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루쉰 전집 13권
먼 곳에서 온 편지/서신 1 양장
루쉰
그린비 2016.11.05.
가격
37,000
5 35,150
YES포인트?
37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시리즈 22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뷰타입 변경

책소개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11

먼 곳에서 온 편지(兩地書)

서언 … 29

제1집 베이징(1925년 3월에서 7월까지) _ 편지 1~35
제2집 샤먼 - 광저우(1926년 9월에서 1927년 1월까지) _ 편지 36~113
제3집 베이핑 - 상하이(1929년 5월에서 6월까지) _ 편지 114~135

서신 1

『먼 곳에서 온 편지』에 대하여

저자 소개 1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루쉰의 다른 상품

역자 : 이보경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20세기 초 중국의 소설이론 재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문(文)과 노벨(Novel)의 결혼』, 『근대어의 탄생 - 중국의 백화문운동』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내게는 이름이 없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공역), 『루쉰 그림전기』, 『루쉰전집』 1권에 수록된 『열풍』, 7권에 수록된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1월 0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896쪽 | 1240g | 150*220*40mm
ISBN13
9788976822475

책 속으로

“이 책은 우리 자신에게는 한동안 의미 있는 것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죽느니, 사느니 하는 열정도 없고 꽃이니, 달이니 하는 멋진 구절도 없다. 글귀는 어떠한가. 우리는 ‘서간의 정화精華’나 ‘서신 작법’을 연구한 적이 없다. 그저 붓 가는 대로 썼기 때문에 문장법칙에 크게 어긋나서 ‘문장병원’9)에 들어가도 싼 것들이 많이 있다. 이야기한 것도 학교의 소요, 자신의 상황, 음식의 좋고 나쁨, 날씨의 흐리고 맑음, 하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나쁜 것은 우리는 당시 아득한 장막 속에서 지내고 있어서 낮밤을 분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일단 천하의 대사를 추측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흐리멍덩해져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말로 채워졌다. 지금에 와서 보니 대체로 잠꼬대가 되고 말았다. 만약 꼭 이 책의 특색을 치켜세워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그것의 평범함 때문일 터이다. 이렇게 평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리가 없을 것이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꼭 남겨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이를테면 특징이다. ---「서언」중에서

“루쉰 선생님, 저의 스승님께
13일 이른 아침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같은 베이징에 사는데도 배달이 사흘이나 걸리다니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편지봉투를 뜯어 편지지 첫줄 제 이름 옆에 ‘형’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 저의 우둔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형’이라고 불릴 만하다거나, 게다가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아니에요. 결코 이런 용기와 대담함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슨 뜻인지요? 제자는 정녕 알 길이 없습니다. ‘동학’이라고 하지 않고 ‘아우’라고도 하지 않고 ‘형’이라고 하시다니요. 설마 장난을 치시는 것인지요?
저는 아무튼 교육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계 각 지역의 교육, 그들의 인재 양성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지요? 국가주의, 사회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아 또 무슨, 무슨 화化된 교육을 만들어 내는데, 대관절 교육은 어떤 모습입니까? 환경에 적응하는 많은 사람들은 환경과 타협하기 위해 개성을 폄하하는 것이 안타깝지 않은지요? 아니면 차라리 방법을 강구해 개개인의 개성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것은 아주 유념할 가치가 있는 것인데도 오늘날의 교육자와 피교육자들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교육계의 꼴불견 현상이야말로 바로 이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쉬광핑」중에서

출판사 리뷰

루쉰전집 9권, 12권, 13권 동시 출간!

지난 10월 19일은 루쉰 서거 80주기였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부패, 내전과 이념 대결의 현장에서 문학과 예술의 힘으로 민중을 깨우고자 매진했던 루쉰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선각자의 증거이다. 이번에 출간한 세 권은 그의 이러한 노력과 다양한 활동이 일평생에 걸쳐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9권은 잡문집으로서 루쉰이 펴낸 문집들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 엮은 산문과 시 등이며, 12권은 중국 고대 문학사와, 각종 고적과 번역에 붙였던 서문과 발문 등이다. 13권은 수많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모음인데, 특히 13권 앞부분인 『먼 곳에서 온 편지』(兩地書)는 루쉰과 훗날 아내가 된 쉬광핑 사이의 연서 모음으로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의미 깊은 저작이다.

서신을 통해 “일상인으로서의 루쉰”을 만난다
-루쉰전집 13권, 『먼 곳에서 온 편지』/『서신 1』


『먼 곳에서 온 편지』(兩地書)는 루쉰과 쉬광핑이 주고받은 편지 135통이 실려 있는 서간집이다. 루쉰의 편집으로 1933년 4월 상하이에서 출간되었으며, 전체가 3부로 1집은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시절의 루쉰과 쉬광핑 간의 첫 만남과 인연이, 2집은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이 각각 샤먼과 광저우로 떨어지면서 나누는 애틋한 대화가, 3집은 사실혼 관계에 있던 두 사람 간의 일상적이면서도 내밀한 관계가 보인다.

당시 연서의 공개는 꽤나 파격적인 시도였는데, 개인의 사적인 관계와 언설을 공적인 장에 내보인다는 점에서, 더구나 1933년이라면 루쉰의 필력이 왕성하고 명망 또한 높았던 시기였으므로 문단에 큰 주목을 받는 일이었다.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 발표는 문학 내지는 언론의 범주를 확장하면서 장르를 넘어 당대인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뜻 깊은 일이었고, 루쉰 개인의 의도 측면에서 보자면 당시 일었던 자신을 향한 공격과 추문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 떳떳한 시도였다. 일부 청년 지식인들은 루쉰을 향한 비난과 유언비어 등을 쏟아냈는데, 늘 그랬듯 루쉰은 그것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던 것이다.

“예전에 나는 우연히 사랑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항상 금방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걱정했소. 따라서 감히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소. 하지만 그들의 언행과 사상의 내막을 똑똑히 본 뒤로는 나는 내가 결코 스스로 그렇게까지 폄하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소. 나는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오!”(편지 112)

이렇게 루쉰은 자신의 적들에게 굴하지 않겠다며 쉬광핑에게 선언하듯 고백한다. 사상가이자 논쟁가의 면모를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밝히며 진실에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서 전달된다. 자신이 연애사를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시대를 드러내고, 흑역사에 가려진 인간의 감정 교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먼 곳에서 온 편지』는 루쉰의 진심이 그 어떤 글보다 잘 전달되는 한 편의 작품이다.

뒷부분의 『서신 1』은 1904년부터 1926년까지 루쉰이 지인들에게 쓴 편지를 수록하고 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쉬서우창(許壽裳), 청년 시절에 배우면서 교유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와 장타이옌(章太炎),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던 후스(胡適), 그리고 동생 저우쭤런(周作人)에게 보낸 편지 등이 실려 있다. 루쉰과 저우쭤런은 1923년 가정문제로 크게 싸우고 나서 영원히 결별했기 때문에 루쉰이 펴낸 문집과 여러 글들 속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가 소원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별개의 지식인 사이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곳의 서신들을 보면, 함께 서구의 주요 문학작품을 번역하며 우애를 다져 왔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형제이자 사우(師友)의 모습이다. 소소한 이야기도 곁들어 있고 일상도 드러난다. 문학가로서의 루쉰, 사상가로서의 루쉰 말고 일상인으로서의 루쉰, 다면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루쉰을 읽기에 서신은 좋은 참고자료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선택한 상품
35,150
1 35,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