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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집시의 편지
실패한 모험가의 기록 1부 essays 항해 일기 머나먼 시작 낯선 도착 첫 아침 식사 기억나지 않는 대화 밤의 디스코테카 출항, 돛을 올려라 집을 나서게 하는 것 1 집을 나서게 하는 것 2 집을 나서게 하는 것 3 1 첫 불침번 거대한 움직임 본능에 의지하기 바람과 바다 첫 번째 위기 태평양의 점이 되다 을지로입구의 물고기 뱃일 태평양인의 취미 숫자와 기록에 대한 강박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 생체 실험 바다 위의 선생님 바다라는 선생님 가장 무서운 짐승 안녕, 춘자 오렌지 주스 무풍 항해 침전 모든 것을 포기하면 생기는 일 드디어 반가운 마지막 최후의 노력 나를 지켜 준 보름달 답은 질문에 존재한다 모험의 첫 기억을 찾아서 마치며 2부 photographs 그 후 1 2 3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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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한 상태였기 때문에 돛은 모두 감겨 있었지만, 마스트(돛대)는 달을 찌를 기세로 어두운 저녁 하늘을 향해 높게 서 있었다. 요트는 각양각색이었다. 캡틴킴이 앞장서서 우리의 요트가 서 있는 D통로로 들어섰다. (…) 달빛 아래 조용한 밤이었고, 마리나의 잔잔한 물결이 배를 조용히 쓸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끝으로 다가가니 거대한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타노아TANOA 라고 적인 배가 입구를 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5개월간 지낼 내 집이었다. --- p.32
밤 항해에는 가능한 한 불빛을 없애야 했다. 헤드 랜턴 역시 아주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물체들을 잘 볼 수 있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위험한 상황을 알아챌 수 있다. 또 배터리를 아껴야 하기도 한다. 항해란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니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아끼고 쪼개고 나누어야 한다. 절약 정신이 절로 생긴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금욕하는 것이다. 불빛을 아껴야 하는 태평양의 밤은 너무 어두워서 눈조차 빛을 내는 것만 같았다. 말소리나 움직임마저도 조심스러워진다. 밤의 바다를 깨우지 않으려고 말이다. --- p.76 비를 맞는 게 이렇게 좋다니. 태평양의 비는 미끈미끈하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바닷바람도 냄새가 없다. 비린내가 진동할 것 같았는데 태평양은 아무런 향이 없다. 바람이 불지 않아 배를 세우고 수영을 했다. 너무 시원했다. 겉에서는 어두운 바다가 안에서는 정말 파랬다. 생각보다 바닷물이 별로 짜지도 않았다. 시간이 참 느리게 간다. 바다 수영도 하고 샤워도 두 번이나 했는데, 오전 11시도 안 되어 깜짝 놀랐다. 지금, 저녁을 다 먹었는데 저녁 7시도 안 됐다. 금세 어두워져 쓰고 있던 것들이 안 보이기 시작한다. --- p.90 육지다! 육지가 보인다. 섬에 다가가면서 왠지 모르게 새로운 대지를 발견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어두워서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섬은 마치 수평선 바로 위에 눌러앉은 무거운 먹구름 같이 보였다. 캡틴킴은 육지에 다가가니 말이 없고 날카로워졌다. 누쿠히바는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보는 육지라서 설레는 게 아니라 그저 누쿠히바 자체가 아름다웠다. 거대한 산들이 수평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수평선보다 높은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섬에는 초록색이 많았고, 그 위에 구름이 맴돌고 있었다. 육지다. 닻을 내리자! --- p.131 어렸을 때 배운 프랑스어라 유창하진 않았지만, 사진을 찍으러 왔고, 배의 막내라서 아직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까의 비웃음 섞인 표정은 사라졌고 대신 인자한 미소 사이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배를 타면 어떤 것도 쓸모없지 않아. 러블리 SOO, 당신은 소중해〉라고 말했다. 과연 내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의 가치는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 --- p.136 무언가를 돌보고 소중히 여기며 매일 아침 내 마음을 채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그렇게 무참히 날아갔다. 춘자가 죽고 나자 문득 이 생활을 하면서 나다운 행위를 한 가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뜬금 없는 빵 굽기도, 평소에 무서워하던 닭에게 관심을 준 것도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 낯선 형태를 통해 서라도 내게 익숙한 감정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거였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 p.167 「백남준이 뭐라 했는지 아니? Moon Is the Oldest TV. 그 말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수민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을 때 먹먹했던 귀가 육지에서 다시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태평양의 보름달이었다. 드디어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을 나의 표현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랑 같이 항해를 하고 있었다. 우린 오래도록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PARK과는 달과 영화와 예술과 광고와 시대와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것은 지치고 메마른 내 영혼에 오렌지 주스처럼 상큼함을 선사했다. --- p.171 엄마에게. 여자가 그리워, 엄마. 작은 것들에 큰 의미를 둘 줄 아는 사소함이 그립고, 힘들어하면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그리워. 칭찬이나 위로를 해준다고 해서 나태해지는 건 아닌데 말이야. 왜 서로에게 작은 격려를 해주지 않는 걸까? (…) 내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언제였는지. 거울을 볼 일이 없으니 내 얼굴을 잊게 되는 것만 같아. 새로운 생활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씩 잊어 가고 있어. 지금의 내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이러다가 유령이 돼서 사라지면 어떡하지? 내 안의 중요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래도 여전히 나일 수 있겠지? 내가 돌아갔을 때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떡해? 보고 싶어, 엄마. --- p.177 항해를 통해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내 마음속에 간직할 귀중한 선물을 발견했다. 그 선물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태평양 항해 후 내 삶을 돌이켜 보니 이미 몇 년 전 코르쇠르에서 나는 바다를 품고 있었고, 나의 삶은 이미 그것을 향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삶이 피로해질 때면 Mr. C의 작은 바다를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보이는 게 바다뿐인 태평양에서도 그 정원 속 작은 바다를 그리워했다. 현재도, 과거에도, 무의식중에도 나는 마음속 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나는 무식하게도 태평양 한가운데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 p.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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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책을 뒤집으면 또 다른 항해가 펼쳐진다 『무심한 바다가 좋아서』는 두 책이 하나로 맞물려 합쳐진 형태를 취한다. 5개월간의 여행을 따라가는 에세이가 1부이고, 에세이가 끝나면 책을 뒤집어 뒤표지라고 생각했던 앞표지에서부터 여행 중에 찍었던 사진 120여 장과 여행 후 이야기가 2부로 펼쳐진다. 그는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 땅을 딛자마자 온몸이 휘청거리는 육지 멀미를 경험했는데, 그것이 태평양 항해의 시간을 관통하는 중요한 감각이라고 느꼈고, 그것을 책이라는 매체에도 담고자 고민한 결과이다. 또한 사진을 2부로 따로 편집한 것도 항해를 하면서 찍은 사진을 육지로 돌아와서 확인한 그의 동선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함이다. 서울로 돌아와 홍대의 한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면서, 그는 자신의 시선이 담긴 태평양의 모습을 확인했고 그제야 비로소 정말 자신만의 진짜 항해를 했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이 책을 다 읽으면 독자들은 임수민의 고독한 모험에 대한 내면 고백에 이어 태평양에서 그가 시선을 둔 풍경들을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들 임수민은 평소에 도시의 외진 곳과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 될 사람들을 도시 속의 활력소로 재탄생시키는 그의 따뜻한 시선과 인간애는 배 위에서도 흡족하게 발휘되었다. 2부에서 펼쳐지는 그의 흑백 사진들은 역동적이고 한편으로 한없이 지루한 선상 생활 속 세일러들의 모습뿐 아니라, 10개의 섬을 도착할 때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섬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때로는 순수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담겨 있다. 사진에 대한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설명도 그 매력을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