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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인의 말
제1부 13 환하면 끝입니다 14 옛길 15 경천리 가는 길 16 남평 18 양지편의 겨울 20 달개비꽃 21 달맞이꽃 22 길을 찾아서 23 선암사 부도밭 24 아짐이 변했다 26 미황사 동백꽃 28 억새꽃 29 타향살이 30 하류로 가고 싶다 제2부 35 등꽃 36 물매화 38 마른 새를 줍다 39 미루나무 40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 42 개망초 44 잠들지 못한 밤 46 코끝이 가렵다 48 봄날이 간다 50 오월 자운영 꽃밭 51 흉터 52 금남로를 걸었다 54 빈 들 56 박새를 만났다 제3부 61 쓸쓸해진다는 것은 62 빈자리 63 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64 설사 66 햇빛 농사 67 울타리 곁에서 68 산정山頂에서 70 봄날은 길다 72 월식月蝕 74 풀 뽑기 76 오동꽃이 피었다 77 11월, 비 78 야간 산행 79 가을 강 제4부 83 산수유꽃 지나간 자리 84 강 건너에 마을이 있다 1 86 강 건너에 마을이 있다 2 87 강 건너에 마을이 있다 3 88 은행잎에게 보내는 편지 89 당산나무 두 그루 90 파도리 소쩍새 92 첫사랑 93 족제비를 만나다 94 저수지에서 95 금잔화를 심다 96 우두 가는 길 97 수월정에서 98 봄날 서시 99 발문 40년 세월이 빚은 한 '머저리'의 시집 _ 곽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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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과 생성을 응시하는 강물 같은 시
시력 30여 년에 이른 정양주 시인의 첫 시집이다. 소멸과 생성의 시라고 해야 할까. 소멸이든 생성이든 시들이 한결같이 은근하다. 젖어 있으면서 맑은 가을하늘 같고, 말라 부서질 것 같은데 물속처럼 깊다. 거기 슬픔과 설렘과 바람들이 어려 자아내는 서정의 무늬들이 오래도록 시린 여운을 안겨준다.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다. 폐교 운동장의 개망초, 죽은 지 한참인 마른 새, 기억마저 사라져가는 고향집. 특이한 것은 소멸에 기울 때나 생성에 기울 때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어조는 애잔하고 슬프다는 것. 이것은 시인의 천성에서 왔을 것이다. 하늘이 두 뼘쯤 되는 산골짜기 집 마당에 백 촉짜리 백열등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저 집에서 다시 불빛 새어 나올 일 없습니다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날 없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 없습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 불빛입니다 - 「환하면 끝입니다」 소멸의 극으로 치닫는 변두리의 마지막 삶의 풍경. 극과 극의 노래다.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 산골짜기의 장례 풍경이지만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우리들 삶의 연원인 그곳의, “환하면 끝”인 절체절명의 운명이 장엄하면서도 슬픈 내일의 정전을 응시하게 한다. 그 운명들은 현실화되어 “양은 주전자 혼자 마루 햇살을 차지하고” “거미가 떠난 거미줄은 묵은 솜처럼 처져 있”게 되지만, 시인은 그 소멸의 끝에서 “열 살 때 엄니 따라 시래기 주우러 온” 것과 “배춧잎 달랑 한 장 토끼 주고/우리 식구가 겨우내 다 먹었던” 기억들을 소환하면서, 지금도 “누나들과 길게 이마 맞대고 싶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고향이나 유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의 생성을 기원하는 시적 확장을 꾀하게 한다. “환하면 끝”인 세계에 대한 탐색은 생성의 세계에 대한 탐색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맨 꼭대기 숨어 있던 까치집은 그대로 두세요. 나란히 뻗은 가지들, 그 자리에 또 새순을 밀어 올리는 겨울 내내 아프게 서로를 후려치면서 그대를 잊지 않으려 애쓸 테니. 살랑거리고 간지럼 태우던 그대의 기억으로 오래 아파할 테니. 안녕, 안녕, 안녕 하나씩 인사할 틈도 없이, 우르르 보내고 우두커니 흰 눈을 맞을 테니. - 「은행잎에게 보내는 편지」 부분 화려한 수사나 언어의 분절 없이 대상에 대한 명징한 묘사와 진술이 주는 시적 서정은 요즘 시집에서 좀처럼 얻기 힘든 즐거움을 준다. 어느 날 시인이 별을 보러 강에 가서 강물 속에 뜬 별을 볼 때, 별이 강물 속에서 튀어 오르고, 튀어 오른 별들이 모래알이 되고, 밤 깊어 서로 속삭이고, 서로 어깨를 토닥여 주고, 끼리끼리 모여 밤을 건너는 것처럼, “어깨 부축이며 함께 살아온 사람들 이름을 세다/지난밤 스무 살까지 다녀온” 시인의 삶이 강물 위에 뜬 별처럼 아름다운 시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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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푸른 나뭇잎 속으로 스며드는 꿈을 꾼다. 문학부 벤치에서 함께 등꽃을 본 한 동무로서 이 스며듬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30년 세월 동안 교단에 선 그가 나뭇잎이 되어 세상의 모든 흔들리는 것들에게 반짝임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나뭇가지들 속에서 흔들리다 시를 생각하고 눈물을 쏟으며 다시 시를 쓰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눈물 흘리며 쓴 시를 가장 좋은 시라 생각했다. 40년 만에 첫 시집을 내는 이 ‘머저리 후배’는 눈물로 처음 쓴 시를 다시 고쳐 쓰고 싶어 한다. 진정한 시인의 자세 아니겠는가. 눈물 속에서 쓴 사랑과 진실의 시를 다시 고쳐 쓸 때 세계에 시의 진보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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