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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암튼, 산다이다거북손에게 정말 미안하다쪽배로 태평양을 건널 생각이다최경엽전(傳)‘대강’의 제왕표준어 거부 운동을 제안한다장어는 우리가 다 잡아먹었다우편배달부는 언제 벨을 울리나주아와 수연이우측통행을 하면 알파파가 나온다?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견딜 수 없이 짙고 푸른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죽음의 품위살려면 배가 한 척 있어야벤치의 나이테말에서 떨어진 이유나는 대가리가 좋다그 직업에 대한 단상그 사람북서풍 붑니다. 소주 마십니다모월 모일 모시 저 혼자 삽니다!팝송 틀어놓고 꽃상여가 나아갔다임은 종종 나타나니까 물이나 펑펑 솟았으면평상에서 보았다빠삐용 가득 낚았네인생은 벌거숭이덤비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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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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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우리에겐 이렇게 멋진 아저씨도 있다 “존 레넌은 이미 노래했다. “우리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만 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토요일이면 노란 리본을 달고 광장에 나가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에세이는 조금 다르다. “이럴 땐 문학이고 지랄이고 방법 하나밖에 없다”며 웃지도 않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꺼내야 했던 말들로부터 출발했으니까.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2학년 때 5·18을 겪으며 사람들이 총 맞고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술과 담배를 시작했던,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고 홀로 선언해야 했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렇다고 고생담이 영웅담이 되고야 마는 보통 꼰대 아저씨의 글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되라고는 말 못 한다 각자의 인생이 있으니까, 학생들에게 우선 사과부터 하고 싶다, 워낙 살기 힘든 시기지만 이 거대한 외로움을 한 개인에게 통째로 짐 지우지 말자고 말하는, 술이 아니라 ‘솔로인solo人데이’를 권하는 꼰대 아저씨 본 적 있나 한창훈이란 작가는, 아니 이 아저씨는 진짜 좀 멋있다. 우리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만 있어야 하듯, 우리 머리 아래에도 이런 아저씨들이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바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한창훈은 바다의 표정과 바다의 기분을 볼 수 있는 작가다.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바다를 바라보고, 노을이 지면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니까. 작가에게 바다는 통째로 화장실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삶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그저 푸르고 거대한 한일자이기도 하다. 낚시를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가 바다와 일대일로 대면하기도 하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없어선 안 될 가장 중요한 게 또한 바다다. 그에게 여름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산다이’이며,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면서 가을 바다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가장 아름다운 바다다. 겨울 바다는 존재에 대해 끙끙 앓는 시공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젠가부터 봄 바다는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바다가 되었다. “미워해야 할 대상은 바다가 아니라 그런 사고를 내고 먼저 도망가버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뒷수습이라고 한, 아직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피해자들을 이간질하는 것도 모자라 악랄하게 공격하고 있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속의 어떤 사람들이니까.”작가는 말한다. 바다란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출렁이고 있는 존재니까 두려운 곳이 아니라 우리가 기댈 수밖에 없는 장소이자 보듬어야 할 대상이라고. 어떤 사람이 되라고는 말 못 한다, 타인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그런 사람만큼은 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그리고 작가는 결국 그 당부가 부끄럽지 않도록 지난(2016년) 12월 10일 일을 벌였다. “‘바다가 육지라면’ 걸어서 가겠지만 바다가 육지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디 바라건대 바닷가 앞에 차벽을 세워 우리의 행진을 강제로 막아주면 고맙겠다”는 말과 함께 검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는 거문도 바다에 섬사람들과 힘을 모아 배를 띄우고 해상 촛불집회인 어선 퍼레이드를 벌였다. 바다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작가의 말주말마다 마을버스와 직행버스를 갈아타며 광화문을 다녀왔습니다. 날씨는 추웠고 마음은 뜨거웠습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수백만 시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이 보였고 그동안 저들의 악랄했던 술수들을 떠올리며 불안해했습니다. 성숙한 시민사회의 문이 열리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런 구태와 저질이 지금까지 우리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도저한 연대와 공유의 현장에서 끈질기게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던 박정희를 떨어내는, 힘찬 몸부림만큼은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동안 본 것 중 최고의 산다이였습니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죠. 그가 우리를 배부르게 해주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밥 먹여주는 것에 만족하면 그야말로 개돼지 아닌가요. 저는 가난해도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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