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사유의 시원에서의 대화
1편 유가와의 대화 1장 《논어》에서 2인칭 사유를 발굴하다 님들의 침묵 | 생각의 나무 | 소설의 눈 | 영혼에 대한 태도 | 탑 다운 대 바텀 업(Top Down vs. Bottom Up) | 말과 사물 | 아리아드네의 실 | 공자의 마음 | 가지 않은 길 2장 주희와 율곡, 이치의 얼개를 논하다 혼동의 삼중주아이가 우물에 빠진 날 | 사태, 당위, 필연의 끈 이론 | 개념화와 문맥화 | 다수실현, 국소성, 개별화 | 반결정성과 조절이론 | 중첩결정성, 역다수실현, 미결정성 | 물리, 심리, 문리 100 * 유가와 음악을 논하다 선악의 피안 | 답론(필립 아이반호) 2편 불교와의 대화 3장 헤세, 불교를 만나다 카프카 | 나의 투쟁 | Clash of the Titans | 윤회와 자아 | 탐구의 논리 | 강가의 아침 | 낯선 시간 속으로 | 삶은 지속된다 4장 비트겐슈타인, 용수를 만나다 접속 | 조각난 언어, 조각난 세계 | 시네마 천국 | 딱정벌레 | 비어 있는 세계 | 비어 있는 언어 | 우상의 황혼 3편 도가와의 대화 5장 데리다, 장자를 만나다 손 | 만남 | 새 | 바람 | 나비 | 헤어짐 | 소 6장 들뢰즈, 노장을 만나다 말러 | 길 | 말 | 이퀼라이저(Equalizer) | 인간을 넘어서(Uer Mensch) | 황금충(黃金蟲) | 알 | 붕괴 | 거문고 | Year of the Cat * 장자와 혜시를 논하다 비판 | 옹호(이상수) 4편 정약용과의 대화 7장 정약용, 주자학에 반기를 들다 구태의연 | 유자(儒者)와 유전자 | 98.4%와 1% | 털끝 | Trivium | 원시반본(原始返本) | 이의(理意)제기 | 이기(理氣)주의 | 인플레 출구전략 | 성향론적 결과주의 | 단서와 단시 | 디지털과 아날로그 | 무법칙성 | 3중원 8장 정약용, 《대학》을 다시 읽다 《대학》의 이념 | 현대의 이념 | 《대학》의 성립 | 공정의 선조 | 보충대리 | 무(無)대리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의(意)와 이(理) | 성의(誠意)로서의 도덕과 윤리 | 이론에서 전통으로 2부 현대철학자들과의 대화 5편 유가로부터 9장 《논어》 새로 읽기 삶에의 태도 | JSC에서의 토론 | 논평(김영건) | 한국이론사회학회에서의 토론 | 논평(이상익) 10장 성리학 새로 읽기 논평(김우형) | 반론(이상익) | 답론 |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의 토론 | 논평(문장수) | 답론 |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의 토론 | 말레이시아에서의 토론 6편 불교로부터 11장 《싯다르타》 새로 읽기 연세철학연구회에서의 토론 | 시공간대칭융합연구소에서의 토론 7편 도가로부터 12장 《장자》 새로 읽기 테크네와 외생(이지훈) | 삶의 안팎 |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에서의 토론 | 트리니티대학교에서의 토론 | 미국철학회에서의 토론 | 뉴욕주립대학교/버팔로에서의 토론 |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교에서의 토론 | 타이완 국립양밍대학교에서의 토론 13장 노장 새로 읽기 연세대학교에서의 토론 | 전남대학교에서의 토론 8편 정약용으로부터 14장 정약용 새로 읽기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의 토론 | 홍콩성시대학교에서의 토론 15장 《대학》 새로 읽기 논평(문석윤) | 논평(박종천) | 답론 504 |
이승종의 다른 상품
|
우리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이름과 낱말을 과거의 의미로 돌이키려는 하이데거의 고고학적 언어철학과 구별 지을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언어에 내재한 질서의 시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언어의 질서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에 의해서 부단히 새로워지는 열린 과정이다. 공자에 있어서 이름의 질서는 예(禮)와 의(義)를 통해 과거의 전통 및 현재의 상황에 이어져 있는 현재 미완료 진행형이다 --- p.56, 1장 《논어》에서 2인칭 사유를 발굴하다
열반은 싯다르타의 목적이 아니다. 거듭남의 과정에서 과거는 현재에 흔적이나 그림자로 남아 있다기보다, 해체나 극복, 혹은 망각의 형태로 소진되거나 매듭지어져 돌연한 출발을 예비한다. 돌연한 출발이 함축하는 단절과 불연속은 되돌아옴이라는 텍스트의 거시적 플롯에 의해 균형을 이루면서, 싯다르타의 삶은 차이와 반복의 이중주라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 《싯다르타》의 감동적 종결부를 싯다르타의 탐구의 최종 결론이나 그가 도달한 불변의 진리, 혹은 해탈의 경지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삶과 하나의 텍스트가 숙명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유한성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잠정적 매듭일 뿐이다. --- p.144, 3장 헤세, 불교를 만나다 공(空)이 있다는 견해를 갖는 사람은 공(空)에 집착하여 공(空)에 대한 형이상학을 전개하려 한다. 용수는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 공(空)도 비어 있음(空空)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공(空)은 마치 치료약과 같아서, 공(空)이라는 약으로 사물적·원자론적 사유의 질병을 치료했으면 그 치료약도 씻어 내야 한다. 남아 있는 약이 위를 해치듯이, 공(空)에 대한 집착도 우리를 다시금 미혹에 빠뜨릴 뿐이다. --- p.165, 4장 비트겐슈타인, 용수를 만나다 장주와 나비는 에셔의 그림에 나오는 서로를 그리는 두 손과 같다. 그림 속의 두 손이 서로를 그리고 있듯이 장주와 나비는 서로를 꿈꾸고 있다. 꿈은 허상이다. 허상은 실상을 말소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꿈꾸는 경우에 허상과 실상의 구별은 해체된다. 에셔의 그림에 나오는 두 손에 펜 대신에 지우개가 쥐어져 서로가 서로를 지우고 있는 상황이, 장주와 나비가 서로를 꿈꾸는 관계에 대한 또 하나의 그림일 것이다. --- p.192, 5장 데리다, 장자를 만나다 장자의 제물론이나 들뢰즈의 사유는 모든 차이를 어떤 근원적인 유사성, 같음, 동일성으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같다고 주장하거나 모든 것을 같게 만들려는 구심적(求心的) 형이상학이 아니다. 유사성, 같음, 동일성이 있다면 그것은 차이의 효과일 뿐이다. 들뢰즈와 제물론의 사유는 근원적 차이가 어떤 우열이나 위계를 설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이려는 원심적(遠心的) 열린 시도이다. --- p.213, 6장 들뢰즈, 노장을 만나다 성의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앞서 보았듯이 그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성의(誠意)의 의(意)를 의지(意志)로 풀이할 경우, 자신을 속인다는 것은 의지박약을 함축할 수 있으며, 의미(意味)로 풀이할 경우, 그것은 애매모호함을 함축할 수 있다. 요컨대 의지박약뿐 아니라 불분명함도 성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거짓이 없는 확실한 말, 혹은 말과 행동의 일치가 언(言)과 성(成)의 합성어인 성(誠)의 의미라는 점에서, 《대학》의 성의(誠意)는 《논어》의 정명(正名)과도 통한다. --- p.301, 8장 정약용, 《대학》을 다시 읽다 |
|
동아시아, 성찰적 사유의 전통을 잇다
이 책은 기존의 동아시아 사유가 탈문맥성, 몰현재성, 사대주의의 그늘 아래 고고학적 유물처럼 다루어지고 있다는 날선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인문학의 위기’와 흐름을 같이한다. 저자가 보기에 인문학의 위기는 안으로 반성하고 밖으로 관찰하는 성찰 행위에 충실하지 못해서 생겨났는데, 이러한 성찰의 결여는 우리 성찰의 토대이자 ‘문사철’ 구분없는 통합적 사유의 유전자를 간직해온 동아시아 사유의 전통이 단절된 데서 비롯한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인문정신을 제대로 회복한다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성찰의 인문학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처방이다. 이를 위해 경전에 대한 전통적 훈고학이나 서구 사조에 대한 무반성적 추종이라는 양극단을 모두 거부하고, 동아시아의 전통 사유에 현대의 서구 사조를 접목한 여러 독창적 아이디어들을 펼치며 그러한 방식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예컨대 《논어》를 통해서는 1, 3인칭이 주류를 이루어온 서양의 사유와 동아시아의 2인칭적 사유를 구별한 뒤 각각 동서양의 사상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거나(1장), 수리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법을 동원해 주희와 율곡을 둘러싼 기존의 해석들을 반박하며 이(理)와 기(氣)에 대한 새로운 논제를 이끌어내는가 하면(2장), 《장자》 속에서는 장자의 자연주의와 데리다의 해체주의의 만남을 통해 해체주의와 자연주의 개념이 대립이 아닌 조화를 이룬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5장). 또한 조선왕조 500년을 지배한 주자학에 반기를 든 정약용의 텍스트를 읽는 여러 방법론도 제시한다. 정약용은 유학 전통의 진정한 계승자이자 오늘날 동아시아 사유의 계승에서도 모범이 된다고 주장하고(7장), 특히 정약용의 사유에서 찾아낸 ‘성의(誠意)’는 내적 도덕과 외적 윤리를 모순 없이 통과하는 일관성의 행위 원칙이며, 이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전통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대학》을 둘러싼 주희와 정약용의 상반된 해석과 경합은 동아시아 경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8장). 크로스오버, 독주가 아닌 합창을 위하여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철학, 인문학, 과학의 크로스오버적 대화와 토론은 저자가 오랜 고민 끝에 다다르게 된 적절한 상동성(上同性)과 상사성(相似性)에 기반을 둔다. 이때 적절하다는 것은 완벽하게 같지도,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다르지도 않다는 뜻이다. 이로써 서양의 현전(現典)인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데리다, 들뢰즈의 사상과 동아시아의 고전(古典)인 유가, 불교, 도가는 서로 공감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통해서는 동과 서(부처와 헤세), 현실과 허구(실제 역사적 인물과 소설 속의 인물), 과거와 현재(부처의 설법과 헤세의 관점)가 서로 교차하면서 윤회와 자아, 탐구의 논리, 차이와 반복, 시간과 지속 등의 철학적 주제들이 어떻게 공유되고 생산적 담론을 형성하는지 살핀다(3장). 또한 수리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법을 동원해 원자론적 사유가 추구하는 단순성과 상호 독립성의 양립 불가능함을 증명함으로써 비트겐슈타인과 용수가 마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아울러 이들의 사유가 논리학의 삼대 원칙으로 여겨진 동일률, 배중률, 모순율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내는지 텍스트를 넘나들며 논증한다(4장). 도저히 한곳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네 사람, 들뢰즈, 보어, 노자, 장자의 만남도 이루어진다. 저자는 노자의 텍스트에서 찾은 ‘혼(混)’과 ‘충(蟲)’을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카오스(혼돈)에 견주는가 하면, 장자의 텍스트에서 찾은 ‘휴(虧)’를 양자역학 속 파동함수 붕괴에 견준다. 이를 통해 존재 사태의 은폐와 탈은폐 사건에 대한 형이상학을 구상하며, 삶의 매순간, 즉 기억과 생각과 깨달음과 행위와 사건의 매순간이 붕괴의 과정이며, 삶은 그 붕괴의 리듬으로 점철된 드라마라는 점을 깨닫는다(6장). |
|
이 놀라운 책에서 이승종 교수는 동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아주 인상 깊게 섭렵하면서 논리, 윤리, 인식론, 형이상학, 해체주의, 자연주의의 성격, 역할, 한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 나간다. 그는 번뜩이는 통찰력과 창의성으로 데리다, 장자, 비트겐슈타인, 율곡, 다산, 주희, 용수, 러셀, 들뢰즈와의 생산적 사유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 각자의 사유뿐 아니라 서로 간의 차이성과 유사성을 매우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 필립 아이반호 (홍콩성시대학교 동아시아 비교철학 및 종교 담당 석좌 교수)
|
|
이승종 교수는 오랫동안 철학적 사유를 잠식해온 뿌리 깊은 형이상학적 경향을 일깨워 해체하고 있다. 그의 명료하고, 때로는 분석적인 논증은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과학을 포함한 동서의 사유를 그중 어느 하나가 독주하지 않도록 합창에 이르게 하는 저자의 능력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 장샹롱 (중국중산대학교 주해캠퍼스 철학과 교수)
|
|
저자는 이 책에서 공간적으로는 동서를 횡단하고 시간적으로는 고금을 종단하는 크로스오버의 작업을 통하여,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사유의 모험을 펼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의 정수인 유가·불교·도가 사상이 신비의 베일을 벗어던지고 비트겐슈타인·하이데거·데리다·들뢰즈와 만나,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공감하면서 퓨전적 사유로 자신의 면모를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문화적 경계와 시대적 차이, 그리고 학제적 장벽을 뛰어넘는 대통합의 사유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자의 치열한 ‘성찰’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승환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