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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노년을 만나는 또 하나의 현장
프롤로그|그림 속에서 노년을 읽다 1부. 나이 듦: 노년의 시작을 둘러싼 기준들 1장 오랜 삶의 조건들 - 발명된 시간으로서의 노년 2장 나의 중년, 당신의 중년 - 겹쳐지는 시간 3장 들리지 않는 말들 - 몸이 변할 때 달라지는 관계 4장 새벽은 왜 끝나지 않는가 - 수명연장의 역설 5장 새로운 숙제 - 여가 길들이기 6장 노년의 몸 - 쇠퇴 이후의 가능성 7장 노화를 고치겠다는 욕망 - 안티에이징의 시대 8장 생성과 침체 - 에너지는 어디로 흐르는가 9장 연령차별 - 당신의 마음속 노인을 그려주세요 10장 당신이 배운 노인 - 당연한 얼굴은 없다 2부. 돌봄: 의존과 관계 사이의 줄타기 1장 ‘돌다(回)’ + ‘보다(見)’ - 돌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2장 홀로 단단한 삶 - 혼자 나이 든다는 선택에 대하여 3장 식어버린 돌봄의 시간 - 노인의 자기방임 4장 다시 효를 묻다 - 자식 노릇이 자라는 시간 5장 백세시대의 부모 노릇 - 길어지는 관계수명 앞에서 6장 약속에서 돌봄으로 - 동반자의 시간 7장 다정한 곁 - 혈연을 넘어 이어지는 노년의 안전망 8장 살던 곳에서 나이 든다는 것 - 나의 바르비종은 어디에 3부. 죽음과 마주하기: 삶의 끝에서 다시 묻는 질문들 1장 하나도 안 무서운 데쓰카페 - 밝은 곳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2장 혼자 늙어가는 사회 - 고독사를 걱정하는 당신에게 3장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 - 연명치료와 안락사 사이 4장 장례의 의미 - 상(喪)의 시간을 다시 생각하다 5장 남겨진 시간 앞에서 - 애도의 윤리 6장 애도 이후의 위로 - 슬픔을 짊어지고 오늘을 건너는 법 7장 지금의 삶이 향하는 곳 - 오늘이 그려가는 노년 4부. 미술관에서 만난 노인들: 우리가 만들어갈 노년을 상상하다 1장 잘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나의 ‘노년희망’을 찾아서 2장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늙는다는 것 - 나이보다 태도 3장 세대에서 세대로 - 나의 노년은 다음 세대의 ‘짐’인가, ‘빛’인가 에필로그|액자 밖으로 걸어 나온 노인들 참고문헌 감사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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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는가.’
나는 연구자로서, 또한 한 개인으로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묻고 기록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림 또한 그 질문을 탐색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술관에서 만난 노인들은 액자 속에 멈춰 있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상실을 견디고 있었고, 누군가는 늙어가는 몸과 씨름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돌봄과 관계, 고독과 죽음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내가 연구실과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 「들어가며|노년을 만나는 또 하나의 현장」에서 중년층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노년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걱정 중 하나는 ‘쓸모없음’에 대한 공포이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순간, 삶의 의미도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이는 우리가 오랜 시간 성과를 내는 존재로서만 존엄을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산성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노년은 쉽게 무가치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생산성이 능력의 지표인 사회에서,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무용함으로 읽힌다. ‘생산적 노화(productive aging)’라는 개념은 본래 노인을 의존적인 수혜자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자원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성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이면의 서늘한 질문을 남겼다. 생산하는 주체만이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된다는 논리는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노년들을 다시 한번 주변부로 밀어냈다. 결국 생산적 노화라는 개념은 본래 의도와 달리, 생산성을 기준으로 노년의 가치를 평가하는 규범으로 작동한 것이다. --- 「1부_나이 듦: 노년의 시작을 둘러싼 기준들」 중에서 서양 미술사에서도 늙은 여성은 희화화되거나 과장된 모습으로 그려진 경우가 있다. 플랑드르 화가 쿠엔틴 마시스(Quentin Metsys, 1466-1530)의 〈추한 공작부인〉는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에서 늙은 여성은 과장된 머리 장식과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이런 차림새는 노화된 얼굴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젊음을 흉내 내는 노년’에 대한 조롱을 드러낸다. 실제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음을 흉내 내거나 화려함에 집착하는 노년은 종종 허영의 상징으로 비판받았다고 한다. 나이 듦을 부자연스럽게 거스르려는 태도를 비웃는 시선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오늘날 안티에이징 담론 역시 늙음을 관리해야 할 결함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교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 「1부_나이 듦: 노년의 시작을 둘러싼 기준들」 중에서 그렇다면 혼자 살아가는 삶에서도 타인의 삶과 온기를 나누는 방식은 가능할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메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 1844-1926)의 그림들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아이의 목욕〉은 아이를 돌보는 장면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린 화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카사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선택한 여성 화가였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는 아이를 씻기고 돌보는 장면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움직이고 바라보며 시간을 공유하는 순간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여성들이 함께 차를 마시거나 같은 공간 안에 머무는 장면들 역시 자주 그려졌다. 최근 연구와 평론은 이러한 작품들을 단순한 모성의 이상화라기보다, 여성들 사이의 관계와 돌봄의 구조를 새롭게 시각화한 작업으로 읽는다. --- 「2부_돌봄: 의존과 관계 사이의 줄타기」 중에서 고흐의 노인이 붉은 난로를 곁에 두고도 차가운 푸른색 옷 속으로 침잠하듯, 자기방임에 빠진 이들은 스스로 온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세계를 냉방으로 만든다. 마음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 나를 아끼고 돌볼 힘을 상실하는 것이다. (…) 우리는 종종 노년의 비참함을 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안락사’를 이야기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돌아보아야 할 것은, 삶의 의지가 어떻게 서서히 식어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경제적 무력감과 질병의 고통, 관계의 단절 속에서 어떤 이들은 서서히 자신을 돌볼 힘을 잃는다. --- 「2부_돌봄: 의존과 관계 사이의 줄타기」 중에서 노년의 부부관계에서 돌봄은 감정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구조의 문제다. 사랑이 있어도 자존심은 상한다. 책임을 다하면서도 억울함은 생긴다. 돌보는 이는 지치고, 돌봄을 받는 이는 위축된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동반자라는 말은 때로 너무 납작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돌봄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노동과 미세한 감정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우리가 쉽게 잊는 것은, 살다 보면 돌봄을 받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 상대가 내미는 손을 비굴함 없이 고맙게 맞잡는 것, 나의 약해짐이 상대에게 짐이 아니라 함께 통과해야 할 삶의 과제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돌봄을 받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어려운 예의다. --- 「2부_돌봄: 의존과 관계 사이의 줄타기」 중에서 앞으로의 고독사는 개인의 깊은 외로움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진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현실이기도 하다. 삶의 방식이 달라진 시대 속에서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고립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고독을 없앨 수 있는가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진 사회에서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감지하고, ‘늦게 발견되는 죽음’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것으로 말이다. 지금까지는 고독사를 애도하는 사회였다면,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사회로 넘어가야 한다. --- 「3부_죽음과 마주하기: 삶의 끝에서 다시 묻는 질문들」 중에서 〈미친 후아나〉를 통해 나는 묻는다. 사별의 슬픔은 어디에 머물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래 지속되는 슬픔 앞에서 종종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이제는 그만 괜찮아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시선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슬픔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애도는 개인의 감정이지만, 그 감정이 무사히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개인의 슬픔을 병리화하고 격리하는 방식으로는 우리 누구도 반복되는 상실의 시간을 견뎌낼 수 없다. 슬픔은 서둘러 끝낼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 곁에 조용히 머물 줄 아는 태도, 섣부른 위로 대신 함께 침묵할 수 있는 마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슬픔의 문해력’이다. --- 「3부_죽음과 마주하기: 삶의 끝에서 다시 묻는 질문들」 중에서 아빠를 떠나보내고 내 나름의 애도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야, 나는 왜 그가 그토록 기쁨의 색채에 집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을 직접 그리기보다 삶의 환한 결을 반복해서 선택했다는 사실은,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로 읽혔다. 삶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만 한다는 절박한 긍정. 자신의 무너짐보다 타인에게 전해질 다정함을 먼저 고민했던 그 치열한 마음은, 임종의 순간까지 우리를 살폈던 아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마지막까지 ‘가족맞춤형’ 배려를 멈추지 않았던 아빠의 마음은, 끝내 빛과 따스함을 놓지 않았던 르누아르의 그림들과 어딘가 포개어지는 듯했다. --- 「3부_죽음과 마주하기: 삶의 끝에서 다시 묻는 질문들」 중에서 키케로에게 노년은 젊음의 격렬한 욕망에서 벗어나, 보다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삶으로 나아가는 시간이었다. 육체는 쇠약해질지언정 정신은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현대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젊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키케로는 우리에게 “어떤 태도로 삶을 완성해갈 것인가”를 묻는다. (…) 노년은 덜어내는 시간인 것이다. 과도한 욕망을 줄이고, 관계를 정돈하며,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이는 뒤처짐이 아닌 다른 종류의 성숙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4부_미술관에서 만난 노인들: 우리가 만들어갈 노년을 상상하다」 중에서 그녀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비바 라 비다〉는 선명한 붉은 수박 과육 위에 적힌 짧은 문장으로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긴다. “Viva la Vida!” 삶이여, 만세.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이 작품은 고통과 상실을 외면하지 않은 채 살아갔던 프리다 칼로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으로 읽혀왔다. 전시회에서 다시 마주한 그 문장은 삶을 단순히 낭만화하는 선언이라기보다, 불완전함과 고통까지 삶의 일부로 끌어안고 살아낸 사람이 남긴 마지막 인사로 느껴졌다. --- 「에필로그|액자 밖으로 걸어 나온 노인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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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늙어감을 상상해보셨나요?
우리는 지금 사는 대로 노인이 됩니다.” 명화 속에서 발견한 가족, 돌봄, 죽음 그리고 사랑의 얼굴 이해인 수녀가 권하는 아름답고 따뜻한 책 시작은 프라도 미술관에서 마주한 프란시스코 프라디야의 〈미친 후아나〉였다. 남편의 관을 붙잡고 황량한 벌판에 선 후아나의 초점 없는 눈빛을 마주한 순간, 저자는 문득 ‘애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남겨진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삶, 그 처절한 슬픔을 통과하는 과정은 통계와 사례 분석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날 후아나의 눈빛에서 시작된 질문들은 오래도록 저자 안에 남았고, 결국 이 책으로 이어졌다. 저자 주지현은 대학에서 중·노년기와 가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는 재개발 지역의 노인들부터 초고령 노인, 노인장기요양보험, 웰다잉, 생애사, 신노년문화, 다문화와 조손가족에 이르기까지 여러 연구에 참여했다. 또한 사회복지 현장을 오래 경험하면서 그에게는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노년을 통계나 뉴스로 접하지만, 삶의 한 시기로서 정면에서 사유해볼 기회는 많지 않다. 우리는 죽음을 모르는 듯 살아가는 것처럼 노년도 없다는 듯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명화 속 장면을 통해 막연하게 느껴졌던 노년을 구체적인 삶의 장면으로 끌어온다.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그들을 그려낸 화가의 삶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다. 몸의 변화, 돌봄과 관계, 공간과 고립, 상실과 애도, 기억과 기록…… 우리가 나이 들면서 궁금해할 질문들을 명화와 함께 이야기한다. 이 책은 미술사나 미술 기법을 설명하거나 작품 해석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저자는 명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노화, 돌봄, 죽음이라는 삶의 문제를 다시 질문한다. 저자의 담백한 문체로 풀어낸 현장 경험과 여러 사람의 인터뷰는 미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관에서 노년을 만났습니다』는 미술과 노년학을 연결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드문 시도를 담아낸 책이다. 부모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의 노년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 중년 이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다가올 노년이 막연하게 느껴지고 두려운 사람, 미술을 어렵지 않게 인문학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 죽음과 돌봄, 애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그림을 통해 삶을 읽는 인문교양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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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멋진 그림을 감상하며,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 뜻깊은 공부까지 할 수 있는 기쁨을 더해주는 고마운 책입니다.
자칫 무겁고 어둡고 지루할 수 있는 노년과 죽음의 문제를 저자 특유의 밝고 섬세한 필치와 사랑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긍정의 힘! 저자 개인의 가정과 일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노년과 돌봄과 죽음에 대한 인생관을 갖는 데 좀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줍니다. 날마다 꾸준히 노년의 지혜를 추구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아름답고 따뜻한 책입니다. - 이해인 (시인, 수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