계는 문명의 대변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저자는 1998년 이후부터 중국과 교류해 온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경험을 쌓았으며, 중국의 문화 이념과 정치체제, 일대일로 사업, 진정한 다자주의 등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경계를 넘어 중국을 바라보게 됐다. 현재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The International Multilateral Diplomacy Council) 대표(의장), 대한명인(연설학), 대한민국 신지식인(교육학)이며 국정교과서 초등학교 6학년 읽기도서 및 고등학교 국어교사용 지도서 등에 글이 수록됐다. 새로운 시대의 칼럼과 MBC-TV 인생은 아름다워, KBS라디오의 고정 방송활동을 비롯해 대한기자신문, 한중연합일보 발행인, 한중교류친선대사, 탄소중립문화대사(CICEF), 서울대학교 U3A 14기 원우회 회장, 한국교육연구소 인성교육센터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중국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중국 하북미술대학 명예교수로한국과 중국 각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제1회 아시아문명대화대회, 2023년 중국경제사회포럼 발언자로 유명하다. 지은 책으로 「시진핑 리더십」, 「시진핑 위대한 중국을품다」, 「시진핑 다자주의」, 「팍스차이나」, 「마오쩌둥평전」 등 50여 권이 있고, 자원봉사 지도로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나눔 봉사로 대한적십자 총재 대상 및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이창호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50g | 145*205*20mm
ISBN13
9788997763177

책 속으로


이상설은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상설의 학문은 신구학문을 겸수한 것이었으며 또 학문 분야도 광범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상설은 전통 학문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유학을 공부했는데, 이미 20세를 넘으면서부터는 유학계에서 큰 학자로 칭송되기도 하였다. 고향의 친구이며 인척인 위당 안숙의 『위당건연록』에 “이상설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민첩하여 재동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으며, 20세 전후에는 문행남하울관(文行南下鬱冠)의 칭호를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장. 출생과 학문 연구' 중에서

이상설이 처음으로 관계에 진출한 것은 그가 25세 때이던 1894년의 일이었다. 그는 이승만, 김구와 함께 응시한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인 갑오문과 병과에 응시하여 급제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이상설은 영재 이건창과 위당 안숙 그리고 의당 박세화 등으로부터 축하와 칭송을 받았다. 이후 이상설은 한림학사에 제수되고 이어 세자의 시독관이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는 시대를 잘못 맞이하고 있었다. 이상설의 문명과 큰 포부를 실천하기에 매우 어려운 시국을 맞이했던 것이다.
'2장. 과거 급제와 관직 생활' 중에서

정식으로 관직을 벗어던진 이상설은 을사늑약 폐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시기 양반 유생들의 상소운동, 민영환 등의 분사, 을사오적 척살 시도, 의병운동 등이 다양하게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이상설의 활동은 단연 돋보였다. 이상설은 을사늑약 체결 직후 동료인 여규형, 이용직 등과 함께 여러 관리들과 유생들을 참여시켜 연명상소를 준비하였다. 이를 위해 가평의 향리에 머물고 있던 원임대신 조병세를 모셔 수두(상소문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이에 앞서 민영환을 소두로 하여 복합상소를 올리게 한 것도 이상설이었다.
'3장. 구국운동에 앞장서다' 중에서

전덕기와 이회영이 구상한 방안을 내시 안호영을 통해 황제에게 전하는 한편, 특사로 적합한 인물을 골라 추천하였다. 특사의 정사에는 이상설, 부사는 이준과 이위종을 천거하였다. 이준은 한성재판소 검사보로서 조신들의 비행을 파헤치다 면직되고,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평의장으로 활동하고 이어서 독립협회 간부로 일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이준은 러일전쟁 뒤 일제의 한국 침략이 노골화하자 보안회를 조직하여 황무지 개척권을 강탈하려던 일제의 기도를 저지했으며, 일진회에 대항하여 공진회를 조직, 회장에 추대되고 을사오적을 규탄하다가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서 헌정연구회를 조직한 데 이이 이를 대한자강회로 발전시키는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이위종은 러시아 주재 한국공사 이범진의 둘째 아들로서 러시아 주재 한국공사관 참사관을 지냈다. 러시아에서 영어, 불어, 러시아어를 익힌 까닭에 헤이그에서 활동하기에는 적합한 인물이었다.
'4장.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선정되다' 중에서

결국 이상설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와 열강들의 온갖 권모술수로 대한제국 특사단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1907년 7월 19일 이상설은 이위종, 윤병구, 송헌주 등과 함께 네델란드를 떠나 영국에서 3일간 머문 다음 8월 1일 미국 뉴욕에 도착하였다. 이상설과 이위종 이들 대한제국의 특사들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만국평화회의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구미 열강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그들에게 ‘한국이 일제로부터 침략을 받고 있는 사실과 을사늑약의 강요, 고종황제가 이 조약을 재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열강의 지원과 한국은 자주독립을 위해 끝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설명’하라는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6장. 구미를 순방하며 활동을 펼침' 중에서

이상설은 국권회복운동의 해외 근거지로 연해주 지역을 선택하고는 미주 교포들의 소명을 받고 이곳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당시 해외 독립운동 현황은 1908년 9월 수청지방에 공럽협회의 지방회가 설립된 데 이어 1909년 1월에는 해삼위에도 지회가 설립된 상태였다. 공럽협회와 국민회가 통합하여 조직이 확대하면서 미주 한인 사회가 이상설과 정재관을 특파하여 이를 더욱 강화하도록 조처한 것이다. 이상설은 구미 열강을 숩ㄴ방하는 동안 연해주 한인 사회의 지도자들과 긴밀히 연락을 취해 조직의 활성화와 국권회복운동의 방략 등을 논의하였다.
'7장. 연해주에서 활동을 시작하다' 중에서

이상설은 봉밀산 일대에서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유인석, 최재형, 이범운 등 교민 사회의 지도자들과 접촉하면서 의병단체의 통합화 항일투쟁의 방략을 상의하였다. 이상설은 이러한 활동을 벌이던 와중에 청년의병장 안중근과도 만나게 되었다. 우국열정에 찬 두 사람은 곧 연령을 뚜어넘어 동지 관계가 되었고 날밤을 세워 국권회복의 방략을 논의하였다. 안중근은 한말 계몽운동계열의 근대화론에 영향을 받아 계몽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일제에 대한 폭력투쟁, 즉 의병활동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갔다.
'7장. 연해주에서 활동을 시작하다' 중에서

이상설은 1911년 유배지 니콜리스크에서 풀려나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왔다. 아무리 시대상황이 변하고 정세가 바뀌어도,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사명이고 함께할 운명은 나라의 국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한편,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일제와 한패가 되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국제 사회의 어처구니없는 규칙대로 된 것이었다. 이상설은 러시아 당국의 냉대와 탄압 속에서도 국권회복의 새로운 방략을 강구하였다. 그것이 권업회의 발족이다. 1911년 5월 20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57명의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새로운 독립운동의 기관으로 권업회를 창설하였다.
'9장. 권업회 창설과 권업신문 발행'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가 알아야 할 보재 이상설의 업적 8가지

그렇다면 보재 이상설은 독립운동사에서 어떠한 업적을 가지고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다음의 8가지를 들고 있다.

1. 을사늑약 체결을 끝까지 막고자 고종에게 ‘순사직’하여 조약을 파기하고 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2.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최초의 신학문 민족교육 기관인 서전서숙을 만들고 교육하였다.
3.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제2회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되어 네델란드로 가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세계 언론인들에게 일제의 만행과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밝혔으며, 미국에서 애국동지대표회와 국민회를 조직하였다.
4. 13도의군을 편성하고 무력을 통해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5. 독립운동단체인 성명회를 조직하고 9,624명의 서명을 받아 성명회선언서를 발표하였다.
6.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권업회를 창설하였다.
7. 1910년 경술국치 후, 상해 임시정부보다 5년 앞서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하고 정통령에 선임되었다.
8. 신한혁명단을 창단하고 본부장에 추대되어 마지막까지 국권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민족정신이 짓밟힌 시대, 보재의 정신 계승이 필요하다

1906년 헤이그특사로 망명한 이후, 이상설은 10여 년간 계속된 망명생활과 치열한 항일 독립투쟁으로 1916년 병을 얻어 눕게 된다. 그리고 1917년 3월 러시아 니콜리스크(현재의 우수리스크)의 한 교포 집에서 48세의 나이로 순국한다. 그는 유언으로 “동지들은 합세하여 기필코 조국광복을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뿌린 후에 제시도 지내지 말라.”며 광복되지 않은 조국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지금 우리는 민족정신과 정의가 짓밟힌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이러한 시기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안위를 뒤로한 채 홀연히 국권회복투쟁에 나서 치열하게 일제와 싸웠던 보재 이상설의 바른 정신이 필요하다. 보재 이상설의 순국 101주년을 맞아 이 책을 통해 그의 정신이, 그의 삶이 현재에 다시 오롯이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