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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강력추천 오늘의책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양장
이옥남
양철북 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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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할머니의 소박한 일상이 전하는 다정한 위로
아흔일곱 살 이옥남 할머니가 30년 동안 쓴 삶의 기록을 담은 책. 할머니는 쓴 것도 없는데 무슨 책을 다 내냐고 하셨지만 그의 소박하고 맑은 일상 이야기는 뭉클하면서 다정한 위로를 전한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걸어온 길이자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기도 한 이야기.
2018.08.21. 소설/시 PD 김도훈

책소개

관련 동영상

목차


투둑새 소리에 마음이 설레고


풀과 꽃은 때를 놓칠까 서둘고
개구리 먹는 기 입이너
손자 자취방
나간 돈
꿈에 본 것 같구나
까마귀는 일 하나도 않고
늘 곁에 두고 보고 싶건만
하눌님이 잘 해야 될 터인데
뭣을 먹고 사는지
고 숨만 안 차도
작은 딸 전화 받고 막내아들 전화 받고
오래 살다 보니
조팝꽃 피면 칼나물이 나는데

여름
풀이 멍석떼처럼 일어나니


디다볼수록 신기하게만
비가 오니 새는 귀찮겠지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호호로 백쪽쪽
꿈같이 살아온 것이
다 매고 나니 맘에 시원하다
한티재 하늘
강낭콩 팔기
빨간 콩은 빨개서 이쁘고
돈복이가 잘 부르는 노래
지금은 내 땅에 심그니
친구 할매
매미가 빨리 짐 매라고
어찌나 사람이 그리운지

가을
사람도 나뭇잎과 같이


산소에 술 한잔 부어놓고
점심도 안 먹고 읽다 보니
사람이라면 고만 오라고나 하지
도토리로 때 살고
편지
거두미
그 많던 까마귀는 어딜 갔는지
메주 쑤기
부엌이 굴뚝이여
방오달이
믹서기

겨울
뭘 먹고 겨울을 나는지


묵은 장
겨우 눈을 쳤지
왜 그리 꾀 없는 생각을 했는지
[작은책]을 들고 읽다 보니
사람이고 짐승이고 담이 커야
마을회관
오늘은 내가 제일인 것 같구나
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
자다가도 이불을 만자보고
나 살아완 생각이 나서
동생 머리가 옥양목 같아서
손으로 뭘 만져야 정신이 드니
어떻게 이해성이라고는 없는지
노래 글씨가 나와서 보고 불렀다
또 봄일 하느라고 바쁘겠지

책을 내면서
할머니 이야기(손자 탁동철)

저자 소개 1

1922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에 지금 살고 있는 송천 마을로 시집와 아들 둘, 딸 셋을 두었다.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꿩이 새끼 칠 때 콩 심고, 뻐꾸기 울기 전에 깨씨 뿌리고, 깨꽃 떨어질 때 버섯 따며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산다.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하고 날마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글쓴이가 만난 자연과 일, 삶을 기록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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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8월 1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438g | 145*200*20mm
ISBN13
9788963722771

책 속으로

산에는 얼룩 눈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데 들과 냇가에는
버들강아지가 봉실봉실 피어 있고 동백꽃도 몽오리가
바름바름 내밀며 밝은 햇살을 먼저 받으려고 재촉하네.
동쪽 하늘에는 밝은 해가 솟아오르고 내 마음은 일하기만 바쁘구나.
봄이 오니 제일 먼저 투둑새가 우는구나.
좀 더 늦어지며는 또 제비새끼가 저 공중으로 날아오겠지. --- p.15

개구리가 울었다고 밀양집 할멈이 와서 얘기했다.
그 전에 공수전 갑북이 할멈 살았을 땐 개구리를 구워서
다리를 들고 몸에 좋다고 이거 먹어보라 해서 내가 그기
입이냐고 개구리를 먹는 기 입이너 하고 내밀어 쐈는데,
그 할멈재이도 오래 못 살고 죽었다. --- p.18

콩을 심는데 소나무 가지에 뻐국새가 앉아서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들게 운다고 누가 먹을 양식이라도 주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은 뭣을 먹고 사는지. --- p.45

지금 밖은 조용하다.
오늘 아침에는 작은딸 전화 받고 저녁에는 막내아들 전화 받았다.
그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늘 그렇게만 살고 싶었지.
자식이 뭔지 늘 봐도 늘 보고 싶고 늘 궁금하다. --- p.57

콩밭을 매면서 콩잎을 바라보면서 그리도 귀엽게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동그렇게 생긴 콩이 어찌 그리도 고 속에서 동골라한 이파리가 납족하고
또 고 속에서 속잎이 뾰족하게 나오고 디다볼수록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니 뽑는 풀도 나한테는 고맙게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풀 아니면 내가 뭣을 벗을 삼고 이 햇볕에 나와 앉았겠나.
뭣이든지 키우기 위해 무성하게 잘 크는 풀을 뽑으니 내가 맘은 안 편하다.
뽑아놓은 풀이 햇볕에 말르는 것을 보면 나도 맘은 안 좋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 수 없이 또 짐을 매고 풀을 뽑으며 죄를 짓는다. --- p.73

비가 와서 아무 일도 못 하고 그냥 있는데 반갑잖은 세빠또가
와서 듣기 싫은 말만 늘어놓는다. 지루해서 죽을 뻔했다.
왜 그리도 듣기 싫은 말만 하는지 어디서든 만나면 깜짝 놀랄 정도다.
내일도 비가 오면 또 올 건데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된다. --- p.96

친구 할매 양동옥은 그새 저세상으로 가고 없네.
하룻밤 새 친구 한 명 떠나가고 이제는 정말 나 하나 외로이
홀로 다니게 되었네. 될 수 있으면 나 친구 뒤를 따라서 갔으면 싶다.
언제 다시 만나서 이야기 나눠볼까. 며칠 전에도 풋콩을 까서
안쳐 먹고 일어나라고 주고 왔는데 그랜지가 삼사일밖에 안 됐는데
그 새 저세상으로 가 버렸네. --- p.112~113

올해도 산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날마다 도토리 까는 게 일이다. 망치로 깨서 깐다. 안 깨면 못 깐다.
반들반들해서. 돌멩이 위에 놓고 망치로 때리는데 자꾸 뛰나가서
에유 씨팔 뛰나가긴 왜 자꾸 뛰나가너
하고 욕을 하고는 내가 웃었다. --- p.141

오늘은 아침 열 시에 리장님 차로 양양군청에 가서 성금 십만 원 내고
열한 시에 갈천 차로 집에 왔다. 대구 지하철 화재 난 데 보내 달라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고 가져왔다고 하니 영수증을 보내 줄까요
해서 영수증 필요 없다고 했다.
없이 사느라고 남의 신세만 지고 좋은 일 한번 못 해 보고
그게 한이 돼서 내가 조금이나마 보냈다.
자식 잃고 얼마나 애통할까. 정신이 아찔하고 미칠 지경이지.
아침 아홉 시에 그랬으니 한창 열기가 펄펄 끓는 젊은이들 죽는 게
너무나 애석하고 사진 들여다보고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는 게 내가 눈물이 난다.
아이 옷 벗어 논 걸 껴안고 아이 엄마가 그렇게 우니 사는 게
숨이 붙었으니 살지 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

--- p.189

출판사 리뷰

아흔일곱, 할머니가 짓는 맑은 하루하루
그 삶이 주는 다정한 위로


할머니는 아흔일곱 살이 되었다. 눈 뜨면 밭에 가서 일하고, 산에 가서 버섯 따고 나물 캐고, 그걸 장에 내다 팔아 아이들 키우고 이때까지 살아왔다. 일곱 살에 여자는 길쌈을 잘해야 한다며 삼 삼는 법을 배웠고, 아홉 살에는 호미 들고 화전밭에 풀을 맸다.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편지질해 부모 속상하게 한다고 글은 못 배우게 했다. 글자가 배우고 싶어서 오빠 어깨 너머로 보고 익혔지만 아는 체도 못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 죽고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에야 글을 써 볼 수 있게 되었다. “글씨가 삐뚤빼뚤 왜 이렇게 미운지, 아무리 써 봐도 안 느네. 내가 글씨 좀 늘어 볼까 하고 적어 보잖어” 하시며 날마다 글자 연습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적은 글은 일기라기보다는 시가 되었다. 그 기록이 소녀처럼 맑다.

할머니는 그저 잠만 깨면 밭에 가서 일한다. 김을 매면서 뽑혀 시든 잡초 보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사는 게 모두 죄짓는 일이라 한다. 눈 쌓인 겨울에는 산짐승들이 무얼 먹고 사나 걱정이 한가득이고, 불난리에 집 잃은 이웃을 위해 고이고이 아껴 둔 옷가지를 챙긴다. 농사지은 것들을 장에 내다 팔고 먼 데 자식들 소식에 전화를 기다리고 다시 맞는 저녁에는 그리움이 밤처럼 쌓인다.

그러다 가끔, 몸에 좋다며 개구리를 잡아먹던 갑북네 할멈도 먼저 갔다고 나직이 내뱉고, 비오는 날 일 못 하고 집에 있는데, 옆집 세빠또 할멈이 어찌나 말 폭탄을 터뜨리는지 내일 또 비 오면 올 텐데 어쩌나, 걱정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빵 터진다.
강낭콩을 팔려고 오색에 갔다가 나이 들어서 젊은 사람한테 ‘사시오, 사시요’ 하니 부끄럽지만 그래도 애써 가꾼 생각하며 문전 문전 다닌다. 아흔일곱 살이 되었는데도 어디서든 만나면 깜짝 놀랄 만큼 싫은 사람도 있다. 이웃한테 싫은 소리 듣고 와서 분해하기도 하고, 송이 따러 갔다가 잡버섯에 속았다고 신경질도 낸다. 또 어느 날 하얀 백합을 보고는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으면 좋겠다 한다.

어디 가든 늘 둘이 함께였던 동무 할매도 저세상으로 가고, 먼 산에 눈 오려는지 아지랑이처럼 안개 돌고 바람 부는 날. 밖에 비 오고 조용한 빈방에 똑딱똑딱 시계 소리만 들리는 저녁. 별이 총총 뜬 밤을 지나는 할머니의 날들에서 조용한 풍경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도 할머니처럼 나이를 먹어 간다. 맑고 소박하고 다정하게.

‘봄날은 간다’

젊고 눈부셨던 그날들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읊조리듯 내뱉었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 뒷면에서 나이 든 부모들의 시간을 낡고 바래 가는 희미한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나 화들짝 놀란다. 할머니의 “글자들”을 읽으면서, 그 하루하루를 보면서. 그 삶이 어쩌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기도 하기에.

이옥남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늘 새것이다. 글을 읽으면 할머니의 봄날은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니라 아흔일곱 세월의 주름 속에 수줍게 숨어서 머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살아가고 또 그걸 글에 담았다. 한 자락도 꾸밈없고, 관념 없이 투명하고 맑다. 세상에 익숙하고 길들여질 이유 없는 자연과 마주하며 일하고 살아서 그랬으리라. 그 맑음과 정성 다한 하루에서 할머니의 삶이 주는 다정한 위로가 배어난다.

편집자의 편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머니를 처음 뵌 게 2001년 2월 25일이었습니다. 전날 양양에 눈이 엄청 내려서 가는 곳마다 눈밭이었습니다. 울도 담도 없이 블록으로 지은 작은 집, 담벼락에 삽 한 자루가 기대 서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저 삽으로 하루 종일 눈을 치우셨겠구나 했거든요. 사람 소리에 할머니가 나오셨는데, 자그마한 키에 볼이 발그레하니 고우셨어요. 아무것도 없이 혼자 있는 늙은이 집에 왔다고 옷장에서 사탕도 꺼내고 차도 내오고 나중엔 밥상까지 차리셨어요. 되직하게 끓인 된장에 감자조림, 동치미. 찬이 없다고 걱정하셨지만 참 달고 맛나게 먹었습니다.

2009년 새해에는 할머니가 쓴 글을 모아 만든 문집『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 뻔했네』를 받게 되었습니다. 띄엄띄엄 보던 할머니 글을 한꺼번에 선물로 받은 느낌이었어요. 두고두고 아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또 10년쯤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끔 시 쓰고 글 쓰는 이야기 자리에서 할머니 글을 들려주면 사람들이 참 좋아했어요. 누가 쓴 글인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다닌 적도, 글자를 배운 적도 없는 할머니가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싶어 쓰기 시작한 ‘글자’가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습니다.

책을 만들기 위해 1987년부터 2018년 봄까지 할머니가 쓴 글을 다시 읽는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20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는 내가 사는 세계하고는 전혀 다른 산골 사는 할머니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한 사람이 오롯이 살아온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눈 떠서 해질 때까지 쉼 없이 일하고,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 깊어져 가는 삶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삶에서 문득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온 하루하루는 어땠을까, 이렇게 할머니처럼 하루하루 걸어오셨겠지.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어머니 삶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모습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감하느라 지쳐 있다가도 할머니 글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일하느라 뾰족해진 마음이 풀어지더라구요. 할머니 글이, 할머니 삶이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햐얀 백합이 보기에도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하신 할머니처럼 저도 제 삶을 그렇게 채워 가고 싶습니다. 할머니 책을 만들면서 제 삶의 한 부분을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2018년 3월 어느 날 팟캐스트(학교 종이 땡땡땡) 이야기 손님으로 할머니가 오셨는데, 그때도 여전히 할머니는 맑고 고우셨어요. 7월에는 마을회관에서 아흔일곱 번째 생신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늘 그리운 자식들, 손주들이 모두 모여서 할머니는 얼마나 좋으실까요. 그날『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할머니께 선물로 드릴 수 있어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이혜숙(편집자)

추천평

손으로 만들어낸 진실, 그 충만함.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겪은 ‘양양 송천리’ 이옥남 할머니의 151편 ‘글자들’은 내 양손에 햇살을 움켜쥐는 듯한 따사로움을 준다. 손으로 만들어 낸 진실, 그 충만함. 나는 이 햇살을 오래오래 받았다. 자연과 생명을 귀하게 대하고 자식과 이웃을 정성스럽게 맞이하며 먼저 간 친구를 그리워하는 인간적이고 위선 없는 세계. 농사짓고 책 읽고 글자 쓰는 자신의 고유한 시공간을 품고 사는 할머니. 이 소박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세속의 욕망과 어그러진 관계로 가득한 현실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한 편 한 편 애틋하고 뭉클하다. 그러다가도 웃음이 빵 터진다. 도토리를 “돌멩이 위에 놓고 망치로 때리는데 자꾸 뛰나가서 에유 씨팔 뛰나가긴 왜 자꾸 뛰나가너 하고 욕을 하고는 내가 웃었다” 하고 쓰신 일기에서는 나도 같이 웃었다. 할머니의 글 감각은 엄지 척! 한없이 고되지만 농사일을 해야 뿌듯해지고, 뉴스에서 나오는 안타까운 사고에는 눈물지으며 도울 방법을 찾고야 마는 이옥남 할머니. 어깨에 힘 하나 안 들인 글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된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삶이 시가 된 글을 저도 읽게 해 주셔서요.
-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백 살이 넘은 어느 수녀님의 일기와 자그마한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여전히 두 손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 할아버지와 아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피아노를 치며 단정하게 하루하루를 꾸려 나가는 피아니스트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좀 멀리 있는 이야기였고, 언젠가는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것이 내 엄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걸, 할머니의 일기를 읽다가, 이제야 깨닫는다. 아흔일곱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에는 삶과 죽음과 강낭콩을 파는 일과 손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경중이 없다. 여든 넘어 처음 사 본 믹서가 마냥 신기한 마음과 치매를 앓는 열네 살 아래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이 다르지 않고, 애써 꿰어 만든 삼태기를 마지못해 천 원에 팔고 돌아오는 속상한 마음이 몇 남지 않은 동네 친구가 떠난 뒤의 헛헛한 마음에 모자라지 않다. 고추를 말리고 감자를 썩히고 두부를 만들고 김을 매는 할머니의 하루에는, 그 자체로 할머니의 아흔일곱 인생이 온전히 들어 있다. 왜인지, 무용하게 지나 보낸 할머니의 어느 하루가 오히려 더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지는 것을, 당신은 알까. 이옥남 할머니는 오늘도 마을회관을 둘러보고, 동네 친구분과 새침하게 다투고, 손주의 전화를 기다리고, 조금씩 아껴 가며 책을 읽고, 당신의 소중한 하루를 일기장에 기록하실 것이다. 당신의 그 하루가, 우리에겐 백년의 지혜입니다. - 조연주 (책 읽고 만드는 사람, 전 문학동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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