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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말 - 루쉰선집을 펴내며
광인일기 쿵이지 약 야단법석 고향 아Q정전 축복 술집에서 고독자 죽음을 슬퍼하며 홍수를 막은 이야기 검을 벼린 이야기 전쟁을 막은 이야기 제목에 부쳐 가을밤 그림자의 고별 동냥치 복수 복수(2) 희망 눈 연 길손 죽은 불 잃어버린 좋은 지옥 빗돌 글 입론 죽은 뒤 이러한 전사 총명한 사람, 바보, 종 빛바랜 핏자국 속에서 일각 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아버지의 병환 사소한 기록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주석 『루쉰 문학선』 수록작품 출처 |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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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 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나, 처음엔 몰랐지만 이젠 알겠다.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기 어려움을!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광인일기」중에서 희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갖겠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며 언제까지 연연해할 거냐고.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아닐까? 그의 소망은 비근한 것이고 내 소망은 아득한 것일 뿐.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고향」중에서 나는 마침내 통속 도서관에서 나의 천국을 찾아냈다. 그곳은 표를 살 필요가 없었고, 열람실에는 두 개의 난로까지 있었다. 불이 꺼질 듯 말 듯 타고 있는 석탄난로이지만 난로가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다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볼 만한 게 없었다. 옛것은 진부하고, 새것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나는 거기에 책을 읽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 말고도 늘 몇 사람이 있었는데, 많으면 십여 명 정도로 모두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모두가 나처럼 책을 읽는 체하면서 불을 쬐고 있었다. 이곳은 내게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길거리에서는 쉽게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되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봉변을 당할 일이 없었다. 그네들은 영원히 다른 난로 옆에 둘러서 있거나 아니면 자기 집의 난로를 쬐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도서관에는 별로 읽을 만한 책은 없었지만 그곳은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편안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지난 일을 돌이켜 보니, 나는 지난 반년 동안 오직 사랑?맹목적인 사랑?만을 위해 인생의 다른 의의를 모두 소홀히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는 바로 생활이다. 사람은 반드시 살아가야 하고 사랑은 바로 그것에 수반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는 자를 위해 활로를 열어 주는 일은 결코 없다. 나는 아직도 날갯짓하는 법을 잊지 않고 있다. 비록 이전에 비해 많이 의기소침해졌지만…. ---「죽음을 슬퍼하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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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철방을 두드린다.
당신이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루쉰이 적막에 사로잡힌 채, 방에서 몇 년 동안 그저 때 지난 비문을 베끼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진신이가 찾아와 글을 써보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쇠로 만든 방에 갇혀 잠이 든 사람들.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이들을 고래고래 소리쳐 깨우는 것이 맞는 일이냐 묻는 루쉰. 철방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데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것이 오히려 미안한 일 아니냐 묻는 그에게 친구 진신이는 대답한다.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중국 현대소설의 문을 열었다 평가받는 「광인일기」는 루쉰이 비애와 고통, 슬픔과 무료―적막!―를 느끼던 중 그 끝에서 태어난 글이다. 우리가 아는 ‘루쉰’이라는 필명이 이때부터 쓰였는데 이것으로 대문호 루쉰이 발명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식인시대의 문학 우리가 아는 「광인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루쉰이 말하는 식인은 중국의 구습이 지금의 중국인을 ‘잡아먹는’ 것에 대한 메타포다. 1918년에 아비가 제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2018년에는 멈췄을까? 지금 청년들은 집도 없고 직장도 없고 꿈도 없이 자본의 시대를 산다. 이들은 분명,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현실에 의해 잡아먹히고 있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당시 중국사회의 고발인 동시에 문학적 메타포인 동시에 미래를 예견한 작품일지 모른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 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희망도 절망도 없는 문학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한 것처럼.” 언뜻 맥 빠지는 말 같다. 하지만 이보다도 담백하고 힘있는 말이 또 없다. 우리가 보통 절망하는 이유는 희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고병권의 말마따나 “희망 때문에 무슨 일을 하면 절망에 취약한 법”이다. 혁명시대에 문학을 하며, 스스로도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글을 쓴 루쉰. 그는 그저 쓸 뿐이었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희망하지도 않았고 “인생은 현재 정말 고통”이라고 인식하며 그저 살아갈 뿐이었던 루쉰에게 그가 남긴 소설과 산문시는 곧 그의 육체와도 같았다. 삶을 생각하고, 또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루쉰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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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문학을 해야 되는지, 왜 우리는 글을 써야 되는지, 나는 왜 이 길을 가야 되는지를 다시 검토해 봐야겠다. 글쓰고 말하고, 더 나아가 살아낸다는 말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루쉰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고병권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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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년들에게 당부한다. 부질없이 스승을 찾아 헤매지 말고 서로 연대하여 자기 같은 꼰대들은 밟고 지나가라고. 여기가 바로 루쉰과 우리 시대 청년들이 조우하는 지점이다.” -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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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사상을 문학의 형태로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실천으로 행동화한, 흔치 않은 지식인이다.” - 리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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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사상과 문학은 루쉰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상가와 문학가들이 공동 창조해 낸 동양의 사상과 문학 유산이다.” - 첸리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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