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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 닿기를 7
아문센 43 메이벌리를 떠나며 89 자갈 119 안식처 143 자존심 175 코리 201 기차 229 호수가 보이는 풍경 281 돌리 303 시선 333 밤 353 목소리들 373 디어 라이프 391 해설|영혼을 뒤흔드는 한순간, 당신을 일깨우는 한순간 417 앨리스 먼로 연보 433 |
Alice Mun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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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단편 작가, 우리 시대의 체호프!
“단편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진 앨리스 먼로는 대부분의 장편소설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 정밀성을 매 작품마다 성취해냈다. 먼로의 작품을 읽으면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 _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선정 이유 지난 10월 10일 사람들의 눈과 귀가 스웨덴 한림원으로 향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여러 작가의 이름이 거론되는 가운데, 수상의 영예는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에게 돌아갔다. 캐나다 작가로서는 최초(캐나다 출신인 솔 벨로는 미국 국적 취득 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이며, 여성 작가로는 열세번째 수상이었다. 앨리스 먼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문학계는 그 어느 해보다 놀라워하며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사실상 장편소설에 비해 홀대를 받아온 단편소설에 작가 인생 전부를 바친 앨리스 먼로의 노벨상 수상은 그녀의 팬들은 물론 단편소설을 아끼는 많은 동료작가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얼마간 정치적 색깔을 띤 작가를 선호해온 기존의 노벨문학상 선정 경향을 고려할 때, 이번 수상은 순수하게 문학적 탁월함을 고려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 의미가 더 크다 할 수 있었다.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윙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앨리스 먼로는, 여우 모피 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교사 출신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다른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잘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일만큼 끌렸던 것은 없었고, 그러니 내 삶에는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먼로의 말처럼, 소설 쓰기는 그녀가 인생 전부를 바쳐 해온 일이었다. 끝없이 쓰고 또 썼지만, 그녀가 작가로 데뷔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첫번째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출간했던 때가, 먼로의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그때까지 많은 거절과 좌절이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총독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먼로는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로 떠올랐고, 이어 발표하는 작품마다 여러 문학상을 휩쓸며 영어권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스스로 한 명의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일과 글 쓰는 일을 병행해온 먼로는, 한때 페미니즘 계열 작가가 아닌가 하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작중 화자나 주인공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이나, 작품 속에 드러난 20세기 후반의 여성의 삶에 대한 내용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앨리스 먼로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바꾸려 하기보다는,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작가이다. 먼로의 작품에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조나 선과 악의 대립과 같은 주제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과 애정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앨리스 먼로가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모든 인물과 사건을 지배하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와 톤이다. 앨리스 먼로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하나의 특징은 모호함이다. 먼로는 작중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가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배경이나 이유를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모호하고 중의적인 표현 속에 감춘다. 앨리스 먼로는 ‘왜’에 대한 설명 없이,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생각하게 한다. 작가 마이클 온다체의 말처럼 앨리스 먼로는 독자에게 친절하게 먼저 다가오는 작가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먼로의 작품 곁으로 바싹 다가가야 하는 작가인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인생들, 누구도 주목한 적 없는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 『디어 라이프』는 앨리스 먼로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다. 14편의 단편들은 너무도 유려하게 인생의 비밀에 다가서고 있어서, 이들을 읽으면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언어들마다 공감이 넘쳐흐른다. 최후의 비밀스러운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달아간다. _보스턴 글로브 『디어 라이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느 마을에서나 한 번쯤 볼 수 있을 법한, 제각기 나름의 상처나 사연을 지닌,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그 평범한 사람들이 펼쳐놓는 이야기들은 자못 궁금하고 흥미롭다. 기차에서 벌어지는 충동적인 정사는 세련되고(「일본에 가 닿기를」), 남편의 옛 연인을 집에서 재우게 된 노부인의 가출은 귀엽다(「돌리」). 자존심 때문에 노년에 찾아온 단 한 번일지 모르는 로맨스를 외면하는 할아버지의 자격지심은 안쓰럽고(「자존심」), 돈은 많지만 장애를 가진 여성과 유부남의 연애사(「코리」)나 혼자서 병원을 찾아가느라 고군분투하는 건망증 심한 할머니의 이야기(「호수가 보이는 풍경」)가 선사하는 반전은 서늘하다. 앨리스 먼로는 오십 년 가까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작품을 선보여왔지만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새롭고 흥미롭다. 모든 인생은 평범해 보여도 사실 늘 새롭고 기이한 것이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디어 라이프』에서 먼로가 주로 하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를 반추하며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히게 하거나 반대로 의기양양해지게 만드는 기억의 효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것이다. 작중 인물들은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다. “평소와는 좀 달랐어. 단단히 벼른 듯한 느낌. 그냥 나중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건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잖아”(「기차」) 같은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그리고 그들은 그 깨달음이 주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신문이나 각종 자료를 쌓아두며 지나간 시절에 집착하거나(「기차」「자존심」) 기억을 되찾고 기억력을 점검하기 위해 심리상담가와 의사를 찾아간다(「자갈」「호수가 보이는 풍경」). 하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좌절되고 만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괴로워하는 ‘나’에게 먼로는 다른 인물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자갈」). 기억하려 애쓰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비극은 비극대로 행운은 행운대로 그저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면 또다시 살아갈 수 있으니 뒤돌아보지 말라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정밀하고 절제된 언어로 포착한 삶의 미묘한 순간들 아련하고 쓰라리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삶의 한순간! 앨리스 먼로는 이야기의 전말을 독자에게 일일이 소개하지 않고 이야기 너머에 숨겨두거나 모호한 채로 내버려두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비밀스럽게 이끌어가곤 하는데, 『디어 라이프』에서도 그러한 특징은 두드러진다. 먼로는 남자가 자꾸만 도망을 가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기차」), 재스퍼 이모부와 그의 누나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안식처」), 카로 언니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자갈」), 프랭클린의 시에 담긴 사연은 과연 어떤 것인지(「돌리」) 공들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를 추동하는 핵심적인 요인이지만 대화나 짧은 언급을 통해 넌지시 암시만 될 뿐, 나머지는 작중 인물과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아마도 먼로는 인생의 모든 행동과 선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듯,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연이나 이유보다는 주어진 각각의 현재, 우연과 운명이 겹쳐져 만들어낸 지금의 감정과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먼로의 이야기는 비밀스러우면서도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다. 『디어 라이프』를 읽는 독자들은 각 단편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절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다가 돌연 몇십 년의 시간이 훌쩍 흐른다거나 불쑥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 싶으면 이야기는 어느새 예상치 못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다. 인생이 그러하듯 그녀의 작품 역시 새로운 돌을 만나면 방향을 트는 물줄기처럼 유연하게 흘러간다. 독자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지도, 독자의 섣부른 기대에 응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구사하는 문장은 늘 최대한도로 정제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한결같은 호흡을 유지한다. 그렇게, 먼로의 작품은 플롯의 긴장감과 문장의 절제미를 동시에 유지하며 문학이란 어때야 하는지, 대가의 작품이 지닌 품격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바로 그 삶이란 것이 우리에게 주는 찰나의 깨달음들이 열네 편의 이야기에 가득하다. 누구나 겪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는 순간순간의 상실감, 사랑, 슬픔, 기쁨, 아찔함, 안도, 행복, 절망, 원망 혹은 연민 들이 이야기마다 빼곡하게 들어앉아 숨죽이고 독자를 기다린다. 앨리스 먼로는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로, 그 밑에 흐르는 풍부한 광맥을 숨겨놓는 작가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매 작품마다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앨리스 먼로는 단편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학을 극대화시키며 새로운 장을 연 작가이다. 먼로가 만들어낸 ‘단편 미학의 정수’가, 여기 『디어 라이프』에 오롯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