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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
박남준 시집
박남준
펄북스 20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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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북스 시선집

책소개

목차

제 1 부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ㅣ 마음의 북극성 - 이순 ㅣ 나비의 체중계 ㅣ 명부를 들인 후 ㅣ 안개의 숲에 머무는 동안 ㅣ 종일 시선 ㅣ 겸재를 흉내 내어 삼복을 건너다 ㅣ 겨울 숲에서 흔들렸다 ㅣ 겸손한 시간 ㅣ 가시연꽃의 말 ㅣ 물레나물꽃등 ㅣ 나무 재떨이 타불 ㅣ 내 손등에 떨어지는 그대의 ㅣ 단정한 현판 ㅣ 노랑의 꽃 무덤 ㅣ 가을악보 ㅣ 체온

제 2 부

싱싱한 홀애비 ㅣ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바이칼과 자작나무와 ㅣ 상사화와 우주론 ㅣ 빗방울들 ㅣ 강력한 토마토 ㅣ 대역 ㅣ 향기를 따라가다 ㅣ 노래 ㅣ 유혹 ㅣ 중독자 ㅣ 붉은 이유 ㅣ 아버지의 책상 ㅣ 공중그네 ㅣ 해장술국 ㅣ 쳇 베이커를 듣는 밤 문을 두드렸던 베짱이 ㅣ 가시연꽃 환청 ㅣ 무덤에 전하는 말 ㅣ 황태와 나

제 3 부

그대를 위한 술안주 ㅣ 평양식당 ㅣ 성공하지 못했다 ㅣ 동지방아 ㅣ 소박한 밥상 - 서정홍에게 ㅣ 가장 긴 이야기 ㅣ 민복이네 인삼 집 ㅣ 그러니까 껍딱만 남은 ㅣ 어부의 집이라고 대답하네 ㅣ 나무물고기 ㅣ 연분홍 샘물을 마셔보았는가 ㅣ 한 발, 첫 발자국 ㅣ 우수리스크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ㅣ 묘비명 ㅣ 춤 ㅣ 보고 싶네 - 시인 김남주 생각 ㅣ 그러므로 ㅣ 지리산 둘레길 ㅣ 상추쌈 기도

제 4 부

풍경이 눈부실 때 ㅣ구름이 오래 머물 때

해설 | 기억과 사랑으로 가 닿는 시원(始原)의 시학 박남준의 시 세계 · 유성호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1957년 전라남도 영광 법성포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적막』,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중독자』,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등이 있다.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스님, 메리크리스마스』,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별의 안부를 묻는다』,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박남준 산방 일기』 등이 있다. 전주시 예술가상, 거창 평화인권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을
1957년 전라남도 영광 법성포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적막』,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중독자』,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등이 있다.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스님, 메리크리스마스』,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별의 안부를 묻는다』,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박남준 산방 일기』 등이 있다. 전주시 예술가상, 거창 평화인권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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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이제 이 시인은 노랑 상사화 꽃술을 더듬는 긴 꼬리 제비 나비를 보면서 “나비도 저렇게 무게가 있구나” 깨닫고, 전깃줄에 나란히 앉은 잠자리들을 보면서 “저 일사불란도 불편하지않다”(‘나무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고 생각하게쯤 되었다. 또 언 앞강을 보면서는 “간밤에 미쳐 들여놓지 못”(‘마음의 북극성’)했다고 안타까워도 한다. 도처에서 찾아지는 이런 표현들을 보면서, 어쩐지 이미 이 시인은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해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시집 속의 시들은 봄날 산길을 가다가 만나는 향기 진한 꽃처럼 아름답고, 숲속 깊은 데서 마주치는 오래된 신목(神木)처럼 섬뜩하다. 이 시들을 읽으면 때로는 천년 바위가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있을 때처럼 숙연해지는가 하면, 또 때로는 싱그러운 고목이 내는 바람소리를 들을 때처럼 시원하다. 이들 시 앞에서 문득 우리들의 일상이 초라하고 덧없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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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35쪽 | 302g | 128*205*20mm
ISBN13
9791195572519

책 속으로

직진만이 길이 아니다
구비구비 휘돌지 않는 강물이 어찌
노래하는 여울에 이를 수 있는가
부를 수 있겠는가
나무의 상처가 뒤틀려서 한몸에
서로 다른 무늬를 만들듯
번뇌가 통점을 억누르며 영혼을 직조해나간다
꼭 그만큼씩 울음을 채워주던 강물이 말라갔다

젊은 날의 나침반이었던 내 마음의 북극성만이 아니다
간밤에 미처 들여놓지 못한 앞 강이
꽁꽁 얼기도 했다
강의 결빙이 햇살에 닿으며 안개 또는 김발로 명명되고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든다
아~ 아지랑이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
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
― 「마음의 북극성」 전문




뭉게구름이 세상의 기억들을 그렸다 뭉갠다
아직껏 짝을 찾지 못한 것이냐
애매미의 구애는 한낮을 넘기고도 그칠 줄 모르네
긴 꼬리 제비나비 노랑상사화 꽃술을 더듬는다
휘청~ 나비도 저렇게 무게가 있구나
잠자리들 전깃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일사불란도 불편하지 않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떼가 꽃 덤불속에 몰려오고
봉숭아꽃잎 후루루 울긋불긋 져 내린다
하루해가 뉘엿거린다
깜박깜박 별빛만이 아니다
어딘가 아주 멀리 두고 온 정신머리가 있을 것인데
그래 바람이 왔구나 처마 끝 풍경소리
이쯤 되면 나는 관음으로 고요해져야 하는데
귀 뚫어라 귀뚜라미 뜰 앞에 개울물 소리
가만있자 마음은 어디까지 흘러갔나
-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전문


석유냄새 새카맣게 코밑을 그을리는 등잔불의 기억이 있다
전기가 들어왔다 일반선과 특선
우리 집은 해가 져야 들어왔는데
아랫동네는 한낮에도 독수리표전축이 뽕짝 거렸다
환한 아버지의 책상에서 밀린 일기를 쓰며 낑낑댔다
등잔불이 쫓겨나고 금성라디오가 아버지의 책상에 올라섰다
교환수를 불러 거는 전화기가 라디오와 겸상을 받았다
아버지의 주머니를 슬쩍해서 스며든 만화방
우주소년 아톰 만화영화에 넋이 빠졌다
지그덕 지익 지그덕 직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가 구식 전화기를 밀어냈다
라디오를 할머니 방으로 몰아내고
커다란 흑백 텔레비전장이 아랫목을 떡 차지했다
아버지의 책상은 찬밥이 되어 구석방의 망령이 되어갔다
어머니는 호마이카 곗돈을 부어
대를 이어 손 떼 묵은 압다지에 온통 벌건 칠갑을 입혔다
언젠가 내 삶도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겠지
흔적들 지워질 것이다
아버지의 낡은 책상이 그립다
- 아버지의 책상 전문



익어가고 있다

햇빛과 달빛, 별들의 반짝이는 노래를 기다렸다
너무 격정적이지 않게 그러나 넉넉한 긴장과 두근거림이
휘감았다 마디마디 관통했다
사랑이었던, 슬픔이었던
너를, 당신을, 나를
거친 바닥에 깔아 무참히도 구긴다

비빈다 휘감아 뭉갠다
산다는 것 이렇게 서로의 몸을 통해
흔적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 퍽큐- 나를 더 뜨겁게 짓이겨줘
악을 써봐 제발 비명을 질러봐
어찌하여 상처가 향기로운지

이따금 틈틈이
모던한 멜랑콜리와 주렴 너머의 유혹이 슬그머니 뿌려진다
찻잎의 그늘이 깊어진다

어쩌면 고통,
어쩌면 욕망의 가장 먼 길 저 산 너머 끝자리
한 점 티끌이기도 거대한 중심이기도
지독하다 끔찍하다 너에게로 물든 중독
발효차가 익었다
우주의 고요 한 점 아침 찻잔에 띄운다
― 「중독자」 전문



얼마나 몸부림치는 고통으로 일그러졌을까
엄마아빠를 부르며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눈앞에서 죽어가는 친구들, 선생님, 함께 탔던 사람들 보며
아우성이, 비명이, 살려달라는 절규가 난무하는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300명이 넘게 죽어버리다니
아니다 죽여버리다니
저건 현실이 절대 아니다
꿈이라도 저런 잔인한 꿈을 사람이라면 결코 꿀 수 없는
것이다
눈물과 분노와 잊지 않겠다는
기억을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화가 치민다 아퍼서 견디기 힘들다

이건 살인사건이다
나는 살인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살인자들, 살인을 교사하고
살인을 백주대낮에 뻔뻔하게도 자행한
이 흉측하고 잔인한 짐승들이 활개를 치고 사는
이 나라가 싫다 무섭다 끔찍하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 그만 잊고 싶은데
갈기갈기 가슴을 찢어대는 소리들 얼마나 기막힐까
자식들을 팔아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한다니
수장된 영혼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부모가 형제가 아들과 딸이 생매장으로 눈앞에서 수장되
었듯이
이토록 도저한 슬픔을, 치떨리는 억울함을
또다시 가슴에 묻고 살 수는 없다

밝혀져야 한다
음모와 음모자와 음모에 가담한 자들과 음모를 집행한
자들이
남김없이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세월호는 꼭 인양해야 한다
물밑의 세월호 우리 곁에 어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중에서

출판사 리뷰

박남준의 신작 시집 '중독자'는, 그가 오랫동안 개척하고 축적해왔던 본원적인 생태적 사유와 실존적 감각이 견고하게 결속해 있는 역동적 화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박남준이 그려왔던 시원(始原) 지향의 세계를 충일하고도 낯익게 바라보아왔다. 시적 영혼의 성숙 과정이기도 했던 그 지경(地境)은, 지금이 비록 폐허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일관된 의식에서 그 모습을 구체화한 바 있다. 박남준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시원의 형상을 복원하려 하였는데, 그것은 유토피아나 유년 시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 형식으로는 근접하기 어려운 성스러움을 내장하고 있는 어떤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훼손 이전의 순수 원형을 간접화한 형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박남준은 그러한 형상들을 구체적 자연 사물 속에서 발견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회복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상에 대하여 비판의 촉수를 던진다. 따라서 제목으로 취택된 ‘중독(中毒)’이라는 은유는, 여전히 자연 사물로부터 느끼는 불가항력의 흡인력인 동시에, 삶의 가장 종요로운 기율에 대한 본능적 경사(傾斜)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박남준이 고유하게 지향하는 시적 형이상(形而上)과 시인의 존재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모든 시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되새기고, 나아가 그 시간에 대해 자신만의 고유한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게 마련이다. 그 시간이 남긴 다양한 문양이야말로 시인이 노래하는 직접적 삶의 형식일 터이고, 시가 내장하는 가장 중요한 내질(內質)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모든 서정시는 일종의 ‘시간 예술’이 아닐 수 없는데, 박남준의 새 시집의 시편은 이러한 의미에서 전형적인 시간 예술로서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박남준 시학의 가장 강렬한 지향은, 자신이 친밀하게 접했고 또 그 안에서 삶의 순수 원형을 적출하려 했던 자연 사물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말을 바꾸면 시원의 생명이 될 것인데, 시인은 이러한 자연에 대한 사유와 감각을 단정한 시법(詩法)으로 그려내는 일관성을 보여준 것이다.

서정시는 자기 기원(origin)에 대한 기억과 고백 그리고 동질적 자기 확인의 과정을 일차적 창작 동기로 삼는다. 비록 그것이 사회적 발언을 일정하게 품고 있다 하더라도, 서정시의 근원적 존재 방식은 궁극적으로 자기 귀환을 시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정시의 저류(底流)에는 시인 자신이 오랜 시간 겪은 경험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기억의 층이 절실하게 녹아 있게 마련이다. 박남준의 시들은 이러한 서정시의 원리를 가장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사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오랜 시간 시인 자신의 경험 속에 축적해온 시간들을 불러 모아놓은 일종의 ‘기억의 축도(縮圖)’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박남준 시편은 서정의 원리에 매우 충실한 성과로서, 일관되게 자연 풍경 속에서 시간의 깊이를 읽고 우리 존재의 근원을 상상한 결실이다. 그것을 결국 자기 회귀성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뿌리까지 상상하는 과정을 이어간다. 그래서 그의 시편은 형식상으로는 단아한 서정 양식을 취하면서, 내용상으로는 신산한 세월을 지나온 이의 견결한 시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 축적해온 삶의 증언을 깊은 사유와 감각을 통해 표현하는 그는, 지나온 시간들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삶의 형식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품을 이번 시집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기억하고 반영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세계를 판단하면서 궁극적으로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형식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박남준 시편은 사물에 대한 외경(畏敬)과 삶의 보편적 형식에 대한 믿음을 통해 발원하기도 하고, 오솔길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에 대한 미적 동경에서 생성되기도 하고, 존재를 바꿀 순수함을 간직한 역설의 사물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줄기찬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시편들에 편재(遍在)해 있는 그리움과 기억의 힘일 것이다. 그렇게 가없는 ‘기억’과 ‘사랑’으로 가 닿는 시원의 시학을 통해 박남준은 깊고 아스라한 우리 시대의 사유와 감각의 도록(圖錄)을 제시해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남준의 이번 시집이 침묵의 발화로, 깊은 사유로, 아득하게 번져오는 신생의 감각으로 한동안 우리 시단을 강렬하게 감싸 안을 것임을 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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