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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전집 11권
중국소설사략 양장
루쉰
그린비 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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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11

중국소설사략
제기
서언
제1편 사가(史家)의 소설에 대한 기록과 논술
제2편 신화와 전설
제3편 『한서·예문지』에 실린 소설
제4편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한대 소설
제5편 육조의 귀신 지괴서 (상)
제6편 육조의 귀신 지괴서 (하)
제7편 『세설신어』와 그 전후(前後)
제8편 당대의 전기문(傳奇文) (상)
제9편 당대의 전기문 (하)
제10편 당대의 전기집과 잡조(雜俎)
제11편 송대의 지괴와 전기문
제12편 송대의 화본(話本)
제13편 송·원의 의화본(擬話本)
제14편 원·명으로부터 전래되어 온 강사(講史) (상)
제15편 원·명으로부터 전래되어 온 강사 (하)
제16편 명대의 신마소설(神魔小說) (상)
제17편 명대의 신마소설 (중)
제18편 명대의 신마소설 (하)
제19편 명대의 인정소설(人情小說) (상)
제20편 명대의 인정소설 (하)
제21편 명대의 송대 시인소설(市人小說)을 모방한 소설과 후대의 선본(選本)
제22편 청대의 진당(晋唐)을 모방한 소설과 그 지류
제23편 청대의 풍자소설
제24편 청대의 인정소설
제25편 청대의 재학소설(才學小說)
제26편 청대의 협사소설(狹邪小說)
제27편 청대의 협의소설(俠義小說) 및 공안(公案)
제28편 청말의 견책소설(譴責小說)
후기

중국소설의 역사적 변천
제1강 신화에서 신선전까지
제2강 육조 시기의 지괴(志怪)와 지인(志人)
제3강 당대의 전기문
제4강 송대 사람의 ‘설화’와 그 영향
제5강 명대 소설의 양대 주류
제6강 청대 소설의 4대 유파와 그 말류

루쉰의 중국소설사학(中國小說史學)에 대한 비판적 검토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1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루쉰의 다른 상품

역자 : 조관희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문학박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상명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중국소설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세계의 수도 베이징』(2008), 『중국소설사론』(2010),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2011), 『교토, 천년의 시간을 걷다』(2012), 『소설로 읽는 중국사 1, 2』(2013), 『조관희 교수의 중국현대사 강의』(2013) 등이 있고, 데이비드 롤스톤(David Rolston)의 『중국 고대소설과 소설 평점』(2009)을 비롯한 몇 권의 역서가 있으며,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0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888쪽 | 1174g | 150*220*40mm
ISBN13
9788976822406

출판사 리뷰

중국소설사 연구의 캐논(canon)!!
신화, 전기에서 4대기서, 청대소설까지
루쉰이 밝힌 중국소설사!


루쉰이 1920년 무렵에 강의했던 것을 정리한, 중국소설사 연구의 고전 『중국소설사략』을 그린비출판사에서 다시 펴냈다. 중국문학 연구의 대가 조관희(상명대 교수)의 기존 번역본 『중국소설사략』(1판 살림, 2판 소명출판)을 다듬고 보강하여 『루쉰전집』 11권에 포함시킨 것이다. 중국소설사 연구의 기본 골격을 세웠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루쉰의 중국소설사 연구는 후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한국어판은 중국과 일본의 연구성과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영향이 큰 저작이다. 우리는 근대 중국의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잘 알려진 루쉰의 또 다른 면모, 즉 고전학자이자 문학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화시대에서 청대까지 소설 계통의 흐름과 정의]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대다수는 1920년 무렵에 베이징대학에서 강의한 중국소설사 강의록 『중국소설사략』 28장이고, 뒷부분은 1924년에 시안(西安)에서 강의한, 더 압축된 형태의 강의록 「중국소설의 역사적 변천」 6강이다. 루쉰은 소설의 의미와 소설의 기원을 중국 전통의 문헌을 통해 고찰하며, 문학 장르에서 비루하고 소외받았던 ‘소설’의 가치를 사적(史的) 연구라는 틀을 빌려 간략하게 강의한다. 그러나 간략한 서술이라지만 시대 구분과 서술 방식, 용어, 그리고 문헌들 중 소설에 값하는 것을 발굴하여 정리한 것들은 중국소설사 연구에 있어서 기본 틀로서 자리매김했다. 드러난 것에 비해 훨씬 방대한 연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저작이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대에 미친 영향이라든가 저작 자체의 완정성을 놓고 볼 때, 루쉰의 『중국소설사략』을 최초의 중국소설사로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풍부한 창작 실천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던 중국의 고대소설들의 범주를 확정하고,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비평과 감상을 통해 소설의 효용과 특질을 논구한 것은 확실히 루쉰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루쉰의 문제의식-국난의 시기에 ‘소설사’란 무엇인가?]

왜 소설사인가? 루쉰에게 소설사는 어떤 의미였을까? 루쉰은 일찍이 문학으로서 무지몽매한 중국 민중을 깨우고자 했다. 소설 창작에 힘쓰기도 했고, 옛날이야기를 현재의 시각에서 다시 쓰기도 했다. 흔히 잡문이라 부르는 단평이나 시평, 논쟁 글 등은 평생에 걸친다. 그리고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는 시기에는 백화문(白話文)을 주장했다. 일반 민중이 독해할 수 없고 사용하기 어려운 문어(文語) 대신 구어문(口語文)인 백화문을 보급한 것이다. 「아Q정전」은 그의 대표적인 백화문학이다.
소설사 연구와 강의도 이 일환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구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과 조우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일반 민중에까지 전파하고자 하는 노력. 루쉰은 팔고문(八股文)과 같은 글쓰기 양식의 악습을 타파하고, 소설과 같이 기층에서 작용했던 문학양식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래서 소설사 연구뿐 아니라 당대 소설과의 호흡, 청년 작가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 근대소설 비평과 외국문학 번역 등 루쉰의 모든 문학 실천은 한 궤로 꿰어진다.
루쉰은 왜 소설사 연구에 힘썼을까? 루쉰의 연구 동기가 제대로 된 소설사를 기술하고자 하는 데 있긴 하지만,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고문헌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학술적 역량을 쌓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 이전의 고소설 집록), 『당송전기집』(唐宋傳奇集, 당송대의 전기 작품 집록), 『소설구문초』(小說舊聞?, 원명청대의 소설 평론자료)와 같이 옛 문헌을 수집하고 고증한 전문서를 이미 펴낸 바 있다.
나아가 루쉰은 서양에서 유래한 근대적 소설 개념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적 문헌들에 대한 가치 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소설 관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소설사의 시작점을 신화, 전설로부터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의 근대소설에 정통한 이가 그 기준을 탈피하여 옛 문헌에 침잠해 들어가 당당하게 자민족의 소설사를 기술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책에서 진지하고 꼼꼼한 고전학자로서의 루쉰을 볼 수 있지만, 이런 소설사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루쉰이 지금 현재의 문제에 첨예가 대응하는 지사의 면모 때문일 수 있다. 신화나 전설이 소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문학, 이런 문장들이 현실에서 어떤 길항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 가치를 현재의 삶에 되살린 데에 연구의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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