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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차이와 반복, 요컨대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자비로운 그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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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 거야.”
“멀어.” “…….” “상상도 못할 거야. 남극보다도 멀고 지구 정반대편보다도 멀지.” “언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어?” “오래 걸리지 않아. 그러기 위해 떠나는 거니까.”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p.35 “너랑 같이 있으면 어떤 줄 알아? 난 더 외로워. 더 외로워진다고. 이해할 수 있어?” “귀에 딱지 앉겠군요. 뭘 그렇게 이해하라는 거지요?” “나를. 내 상황을. 나란 인간을.” “당황스럽군요. 정말이지.” “이거 봐, 이거 봐. 날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있다니까.”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p.95 그런 게 기억날 리 있을까. 값비싼 물건이나 돼서 중하게 다루었을 리 없고, 리모컨에 발이 달렸는데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도주할지 모르니 사전에 주의를 기울이자고 입을 모은 적도 없다. 도대체 리모컨이라니. “기억들 좀 해봐. 멍히 그러고 있지만 말고.” -「차이와 반복, 요컨대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 ---p.128 딸깍. 쇄골에 삽입된 기기에서 나는 소리이다. 딸깍. 곧 기기가 작동한다는 신호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딸깍. 솔직히, 조금 두렵다. 잠은 죽음이다. 죽음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 딸깍. 그리고 두엽은 소리 없는 잠에 빠져 들었다. 잠의 강물 깊이로 절벅절벅 들어서는 자신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깊이 더 깊이.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 175~176쪽 그러므로 이제 나는, 당신에게 오랜 작별을 고한다. 세상 멀리 있을 당신에게. 내 안에 희미하게 남은 당신에게. 더 이상 우연처럼 당신을 마주칠 일은 이제 없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과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므로. 따라서 처음의 당신이 내게 발산하던, 지극히도 숨 막히던 낯익음의 정체에 대해서도 나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나는 영영 깨닫지 못할 것이므로. 당신에 대한, 깊고 어두운 우주, 당신과 나라는 낯설은 별들 사이에 꾸준히 존재해 온 관계, 관계의 관계들에 대해서.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 ---pp.268~269 만일 진리가 눈앞에 있다면 그리고 큰 노력 없이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서 등한시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이것만으로 설명은 충분하다.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p.314 저는 세상에 두려운 게 없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대단히 강한 분이시군요. 강한 게 아니에요. 민감한 성감대를 쓰다듬듯 거울 속 흉터 자국을 조심히 어루만진다. 사막, 여자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저주를 받은 거죠. 개들에게. -「자비로운 그녀」 ---p.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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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는 창작의 길… 그 10년의 저력.
참신한 실험정신과 퓨전적 상상력이 빛난다! 소설가 한차현이 직접 가려 뽑은 단편 모음집 이 책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1998년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 독특한 소재와 주제의식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한차현. 그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집은, 그간 발표한 단편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은 자선집(自選集)이기도 하다. 표제작 외에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 등 일명 ‘미친’ 시리즈를 비롯, 「차이와 반복, 요컨대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자비로운 그녀」를 수록했다. 고전적 서사의 우수와 신랄한 위트가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기억과 망각·현실과 비현실·과거와 미래 등이 뒤섞여 만화경 같은 풍경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진중한 주제의식과 경쾌한 문체, 그리고 전위적 상상력 활동 초기부터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개성적인 시각과 집요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체와 수사의 실험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작가로 평가받은 한차현. 그는 줄곧 현대사회의 단자화된 개인들의 암울한 내면 풍경과, 그들의 소통 가능성을 다성적인 목소리와 실험적인 문체로 예리하게 탐구해오고 있다.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을 품은 데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그는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소재들을 두루 다루면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장중하면서도 발랄하고, 발랄하면서도 범박하지 않고, 또한 날카로우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문체로 독특한 비유를 구사하는 그의 문장들은 도발적이고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성적인 목소리, 어느 것 하나 공통됨이 없는 이질감 한차현 소설의 개성은 ‘다성적인 목소리’를 지녔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개 작품의 표층에서 채록되는 목소리들은 어느 것 하나 공통된 것이 없는 이질적인 것이다. 「자비로운 그녀」나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의 목소리는 매우 중후하다. 진중한 주제의식과 문체가 고전적 서사의 성체를 이루면서 자못 황홀한 우수를 자아낸다. 그 목소리에는 어떤 리듬감이 있는데, 운명적인 것으로 고착되고 귀결되는 결말의 어떤 지점에서 급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존재한다. 그것은 해답이 내려지는 순간의 ‘반복’ 혹은 ‘딴지를 거는 것’과도 같은 통쾌함이다. 한편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이나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에서는 실재적인 시공간을 의식적으로 해체하는 전위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존 위클리프나 존 후스 같은 중세의 종교 개혁가들의 목소리가 현시적 언어로 재구성되어, 폭력의 구조 속에서 위축된 현대인의 자유를 웅변하고 있는 장면이나, 존재 가치가 훼손된 중년 남자가,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아이를 임신·출산하고 자신의 몸을 분해하여 사회에 공여하는 것으로 극복하는 장면을 보면, 상상력의 수위와 신랄한 위트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기억과 망각·꿈과 현실, 그 ‘착란’에 대한 집요한 탐색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와 「차이와 반복, 요컨대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은 기억을 통해 과거·현재·미래라는 연속된 시간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기억하면서 망각하고, 망각하면서 기억하는, 표면적으로는 모순된 인식 행위를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탐구이다.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는 도무지 해석 불가능한 ‘헛소리’에 가까운 제목만으로도 실재와 꿈, 현실과 실재, 사실과 미신, 주체와 타자, 내부와 외부 등의 잇따른 전복을 통한 ‘착란’의 세계를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착란’은 작가가 집요하게 탐색하는 소설의 ‘안’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바깥, 즉 플롯을 구성하는 중요한 방법론이 되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