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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래바람 · 7
2. 전람회의 그림 · 35 3. 바다로 가는 막차 · 66 4. 강이 없는 들녘 · 97 5. 암해暗海 · 132 6. 끝없는 아리아 · 160 7. 리트머스 교실 · 191 8.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 221 작가의 말 · 245 해설 · 248 |
Hwang Young-mee,黃榮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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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소파에 쓰러져버렸어. 천장이 빙빙 돌기 시작하더군.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꺼져가는 것 같아. 난 눈을 감아버렸지. 온몸이 하나하나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야. 어디선가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어. 아이의 우는 소리 같았어.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졌어. 뭔가가 내 의식의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와 내 눈앞에 넘실대고 있었어. 난 조그맣고 발가벗은 아이였지.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어. 낯선 얼굴들이 날 에워싸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어. 안간힘을 다해 그들을 뚫고 나가려 했지.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져 들어갔어. 난 꺼억꺼억 울먹였어. ‘도망가야 해. 엄마…….’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
---「모래바람」중에서 음악은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쉬뮐레’ 부분으로 점점 웅장해지고 있었다. 그는 음악 속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한계에서 번번이 끌어내리던 악령을 불태우고 싶은 심정으로 그의 눈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야말로 그림에 힘을 쏟아부어야 할 순간이었다. 그는 그리다 만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화면이 불안정하게 분할되어 불안한 이미지가 느껴졌다. 근경 오른쪽엔 찢어진 돛대만 펄럭이는 폐선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원경으로는 어둑한 바다가 침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냐, 더 짙은 푸른색을 써야겠어.’ 그는 팔레트를 왼손에 그러잡고 더욱 축축하게 젖어드는 색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강렬한 터치로 바람을 나타내야겠어.’ 그는 미친 듯이 이미지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잿빛 이미지, 밤을 맞는 폐선, 달빛마저 숨죽이는 고요……. 그는 붓을 잡은 손을 늦추지 않았다. 칙칙한 잿빛 하늘을 깊은 보라색 톤으로 정리한 다음 그는 심호흡을 했다. 그가 붓을 놓은 것은 이마에 한 줄기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그때 ‘키예프의 대문’이 힘차고 당당한 금속성 굉음으로 들려왔다. 음악은 사원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장려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진해가고 있었다. ---「전람회의 그림」중에서 가슴이 두근댔다. 내 눈은 저절로 감겼다. 나의 고뇌가 과연 나타날 수 있을까? 유난히 완성이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나는 눈을 뜸으로써 세상이 열리기라도 하듯 살며시 눈까풀을 들어올렸다. 창으로 밀려들어온 햇살 속에 두 땅덩어리가 만났다. 거대하고 단순한 대지만이 거기 있었다. 나는 작품 속에서 대지의 숨결을 들을 수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리듬을 터치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그 동안의 허기를 딛고 비누 거품처럼 부풀고 있었다. ---「강이 없는 들녘」중에서 그녀는 미친 듯이 냉장고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바닥에 놓고 퍼질러 앉아 먹는다. 그녀는 배가 불러 목에 차오를 때까지 눈앞에 놓인 것들을 먹고, 자신을 먹고, 그리움을 먹고, 절망과 외로움을 먹었다. ---「끝없는 아리아」중에서 설명은 ‘이렇고 이렇다는 것이다’로 끝났다. 과정도 이유도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질문을 금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질문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그건 어렸을 적부터 생긴 버릇인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이건 하면 안 된다, 저건 하면 안 된다로 정해놓았을 때부터 그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것과 비슷했다. 무엇보다도 무한대라는 개념이 매력적으로 잡아끌었다. 무한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하지도 않는 수치로 계산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계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한은 결국 유한이 이루어놓은 결정체가 아닌가. 그러면 유한에서 출발된 것이 무한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일까? 무한의 끝은 있을까? ---「리트머스 교실」중에서 던스터 집 창밖은 아침 10시가 됐는데도 해는 뜰 생각도 하지 않고 어둑했다. 아일랜드의 겨울밤은 여우꼬리처럼 길었다. 눈은 떴지만 구보는 어제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번은 꼭 가보리라 바라던 유럽행 배표가 일본 유학 시절 친구였던 던스터에게서 우편으로 도착하자마자 구보는 바로 짐을 쌌다. 어머니는 그 먼 길을 어찌 가려누 하면서 걱정이 많았지만, 구보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곳이었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고, 생각지도 못한 던스터의 호의가 고맙기만 했다. 멀리 바다 건너는 못 가더라도 조그만 슈트 케이스라도 들고 어디론가 떠났으면 응당 행복할 것이라고 꿈꾸었던 때였기에 반가운 마음은 더했다.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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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막차」에서 교사 출신의 주부는 도박에 중독된 남편과 가부장의 권위를 중히 여기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삶의 길을 잃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처 없이 나와 바다로 가는 막차를 타게 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바다로 다가갈수록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된다.
「강이 없는 들녘」에서 조각가인 주인공은 북한 출신인 시아버지와 시댁에서 일하던 덕만과의 땅을 사이에 둔 갈등을 중재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다음, 고통 속에서 자기 작품에 몰입한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예술에서의 형상화로 전복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예술 의지가 눈길을 끈다. 「암해暗海」 에서 주인공인 윤진호의 선장은 선원들과 육지에 있는 부인과의 갈등으로 인해 심하게 갈증을 일으키며 고독해 한다. 선원들과 부인 모두 자기만의 본위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다 선박의 냉장고와 엔진도 고장이 나서 심한 마음고생을 한 주인공은 갈등 상황 속에서도 벗어날 수 없고 감내해야하는 선상 생활에서 선장의 역할을 생각하며 목숨을 내건 항해에서 모두들 무사함에 감사하며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끝없는 아리아」는 식욕을 절제하지 못해 애를 먹는 간호사가 자신의 의지력에 대한 자괴감과 주변의 시선에 시달리면서 손녀가 끼니를 거르면 불안해하는 할머니와도 갈등을 겪는다. 그녀를 옥죄어오는 삶의 구속이나 관계 따위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자신의 의지박약 말고도 다른 다이어트 실패 원인을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낀다. 목표라는 실재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사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리트머스 교실」에서 주인공 세진은 경쟁이 심한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곳을 어렵사리 벗어난다. 심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던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안학교인 리트머스 학교로 전학한다. 세진의 담임인 윤리 교사 김인수는 대안학교의 이념에 걸맞은 가치지향적인 교육을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새로운 수학 교사가 부임하면서 그의 교수 학습 분위기는 스스로 자기 항해를 위해 노를 잡고 저어나가려는 세진의 가치와 충돌한다. 안타깝게도 갈증 나는 질문은 폭력으로 답해지며 갈등이 극에 달한다. 표제작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프리퀄이며 소설가 구보 씨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집필하기 전에 동경에서 함께 공부한 아일랜드인 친구 던스터 씨의 초대를 받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공간인 더블린을 함께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을 풀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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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황영미가 빚어내는 삶에 대한 따뜻한 위안
인간의 본질을 사색하게 하는 첫 단편 소설집 영화평론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작가 황영미. 1992년 「모래바람」으로 등단 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26년간 써내려온 작품들을 한데 모아 엮은 첫 소설집이 솔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다채로운 스타일로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온 작가 황영미가 들려주는 8편의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독자에게 던지는 다양한 삶의 고민에 대한 긍정적 해답과 따뜻한 위로가 되기 충분하다. 1992년 등단작 「모래 바람」과 1996년 통일문학작품 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강이 없는 들녘」 등 장기간에 걸쳐 발표한 7편의 작품과 이번에 첫선을 보이는 표제작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까지 총 여덟 편의 소설을 모아 엮은 이 소설집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도서로 선정되었다. 『율리시스』를 사랑한 소설가 구보 씨, 아일랜드행 배편을 손에 넣다 “던스터 집 창밖은 아침 10시가 됐는데도 해는 뜰 생각도 하지 않고 어둑했다. 아일랜드의 겨울밤은 여우꼬리처럼 길었다.”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중에서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 선보이는 표제작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형성 밑그림을 허구적으로 상상하여 상호 텍스트적으로 구축한 소설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플롯을 패러디해 구성한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에 대해 우찬제 평론가는 해설 부분에서 “현실에서 소외된 국외자인 예술가가 어떻게 세계의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 대상을 체험하고 인식하고 상상하고 추론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끊임없이 방황하고 탐구하고 추구하는 존재에 대한 성찰 황영미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작가의 시선에 주목하게 된다. 우찬제 평론가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리트머스 교실」에서 세진은 가정에서는 부모와 갈등했고, 학교에서는 수학 교사와 불화했다. 이 갈등 상황이 그로 하여금 “무한의 끝”을 향한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등단작 「모래바람」은 나름대로 철저한 의사이고자 했지만 의료 사고를 내어 의료 소송에 휘말린 의사와 유족과의 갈등 이야기고, 「전람회의 그림」은 예술의 현실 참여 문제와 관련한 화가의 갈등이 초점화된 작품이다. 「바다로 가는 막차」에서 교사 출신의 주부는 도박에 중독된 남편과 가부장적인 시어머니와 갈등으로 인해 삶의 길을 잃는다. 「강이 없는 들녘」에서는 땅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벌이는 드라마이고, 「암해」에서 윤진호의 선장인 주인공은 선원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심하게 갈증을 일으키며 고독해 한다. 사실 어떤 소설이든 갈등을 다루기 때문에 인물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특징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황영미의 경우, 갈등을 다루면서 가능하면 타자에게 다가서려는 모습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그리고 타자를 통해 주체를 새롭게 발견해나가는 계기를 탐문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소설에서 갈등은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황영미 작가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갈등을 통해 내면적 성숙을 향해 가는 주인공들을 그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응축된 예술혼의 탐구, “들숨과 날숨의 리듬”으로 조화를 이루다 “음악은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쉬뮐레’ 부분으로 점점 웅장해지고 있었다. 그는 음악 속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한계에서 번번이 끌어내리던 악령을 불태우고 싶은 심정으로 그의 눈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람회의 그림」 중에서 작가 황영미는 예술적 탐문을 계속해온 작가이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집에 수록된 「강이 없는 들녘」과 「전람회의 그림」,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등 일련의 예술가 소설들이 주목된다. 우찬제 평론가의 해설을 참조하면, 황영미의 소설의 예술가 주인공은 산문적 상황에서 갈등하며 참된 세계의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예술혼을 응축한다. 「강이 없는 들녘」에서 조각가인 주인공은 북한 출신인 시아버지와 시댁에서 일하던 덕만과의 갈등을 중재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다음, 고통 속에서 자기 작품에 몰입한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예술에서의 형상화로 전복하고자 하는 그녀의 예술 의지가 눈길을 끈다. 이렇게 황영미의 소설 속 예술가들은 산문적 상황과의 갈등 속에서 ‘나의 봄’과 ‘타자의 봄’을 가로지르며 나름대로 세계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그 발견된 의미를 나름의 예술적 질료를 통해 표현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 황영미가 당찬 기개로 쏘아 올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탄! “글빚만 진 채 시간이라는 독재자에게 휘둘려왔다”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고백하기도 한 작가 황영미는 1992년에 등단했지만 교수와 영화 평론가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보니 첫 소설집을 매듭짓기까지 무려 사반세기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작가 전상국은 추천사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작품 무대인 아일랜드 더블린 거리를 산책하는 소설가 구보 씨의 고현학적 걸음걸이로 당당하게 돌아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한 그녀의 귀환 소식이 무척 반갑다. 등단작 「모래바람」에서는 나름대로 철저한 의사이고자 했던 주인공이 의료 사고로 환자가 죽고 그로 인해 유족들과 민사소송을 하면서 자신을 되짚어보게 된다. 비록 법정 판결에서는 승소했지만, 그 후에도 환자의 가족은 병원을 찾아와 계속 원망을 퍼붓는다. 의료사고로 숨진 환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침을 뱉으며, “이 병원 망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져. 장을”이라고 저주를 퍼붓자 그는 이내 ‘모래바람’에 갇힌 형상이 된다. 「전람회의 그림」에서 현실과 예술의 미학적 승화를 꿈꾸었던 화가 민기는 종종 참여지향적인 운동권 동료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자유롭고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 싶었던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고뇌를 더 우선시했던 것인데, 화재로 인해 검은 폐허가 된 봉제공장을 다시 보면서 ‘타자의 봄’을 다시 보고, ‘총체적 봄’으로 다가서 화폭을 구성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