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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부. 결혼식 말고 락앤롤 결혼할까, 우리? 결혼은 왜 하려고? 남들은 왜 결혼할까?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 스몰웨딩은 small하지 않아 덕분입니다 2부. 허니문 말고 까미노 이럴 줄 알았으니까 괜찮아 출발선에 서면 서커스를 본다 위기가 와서 기타를 샀다 기타를 메면 친구가 생긴다 날이 흐려서 옷깃을 스쳤다 순례자의 만찬, 호기심이 반찬 우리는 도시를 사랑해 초가삼간을 태워도 축제를 이기는 계획은 없다 승리한 패잔병 모두가 모이는 곳, 모두가 헤어지는 곳 하여튼 하나도 안 맞아 gravity calls epi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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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미 함께 살고 있던 우리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여행을 위해 결혼을 하기로 했 다. ---p.24
보통의 결혼식을 구성하는 절차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가 탈락시키다 보니 남아나는 게 없다. 그럼 우리 결혼식에선 뭘 하지? 우리는 우리를 기념해야 하고, 우리 약속을 기념해야 하는데, 그럼 우리 를 설명해야 하겠군. 그럼 음악이 있어야지.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필요해. 그럼 공연장이 필요하겠 네. 하나씩 하나씩 덜어 텅 비운 자리에 우리다운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차기 시작했다. ---p.53 평생 한 번도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자기 마음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은 해봤을까 싶은 노인 이 나에게 면목이 없다고 사과했다.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씩씩한 목소 리를 냈다. 단지 내 마음대로 살고 있을 뿐인 나는, 용서할 일이 없어서, 주인 없는 이 사과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p.91 괜찮다. 맘대로 안 되는 게 기본값이니까. 여행뿐 아니라 삶에서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까. 일일이 사사건건 챙겨가며 좌절하고 자신을, 남을, 세상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일이든 있 을 수 있음을 알면 놀랍지 않다. 놀라지 않으면 불행하지도 않다. ---p.115 우리는 순례를 수행하러 온 게 아니라, 추억을 만들러 온 거니까. 예정에 없던 일탈이야말로 기억에 남을 일이니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던 일을 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거겠지. 당장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도 없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의무감이나 필요에 떠밀리지 않고, 중요하지 않아 보 이는 일을 하며 시간과 돈을 쓰고, 내가 무엇 즐거워하는 사람인지 발견하려고, 또는 잊지 않으려고 여행하는 거겠지. ---p.128 언제까지나 이렇게 무대책으로 임기응변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일까? 안 달을 하면, 모든 위기에 즉각반응하면 우리는 '안전'해질까? 위기일수록 희망을 가져야 하는 건 아 닐까. 어떻게든 뭔 되어가리라 막연한 믿음에 기대어 하루하루 버티며 다음 순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걱정을 품고 왔으면 품고 온 대로 '이것도 내 짐이오' 하는 마음으로 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 ---p.141 우리는 지쳐 있었다. 관심 없는 사람과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며 먹는 점심식사에 지쳐 있었다. 이렇 게 후진 걸 만들라고 할 거면 뭐 하러 내 학력과 경력과 능력을 고루 검토하고 그놈의 '인재상'을 들 었다 놨다 부산을 떨며 날 뽑은 건가 싶은 답답한 업무지시에 지쳐 있었다. ---p.182 우리는 서울에 지쳤던 것이었다. 도시가 아니라. 서울의 너무 크고 바쁘고 시끄러움에 지쳤고, 조바 심 난 서울인들의 무례와 무심함에 지쳤고, 서울에서 해야 했던 일들과 지켜야 했던 상식들에 지쳤 던 것이었다. 우리는 도시를 사랑한다. 우리는 적당한 도시를 사랑한다. ---p.192 어차피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계획없이 살 것도 아니고, 계획이란 게 도무지 쓸 모없기만 하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계획한 대로만 살 수 있는 삶은 없다. 그러니 좌절이나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p.217 이곳은 모든 순례길이 만나는 종착지. 모두에게 정해진 하나의 목적지다. 모두가 도착하는 광장, 모 두가 모이는 광장이고, 또 모든 순례자가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기 는 다시 모두가 헤어지는 광장, 길 위에서 만나 애틋해진 친구들과 이별하는 곳이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기약이 없는 만큼 더 잘 이별하려고 두리번거리는 광장이다. ---p.245 우리는 서로를 만나려고 어딘가에 모이고, 헤어질 때 슬프려고 친구가 된다. 서로를 좋아하고 위하 는 만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한 만큼 헤어질 때 슬플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울릴 힘을 넘겨 주 는 것이다. ---p253 나는 내가 내 부모에게 느끼는 의리를 내 배우자가 나누어 가질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므로, 그러 나 선량하고 순박한 내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으므로, 매번 고민하고 불편해할 것이다. ---p.282 우리는 투사가 아니다. 우리는 흔하디흔한 연인이다. 우리는 그냥 록 페스티벌에 가고 싶었다. 가는 김에 까미노도 걷고 싶었다. 그러려니 돈이 필요해서 혼인신고를 했을 뿐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는 납세자이며,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관습과 상식의 중력 위에 사는 개인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21세기 한국인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관습이 귀찮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는 억압 과 희생이 불편한, 서로 사랑하는 두 개인이다. ---p.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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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결혼한 부부,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고 스페인을 걷다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를 다녀온 경험을 엮은 책이 ‘또’ 출간됐다. 독립출판사인 살리다 (SALIDA)에서 나온 『행여혼신 허니문말고 까미노(이하 행여혼신)』다. 저자는 독립서점을 운영하 는 에바와 다미안 부부다. 다미안은 글을 쓰고 에바는 사진을 찍었다. 에바는 사진 외에도 다미안이 쓴 글에 촌철살인의 주석을 덧붙여 글에 재미를 더했다. 다미안이 ‘에바의 불꽃 클릭은 유럽에서도 통했다.’라고 써 놓으면 에바가 ‘과장이다. BBK Live는 그렇게 규모가 크거나 훌륭한 페스티벌이 아 니어서 예매가 어렵지 않았다.’라고 덤덤하게 주석을 다는 식이다. 글과 사진을 통해 저자 부부가 약혼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순례길을 걷는 36일 간의 시간이 정 리됐다. 여정이라고는 하지만 순례길과 스페인의 아름다움, 미식 등에 바치는 찬가는 없다. 찬가가 빠진 자리를 우리 사회의 결혼 관습에 대한 문제제기, 삶에 대한 태도, 함께 길을 걷는 아내와의 사 랑, 길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호의로 채웠다. 신혼여행을 거꾸로 가면 행여혼신이 된다. 신혼여행을 위해 결혼한 부부가 들려주는 결혼제도에 대한 생각 당신은 왜 결혼했습니까?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이 책의 저자 에바 와 다미안 부부는 명확하게 답한다.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서. 에바와 다미안 부부는 동 거를 하다가 스페인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가고 싶어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거꾸로 시작한 결 혼 이야기가 ‘행여혼신: 허니문 말고 까미노’이다. 보통의 신랑과 신부가 웃으며 결혼식장에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산티아고의 순례길보다 멀고 험 난한다. 다미안과 에바 부부는 그 과정에 의문을 품었다. ‘가장 나다운, 우리다운 결혼식’을 고민한 끝에 좋아하는 것들만 모은 잔치를 꾸렸다. 순서가 뒤집어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음악을 좋아하는 부부의 정체성에 맞게 작은 락 페스티벌 이 기획됐다. 그에 맞춰 장소는 홍대 지하의 작은 공연장으로 결정됐다. 독립출판사를 운영한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독립출판 전시회도 함께 열었다. 큰 행사였지만 텀블벅 후원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해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스몰하지 않은 스몰 웨딩을 직접 부 딪치며 준비해야 했다. 잔치가 끝난 후 섭섭해하는 부모님도 달래야 했다. 비행기 출발 당일 새벽까 지 택배를 부치고서 부랴부랴 짐을 꾸려 스페인을 향해 떠났다. 왜 그랬냐고 묻는 이들에게 다미안은 말한다. ‘어차피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는 인생이니, 하 기 싫은 거라도 최대한 하지 말자.’ 행여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선 안 돼! 돌발상황에 맞서는 무계획의 힘, 그리고 길에서 만난 친구들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대한 책은 많다.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길이다. 행여혼신은 스페인에 대한 얘기 대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 에바에 집중한다. 다 같은 순례자여서 낯선 사 람들과 쉽게 친구가 되었다. 음악과 와인, 맥주, 맛있는 음식, 사람이 모이자 일상이 축제가 되었다. 부부는 축제처럼 순례길을 걸었다. 어려움도 있었다. 여행을 출발하자마자 비행기가 연착됐다. 실 업급여 신청 시기를 놓쳐 돈 문제가 닥쳐왔다. 부부 사이에도 크고 작은 다툼이 이어졌다. 어떤 알베 르게(순례자를 위한 숙소)에서는 다미안이 베드버그에 물렸다. 흥에 겨워 술을 마시다 잔뜩 취해 숙 취에 전 상태로 40km를 걷고는 코피를 쏟았다. 다미안과 에바가 어려움을 극복한 비결은 단순하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부부는 매 순간을 받아들였다. 비행기가 연착됐지만 호텔에서 자고 샴푸를 챙겨서 기꺼워했다.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이름도 없는 서커스를 봤다. 다투고 난 이후에는 클래식 기타를 사서 스페인에서 만난 프랑 스 사람에게 이문세를 연주했다. 일정을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행여혼신. 책 제목이 다시 읽 힌다. 행여라도 혼신의 힘을 다할까 경계한 부부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역시 마 찬가지다.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은 동안에는 최대한 행복하게 최대한 많 이 사랑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행여혼신하지 않아 행여혼신한 이야기 ”우리는 흔하디 흔한 연인이다.“ 누구나 나답게 살고 싶다. 결혼을 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며 함께 우리답게 살고 싶다. 그러나 나와 우리를 둘러싼 관계자들, 제도와 관습은 이를 계속 방해한다. 나답게, 우리답게 살려면 그에 대한 대 가를 치러야만 한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 돌아오자 ‘목적을 알 수 없는 거 대한 기계 하나가 묵직한 움직임을 시작’한다. 어머니의 생신을 챙겨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한다. 낯 모르는 순례자들과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걷는 단순한 일과는 없다. 어머니의 생신에 첫 참 석한 다미안은 결국 ‘착한 노인’의 기대를 꺾는다. 이런저런 불편이 있지만 이 부부는 자신답게 살기 를 주저하지 않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투사이기보다는 서로를 사 랑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들 부부는 모든 것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기에 자신 답게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책은 행여혼신하지 않아서 행여혼신한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