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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한계는 끝이면서 시작이기도 하다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의 또 다른 걸작. 대안공동체 '아르카디아'를 중심으로 비트라는 남자의 일대기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냈다. 상실과 불운으로 가득한 삶 속에서 결코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그의 묵묵한 발걸음이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2018.02.23.
소설/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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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도시 ...013
헬리오폴리스 ...131 축복받은 자의 섬 ...257 지상 기쁨의 정원 ...335 감사의 말 ...443 옮긴이의 말 _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445 |
Lauren Gr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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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런저런 방식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색다른 거였어. 순수한 것. 대지 위에서의 삶이 아니라 대지와 더불어 사는 삶. 상업주의라는 악마에게서 벗어나 우리 손으로 일구어나가는 삶. 우리의 사랑이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되게 하는 것이었지. --- p.29
이제 그는 아주 분명하게 깨닫는다. 시간이 아주 유연하다는 걸, 고무줄 같은 것이라는 걸. 시간은 길게 늘어날 수도 있고 단단히 뭉쳐질 수도 있고, 매듭이 지어지고 접힐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는 내내 시간은 끝없이 순환하는 고리다. 밤이 있을 거고, 그러고 나면 낮이 있을 거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있을 것이다. 한 해가 끝나면 다른 해가 시작될 것이고, 또 끝날 것이다. 노인은 죽고, 아기는 태어난다. --- p.116 때로 세상은 비트에게 너무 벅차다. 너무 많은 두려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매일 그는 새로운 놀라움에 짓눌려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주가 불가능한 속도로 파동을 일으키며 밖으로 팽창한다. 비트는 우주가 무無를 향해 회전해나가는 것을 느낀다. 아르카디아 너머에는 그가 꿈꾸었던 것들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 철탑, 수영장, 동물원, 극장, 신기한 생명체로 가득한 거대한 바다. --- p.151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믿음,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질 경우 선하며 선하기를 원한다는 그 믿음을 굳게 간직한다. 이 믿음이 아르카디아에 관한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임을 그는 안다. 이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보호막이다. --- p.154 정신에는 자기 고유의 공간이 있다. 에이브가 말한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지옥의 천국도, 천국의 지옥도 만들 수 있다. 배교한 천사가 이렇게 말했지, 『실낙원』에서. --- p.187 악마와 조지 엘리엇은 둘 다 같은 종류의 생각, 즉 변화를 갈구하는 것이 변화를 만드는 강력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지지하고 있지. 변화는 이 갈구에서 비롯된다고 말이야. --- p.189 그는 경이로움을 느끼며 이것이 바로 아르카디아를 위대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라고 느낀다. 잠재성에 대한 주목, 개인에 대한 인내, 영혼의 확장에 필요한 공간. --- p.200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그럴 거라 우려한 모습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_284쪽 갑자기 비트는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그는 종종 생각한다, 세월은 그렇게 가는 거라고. --- p.290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때로 숨이 막힌다. 사람들은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고 있을까. 사회적 계약은 아주 허약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규칙을 지킬 것이고, 조심스럽고 점잖게 행동할 것이고,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할 것이며, 실패에 뒤따르는 벌칙에 동의할 것이다. 거리에서 트럭을 운전하는 저 남자가 충동적으로 상점 유리창을 향해 돌진해 모든 것을 끝내지 않을 것이란 믿음. 대통령이 빨간 버튼 위에서 손을 놀리다 순간적인 분노나 나약함 때문에 세상을 폭발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 문명의 보이지 않는 세포조직은 너무나 얇고 찢어지기 쉽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 p.311 그런데 그가 행복했던가? 이 회고가 뿜어내는 광채는 믿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기억 위엔 황금빛 먼지가 앉아 빛나기 마련이니까. --- p.359 그는 계시를 기다린다. 하지만 밤은 끈을 더욱 단단히 조이고 바람은 나무를 달래 잠재운다. 두 개의 선택지. 어릴 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떠서 부유할 것인가. 아니면 뛰어들어 헤엄칠 것인가. --- p.360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게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자유냐 공동체냐, 공동체냐 자유냐. 사람은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을 결정해야 해요. 난 공동체를 선택했어요. --- p.409 빨랫줄에 걸린 시트들 위로 햇빛과 바람이 쏟아진다. 부풀어오르는 시트들 안에서 몸이, 형태가 만들어지다 단숨에 사라진다. 그는 손상된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그것들을 그 안에 붙잡아두기 위해서. 이것이, 오래전 그를 사진과 사랑에 빠지게 했던 바로 그것이다. 주의 기울이기, 시간 포착하기. 그는 그동안 바로 이것을 잊고 있었다. --- p.418 그가 무한할 수 없다면?그의 사랑이 궁극적으로는 소진에 이르고, 그의 빛이 그림자에 이른다면?이것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숲이 산에 이르고, 바다가 해안에 이른다. 뇌는 뼈에 이르고, 뼈는 피부에, 머리카락에 이른다. 그리고 공기에 이른다. 낮은 밤 없이는 낮이 아닐 것이다. 어느 현명한 여인이 이렇게 썼다. 모든 한계는 끝이기도 하지만 시작이기도 하다고. --- p.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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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년, 티끌만큼 작은 소년 비트.
무너진 이상향의 파편을 그러모아 마음속에 일으켜세우다. 총 4부로 구성된 『아르카디아』는 신화 속 목가적 낙원의 이름을 딴 대안 공동체 ‘아르카디아’에서 나고 자란 소년 ‘비트’의 일대기다. 소설은 주인공 비트의 삶을 중심으로, 반문화 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소설 출간 당시 근미래였던 2018년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그린다. 1부 ‘태양의 도시’에서 비트는 다섯 살이다. 아르카디아가 결성된 후 처음 태어난 아이라 ‘최초의 아르카디아인’이라는 신화적 별명을 얻게 된 그는 바깥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널따란 풀밭과 깊고 어두운 숲, 600에이커에 이르는 아르카디아 부지도 그에게는 버거울 만큼 크고 넓다. 함께 사는 친구들과 어른들, 비트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품속에서 비트는 안전하고 행복하다. 다만 겨울이 되면 말이 없어지고 우울해지는 어머니 해나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비트는 우연히 찾은 보물인 그림형제 동화책을 보고 백조로 변한 오빠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육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소녀처럼, 자기가 꾹 참고 말을 삼키면 엄마가 다시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믿는 순수한 소년이다. 2부 ‘헬리오폴리스’에서 비트는 열네 살이다. 사춘기를 맞은 비트는 서서히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전부인 아르카디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계속되는 가난과 굶주림, 마약, 범죄, 내부의 갈등과 반목. 그들의 이상향은 가출 청소년들과 마약중독자들과 범죄자들의 피난처로 바뀌어간다. 그 어두운 시기에 비트가 발견한 빛은 여왕처럼 아름다운 소녀 헬레. 공동체의 리더 격인 핸디의 딸인 그녀를 비트는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르카디아는 크고 작은 사건을 거치며 결국 와해되고, 비트는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후에 펼쳐지는 3부 ‘축복받은 자의 섬’과 4부 ‘지상 기쁨의 정원’에서 비트는 바깥세상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남자다.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비트에게 삶의 유일한 기쁨은 딸 그레테다. 헬레와의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딸을 얻었지만, 어느 날 산책을 나간 헬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비트의 삶에서 아르카디아와의 이별은 잇따른 상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비트의 개인적인 불운과 상실은 바깥세상의 불행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 속 2018년에 세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공포에 떨고 있다. 루게릭병을 앓는 해나와 딸 그레테를 데리고 비트는 어린 시절 떠났던 아르카디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해줄 작고 고요한 희망을 발견한다. 인 아르카디아 에고(In Arcadia Ego). 나는, 죽음은,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아르카디아』는 유토피아의 탄생으로 시작해 디스토피아인 미래로 끝을 맺는, 일견 굉장히 비관적인 이야기다. “평등, 사랑, 노동, 모든 이의 필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기치로 야심차게 탄생했던 그들의 낙원은 유토피아를 다룬 대부분의 이야기들에서처럼, 무엇보다 우리의 실제 역사에서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소설 속 아르카디아 하우스 현관에 새겨진 ‘인 아르카디아 에고(In Arcadia Ego)’, 즉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라는 문구는 프랑스 화가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 제목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나’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낙원에도 죽음은 있다는 뜻으로 인간의 유한함을, 소설에서는 아르카디아의 최후를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상징은 비트의 이름에도 있다. 체구가 너무 작아 ‘비트(bit)’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의 본명은 ‘리들리’인데,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의미심장하다. 비트의 어머니 해나가 차 안에서 산통을 겪을 때 병원을 찾기 위해 급히 차를 돌리는데 그때 와이오밍주 리들리로 간다는 것이 그만 엉뚱한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무사히 태어난 아이에게 아버지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마을 이름에서 따온” 리들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최초의 아르카디아인에게 붙인 이름이 결국 그들이 도달하지 못한 어느 지역이라는 것은 아르카디아인들의 꿈이 좌절될 것임을 예기한다. 하지만 『아르카디아』는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 그 실패 자체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에서 아르카디아가 무너지는 시점은 2부의 끝, 그러니까 중간 지점이다. 아르카디아의 끝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고 비트의 삶은 이어진다. 결국 소설이 더욱 관심을 두는 것은 무너져내린 물리적 이상향이 아니라 비트라는 인간의 마음속에 공고히 세워지는 이상향이다. 소설에서도 인용되는 『실낙원』의 문장처럼 “정신에는 자기 고유의 공간이 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지옥의 천국도, 천국의 지옥도 만들 수 있다”. 결국 『아르카디아』는 물리적 좌표를 점하지 않는,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인 정신이라는 공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계속되는 상실 속에서도 끝내 그곳을 지켜낸 한 남자의 이야기다. 주의를 기울일 것. 장대한 몸짓이 아닌 지나는 숨결에, 활짝 피어났다 희미해지며 지나가는 이 순간에……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마치 블랙홀처럼 작지만 커다란 질량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섬세하고 사려 깊은 관찰자 비트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이 아프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독자들이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요소다. 어린 비트는 따뜻하고 맑은 소년이다. 그는 세상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때로 다섯 살 아이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들까지 깊숙이 받아들인 다음 내면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재구성한다. 소설이 일인칭시점이 아닌 삼인칭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음에도, 그로프는 놀라울 만큼 세밀한 필치로 어린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비트라는 캐릭터가 이토록 생동감 있게 그려진 것은 작가의 개인적이고 각별한 애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소설 앞에 실린 헌사에서도 알 수 있듯, 비트는 로런 그로프의 첫아이인 베킷을 모델로 하고 있다. 작가는 베킷을 임신한 상태에서 아이가 태어날 세상을 염려하며 이 이야기를 구상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관찰하고 느낀 것을 소설로 썼다. 작가의 표현대로 『아르카디아』는 그녀의 “아들과 함께 자란” 작품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만이, 홀로, 이 세상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는 비트는 작품 속의 가장 믿음직한 목격자다. 그러나 그것은 비트가 오직 사실만을 증언하기 때문이 아니라 폐허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비트에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지붕에 비치는 새벽빛에서, 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서 낙원을 발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트가 사진작가가 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프레임 속에 담긴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행위다. 순간은 지나가도 사진은 남는다. 비트는 “장대한 몸짓이 아닌 지나는 숨결”에서, 원대한 이상이 아닌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낙원을, 아르카디아를 찾는 사람이다. 기억의 공간에 쌓인 이야기들,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그러나 그는 기억한다. 아르카디아가 들려준 그 기억은 그들 공동의 것이 되었고, 듣고 또 들은 그 기억은 마침내 그의 안에서 이야기로 자라나 비트 자신의 기억이 되고 그와 하나가 된다.” _본문 10쪽 비트가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는 또다른 방법은 바로 기억이다. 그러나 『아르카디아』에서 말하는 기억은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다. 여기서 기억은 ‘이야기’의 다른 말이며, 함께 공유되고 자라나는 것이다. 소설의 프롤로그는 비트가 태어나기 전, 아직 해나의 뱃속에 있었던 시절의 어느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트는 그날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 기억은 이야기의 형태로 전해지고 공유됨으로써 그 이야기와 관계를 맺는 이들의 일부가 된다. 비트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믿어왔던 이야기를 잃으면 우리는 이야기 이상의 것을 잃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평생 동안 쌓인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기억의 공간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최후의 낙원이 된다. 그리고 폐허가 된 과거와 음울한 미래 앞에서 미소 짓는 이 비관적인 이상주의자의 낙원은, 작가가 그리듯 펼쳐낸 문장들을 통해 나무로 자라고 꽃으로 피어나고 눈이 되어 내리면서 읽는 이의 마음속에 거대한 세계로 자리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