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감사의 말
프롤로그 서문 이 책의 메시지를 읽으며 숙고할 세 구절 1부. 나쁜 소식처럼 들리는 좋은 소식 1장. 예수님처럼 행복하기 원하는가? 2장. 힘든 관계나 상황 속에서 듣는 좋은 소식 3장. 나는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 위에 있는가? 4장.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하시는 한 가지 기도 5장. 나는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하시는 기도를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가? 6장. 비어 있음을 가장 절실히 느낄 때 찾아오는 가장 깊은 허기 7장. 나는 지킬 박사인가 하이드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8장. 불가능한 것을 위한 열정 9장. 따라갈 자유 10장. 권리 주장의 세 얼굴 2부. 제자들만 알아보는 좋은 소식 11장. 두 이야기가 들려주는 담화 12장. 진짜인가 가짜인가?: 때로는 가려내기 어려운 질문 13장. 첫 번째 질문: 하나님은 누구신가? 14장. 두 번째 질문: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을 향하는가? 15장. 세 번째 질문: 우리는 누구인가? 16장. 네 번째 질문: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17장. 다섯 번째 질문: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나? 18장. 여섯 번째 질문: 우리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해 성령은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 19장. 일곱 번째 질문: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일에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 3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속 펼쳐진다 20장. 싸움에 임하라 21장. 답: 질문이 무엇인가? 22장. 삶: 해 아래와 해 위에서 후기 마지막 질문 주 |
Dr. Larry Crabb
래리 크랩의 다른 상품
백지윤의 다른 상품
|
교회를 비롯하여 오늘날 세상에서 사랑에 대한 이해만큼 심각하게 왜곡된 것도 없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왜곡되지 않은 사랑,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적으로 쏟아붓는 것은 예상 밖의 무거운 대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만큼 현대 문화에서 빈약하게 정의되는 것도 없다. 우리의 행복하려는 욕망은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행복한 하나님에 의해 행복하도록, 곧 하나님처럼 행복하도록 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
… 왜곡되지 않은 사랑을 위해서는 싸울 만한 가치가 있다. 거룩한 사랑, 곧 하나님이 이루고 계시는 세 위격의 공동체와 그분의 복음에서 드러내신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살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희생을 특권적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보다 나은 사랑을 위한 싸움, 고통과 행복 모두를 가져다주는 왜곡되지 않은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한 분투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천국에 갈 때까지는 완전하게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 싸움에 생산적으로 임하는 것은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을 걸을 때만 가능해진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두자. 이것은 싸움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싸우고자 할 때 그 길을 찾아 그곳을 걷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당신을 초대하고자 한다. --- 「서문」 중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곧바로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좋은 소식, 즉 천국에 이르기 전 우리 삶에서 일어날 일에 관한 좋은 소식으로 관심을 돌린다. 이 지점에서 보통 우리는 많이 생각해 보지 않고 순진하게 주제넘은 태도를 보인다. 좋은 소식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저 우리가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조직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까?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소식일 거야. 하나님은 앞을 내다보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잖아.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지는 않겠지? 그런 것은 나쁜 소식이니까.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사탄을 대적하는 기도를 하겠어.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그분을 의지하니까 내 아이들은 분명 바르게 자랄 거야. 나는 부모로서 내 역할을 다하고 있어. 그러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겠지. 그렇지 않겠어? 하나님 방식대로 아이들을 양육하려고 노력한 내 순종에 대해 당연히 상급을 주시겠지. 그리고 선한 일을 하고 사람들을 잘 대해 주면 그들도 마침내 나를 인정해 주겠지? 이런 것이 내가 듣고 싶은 좋은 소식이야.’ 그런데 이 모든 생각에서 초점은 오직 자신에게 맞춰져 있고, 예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들리는가? …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세 단계에 입각한 좋은 소식이다. 먼저, 우리의 죄 사함에서 시작한다. 문자 그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공동체와 좋은 도시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축복과 시험, 치유와 고통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더 잘 사랑하도록 성장하는 것이다. 놓치기 쉬운 다른 한 가지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영적 성장은 관계적 성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훈련을 할 때, 더 잘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하기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한 노력으로 하기 쉽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더 이야기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통해 점점 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자라 갈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 「1부 나쁜 소식처럼 들리는 좋은 소식」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꿈은 산산조각 나고, 그분의 임재는커녕 그분의 존재에 대한 감각마저 사라져 버렸을 때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선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이 진리다. 우리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신 것이 진리임을 믿는,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다. … 나는 7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마치 깊은 바다가 나를 삼켜 버리는 것 같은 비통한 일과 실패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믿음이 약해지거나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은 정말로 선하신가?’ 하나님은 나의 간구를 듣지도, 나를 도와주지도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큰 상처를 받고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는 것에 관심은 있으실까? 알고는 계실까?’ 고통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대신 의도적으로 그것을 느끼도록 나 자신을 열어 놓을 때,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가장 심각한 문제이자 진정한 기쁨에 대한 모든 소망을 파괴하는 문제는 나를 향해 좋은 일들이 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한 것이다. 즉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아닌 내 마음의 완고함이 문제이며, 기쁨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나의 잘못된 이해가 인생의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다른 이들이 나를 잘 대해 주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요구를 정당화한다는 것이 나의 진짜 문제인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숙고할 때, 만약 내가 회개한다면?진정으로 회개한다면--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진다. 종달새가 다시 노래를 들려주고 예수님의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서 행복의 근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 요구에 대해 회개한다면 말이다.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째, 무엇으로부터 구원한다는 것인가? 앞 세대의 설교자들은 우리가 죄에 대한 형벌에서 구원받았고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는 중에 있으며 죄의 존재 자체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 세 가지 생각을 하나로 모으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을 자기중심성이라는 끝나지 않는 형벌로부터 구원하여 근본적으로 타인 중심적인 존재, 즉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존재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기심의 노예가 된 우리를 구원해서 더 나은 사랑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하고 그 싸움에서 영원하고도 완전히 이기는 그날까지 계속 싸울 수 있게 한다. --- 「2부 제자들만 알아보는 좋은 소식」중에서 내가 받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암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몸을 다시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원하신다. 내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아니던가. 그러나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도전이자, 성령의 가장 깊은 역사하심이 필요한 도전은 때로 어떤 설명도 없이 암이 찾아오는 해 아래의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면서도 해 위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시절이든 나쁜 시절이든 그분의 이야기는 제 길로 가고 있음을 확신 속에서 알 수 있는 믿음을 가능하게 해 주셨다. 심지어 나쁜 시절이 더 악화되어 갈 때도 말이다. --- 「3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속 펼쳐진다」중에서 |
|
예수의 사랑에서 진짜 행복을 찾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가 무엇일까? 사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관계적 존재인 인간은 진정한 사랑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사랑은 단지 다른 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이 최악일 때조차 자신이 용납되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희생과 고통이 따를 때조차 대가를 치르면서도 계속해서 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창조자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 싸우는 좁은 길에서 얻는 행복의 역설 결국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은 어떤 존재로 지어졌는지 알 때 할 수 있다. 인간의 문제를 아시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래리 크랩은 진정한 사랑을 ‘더 나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는 죄를 짓는 이중적 존재이지만 여전히 그 사랑을 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이 진정한 사랑을 함으로써 경험하는 진정한 행복은 조금은 역설적이긴 해도, 사랑을 위해 싸우는 길에 설 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초대했던 좁은 길 여정에서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랑을 할 수 있고 그 행복을 누릴 것이다. 좁은 길 위에서는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겠지만,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을 경험할 것이다. 그 행복의 자리로 초대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