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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詩는 졌다 달팽이의 산책 아저씨의 꿈 모친의 팔순 아버지와 살던 집 혁명적인 1960년대 국민학교 나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버지의 혁명 청소년 말기 최근, 동문회 소식 조상님 탓 종이컵 예찬 범죄 없는 마을 돈은 무적이다 용두산 엘레지 국민생활 현장검증 자발적 유배 다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권(勸) 쐬주가 살아남은 감나무의 슬픔 유럽 난민 신청 승인 독촉장 제 2부 헤어지는 카페 그때,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노상핍쇼(路上 Peep Show) 입맞춤은 골목이 적당하다 오래된 편지 사랑의 도시지리학 나이스투미츄, 줄리엣 비노쉬 줄라이 모닝 찬가 사랑한다면 원숭이처럼 그 다방, 못 잊겠어요 기적같은 동화, 사랑 실연을 자초하는 고백 바로크 숲에 사는 고딕 새 행복의 근본적 원인 빛과, 그리고 그림자 보헤미안 랩소디 이기적인 편지? 제 3부 데킬라 선라이즈 콜린 윌슨 외 2인 보시압 위험한 개인, 울리히벡 氏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 월급쟁이 모독 詩人의 직업화 연구용역 보고서 큰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비와 대통령과 괴로움 동지의 한마디 유달산 엘레지 치악산 할머니합창단 조용한 카페, 평화만들기 기본소득 찬가 술집의 조건 남자라서 미안해 정기용 씨를 기억하는 무주군민의 일상 및 일생 마흔에 하게 된 일 쉰에 하게 된 일 추천하는 글 한 아나키스트의 세상살이 - 박기영(시인)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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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집에서 신이 죽었다
죽는 소리는 따로 나지 않았다 주저흔도 없었다 누가 봐도 자연사다 운명보다 오래 살았다 그렇다면 호상이다 부고는 앞산을 넘지 못했다 낯선 조문객은 올 수 없었고 상주는 무리해서 울 필요가 없었다 마을이 주검처럼 조용한 건 끝이 아니면 시작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더 오래 살고 있다 신(神)이 졌으니 시(詩)는 진 것이다 ---「詩는 졌다」중에서 지난가을, 고독한 아침을 기어가고 있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늙고 지친 달팽이인 줄 알았다 외투는 이슬에 젖고 피부는 햇볕에 쓸려 어깨나 보폭이 눈에 거슬리게 좁았다 ---「달팽이의 산책」중에서 국가와 정부가 양산하는 불안과 공포에 오래 사로잡힌 자식들은 모친의 외로움이 사실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제정신이 없었다 모친의 팔자가 팔십 년 묵힌 거대한 외로움으로 변신한 날,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어 보이는 오륙십이 다 된 자식들은 드디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모친의 팔순」중에서 태어나보니, 조상님들은 대대로 초라했다 할아버지는 사력을 다해 대를 물렸다 돈이나 땅은 물려주지 않았다 물려줄 생각을 못 한 채 그냥 살았다 그래서, 친일파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를 이은 아버지는 크게 당황한 나머지 구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체면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면목이 아니었다 둘 다 조상님들의 신세가 되었다 하는 수 없었다 유전이 유일한 유산이었다 ---「조상님 탓」중에서 말이라곤 오랜만에 꺼내 보오 이토록 부끄러운 말이오 미안하다는 말 말이오 사랑해서 미안했다는 말 말이오 거기 늘 혼자 두어서 뼈 끝까지 아팠다는 당최 이 말 같지도 않은, 거지 같은 말 말이오 그래서 말은 이만 줄이오 저승에서 이승으로 타전하는 말은 늘 눈가루처럼 부서지고 빗줄기처럼 흩어지오 자, 기대하시오 드디어, 마지막 말이오 슬픔을 조심하시오, 제발 ---「오래된 편지」중에서 인류학적으로 고찰해도 모든 인류의 일생은 전면전이고 모든 인종의 일상은 국지전일 수밖에 없는 우울한 현재의 기분과 불길한 미래의 조짐을 게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맹수와 독충에게 굴복했듯 호모사피엔스 또한 맹수 같은 자본주의와 독충 같은 이기주의에게 사냥당하는 절대 취약계층의 가련한 신세를 최근, 유럽 어느 선진국의 동굴에서는 어떤 유인원들이 피눈물로 써 내려간 루시의 묵시록까지 발견됐다지 않은가 모든 인간은 모두 죽는다며, 그것도 아주 감쪽같이 깨끗하게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중에서 사회가 하도 위험해서 무척 조심하며 살았는데 설마설마하면서도 한시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가급적 행동은 삼가고 그저 공부나 하며 학자인 척 조용히 지냈는데 그래도 선진국 독일국민이라 나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냥 이대로 무사히 잘 늙어 죽을 줄만 알았는데 새해 첫날부터 심근경색이라니 매우 위험한 후진사회 한국의 국민 최승자 시인의 한국식 말투를 좀 따라 하자면 이런 젠장 ---「위험한 개인, 울리히벡 氏」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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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질
한 사람의 개론 그의 시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과거를 돌아보다가,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의 이웃을 돌아보다가, 결국 정처 없이 자신에게 돌아오곤 한다. 보통의 우리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어쩔 수 없이 촌스럽고,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는 부질없다. 현실은 뜨거운 마음을 비웃듯 별수 없이 무정하고, 바라는 모습의 세상은 여전히 요원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과거의 흔적과 지나온 족적의 자취를 살펴보다보면 우리 각자의 개론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덧붙여지는 개정증보판이 될까. 그 개정되고 덧붙여지는 시간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 시집에는 그 개정증보판의 자료가 될 흔적과 족적이 담긴 57편의 시가 담겼다. 아무 짓도 하지 않기로 했다지만 또 다시 날아야 하는 시인의 숙명 나이 쉰이 되자 시인은 “아무 짓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한다. 일상을 진종일 탕진하기로 했다는 시인이 ‘차라리’ 되겠다고 예로 드는 존재들은 어이없게도 도시의 자영업자, 철의 노동자, 초보 농부처럼 뭐 하나 쉬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들이다. 당최 ‘차라리 되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수고와 고난의 날이 뻔히 보이는 자리들이라 “일상을 진종일 탕진”하기란 애당초 글러 보인다. 시집에서 한 번씩 느껴지는 시인의 숙명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현실적 제약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툭, 던졌다가도 그 순간 어깻죽지를 수선하며 새로운 숙명을 마다하지 못하는 시인이라는 존재의 숙명. 비록 세상은 당황시켜도 자신은 두렵지 않은 그런 한 사람의 주절거림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림과 시의 만남 펄북스 시선, 여섯 번째 표지 이야기 짙고 희미한 숲을 응시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고요를 품고 있다. 펄북스 시선 다섯 번째 작품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 표지 회화 작품은 김수동 작가의 작품 [Human]이다. 김수동 작가는 펄북스 시선이 지역의 화가들과 함께하는 콜라보레이션의 두 번째 작가로 펄북스 시선 다섯 번째 시집 『숨』의 작업부터 함께 참여하고 있다. 지역의 미술 작가와 지역 출판사 펄북스가 함께하는 뜻깊은 작업이 독자들에게도 더욱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