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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의 첫 저서. 2009년 봄 모든 걸 잃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녀가 우즈강에 가서 본 모든 풍경과 했던 생각을 기록했다. 꽃과 풀, 그리고 새까지 선명한 묘사부터 우즈강의 역사와 버지니아 울프의 뒷모습까지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풀어냈다. -에세이M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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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정리
제2장 근원을 찾아서 제3장 아래로 제4장 깨어나다 제5장 홍수 속으로 제6장 사라진 여인 제7장 비드의 참새 제8장 회생 참고 문헌 감사의 말 |
Olivia La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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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석이 금속에 끌리듯 우즈강에 끌렸다. 여름밤이나 겨울의 짧은 낮 시간에 그곳을 찾고 또 찾았다. 산책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몇 번의 계절을 보냈고, 그러는 사이 우즈강 나들이가 중요한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딱히 오래 있다 갈 마음 없이 서식스주의 한 귀퉁이로 한가로이 발길을 옮기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드리워진 미끼에 홀려 덥석 걸려든 것처럼 강으로 이끌렸다. 삶이 휘청거릴 때면 저절로. --- p.21
강은 묘한 마력으로 우리를 잡아당긴다. 숨겨진 어딘가에서 솟아 나와 지금은 있지만 내일은 없을지도 모를 수로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호수나 바다와는 달리 강은 종착지가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확실하다는 점에서 마음을 안심시켜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큰 위안이 된다. --- p.24 『가톨릭 백과사전Catholic Encyclopaedia』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교단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지옥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이 문제에서 사르트르는 “지옥은 타인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3세기 전에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지옥은 텅 비어 있다. 모든 악마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타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 p.127~128 우리 인간은 색 수용체가 세 가지이지만 육식조는 다섯 가지이다. 예를 들어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어서 쥐의 오줌에서 발광되는 자외선 빛을 보고 쥐를 추적해낸다. 매는 순수한 노란색도 알아볼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민들레의 색이 스펙트럼 색 중의 노란색인지 빨간색과 녹색이 합쳐진 노란색인지를 구분해내지 못한다. 내가 제대로 못 보고 놓치는 많은 것을 생각하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어질 정도로 약이 올랐다. 어찌 보면 그것은 괜한 과욕일지 모른다. 이 시력으로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인데 두 가지 수용체가 더 있었더라면 아주 뻗어버리지 않을까? --- p.140~141 주위를 빙 둘러보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심지어 양 한 마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청바지를 벗고 검은색 낡은 스피도 수영복을 입었다. 물에 법랑이 입혀진 듯 금빛과 푸른빛이 은은히 돌았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 강둑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바람에 허벅지에 진흙이 쭉 묻었고 본의 아니게 작은 물고기들을 겁먹게 만들기도 했다. 물이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비틀거리며 두 발을 떼었다가 진흙에 푹 빠져 가슴을 망치로 때리는 듯한 한기 속에서 진흙을 털어내고 둑 쪽에서 빠져나왔다. 손을 두어 번 휘저으며 헤엄치자 어느새 추위가 기분 좋은 훈훈함으로 바뀌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신이 나서 들뜬 기분이었다. --- p.157 풍경 곳곳에 과거가 내려앉아 있다. 목소리를 잃은 시신이 어떤 식으로든 자기 나름의 언어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내보내거나 피처럼 흘리고 있었다. 지난날의 공포가 비처럼 토양으로 스며들어 홍수가 나기 전의 지하수처럼 보이지 않는 틈새 공간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완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과거는 현재가 마치 깊은 강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흘러갈 때만 돌아온다. 바로 그런 순간에야 수면 아래의 심연이 들여다보인다.” 나는 그 강물 역시 그 깊은 곳에 과거를 붙잡아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187 갑자기 지난 몇 달이 버겁게 느껴져 눈물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예전엔 내가 도망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해봤지만 지금은 겁을 먹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시 숲으로, 그 마법 세계 같은 울창한 안드레데슬레지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고, 내 이름도 모르는 그곳으로. 왜 과거는 늘 이런 식일까. 왜 기억은 흐려지지 않고 자꾸만 맴도는 걸까. 왜 가끔씩 이렇게 무턱대고 떠올라서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내 육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 공간을 그저 신기루처럼 느껴지게 하는 걸까. 과거는 붙잡을 수가 없다. 되돌아갈 수도,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을 수도, 그렇다고 무심하게 툭툭 떨쳐버릴 수도 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것인지. --- p.195~196 강의 변형을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나와 같은 종의 비뚤어진 탐욕이 실감나서였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세상을 멋대로 바꾸는 그 탐욕이 거북했다. 우리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홍수와 가뭄의 대참사로 돌아올 만한 행동이다. --- p.250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이 공유 영토의 임차인들이다. 나는 우리가 그 영토를, 물에 덮인 이 푸른 소행성을 대대로 물려주기를 바란다. 바닷물이 깡그리 말라 어쩌면 더 이상 푸른빛을 띠지 않을 때까지, 영원히. --- p.258 버지니아의 사전에서 물은 피상적 자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상징했다. 볼링을 즐기는 자아나 누군가 모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흠집 잡으면 신경 쓰이는 그런 자아에서 벗어나 더 깊고 말로 형언키 어려운 영역으로 침잠하는 것이었다. --- p.270 미래는 본래 불확실하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해석하다 보면 미끄러진다. 삶이 실제로 영위되는 순간,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현재의 증표가 얼핏 보이는 이 순간과 유리되고 만다. --- p.278~279 물은 말한다. 나를 따라오라고. 나는 그것이 물이 전하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물은 자신의 곁에 머물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기대면 어르고 달래주겠다고. 짓이겨놓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안심하라고. --- p.248 인간은 아주 외로운 존재인 것 같지만 같은 종족인 타인을 만지거나 바라볼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극장이 있다. 상영 장면은 자신밖에는 볼 수 없으며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미디어도 그 생생함과 속도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그런 극장이 있다. --- p.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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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주목받는 작가, 올리비아 랭의
놀라운 데뷔작이 드디어 국내 출간되다! 『작가와 술』, 『외로운 도시』에서 예술과 세계에 대한 탐구와 독특하고 내밀한 사유를 버무린 에세이로 탄탄한 팬층을 형성한 영국의 주목받는 작가 겸 문예비평가 올리비아 랭! 영국왕립문화회의 온다체 상, 올해의 돌먼 여행서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그녀의 첫 저서 『To the River』(2011)가『강으로』라는 제목으로 7년 만에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여름, 강가를 걷다 “나는 자석이 금속에 끌리듯 우즈강에 끌렸다. 삶이 휘청거릴 때면 저절로.“ 2009년 봄, 올리비아 랭은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오랜 연인과도 이별하게 된다. 난데없이 닥쳐온 절망의 시기를 겪으며 저자는 혼돈에 빠진 자신의 삶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그 최적의 여정으로 망설임 없이 우즈강을 택한다. 올리비아 랭은 유난히 강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기분에 사로잡힐 때마다 - 그게 어떤 감정이든 - 강을 찾곤 했다. 고여 있는 호수나 광막한 바다와는 달리 강은 종착지를 향해 스스로 낸 물길을 따라 흐른다. 방향성이 있으며 반드시 어딘가에 다다른다는 점에서 저자는 방황할 때마다 강으로부터 큰 위안을 얻는다. 그녀뿐 아니라 때때로 삶이 막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위로를 선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즈강 지역은 버지니아 울프가 레너드 울프와 신혼 생활을 했고 수많은 작품을 집필했으며 결국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곳으로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저자는 봄 내내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맹렬히 탐독하고 여름이 되자 배낭을 꾸려 길을 떠난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우즈강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가 어떻게 우즈강의 풍경에 매료되어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과 인류 역사에서 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촘촘히 짚어보기로 한다. 성실하게 ‘우즈 웨이’를 따르고자, 올리비아 랭은 우즈강의 시원(始原)부터 찾아 나선다.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하는 일주일간의 도보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종의 탐사나 답사를 구상했다. 말하자면 21세기 초입 어느 한여름의 일주일 동안 잉글랜드 한구석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포착해 글로 옮겨보려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사람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구실을 댔다. 사실, 진짜 의도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일상 세계의 표면 아래에 이르고 싶었다. 잠이 든 사람이 일상의 공기를 떨쳐내고 꿈에 다다르는 것처럼 그렇게. (본문 23쪽) 인간과 자연, 문학과 역사가 뒤엉킨 아름다운 타래 “풍경 곳곳에 과거가 내려앉아 있다.” 『강으로』에서 올리비아 랭의 글은 마치 우즈강처럼 신비롭고도 묘한 흐름을 따른다. 저자는 박식한 동식물 애호가로서 여행의 동반자인 꽃과 풀과 새를 호명하며 선명도를 한껏 높인 묘사로 풍경을 낱낱이 그려내는가 하면, 수백 년의 시간을 겹겹이 덧입은 강가에 먼 옛날 그곳에서 병사들이 죽어갔던 전투 현장을 겹쳐보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한밤의 이야기처럼 오랜 마을 전설을 풀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한때는 삶의 기쁨을 분명히 알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뒷모습을 사려 깊게 바라본다. 결과론에 입각하여 버지니아 울프를 그저 ‘침울하고 핏기 없는 신경쇠약증 환자’, 혹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희생자’ 이미지에 가두는 것을 올리비아 랭은 단호히 거부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수많은 글에서 빛나는 생기와 재치와 통찰을 채취해낸다. ‘물’ 그리고 ‘물의 상징’에 심취했다는 점에서 올리비아 랭은 버지니아 울프와 더욱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풍경과 역사, 문학과 삶의 이야기가 불규칙하게 겹치고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버지니아 울프를 위시하여 문학과 신화가 흐르는 우즈강은 자연과 인간의 힘겨루기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범람 문제가 심각했기에 수로 정비, 습지대 개간 등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차차 주택단지, 상업 지대까지 들어서면서 인간에 의해 환경이 변형되어왔다. 자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현장을 목도하며 저자는 인간의 탐욕에 치를 떨지만, 뒤이어 회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마주하며 인류의 미래를 긍정해보기도 한다. 성찰하되 비관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에서 ‘희망’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정이 끝날 무렵, 올리비아 랭은 ‘우즈 웨이’를 따라 걸었던 일주일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안정을 회복했음을 느끼고 미소 짓는다. 수개월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던 공포와 위기감은 어느새 강물에 녹아 흘러가 버렸다. 여행은 끝났다. 이제 도망갈 곳은 없으며, 도망갈 필요도 없다. 발 딛고 선 이 땅에서 우리는 다시 내일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물가에 이끌리듯, 버지니아 울프를 탐닉하듯, 독자는 이 책에 매혹될 것이다 인생사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금불초가 고개를 까딱이는 곳에서 이 짧은 조각 같은 삶을 지나며 무와 무 사이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가 언젠가 말했듯 “심연 위에 깔린 한 조각 포장도로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버지니아의 말이 맞다면 우리의 유일한 터전은 여기뿐이다. 그렇다, 바로 이 망가진 지구 말이다. (본문 364~3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