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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prologue 검은 물속에서 chapter 1 영에서 아홉 chapter 2 열에서 열아홉 chapter 3 스물에서 스물아홉 chapter 4 서른에서 서른아홉 epilogue 마흔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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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는 모두 손목에, 혹은 발목에 걸려 있는 똑같은 열쇠. 그러나 아이는 지금 열쇠를 잃어버렸다. 단단히 잠긴 아이의 공간 속에는 어쩌면 다른 사람은 모르는 자신만의 소중한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지금 모두가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가득 찬 그런 물속.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검은 물속.
안타깝지만 이제 열쇠는 그녀 자신이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게 되더라도, 열쇠를 찾으러 다니는 그녀의 몸짓은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결국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려야 하는 안타까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의 선물. 여기는 그런 검은 물속이다. 나뿐만 아니라, 실은 모두들 그렇게 시작했다. 정체성과 취향은 분명히 다른 쪽으로 뻗은 줄기이다. 인간이라는 뿌리가 있다면, 정체성이라는 것은 가장 중심의 두꺼운 줄기일 것이며, 취향이라는 것은 중심 줄기에서 뻗어나간 무수히 많은 가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실제로 남자나 여자에게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있듯이, 성전환자인 트랜스젠더들에게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전히 성전환자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논란이 있기 때문에 100퍼센트 완벽한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정체성과 취향이 다른 줄기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벗어라.” 교사는 말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지만, 공개적으로 내 바지 속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까치발을 디디며 내 앞으로 바짝 모여들었다. 교사는 다시 벗으라 말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교사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몽둥이로 후려칠 기세였다. 고개를 저었다. 교사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고함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내 안의 목소리는 분명히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조차도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을 분리하여 말하는 것 자체도 모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왜냐하면 육체적 성이 자신의 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절반의 주장인 것처럼, 정신적 성이 자신의 성이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절반의 주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신적인 끌림이나 생각의 흐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당시 내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몸의 힘겨움이었다. 발기가 스트레스가 되고, 자위가 환멸이 되는 끔찍한 경험은 아마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 그런데도 이를 악물고 나는 남자가 되는 연습을 했다. 모두들 내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이 사회가 내게 던진 그 충고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진찰실에서 쫓겨나듯 밀려나고 말았다. …… 처음부터 나는 나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여자 옷을 입고 살거나,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여자다, 남자가 아니다,라고 소리쳐 외쳤어야 했던 일이었다. …… 몇 번쯤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맞아주고 변태로 낙인찍힌 다음에야 가능했던 것이 바로 치료이고 수술이었다. 그리고 돈, 그리고 나는 아마 또다시 돈을 생각했을 것이다. 천박하고 세속적인 판단이나 생각이었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다. 나는 오빠에게 60만 원을 받아 집에서 나와 생활을 시작해서는, 누구의 금전적 도움도 받지 않고 지금의 직장을 잡고, 집을 얻고,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갈 정도로 혹독한 시간을 지내왔던 사람이었다. …… 게다가 나는 그때 수술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 생식기만으로 성별을 판단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남자냐, 여자냐, 하는 중대한 결정이 단, 그 십 분 안에 있던 일이었다. 마흔 해가 지났지만, 불행히도 나는 여전히 질문 앞에 서 있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나는 그저 당신이 당신의 열쇠를 알지 못하듯, 내가 내 열쇠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는 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 질문 앞에 섰던 건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도 삶의 시작이 있었을 것이며, 가족이 있었을 것이며, 삶의 전환이 있었을 것이며, 시간의 장난이 있었을 것이며, 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나 위기가 갑작스럽게 다가왔던 것처럼, 어디에든 당신에게 다가올 준비를 하고 있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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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 자기를 찾아 시간을 걸어온 이야기
작가 김비가 여지껏 살아온 시간을 담은 에세이다. 누구나 자기 삶에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가족관계, 사랑, 자기 정체성, 내적?외적 아픔 등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들로 고민하고 아파한다. 저마다의 ‘혼란’은 인생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자, 그 자체가 자기 인생을 설명하는 열쇠일 수 있다.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는 작가가 자기 앞에 놓인 인생의 문제를 풀어온 모습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작가가 건너온 시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쇳말은 ‘트랜스젠더’다. 이제는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이 작가의 생활에 주된 부분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작가가 고민하고 갈등한 지점은 트랜스젠더인 채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기 때문이다.(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육체적인 성과는 다른 성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삶을 누리는 데 장애가 되어 그에 따른 외과적 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성적 취향’이 다른 동성애자와는 다르다.) 몸이나 처한 환경 등 외적인 것들로 생긴 내면의 갈등을 스스로 풀고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녀는 ‘시간을 걸어온 것’이라고 일컫는다. 작가는 ‘영에서 아홉’, ‘열에서 열아홉’, ‘스물에서 스물아홉’, ‘서른에서 서른아홉’, ‘마흔’으로 나누어 그 치열한 시간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그 시간 안에서 그녀는 남자의 몸에 자신의 내면을 맞추려고 애써보기도 했으며, 길게 헤맨 끝에 수술을 결심했으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절망했으며, 사랑에 치어 넘어지기도 했다. 한편 그녀는 어머니가 없는 채로 아버지를 돌보는 장녀이기도 했고, 글 쓰는 사람이기도 했고, 가르치는 일로 먹고사는 직장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른 무렵에야 수술을 하고, 또 등단하고 나서 ‘트랜스젠더’이자 작가인 그녀에게 사회와 언론이,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얼굴로 다가왔는지도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작가가 2001년에 펴낸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에서 시간 순서라는 골격을 그대로 둔 채 생각과 글을 다듬고, 그 후 1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태 다시 써낸 것이다.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는, 비단 트랜스젠더나 성소수자로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가슴속에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 아파하거나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책을 읽는 이도 저마다 혼자만의 특별한 상황이란 게 있을 것이며, 남들보다 좀 덜 평범한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온 작가의 경험 또한 그렇게 ‘특별’하다는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자신이 힘든 이유를 스스로 깨달아가고,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 어쩌면 정답이 없는 상황에 처해 어떻게든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버겁고 힘든 것이다. 또 여러 갈림길에서 자신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가 살아온 이야기가 독자 저마다 앞에 둔 혼란과 아픔에 대신해서 답을 제시해줄 순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끝이 나지 않은 이 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작가는 손을 내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