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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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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 이게 사는 건가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삶|왜 희망할수록 절망하게 되는가
적당한 삶은 불가능하다|우리가 알던 삶은 , 끝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 우리가 알던 삶은 끝났다
개짱이는 없다
고만고만한 삶을 꿈꿨다|개미, 참 열심히 산다
베짱이, 개미보다 부지런해야 산다|열심히 일하라, 그리고 그것을 즐겨라

하면 된다? 되는 것만 하라!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까,나빠질까|격노, 삶이 기대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냉소, 삶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지금만큼이라도 살고 싶다

모욕 주는 사회, 유령이 된 사람들
평균은 탈락이다|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고통
침묵해야 우리는 시민권을 얻는다|구체적이지 못한 죽음, 보편적이지 못한 슬픔
삶이 그렇듯 죽음에도 서열이 있다

2부 세상은 우리 편이 아니다
경험이 죽었다
경험에는 어른이 필요하다|어른은 사라지고 '꼰대'와'애새끼'만 남았다
카메라와 가이드북이 대신하는 여행|카이로스, 첫 키스처럼 멈춰선 시간
크로노스, 스케줄로 꽉 찬 시간|어른도, 지혜도, 용기도, 빈틈도 없는 곳, 교실

동료가 사라졌다
만나면 피곤하다|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왕따의 죽음
공감은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졸라'는 왜 공감이 아니란 말인가
동료를 향한 용기가 죽어버렸다|학예회를 사랑할 수 있는가

법이 사람 잡는다
법은 정의의 가능성에 귀를 기울인다|정글의 법칙보다는 법치가 낫다?
법도 약육강식이다|법과 싸우는 사람들|'황제'는 법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법의 이름으로 평화가 깨진다|법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듣는다
공화국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

3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사람을 옹호하고, 사회를 폭로하라
유 씨, 자본주의를 폭로하다|끊임없이 고백을 강요받다|증언, 사회에 대한 의심
증언, 진실에 대한 용기|불한당 같은 시대, 교실에서 꿈꾸는 혁명

네가 있어서 내가 기쁘다
혼자면 외롭고 함께하면 괴롭다|동료가 되는 두 가지 방식
우리는 모두 이 세계의 손님이다|동료가 된다는 것
에로티시즘, 남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동료를 위해 가면을 써라

희망은 기다림이다
언젠가는 vs 이번에는|희망의 개인화|근본적 질문이 시작되다|파국에 처한 삶
단절이 희망이 된다|의리, 용기의 다른 이름

나가는 글 - 두더지가 되자
두더지의 역습|신나게, 두려움 없이, 망해가는 이야기를 해보자|삶 이후에 삶이 있다

저자 소개 1

사회학자. 『단속사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등을 썼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과학자가 되는 것 말고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과에서 문과로 ‘개종’한 후 사회학과에 들어가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떠나라”는 명령을 듣고 한동안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때 자본의 전 지구화에 의해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을 목격하며 이를 인권의 언어로 증언하는 일에 몰두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나누며 사회를 구축하
사회학자. 『단속사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등을 썼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과학자가 되는 것 말고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과에서 문과로 ‘개종’한 후 사회학과에 들어가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떠나라”는 명령을 듣고 한동안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때 자본의 전 지구화에 의해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을 목격하며 이를 인권의 언어로 증언하는 일에 몰두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나누며 사회를 구축하는 역량에 대한 방법론으로서의 페다고지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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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38g | 152*224*20mm
ISBN13
9788901136998

책 속으로

희망이 없어서 죽고, 희망이 없어서 인생을 포기하고, 희망이 없어서 대충 살겠다고 하는데 이 희망이라는 놈이 인간에게 뭣이 그렇게 중요한지, 그리고 이놈이 도대체 어떤 놈인지 알고 싶었다. 희망이라는 놈이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이유와 과정을 알고 싶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서 가져온 ‘기대’와 ‘희망’의 차이였다. 공부를 하면서 나는 왜 우리가 희망을 갈구하면 할수록 삶에 용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 빠지기 쉬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 사람들이 왜 세상에 분노하고, 또는 반대로 왜 세상에 냉소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희망을 기대로 바꿔치기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탓이었다. --- p.13

응원이 희망이 된다. 언젠가는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희망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이 의미가 있고 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내 수고를 누군가 응원해줄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이 힘으로 우리는 삶을 견딜 수 있다. 내 삶에 이런 응원을 해주는 사람을 이 책에서는 동료라고 부른다. 물론 무턱대고 응원해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이해하기도 전에 동의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삶에는 동지가 아니라 동료가 필요하다. 동료란 내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지 내 삶에 ‘동의’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동지를 만나기보다 동료를 만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동료란 ‘삶’을 나누는 사람이지 ‘뜻’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4-15

왜 우리는 노무현을 미워할 수 없었던가. 그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분열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아이를 불러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 투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 만하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살기 위해서는 삶이 분열되어야 한다. 이 분열의 빈틈에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 엉킨 채 우리는 살아간다. --- p.29

기대는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책정되고 배분된다.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공식은 예외적으로 작동하는 것이지 절대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성공 신화들을 가지고 우리 사회는 마치 이 ‘하면 된다’ 공식이 우리 사회의 규범인 양 떠든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진실은 ‘하면 된다’가 아니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기술이나 배워라”라는 말에 담겨 있다. 무엇이든 우리 사회가 말해주지 않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때마다 주변에서 지겹게 듣는 말이 ‘되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기술이나 배워라’ 아니던가? 이 말이야말로 ‘하면 된다’는 말에 감춰진 뒷면이다. --- p.63

경험이 점점 더 희박해질수록 사람들은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바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각오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껏 돈 들이고 시간 들였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파리에 가서 사자 한 마리 구경도 못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이를 각오한 사람만이 사파리로 떠날 수 있다. 사자를 보고 싶으면 사파리가 아니라 에버랜드에 가는 게 백배 더 낫다. 에버랜드에는 사자는 있지만 사자에게 물려죽을 위험은 거의 없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자유낙하를 체험할 수는 있지만 자유낙하를 하다 떨어져 죽을 일도 별로 없다. 이렇게 위험을 제거한 다음 경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체험이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위험을 제거한 만큼 경험을 잃었고, 경험을 잃은 만큼 삶에 대한 용기를 잃어버렸다. --- p.114-115

현장의 비참함과 세상의 사악함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마음을 ‘분노’가 아니라 ‘공포’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분노하고 행동할 때는 여럿이 함께하는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때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적이 너무 거대할 때, 내 주변에서 나의 분노를 공유할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분노’하기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혼자라도 살겠다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예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 p.177

멘토가 주는 ‘기대’는 상품과 같다. 멘토를 보며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하고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자기에게도 좋은 결과가 상품처럼 주어지리라 여기며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필요한 힘이다. 그러나 멘토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 멘토가 있고 이들이 가진 힘과 이들의 위로가 있기에 사회는 여전히 살 만한 곳처럼, 삶이 가능한 공간처럼 상상된다. 그 결과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다.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좌절했기 때문이다.” “네가 어리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멘토는 사회를 가리는 판타지다. --- p.184

남과 더불어 기뻐하는 것, 이것은 에로티시즘이다. 에로티시즘은 남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다. 성욕과는 다르다. 성욕이 나의 욕망을 채우려고 타자를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면 에로티시즘은 남이 기쁨으로 하여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너로 인해 나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이 에로티시즘이다. 에로티시즘에는 교환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너에게 지금 무엇을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돌려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증여와 선물의 논리가 작동한다. 더 줘서 기쁘고, 그가 기뻐하면 나도 기쁘다. 이런 의미에서 우정은 에로티시즘이다. --- p.223

희망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 실망하지 않겠다는 각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희망이 없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소통의 실패가 두려워 아예 이야기하기를 그만둬버리는 히키코모리처럼 그냥 내 세계에 처박혀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관전이나 하겠다는 태도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희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다. --- p.246

비록 우리 자신은 김진숙이나 문정현 신부와 같이 앞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처럼 세상과 불의와 운명에 맞서 싸울 수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에 빠져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용기에 대해 의리를 지켜 그들을 보호하고 응원할 수 있다. 용기를 내고 정신의 힘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지키는 의리, 이것이 용기가 아니라면 무엇이 용기란 말인가? --- p.260

용기를 내는 데는 바로 나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나뿐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한 번 더 세상과 부딪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쫄지 않을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공유하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이런 공통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이 언어로써 우리가 ‘감응’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하는 공간이다. --- p.261

두더지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신이 나야 한다. 세상 망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신나게’ 해야 한다. 재미를 추구하자는 말이 아니다.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건 우리에게 일종의 강박관념과도 같다. 그래서 억지로 재미있게 하려고 애쓴다. 주제도 재미있는 것만 고르고, 강연자도 재미있는 사람을 부른다. 진지하고 우울한 주제는 되도록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신나게 한다’는 말은 다른 뜻이다. 세상 망해가는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신날 수 있다.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슬픈 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말할 수 있음에는 ‘힘’이 있다. 이해하기 힘든 가장 커다란 비극도 말을 하는 순간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 p.271

출판사 리뷰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지금 여기의 삶을 보듬는 인문학자 엄기호의 새 책


2010년 출간되어 조용한 바람을 일으켰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의 새 책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가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인문서로는 드물게 2만 부 이상 판매되며 주목을 받았던 전작이 성장을 키워드로 세대 문제를 다룬 책이었다면, 이 책은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이라는 부제처럼 동료와 용기라는 주제로 우리 시대를 날카롭고 내밀하게 담아낸 책이다. 아픈 것도 괜찮다고, 자기를 혁명하라고, 저 멘토들처럼 살면 희망이 있다고, 모든 것은 꼼수니 쫄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넘친다. 그러나 과연 삶은 그러한 것들로 인해 달라지는가. 저자는 희망이라는 말이 넘칠수록 삶을 형편없다고 여기게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 대신 동어반복처럼 ‘자기 계발’만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한다. 삶을 도무지 긍정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와 체계는 무시한 채 세상을 긍정하라는 말만 되풀이해 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그동안의 인문학 책들이 거대 담론으로써 파국을 말하고, 시스템으로 짜여 곧 이루어질 듯이 보이는 희망을 말해왔다면 이 책에서 저자는 파국을 깨뜨리는 새로운 희망을 섣불리 주장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우리 삶의 파국을 세밀하게 증언한 후 내 삶과 격리되어 저 높은 곳에 자리한 희망을 갈구하는 대신 눈을 옆으로 돌리자고 말한다. 파국이 삶 안에 있다면, 희망도 바로 내 삶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파국은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파국을 견디는 힘은 바로 내 삶과 내 곁의 사람의 삶에 서로 공감하고 동료를 만들 용기, 그리고 동료를 기쁘게 하려는 에로티시즘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이렇듯 우리 사회에 만연한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이나, 대안 없는 위로의 말을 뒤엎는 대신 남으로부터 위로를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또한 경험, 공감, 동료, 용기 같은 자기 삶을 정의하는 새로운 언어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틀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힘을 다시 돋우는 힘을 담은 책이다.

삶이 삶 같지 않을 때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된다
파국에 처한 우리 삶의 자화상


9·11 테러부터 세계적 금융 위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상기후…….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엄기호는 파국이 전세계적 위기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속에 있다고 말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에 IMF의 금융 구제를 받던 시절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고 대답했지만 지금은 같은 질문을 던지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삶에서 “어떠어떠한 조건이 충족되면 어떠어떠한 결과가 나오리라고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인간이 가지게 되는” 기대를 품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꿈꾸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희망은 고사하고 ‘하면 된다’는 기대마저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격노한다. 문제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바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다. 혹은 일이 되지 않을 백만 가지 이유를 들이대며 세상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냉소한다. 저자는 삶에서 용기란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통하여” 일어난다고 말한다. 과거 대학생들이 최루탄을 맞아가며 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내 곁에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듯이 말이다. 그런데 삶의 터전이 붕괴되었다. 미래를 기획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용기 대신 비겁함이, 동료 대신 적이 가득하다. 공통의 것은 사라지고 내 것에 대한 강박만이 가득하다. 이야말로 파국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삶에서 ‘공통의 것’이 파괴되면 될수록 새로운 ‘공통의 것’이 우리 삶에 생겨난다. 이게 사는 건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 이건 사는 게 아니라는 확고한 인식이다.”

2012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용기다
99%의 삶을 위한 희망의 재구성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파국에 처한 삶을 쉽게 위로하려 하거나 파국을 벗어나기 위해 섣부르게 분노를 촉구하지 않는다. 대신 먼저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해온 희망의 허상을 폭로한다. 우리는 희망을 개인화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각종 자기계발서, 긍정 신학, 정신분석학 등이 유행하는 이유가 “공감을 통해 대안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을 치료하는 일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긍정의 이름으로 부정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이게 다 내 탓이다’와 ‘이게 왜 다 내 탓인가’ 사이에서 마음이 요동칠 뿐 문제를 공통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더욱이 삶이 나아진다는 기대가 없을 때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지금 가진 ‘내 것’이라도 잘 지키며 움직이지 않겠다는 마음이 우리를 지배한다. 저자는 희망을 다시 만들어가려면 무엇보다 동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동의 민주화 혁명은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평불만을 털어놓고 공감하는 두서너 명의 사람들이 모인 아지트, 이 두더지 굴이 이미 이란 사회 구석구석까지 패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0층 넘는 아파트가 수두룩해 ‘라퓨타’ 같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홍콩의 바링허우(80년생 이후 중국 청년 세대) 세대들이 홍콩-중국 고속철도 사업에 반대한다며 갑자기 등장한 사건도, 미국에서부터 전 세계로 퍼져가는 “Occupy” 시위도 동료와 아지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촛불시위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홍대 앞 두리반도 동료와 아지트가 만들어주는 용기의 좋은 예다. 물론 저자는 우리 모두가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고 이에 맞서 직접 행동을 하는 것만이 용기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의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희망을 개인화하고 마음의 철갑옷을 입는 대신 서로의 상처 난 얼굴을 마주보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그와 나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내 삶을 이해하는 도구여야 한다
내 삶을 이해하고 우리 시대를 읽는 현장의 인문학


엄기호의 글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우리 시대의 보편성을 읽어낸다. 이 책은 그 삶의 이야기와 인문학적 성찰을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주고받는 형식을 더했다. 또한 이번 책에는 저자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공부란 “동시대성을 깨닫고 당대에 대하여 나와 인식을 같이 하는 사람과 동료를 맺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인문학적 공부법을 형식과 내용 면에서도 그대로 담아냈다. 공감에 대한 글이 좋은 예다. ‘개그 콘서트’와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대학생, 만나면 서로 피곤하다고 말하는 학생-교사-학부모,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 치킨 집 배달 청년 같은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공감을 키워드로 꼼꼼하게 엮어낸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중동 혁명 같은 당대의 사건을 끌어들이고 하지현, 이자크 디네센, 김상봉의 인문학적 개념들을 불러들인다. 이를 통해서 공감과 동감은 무엇이 다른지, 우리는 왜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희생양을 만드는지, 우리 삶에서 왜 동료와 동료를 향한 공감과 용기가 죽어버렸는지 저자의 고유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이렇듯 당대의 이슈를 되짚어보는 세밀한 보고서이자 우리 시대 희망을 재구성하여 용기를 촉구하는 선언문인 동시에 독자들에게 삶과 당대와 인문학을 포괄하는 인문학 공부의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다.
리뷰 총점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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