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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전집 10권
집외집습유보편 양장
루쉰김영문
그린비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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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11

집외집습유보편(集外集拾遺補編)

1901년
재정정 『서하객유기』 목록 및 발문 … 27

1903년
중국지질약론 … 30

1908년
파악성론 … 58

1912년
『웨둬』 발간사 … 87
군부 통언 … 91
신해유록 … 93

1913년
국무원에 올리는 국가 휘장 도안 설명서 … 97
미술보급에 관한 의견서 … 101
스스로 그린 명기 약도 설명 … 109

1915년
‘대운사미륵중각비’ 교감기 … 113

1916년
「교육강요」 폐지에 관한 참고사항 … 115
1917년
콰이지우묘폄석고 … 118
『구미 명가 단편소설 총간』 평어 … 123
‘□굉묘지’고 … 125
[부기] 휘굉묘지 … 127
‘서법지묘지’고 … 131
‘정계선잔비’고 … 135

1918년
‘여초묘지명’발 … 138
여초묘출토 우쥔정만경고 … 145
『묵경정문』 재교열 후기 … 152
『포명원집』 교감기 … 154
수감록 … 156
『미술』 잡지 제1기 … 159

1919년
‘권법과 권비’에 관하여 … 161
[참고] 권법과 권비(천톄성) … 164
수감록 3칙 … 170
그 … 174
촌철 … 176
혼잣말 … 179

1921년
“살아서는 항복해도 죽어서는 항복하지 않는다” … 187
이름 … 189
무제 … 192

1922년
『수초당서목』 초록 교정 설명 … 196
『당인설회』 진상 폭로 … 198
1923년
『소설세계』에 관하여 … 205
웨이젠궁 군의 ‘감히 맹종하지 않는다’를 읽은 이후 몇 가지 성명을 발표하다 … 210
[참고] 감히 맹종하지 않는다!(웨이젠궁) … 213
이씨 소장본 『충의수호전서』 새 판각 제요 … 222
『중국소설사략』에 제사를 써서 촨다오에게 증정하다 … 224
시미즈 야스조에게 부쳐 … 225

1924년
광둥성 신후이 뤼펑쭌 군에게 답하다 … 226
‘우스갯소리’에 대한 우스갯소리 … 228
기괴한 일력 … 230
대척여인 100회본 『충의수호전』 장회 제목 교감기 … 232
볼기 이백 대는 볼기 백 대의 오류 … 233
문학구국법 … 235

1925년
통신(쑨푸위안에게 답함) … 238
[참고] 루쉰 선생의 농담(Z.M.) … 238
베이징여자사범대학 학생들을 위해 교육부에 올리는 문건 두 편 … 241
『중국소설사략』 재판 부기 … 246

1927년
‘출판계로 가면서’ 코너의 ‘전략’ … 248
『강동화주』 소인 … 253
새로운 세상물정 … 256
중산대학 개교 치사 … 270
상하이와 난징 수복 경축 저편 … 272
소설목록 두 가지에 관하여 … 277
서원절지 … 291
서원절지(2) … 295
서원절지(3) … 299
지식계급에 관하여 … 302
세상의 도를 구제하려는 문건 4종 … 313
‘병과 갑’ 평어 … 322
[참고] 병과 갑(지롄) … 322

1928년
‘모 신문 스크랩 주석’ 평어 … 325
[참고] 모 신문 스크랩 주석(서우롄) … 326
‘행로난’ 평어 … 330
[참고] ‘행로난’(루셴취안) … 331
‘표점부호 금지’에 대한 평어 … 335
[참고] 표점부호 금지(첸쩌민) … 335
지롄이 보내온 편지에 대한 평어 … 337
[참고] 통신(지롄) … 338
‘오류 본보기’ 편집자 주 … 344
[참고] 오류 본보기(위시) … 344
통신(장멍원에게 답함) … 353
[참고] 우상과 노예(시핑) … 354
보내온 편지(장멍원) … 362
‘이번이 세번째’에 대한 평어 … 367
[참고] 이번이 세번째(원후이) … 368
샤오전과 캉쓰췬에게 답함 … 370
[참고] 편지 개요(샤오전, 캉쓰췬) … 371
‘신문 스크랩 한 조각’ 습유 … 373
[참고] 신문 스크랩 한 조각(잉양) … 374
‘나도 푸단대학에 대해 말한다’ 문장 뒤의 부기 … 385
[참고] 나도 푸단대학에 대해 말한다(판추지) … 385
통신(장다성에게 답함) … 397
[참고] 보내온 편지(장다성) … 399
‘덜렁이’에 관하여 … 403
‘도쿄통신’ 평어 … 406
[참고] 도쿄통신(어쥔) … 407
근하신년 … 415

1929년
『근대미술사조론』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 417
‘공자가 남자를 만나다’에 관하여 … 424

1930년
류우지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의견 … 458
[참고] 보내온 편지(류우지) … 459
『문예연구』 범례 … 462
루쉰 자서전 … 464
펑후이시에게 제사를 써주다 … 467
『철갑열차 Nr.?14-69』 번역본 후기 … 469

1931년
『타오위안칭 출품 도록』에 부쳐 … 472
케테 콜비츠의 목판화 「희생」 설명 … 474
『용사 야노시』 교열 후기 … 476
리베라의 벽화 「빈민의 밤」 설명 … 480
‘일본 연구’의 바깥 … 482
독일 작가 판화전 소개 … 485
독일 작가 판화전 거행 연기 진상 … 488

1932년
수재가 바로 ‘건국’이다 … 490
『외투』에 부쳐 … 492
『문신』에 대한 나의 의견 … 493
제기 1편 … 495

1933년
문학노점상 비결 10조 … 497
고바야시 동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 499
통신(웨이멍커에게 답함) … 501
[참고] 보내온 편지(웨이멍커) … 504
나의 우두 접종 … 508
‘문인무행’을 변론하다 … 521
아녀자들도 안 된다 … 524
1934년
자서전 … 528
『루화』에 관하여 … 531
『무명목각집』 서 … 532
‘현무호 괴인’ 해설 … 534
[참고] 현무호 괴인 … 534
‘『어머니』 목판화 14폭’ 서 … 537
『송은만록』에 부쳐 … 539
『송은속록』 잔본에 부쳐 … 541
『만유수록도기』 잔본에 부쳐 … 543
『풍쟁오』에 부쳐 … 544
『역문』 창간호 전언 … 546
‘잡문’ 짓기도 쉽지 않다 … 548
『개자원화보 3집』에 제사를 써서 쉬광핑에게 주다 … 553

1935년
형세는 반드시 그렇게 되고, 이치는 본래부터 그러했다 … 555
『중국신문학대계』 소설 2집 편찬 감상 … 557
“달을 속이다” … 558
‘모’ 자의 네번째 뜻 … 560
“타고난 야만성” … 562
사지 … 564
중국의 과학 자료 … 566
‘유불위재’ … 567
“황제 자손” 두 부류 … 569
‘진귀함’을 모으다 … 571

1936년
『머나먼 나라』 해설 … 573
차오바이의 목각상에 부쳐 … 575
‘중국걸작소설’ 소인 … 576
『케테 콜비츠 판화 선집』에 제사를 써서 지푸에게 증정하다 … 578
세계사에 보내는 답신 … 579
쉬사오디·예쑤중·황핑쑨에 관하여 … 581

부록 1

1907년
『중국광산지』 자료 모집 광고 … 584

1909년
『역외소설집』 제1책 … 586
『질긴 풀』 번역본 서문(잔고) … 588

1912년
저우위차이 알림 … 590

1919년
무슨 말? … 591

1921년
「악동」 부기 … 595

1925년
『고민의 상징』 광고 … 596
‘웨이밍총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려 하나?(1) … 597
알림 … 599
루쉰 공고 … 600
『망위안』 출판 예고 … 601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사태 선언문 … 603
편집자 부기 … 606
「민첩한 역자」 부기 … 608
오류 교정 … 609
‘웨이밍총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려 하나?(2) … 612
1926년
‘웨이밍총간’과 ‘오합총서’로 간행한 서적 … 615

1928년
본간 단신 … 621
『근대미술사조론』 삽입 도판에 관하여 … 623
[참고] 보내온 편지(천더밍) … 623
편집자 부기 … 625

1929년
삼가 알림 … 626

1930년
쉬스잉에게 주는 도서목록 … 628

1931년
루쉰 공고 … 630
『훼멸』과 『철의 흐름』 출판 예고 … 632
삼한서옥에서 교정 인쇄한 서적 … 634
삼한서옥에서 교정 인쇄한 문예서적 … 637
『‘철의 흐름’ 그림』 특가 알림 … 640

1934년
정정 … 642
『상하이에 온 버나드 쇼』 … 643
『인옥집』 광고 … 644
『목판화가 걸어온 길』 알림 … 646
주간 『극』 편집자에게 보내는 정정 편지 … 648
『십죽재전보』 패기 … 649

1935년
『러시아 동화』 … 651
『역문』 편집자에게 보내는 정정 편지 … 653
1936년
‘30년집’ 편집 목차 두 종류 … 655
『죽은 혼 백 가지 그림』 … 658
『케테 콜비츠 판화 선집』 패기 … 660
『해상술림』 상권 삽화 오류 교정 … 661

부록 2

1898년
자젠성 잡기 … 664
시화잡지 … 666

1900년
아우들과 이별하고 … 668
연밥 … 670

1901년
경자년 조왕신을 보내며 지은 즉흥시 … 672
책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 … 673
중제의 송별시 원운에 화답하다(발문도 함께 쓰다) … 676
꽃을 아까워하며 율시 4수 … 678

1902년
정요경을 애도하며 … 682
사진에 제사를 써서 중제에게 주다 … 683

『집외집습유보편』에 대하여 … 686

저자 소개 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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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중문과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되어 베이징대학에서 유학했다. 경북대, 계명대, 대구대, 서울대, 울산대, 한국교통대 등에서 다년간 강의했다. 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등 연구기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각종 인문학 연구과제 수행에 참여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이자, 청청재靑靑齋 주인으로 각종 한문 고전 및 중국어 서적을 번역하며 인문학 저술 및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역서로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루쉰 전집』(전20권, 공역), 『동주 열국지』(전6권), 『원본 초한지: 서한연의』
서울대 중문과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되어 베이징대학에서 유학했다. 경북대, 계명대, 대구대, 서울대, 울산대, 한국교통대 등에서 다년간 강의했다. 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등 연구기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각종 인문학 연구과제 수행에 참여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이자, 청청재靑靑齋 주인으로 각종 한문 고전 및 중국어 서적을 번역하며 인문학 저술 및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역서로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루쉰 전집』(전20권, 공역), 『동주 열국지』(전6권), 『원본 초한지: 서한연의』(전3권), 『정관정요』, 『삼국지평화』 등 30여 권이 있고, 저서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근현대 대구·경북지역 중국어문학 수용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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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2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96쪽 | 994g | 150*220*35mm
ISBN13
9788976822802

책 속으로

“이제 감히 중화의 땅 씩씩한 젊은이들에게 고한다. 용감하고 강건하면서 힘을 갖추는 것과 과감하고 의연하면서 싸움을 겁내지 않는 것은 본래 인생에서 의당 갖춰야 할 자질이지만 특히 이러한 자질은 자국을 보호하는 데 그쳐야지 무고한 나라를 병탄하는 데 써서는 안 된다. 자립하여 나라를 튼튼히 하고도 남은 용기가 있다면 마땅히 폴란드의 장군 벰29)이 헝가리를 돕고, 영국 시인 바이런30)이 그리스를 도운 것처럼 자유를 위해 자신의 원기를 펼치고 압제를 전복시켜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무릇 위기에 처한 나라가 있으면 모두 함께 그 나라를 도와야 한다. 먼저 우방국을 일어나게 하고 다음으로 기타 국가에까지 도움이 미치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 세상에 자유가 충족되도록 하여 호시탐탐 탐욕을 채우려는 백인종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노예를 상실하게 하면 황화론이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럼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도 강포함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자위自衛의 중요함을 설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우리 중화의 땅도 침략을 한 번 받은 나라이니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파악성론」중에서

“나는 몇 년간 잡지와 신문을 보면서 점차 기괴한 습관이 생겼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글을 볼 때 먼저 서명署名을 보는 습관이다. 서명을 마주하고 적극적으로 대인선생의 이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다음 사항을 고려하게 되었다.
1. 스스로 ‘철혈’鐵血, ‘협혼’俠魂, ‘고광’古狂, ‘괴협’怪俠, ‘아웅’亞雄 따위의 이름을 쓰는 사람의 글은 읽지 않는다.
2. 스스로 ‘접서’?棲, ‘앙정’鴛精, ‘방농’芳?, ‘화련’花憐, ‘추수’秋瘦, ‘춘수’春愁 따위의 이름을 쓰는 사람의 글도 읽지 않는다.
3. 스스로 ‘일분자’一分子로 자처하거나, ‘소백성’小百姓으로 겸양을 떨거나, ‘일소’一笑로 비하하는 따위의 이름을 쓰는 사람의 글도 읽지 않는다.
4. 자신의 호를 ‘분세생’憤世生, ‘염세주인’厭世主人, ‘구세거사’救世居士 따위로 붙인 사람의 글도 읽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름은 일일이 다 거론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임시로 떠오른 것이지만 지금 생각나지 않는 필명도 많다. 더러 혼자서 이렇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의 이런 생각은 기실 너무 독단적이고 너무 강퍅하잖아. 다른 사람이 알면 틀림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거야.’
그러나 오늘 송나라 사람 유성兪成 선생의 『형설총설』의 한 대목을 읽고 나서는 현대에 사는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지금 그 내용을 아래에 초록해 둔다.”---「이름」중에서

“루쉰이 삼가 의견을 드립니다.? 제 『중국소설사략』은 강의를 하던 시절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해서 계속 편집한 책입니다. 당시에는 경제 능력이 한정되어 있어서 수집한 서적이 모두 좋은 판본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어떤 책은 글자가 바뀐 것도 있었고, 어떤 책은 서문이나 발문이 빠진 것도 있었습니다. 『옥교리』2)도 제가 본 것은 번각본으로 작가와 저작 연대를 모두 조사해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나라 때 판각한 원본을 구할 수 있으면3) 판식板式, 인장, 서문 등을 통해 어쩌면 저작 연대와 작가의 진짜 성명을 추정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희망은 지금까지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래 3년 동안은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고 있어서 소설사와 관련된 자료에도 마음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슨 새로운 자료는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소설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이미 많아졌고, 아울러 각종 새로운 부문도 개척되었기에 지금 바로 류우지 선생의 편지를 『위쓰』의 지면을 빌려 공개하겠습니다. 이를 보고 『옥교리』에 관한 자료를 갖고 있는 독자들께서 유익한 글을 보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이는 아마도 『위쓰』에서도 발표를 바랄 것입니다. 1930년 2월 19일”

---「류우지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의견」중에서

출판사 리뷰

루쉰이 남긴 숨은 글 모음, 집외집습유보편

『집외집습유보편』은 루쉰의 문집에 실리지 않은 글들을 모은 문집이다. 루쉰 사후인 1938년 『집외집습유』가 출간된 이후 루쉰의 여러 글들이 계속 발견되어 이를 1981년 전집 출간 때부터 한 권으로 엮어 펴낸 것이다. 루쉰의 문집은 크게 문학작품과 잡문집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 루쉰이 직접 편집하고 출판에 관여했지만, 이 문집은 루쉰 사후에 누락된 모든 글을 수집하고 있어 기록의 의미가 더 강한 글 모음이다. 소설과 시, 날카로운 논설의 바탕이 되는 초기의 글, 습작, 각종 서문과 발문, 평론, 광고문, 추모문 등 다양한 글이 포함되어 있어 루쉰의 삶과 사상의 다양한 결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중국 문화를 이끈 루쉰, 그 삶의 넓은 스펙트럼

『집외집습유보편』에는 다른 어떤 문집보다 루쉰 초기의 글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십대 후반에 자젠성(?劍生)이라는 필명으로 쓴 시와 산문, 20대 초반에 쓴 전통 한시 성격의 시문, 1902년 일본 유학 후에 쓴 중국 광산 관련 자료와 「파악성론」 등이 그것이다. 특히 「파악성론」(破惡聲論)은 미완성 문장이지만 루쉰의 초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악성’(惡聲)은 사람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악한 소리를 가리키므로 제목을 풀면 ‘악한 소리를 타파하기 위한 논설’이 된다. 서구 근대와 제국 열강이 침략해 들어오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중국의 자강과 각성을 열망하는 청년 루쉰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또한 루쉰은 고전 연구와 문학사 분야에도 한 획을 그었는데, 그 바탕이 되는 활동이 이 문집에 잘 드러나 있다. 「콰이지우묘폄석고」, 「『묵경정문』 재교열 후기」, 「『포명원집』 교감기」 등 고문과 탁본을 베껴 쓰는 작업, 문헌을 비교하며 교감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 작업이 집중되는 시기는 190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1918년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기까지 일종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데, 루쉰이 좌절된 혁명에 주저앉지 않고 고문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하며 또다른 갈래의 길을 모색했음을 보여 준다.

한편 1918년 이후부터 루쉰은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폄과 동시에 『신청년』에 ‘수감록’이라는 이름의 잡문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언론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 문집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루쉰이 문집을 편집하면서 싣지 않은 혹은 누락된 다양한 잡문이 시기별로 다양하게 있고, 「혼잣말」과 같은 산문시, 「나의 우두 접종」과 같은 회상 수필이 포함되어 있어 루쉰 문학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외에 기존 문집의 성격에 맞지 않는 각종 발간사와 설명서, 제기, 서문, 발문, 도서목록, 해설문, 광고, 추모문 등 다양한 잡글들이 『집외집습유보편』에 널려 있다. ‘찌꺼기 중에 찌꺼기’라 할 수 있는 이 글들을 통해 오히려 생활인으로서의 루쉰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릴 수 있다. 공무원, 교육자, 인쇄 전문가, 출판사 운영자, 편집자, 교열자, 목판화 및 삽화 전문가, 번역자 등등 루쉰의 일상과 관련한 상세한 모습이 행간에 포진하여 루쉰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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