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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중국소설사략
12권 한문학사강요 / 고적서발집 / 역문서발집 13권 먼 곳에서 온 편지 / 서신 1 14권 서신 2 15권 서신 3 16권 서신 4 17권 일기 1 18권 일기 2 19권 일기 3(일기 주석집) 20권 부집 |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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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루쉰 전집』 완간, 한국출판 역사의 한 획을 긋다”
지금, 100년 전 루쉰을 만나는 우리의 자세 2007년 4월에 시작된 『루쉰 전집』 번역작업이 2018년 4월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장장 11년 동안의 여정. 故 리영희 선생이 “자신의 글쓰기 정신, 마음가짐의 스승”이라 말해 온 루쉰을 국내에 전 20권 완역본으로 소개하게 된 그린비출판사의 『루쉰 전집』은, 글쓰기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많은 지식인들에게 스승이 되어 준 루쉰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된다.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글을 쓰며 사람들과, 또 시대와 소통해 온 루쉰의 현대성은 SNS와 개인 미디어 시대에 더욱 빛난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과 함께 태어나는 것일까, 작품이 작가와 함께 태어나는 것일까.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시대 속에서 그의 글과 함께 태어났고, 그의 수많은 글들은 작가 루쉰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글을 쓴 루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마치 잠깐 밖에 다녀와서 이어 쓸 것 같은 채로 끝이 났다. 병이 났을 때 빨리 낫는 대신 글을 쓸 수 없는 것보다 오래 걸려 천천히 병이 낫더라도 그 사이 글을 쓰는 것을 택할 정도로 루쉰과 그의 글쓰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해외의 서적을 번역해 소개하고, 읽고 쓰고, 중국문학을 정리하고, 편지를 쓰고, 소설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잡문을 썼다. 루쉰의 아마도 가장 유명한 문장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은 희망을 낙관하지도,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는, 그 어떤 것에 대한 확신과 약속도 하지 않는 루쉰의 정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니컬함과는 다른 ‘강함’. 식민지 중국에서, 혁명 속에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에게 그 자체로 스승이자 삶의 모델이 되었던 루쉰을 2018년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루쉰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저는 루쉰이 니체보다 좀 더 대단한 것 같아요.” -철학자 고병권은 말한다. 스승을 뛰어넘는 독법을 보이며 유럽의 니체가 아니라 중국에서만 살 수 있는 니체를 만들어 냈다는 루쉰. 철방에 갇혀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다. 먼저 깨어난 사람은 그저 먼저 깨어났을 뿐이다. 망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철방에서 먼저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루쉰은 철방에 갇혀 다만 먼저 깨어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웠던 사람이다. 그럼, 이제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같이 답답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삶을 인식하고 각성한 존재, 갇혀 있지만(노예) 잠에서 깨어난 존재라고 하는 ‘각성한 노예’ 상태를 만들어 낸 루쉰에게는 어떤 강렬함과 통렬함이 있다. 그렇게 우리를 답답하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아주 조금씩 어떤 이들을 변하게 만든다. 문학이 하는 일은 편한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불편한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루쉰이 살던 시대, 그가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노예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편하던 사람들을 깨워 불편하게 만들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어 주었다. “몹시 불편하다.” -고미숙 “내게 루쉰은 ‘배움의 원점’이다.” -『루쉰 전집』 편집자 주승일 “루쉰은 그야말로 내 삶을 응원하는 하나의 ‘외침’이다.” -약선생(『자기배려의 인문학』 저자) “루쉰은 내 몸과 마음의 집도의 같은, 메스를 준 사람이다.” -김동연 (연구공간 감이당 회원) 2018년에 루쉰을 읽는 우리에게도 루쉰은 여전히 불편함이자 위안이 된다. 100년 전과 다르지 않다. 루쉰은 언제 존재하는가 루쉰은 의학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의학이란 무엇인가, 쪼개고 나누고 해부하는 학문이다. 루쉰은 비록 의학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그 날카로운 정신은 그의 사상과 글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자신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시대를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힘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한다네.” (박노해, 「자기 삶의 연구자」) 시인 박노해는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자본이 우리를 연구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루쉰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해도 우리의 타임라인에는 우리가 사고 싶은 물건들이 줄을 선다. 자나깨나 우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살아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연구하고 해부해야 한다. 루쉰을 따라 자기 해부를 배우고, 그 힘으로 사회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해부하는 것, 그 통찰에서 우리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해부하고 해석하고, 읽고 쓰는 힘. 그 힘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을 회복할 수 있다. 루쉰은 방대한 양의 잡문을 남겼다. 거기엔 일기도 있고 편지도 있고 감상도 있고 생활글도 있다. 비루함을 감추지 않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화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슬픈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글을 통해 우리는 루쉰의 담담한 삶과 철학을 본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마음을 통렬하게 들여다보고 글로 써낸 루쉰을 본다. 그 루쉰을 보면서 우리 삶의 연구자가 되는 법을 익히며 세상과 우리 자신에게 메스를 대어 본다. “삶을 위해서가 아니면 안 된다”던 루쉰의 말처럼, 살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루쉰을 읽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