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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김학동
새문사 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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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김영랑 시집

1부 | 영랑시집(1930~1935)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어덕에 바로누어/?
뉘 눈결에 쏘이엿소/ 오―매 단풍 들것네 |?한박눈/ 눈물에 실려가면/
쓸쓸한 뫼아페 |?꿈밭에 봄마음/ 四行小曲/ 除夜/ 내 옛날 온 꿈이/
그대는 호령도 하실만하다/ 아퍼누어 혼자 비노라/ 가늘한 내음/
내 마음을 아실이/ 시내ㅅ물 소리/ 佛地菴抒情/ 모란이 피기까지는/
물보면 흐르고/ 사개틀닌 古風의 퇴마루에/ 降仙臺 돌바늘 끝에/
마당앞 맑은 새암을/ 황홀한 달빛/ 杜鵑/ 淸明

2부 | 영랑시집(1938~1940)
거문고 |?가야금/ 연·1/ 달마지/ 五月/ 毒을 차고/ 墓碑銘/ 한줌 흙/
江물/ 偶感/ 호젓한 노래/ 春香/ 집

3부 | 영랑시집(1946~1950)
북/ 바다로 가자/ 놓인 마음/ 새벽의 處刑場/ 絶望/ 겨레의 새해/ 연·2/
忘却/ 感激 八·一五/ 발짓/ 行軍/ 五月 아츰/ 수풀 아래 작은 샘/ 언―땅 한길/
池畔追憶/ 千里를 올라온다/ 어느날 어느때고/ 五月恨

4부 | 역시譯詩
하늘의 옷감?_W.B. 예이츠 원작/ 이니스프리 _W.B. 예이츠 원작/
屠殺者의 軍隊를 떠나라! _에리히 바이너트 원작/
히틀러에 對하는 獨逸 兵士 _에리히 바이너트 원작/
兵士들이여 이제는 아무 希望도 없다 _에리히 바이너트 원작

김영랑 산문집

1부 | 수필류
감나무에 단풍드는 전남의 9월
두견과 종다리
춘설春雪――남방춘신·1
춘수春水――남방춘신·2
춘심春心――남방춘신·3
수양垂楊――남방춘신·4
2부| 평문 및 기타
박용철과 나·1/ 박용철과 나·2/ 인간 박용철/ 문학이 부업이라던 박용철 형/ 출판문화 육성의 구상/ 열망의 독립과 냉철한 현실/ 신인에 대하여/ 제복 없는 대학생/ 피서지 순례/ 지용芝溶형

김영랑 평전

정감적 구경과 자아의 사회적 확대?영랑의 시작세계
1. 서론
2. 비애의 율조와 ‘촉기燭氣’의 시학
3. 민족관념과 ‘죽음’의 시학
4. 의식공간의 확대와 ‘참여’의 시학
5. 결론

김영랑의 생애와 문학?전기적 국면
1. 다도해 연안의 풍광과 방황의 유소년기
2. 휘문의숙 시절과 항일투쟁의 이력
3. 청산학원 시절과 영국의 낭만파시인들
4. 두 무명의 시인과 ‘시문학동인’의 결성
5. 망국민의 비애와 극한적 상황의식
6. 8·15해방의 감격과 6·25전란의 참화

김영랑의 시와 산문?서지적 접근
1. 영랑시집의 편성과정
2. 《시문학》과 영랑의 시적 출발
3. 후기시작과 산문

섬들이 잠방거리는 다도해多島海 연안의 풍광
1. 남해 연안의 예향藝鄕 강진읍을 찾아서……
2. 우두봉牛頭峰 기슭의 높은 탑골 마을
3. 사개틀린 고가에서 풍겨나는 시향詩香
4. 현구玄鳩는 갔어도 강물은 아직도 퍼렇습니다
5. 천일각天一閣에서 바라다본 크고 작은 섬들
6. 왜 영랑은 낯선 땅에 묻혀 있을까?

부록 | 김영랑의 생애연보
김영랑의 작품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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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37쪽 | 153*224*30mm
ISBN13
9788974113193

출판사 리뷰

영랑의 시작세계

‘모란’의 시인 영랑永郞은 섬들이 잠방거리는 다도해多島海 연안의 따스한 소읍지 강진康津 땅에서 태어났다. 그는 만년의 몇 해를 제외하고는 줄곧 고향에 살면서 고향의 인정과 풍속을 그 맑고 섬세한 가락으로 탄주彈奏하여 우리의 심금心琴을 울려주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려야만 했던 영랑의 마음속에 흥건히 젖어 흐르는 ‘끝없는 강물’?, 그것은 영원한 생명生命의 파동波動으로 우리들의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대대로 살아온 커다란 고가古家의 뜰에다 정성껏 모란을 가꾸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던 영랑의 마음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어디를 향해 보아도 소박한 농촌의 인정풍속이 그를 이런 순정의 시인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안으로 타오르는 정염情炎, 그것이 응결되어 시로 꽃피어난 것이다.

영랑은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등과 시문학동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면서 시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세속의 명리名利를 좇기보다는 은둔하여 대숲으로 둘러싸이고 바다로 향한 향제鄕第의 뜰에 곱게 피는 모란을 어루만지면서 시심詩心을 가꾸는 것이 당시의 그에게는 훨씬 떳떳한 길이었는지 모른다.

모란이 피기까지 줄기차게 기다리던 ‘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내야만 했던 영랑은 다분히 혁명가적 기질의 일면도 있었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맞이한 기미독립운동의 대열에 적극 참여했다가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고, 일본 청산학원에 유학할 당시 혁명가 박열朴烈과 함께 같은 하숙에 기거하면서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하여 망국민亡國民의 비애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일제 말기의 가혹한 억압 속에서도 끝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거부하고 신사참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강직한 심지는 그 시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었던 처신만은 아닐 것이다.

영랑은 이런 투사적 기질을 가졌음에도 초기에는 사회나 현실을 직접 표방하지는 않았다. 그의 맑고 아름다운 가락으로 나라를 빼앗긴 망국한과 비애의식을 표출하고 있었다. 영랑은 정서를 한껏 순화하여 맑고 고요한 호심湖心과도 같은 시경詩境, 곧 서정주의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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