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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문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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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엮은이의 말 - 루쉰선집을 펴내며

광인일기
쿵이지

야단법석
고향
아Q정전
축복
술집에서
고독자
죽음을 슬퍼하며
홍수를 막은 이야기
검을 벼린 이야기
전쟁을 막은 이야기
제목에 부쳐
가을밤
그림자의 고별
동냥치
복수
복수(2)
희망


길손
죽은 불
잃어버린 좋은 지옥
빗돌 글
입론
죽은 뒤
이러한 전사
총명한 사람, 바보, 종
빛바랜 핏자국 속에서
일각
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아버지의 병환
사소한 기록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주석
『루쉰 문학선』 수록작품 출처

저자 소개 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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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476g | 122*189*30mm
ISBN13
9791186846377

책 속으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 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나, 처음엔 몰랐지만 이젠 알겠다.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기 어려움을!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광인일기」중에서

희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갖겠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며 언제까지 연연해할 거냐고.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아닐까? 그의 소망은 비근한 것이고 내 소망은 아득한 것일 뿐.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고향」중에서

나는 마침내 통속 도서관에서 나의 천국을 찾아냈다. 그곳은 표를 살 필요가 없었고, 열람실에는 두 개의 난로까지 있었다. 불이 꺼질 듯 말 듯 타고 있는 석탄난로이지만 난로가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다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볼 만한 게 없었다. 옛것은 진부하고, 새것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나는 거기에 책을 읽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 말고도 늘 몇 사람이 있었는데, 많으면 십여 명 정도로 모두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모두가 나처럼 책을 읽는 체하면서 불을 쬐고 있었다. 이곳은 내게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길거리에서는 쉽게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되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봉변을 당할 일이 없었다. 그네들은 영원히 다른 난로 옆에 둘러서 있거나 아니면 자기 집의 난로를 쬐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도서관에는 별로 읽을 만한 책은 없었지만 그곳은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편안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지난 일을 돌이켜 보니, 나는 지난 반년 동안 오직 사랑?맹목적인 사랑?만을 위해 인생의 다른 의의를 모두 소홀히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는 바로 생활이다. 사람은 반드시 살아가야 하고 사랑은 바로 그것에 수반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는 자를 위해 활로를 열어 주는 일은 결코 없다. 나는 아직도 날갯짓하는 법을 잊지 않고 있다. 비록 이전에 비해 많이 의기소침해졌지만….

---「죽음을 슬퍼하며」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학으로 철방을 두드린다.
당신이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루쉰이 적막에 사로잡힌 채, 방에서 몇 년 동안 그저 때 지난 비문을 베끼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진신이가 찾아와 글을 써보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쇠로 만든 방에 갇혀 잠이 든 사람들.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이들을 고래고래 소리쳐 깨우는 것이 맞는 일이냐 묻는 루쉰. 철방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데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것이 오히려 미안한 일 아니냐 묻는 그에게 친구 진신이는 대답한다.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중국 현대소설의 문을 열었다 평가받는 「광인일기」는 루쉰이 비애와 고통, 슬픔과 무료―적막!―를 느끼던 중 그 끝에서 태어난 글이다. 우리가 아는 ‘루쉰’이라는 필명이 이때부터 쓰였는데 이것으로 대문호 루쉰이 발명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식인시대의 문학

우리가 아는 「광인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루쉰이 말하는 식인은 중국의 구습이 지금의 중국인을 ‘잡아먹는’ 것에 대한 메타포다. 1918년에 아비가 제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2018년에는 멈췄을까? 지금 청년들은 집도 없고 직장도 없고 꿈도 없이 자본의 시대를 산다. 이들은 분명,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현실에 의해 잡아먹히고 있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당시 중국사회의 고발인 동시에 문학적 메타포인 동시에 미래를 예견한 작품일지 모른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 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희망도 절망도 없는 문학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한 것처럼.”

언뜻 맥 빠지는 말 같다. 하지만 이보다도 담백하고 힘있는 말이 또 없다.
우리가 보통 절망하는 이유는 희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고병권의 말마따나 “희망 때문에 무슨 일을 하면 절망에 취약한 법”이다. 혁명시대에 문학을 하며, 스스로도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글을 쓴 루쉰. 그는 그저 쓸 뿐이었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희망하지도 않았고 “인생은 현재 정말 고통”이라고 인식하며 그저 살아갈 뿐이었던 루쉰에게 그가 남긴 소설과 산문시는 곧 그의 육체와도 같았다. 삶을 생각하고, 또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루쉰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추천평

“왜 우리는 문학을 해야 되는지, 왜 우리는 글을 써야 되는지, 나는 왜 이 길을 가야 되는지를 다시 검토해 봐야겠다. 글쓰고 말하고, 더 나아가 살아낸다는 말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루쉰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고병권 (철학자)
“그는 청년들에게 당부한다. 부질없이 스승을 찾아 헤매지 말고 서로 연대하여 자기 같은 꼰대들은 밟고 지나가라고. 여기가 바로 루쉰과 우리 시대 청년들이 조우하는 지점이다.” - 고미숙 (고전평론가)
“루쉰은 사상을 문학의 형태로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실천으로 행동화한, 흔치 않은 지식인이다.” - 리영희 (교수)
“루쉰의 사상과 문학은 루쉰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상가와 문학가들이 공동 창조해 낸 동양의 사상과 문학 유산이다.” - 첸리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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