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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언덕은 하늘이 가깝습니다.
_포구나무 12 · 고요 15 · 외로움 18 · 평화 21 · 시골 23 · 보洑 25 · 성전 28 창조의 순간은 안식의 순간처럼 고요합니다. _작은 꽃 32 · 당신 34 · 창조 36 · 안식 40 · 음성 43 · 숨 46 복음에는 인생을 기쁘게 사는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_기도 50 · 복음 53 · 가난한 사람 56 · 마음 58 · 치유 61 · 광야 64 · 신비 67 명례 언덕에 종일 침묵이 흐릅니다. _침묵 70 · 말씀 73 · 현대인 75 · 말 77 · 새벽 80 · 아침 83 · 하루 85 · 밤 87 “너는 빛이야. 너는 소금이야. 너는 빵이야.” _달과 별 90 · 쉼 92 · 무대 94 · 속삭임 97 · 소금 100 · 그리움 103 · 미사 105 · 지선악수 108 · 종소리 112 · 모순 114 저는 지금 어디쯤 가는 것일까요? _십자가 118 · 순례자 121 · 도장 125 · 강 128 · 등 131 · 나이 133 · 꿈 136 구유에 이르는 길이 어찌 그리 멉니까? _자비 140 · 애태우다 144 · 은총 146 · 현재 149 · 구유 151 · 비움 154 사람들의 얼굴이 태양빛을 받으며 점차 신비롭게 빛납니다. _청원 158 · 바르티매오 161 · 자선 164 · 나눔 166 · 얼굴 169 · 변화 172 · 마름모꼴 174 · 화 178 “나는 구유에서 태어났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_사과 182 · 용서 184 · 죄인 187 · 성공 189 · 초대 192 · 길 195 세상 모든 피조물에서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_추억 198 · 은인 201 · 겨자씨 203 · 과거 207 · 기쁨 210 · 탄생 213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합니다. _신호 216 · 이름 219 · 잠 222 · 라자로 224 · 야훼 226 · 질문 228 · 곡哭 230 · 죽음 233 · 사라짐 235 사람은 누구나 의식 없이 태어난 그 고요 속으로 돌아갑니다. _아버지 238 · 어머니 241 · 자유 244 · 천국 246 · 마지막 말 250 · 찬미 252 · 희생 255 · 빵 258 · 그리스도인 260 인생은 과정입니다. _글을 마치며 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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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말이 사라진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에 침묵이 깃들어 있습니다. 말은 침묵을 위한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말이 그 깊이를 드러냅니다. 말은 침묵 가운데 생기를 얻고 창조적이 됩니다. 말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생기 있게 살기 위해서 침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말이 안식할 때 창조의 말이 들려옵니다. 세상이 창조되고 제가 창조됩니다. 현대인은 침묵을 잃었습니다. 침묵을 잃으면서 언어를 잃고, 언어를 잃으면서 들음을 잃고, 들음을 잃으면서 배려를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었습니다. 다시 침묵할 때, 자기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언어를 다시 들을 때, 술과 노래로 돋워진 흥겨움과는 비교되지 않는 즐거움을 맛볼 것입니다. 고요 속에서 욕심 없는 세상이 잔잔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 p.75-76 이 신비로운 시간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빛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죄송한 일이고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아직 어둠이 깔린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깨어 기도하는 이 시간은 창조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입니다. 가까이 온 하느님의 나라를 몸에 익히는 시간입니다. 뿌리지도 거두지도 모아들이지도 않는 하늘의 새들을 오늘 먹이시고, 애쓰지도 길쌈하지도 않는 나리꽃들을 오늘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낮 동안 만나게 될 가련한 인생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날마다 새벽이 온다면 날마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 속에 소리 없이 스며듭니다. 스며듦의 고요를 느끼는 곳에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을 빛으로 맞는 명례 언덕의 새벽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분은 빛을 광야에서, 산 위에서, 언덕에서 새벽과 저녁에 만나셨습니다. --- p.81-82 아, 저는 자다 말고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요? 무엇을 보려고 언덕에 나와 있는 걸까요? 무엇 때문에 당신을 보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애를 쓰고 있는 걸까요? “주님이 지나가신다.” 하고 외친 이는 누구입니까? 당신께서 저를 기억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당신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굶주린 이가 지나갑니다. 목마른 이가 지나갑니다. 헐벗은 이, 병든 이가 지나갑니다. 옥에 갇힌 이와 나그네도 지나갑니다. 강도 만난 이도, 창녀도, 이방인도 지나갑니다. 과부와 고아도 지나갑니다. 저는 당신을 찾는 일에만 급급하여 그들을 돌보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고통을 짊어진 채 제 곁을 지나갑니다. 저는 계속 당신을 찾아 헤맵니다. 당신께서 저 멀리 바람처럼 사라지며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마태 25,12참조). --- p.101 “너는 빛이야. 너는 소금이야. 너는 빵이야.”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저에게 당신이 또 말씀하십니다. “너는 본래 세상을 밝히기 위해 네 존재를 태우고 사라지는 심지 같은 존재야.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녹이며 사라지는 고결한 심성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야. 너는 본래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씹히고 소화되어 사라지는 생명의 씨앗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야.” --- p.106-107 밥 먹기 전에 습관적으로 몸에 십자가를 긋고, 십자가가 새겨진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옷이 사울의 군복처럼 무거워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가볍게 만들어 목에 매달고 옷에는 예쁘게 수놓아 몸에 걸쳤습니다. 당신은 저의 옷과 목에 달리어 불편하셨겠지만 어리석은 저는 목에 걸린 빛나는 십자가와 옷에 아름답게 수놓인 십자가를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 옷이 더러워질까 진흙탕길을 피하고 비 오는 날에는 옷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어느새 당신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이 되었고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당신을 입고 당신을 목에 걸고도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가 가벼워지는 만큼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왜 몸에 십자가를 그으며 밥을 먹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 p.110-111 오늘도 저는 저로서 살지 못했습니다. 버리며 살게 하여 주소서. 제가 지금 살아 숨 쉬는 것은 받을 것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하소서. 의식이 없어지기 전에 세상에서 받은 것 다 내려놓게 하소서. 빈손으로 당신 품속으로 사라지게 하여 주소서. 이 세상에서 나누지 못하던 사람이 저 세상 가면 나눌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이 저 세상 가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미워하던 사람이 저 세상에 가면 미움을 버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욕심 가득하던 사람이 저 세상에 가면 욕심을 비울 수 있을까요. 사랑할 때 이 세상은 제게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고, 내려놓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미움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아, 저는 이미 천국에 살고 있습니다. --- p.168 용서하고 싶다고 용서가 되고 화해하고 싶다고 화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용서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 달라고 당신께 기도하는 제 마음에는 제가 용서하지 못한 상대가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용서를 청하는 제게 당신은 조용히 속삭이십니다. “얘야, 너는 본래 용서할 능력이 없는 자야.” 저는 깜짝 놀라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워하며 살아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유에 누운 아기 얼굴로 저에게 방긋 웃음을 보냅니다. 저는 아기를 들여다봅니다. 무릎을 꿇고 아기를 끌어안습니다. 세상이 사랑으로 변합니다. 아기가 저에게 용서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 pp.185-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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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처럼 녹아서 사랑이 되고 싶은 맑은 영혼의 기도
낙동강 변 명례 성지에서 수년 간 성지를 일구며, 수행하듯 기도와 묵상으로 영혼을 가꾸는 이제민 신부의 명상 에세이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가 출간되었다. 누룩 장수이며 소금 장수였던 순교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에서 그의 삶을 묵상하면서, 소금처럼 세상을 위해 자신을 녹이고 사그라지게 하고 싶은 저자의 강렬한 소망과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과 사랑이 기도가 되어 진하게 풍겨 나오는 책이다. 자연과 인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만나고 싶어 하면서, 삶의 순간 순간을 되새겨보고 성찰하며 부끄러워하는 저자의 간절함이 모든 페이지에서 먹먹하리만치 전달되어 온다. ‘언제, 어떻게 당신을 만날 수 있는지’를 수도 없이 물으며 ‘고요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그의 기도는 곧 마음 안에 갇혀서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우리들의 기도이다. 사람들이 고요에서 멀어지는 사이 고요도 사람에게서 멀어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고요, 침묵, 밤, 달과 별, 비움, 광야, 관조 등은 가까운 언어가 아니다. 하늘, 숨, 바람, 빛, 언덕, 쉼, 안식 등도 우리에게는 이미 영혼의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이 단어들의 영롱한 의미를 되찾아 내어 다시 본래의 맑은 의미로 우리에게 돌려주며 그 의미에 잠기게 한다. 창조의 순간, 고요와 침묵과 안식을 이 책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는 계속 노래한다. 침묵과 고요를 잃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고, 이웃을 잃는 것이며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을 깨뜨리는 언어는 혼돈입니다. 언어의 고향은 안식입니다.” “당신의 창조를 살기 위하여 저는 당신의 침묵과 안식을 배워야 합니다.”(본문 중에서) 언제 저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는 매일의 삶을 통찰하며 바치는 섬세한 기도이며 고백이다. 어제 미처 보지 못한 노란 꽃에서 자신의 무심함을, 그 무심함에도 상관없이 아름다운 피조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하루를 그분께 털어 내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얼굴을 찾는다. 언덕을 오른 사람들, 순롓길에 스친 사람들, 함께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안에 그분이 현존하심을 알면서도 만남을 통해 자신을 나누지 못했음을 아파하며 괴로워한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서 그분의 음성을, 만물의 움직임에서 그분의 흔적을 쫓는 이 책은 기도의 본질이 되는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말씀 안에 살아계시며 사람들 안에서 움직이시는 주님을 찾고 따르려는 저자와 함께 하루 한 단어, 하루 한 꼭지만큼 그분을 더 가까이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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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는 소금의 영성’을 강조하며 순교 성지 명례 언덕에서 스스로 예언자적 언덕이 되어 가는 한 사제의 절절한 고백록은 감동을 줍니다.
낙동강처럼 출렁이는 마음의 기도, 들녘의 노을처럼 스며드는 하느님의 현존, 이웃을 차별 없이 챙기는 어진 마음과 겸손한 노력이 갈피마다 읽혀지는 저자의 글들은 지상의 순례객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평범한 일상의 언덕을 오르는 꾸준한 인내와 믿음 그리고 이타적인 사랑이 실은 비범한 보물이고 은총임을 새롭게 깨우쳐 줍니다. - 이해인 (수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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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낙동강 강변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작은 성전을 지어 사는 한 신부의 영혼의 속삭임이 있다. 누구든지 이 성전의 마룻바닥에 고요히 무릎을 꿇으면 성찰의 기도시를 읽을 수 있고 침묵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무엇을 위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내 삶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었던가.’ 하는 명제에 갈 길을 잃었을 때, 이제민 신부님이 지으신 이 말씀의 성전에 잠시 들르시라. 먼 산이 더욱 가까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새소리와 눈부신 강물의 물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자연으로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결국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성전을 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 정호승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