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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해제 | 『신청년』지면을 통한 5·4신문학논쟁 1 『신청년』의 신문학론 현대 유럽 문예사론 천두슈 후스와 천두슈의 통신문 창나이더가 천두슈에게 보내는 서신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 후스 문학혁명론 천두슈 첸쉬안퉁과 천두슈의 통신문 쩡이와 천두슈의 통신문 나의 개량문학관 팡샤오웨 나의 문학개량관 류반눙 역사적 문학관념론 후스 후스 선생의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을 읽고 위위안쥔 후스와 천두슈의 통신문 문학개량의 첫걸음 이밍 첸쉬안퉁이 천두슈에게 보내는 서신 문학혁신의 의미 해설 푸쓰녠 소설과 백화운문을 논함 후스 · 첸쉬안퉁 신문학과 오늘날의 운 문제 첸쉬안퉁 건설적 문학혁명론 후스 단편소설론 후스 단편소설론 후스 문학개혁의 진행순서를 논함 성자오슝 · 후스 신문학 및 중국 구국 장허우짜이 · 후스 · 첸쉬안퉁 · 류반눙 · 천두슈 신문학 문제에 관한 토론 주징눙 · 후스 · 런훙쥔 · 췐시안퉁 문학혁신과 문자개량 주워눙 · 후스 문학진화 관념과 희곡개량 후스 희곡개량의 제 문제에 관한 고찰 푸쓰녠 나의 희곡개량관 어우양위첸 나의 중국 구극관 장허우짜이 희곡개량 재론 푸쓰녠 인간의 문학 저우쭤런 새로운 문제 차자오중 · 첸쉬안퉁 문학혁명과 문법 저우후 · 첸쉬안퉁 문학혁명과 문법 저우후 · 첸쉬안퉁 문학개혁에 대한 두 가지 의견 이밍스 · 첸쉬안퉁 백화시의 3대 조건 위핑보 · 후스 문학개량과 문자교체 장윈 · 후스 백화문의 가치 주시쭈 나는 왜 백화시를 지으려 하는가 후스 신문학의 세 가지 주요사항에 관하여 판궁잔 · 첸쉬안퉁 몇 번의 시 창작 경험 위핑보 문학 연구회 선언 저우쭤런 등 2 보론 | 5·4신문학논쟁의 주요 쟁점 신구 문학논쟁 백화문논쟁 장르개혁론 찾아보기 필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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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틀을 만든 ‘신청년’의 정신과 사상
천두슈·후스·첸쉬안퉁·저우쭤런 등 문학혁명을 통해 시대를 밝히고자 한 청년 지식인들의 ‘자각’과 ‘분투’의 기록! “오늘날 정치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그 정치가 기반하고 있는 정신계의 문학을 혁신하지 않을 수 없다.” ▣ 천두슈 “사상을 개혁하기 위해 왜 반드시 문학을 거론하는가? 이는 문학이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 차이위안페이 『신청년』동인들이 신문학을 제창한 것은 단순한 문학적 충동에서 비롯되거나 문학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비문학적인 현실 요구와 사상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19세기 말 이래 중국 지식인들의 국가부강 · 민족부흥에 대한 기본적인 희구에서 연원하며, 새로운 시대조건 아래서 정치개혁을 수행하기 위한 ‘국민 각성’(覺民)과 ‘신민’(新民)의 계몽 요구로부터 비롯되었다. ▣ 편역자 김수연 5ㆍ4신문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유산 중국 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주창자로 꼽히는 베이징 대학 장이우(張?武) 교수는 「신문학의 종결」이라는 글에서 5ㆍ4신문화운동 시기의 ‘신문학 담론’이 그동안 20세기 중국문화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근대성의 유일한 기준으로 문화적 상상을 지배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말은 이제 5ㆍ4의 유산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국을 상상할 때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만, 역으로 사상ㆍ문학ㆍ언어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이 시기 담론들, 특히 신문학 담론이 오늘날 중국문화에 미친 심원한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천두슈(陳獨秀), 후스(胡適), 저우쭤런(周作人) 등 대표적인 인물들의 일부 공통성을 신문학운동의 선언으로 간주해온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중요했다고 하더라도 5ㆍ4신문학운동이 하나의 ‘운동’으로서 역사적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논자들의 참여와 논쟁, 다양한 실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특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몇 대표 인물의 관점만이 아니라 당시 논쟁과 토론의 핵심공간이었던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실린 다양한 필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직접 탐구할 필요가 있다. 문학은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신청년』은 1915년 9월 15일 천두슈가 상하이에서 창간한 잡지이다. 당시는 위안스카이가 복벽을 도모하며 국회를 훼손시키고 악법을 만드는 등 역사의 역행을 보여주는 암울한 시기였다. 특히 출판ㆍ집회ㆍ언론의 자유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정치상황에서 『신청년』은 사상문화운동의 기치를 들고 나와 청년들에게 사회개혁의 역사적 주체임을 각성시키는 한편, 공교(孔敎)로 대표되는 전통사상과 그에 기반한 중국의 정치체제ㆍ사회제도를 비판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문학운동은 『신청년』의 가장 중요한 기치이자 주요 목표의 하나였다. 차이위안페이는 『중국신문학대계』 서문에서 “사상을 개혁하기 위해 왜 문학을 거론하는가? 이는 문학이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문학혁명을 제창했던 『신청년』 동인들의 공통된 생각을 반영한다. 비록 시국정치를 비평하는 데 뜻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사상문화교육이라는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정치적인 토대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신청년의 신문학론』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과 한길사가 함께 펴내고 있는 고전번역 및 주해 사업인 문명텍스트 시리즈 제 10권으로, 『신청년』이 5ㆍ4신문화운동과 문학혁명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1916~21년 사이 지면에 발표된 글 가운데 문학개혁 논의와 관련된 39편을 선별하여 번역하고 주석과 해제를 달았다. 관련 자료 번역이 단 몇 편에 그치는 국내 실정을 볼 때, 5ㆍ4운동의 다양한 문제의식과 폭넓은 인식의 스펙트럼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국 신문학과 그 현대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접근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신문학 제창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후스의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과 천두슈의 「문학혁명론」을 비롯해 창나이더(常乃德), 첸쉬안퉁(錢玄同), 쩡이(曾毅), 류반눙(劉半農)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던 필자들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통신란’을 통해 서신 형식으로 발표된 아직 여물지 않은 사상의 초안과 진솔한 고민들을 육성 그대로,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편역한 김수연 서울대 HK연구교수의 깊이 있는 보론과 충실한 해제는 ‘신청년’들의 의도와 주장을 이해하는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수연 교수는 보론에서 5ㆍ4신문학논쟁의 주요 쟁점을 신구新舊 문학논쟁ㆍ백화문논쟁ㆍ장르개혁논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읽으면 많은 논자들의 서로 다른 주장과 ‘신문학’ 이념의 형성 과정, 하나로 귀?될 수 없는 복잡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신구新舊 문학논쟁: 중국 수천 년 문학사 다시 쓰기 프로젝트 문학혁명사상은 후스가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에서 제시한 이른바 ‘팔불주의’(八不主義)에 잘 나타나 있다. “①말에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한다 ②옛 사람을 모방하지 않는다 ③반드시 문법을 중시해야 한다 ④병도 없이 신음하는 글을 짓지 않는다 ⑤ 진부한 상투어를 없애는 데 힘쓴다 ⑥전고를 인용하지 않는다 ⑦대구를 따지지 않는다 ⑧속자ㆍ속어(백화)를 기피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당시 중국은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아 ‘백화’로 말하고 ‘문언’으로 글을 짓는 이원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전례와 고사를 인용하는 글쓰기 규범이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시대의 말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담아 쓰라”는 후스의 선언은 당대 신문학운동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문학을 위해 우선 요구된 것은 푸쓰녠(傅斯年)이 문학혁신의 첫걸음으로 제기한 “과거문학에 대한 신앙심 파괴”였다. 천두슈는 「문학혁명론」에서 “한유로부터 증국번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재도(載道)의 문장들은 공맹 이래의 지극히 피상적이고 공허한 말들을 베껴 쓴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으며, 첸쉬안퉁은 천두슈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산문영역의 복고파인 동성파와 문선파를 “문선파 요괴” “동성파 잡놈”으로 폄하했다. 이러한 논의는 수천 년의 중국문학사를 다시 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특히 후스는 역사진화론적 관점에서 이 작업에 착수해 문언문학ㆍ귀족문학을 거부하고 일상생활의 언어로 쓴 백화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으로 문학사를 해석하였고, 이에 따라 당송이 아닌 원대를 중국문학의 중흥기로 바라보았다. 문학사 서술의 주변부에 위치하던 백화소설은 중심부로 소환되며, 그동안 ‘정전’으로 호명된 역대 작품들은 신청년 동인들에 의해 재평가되기 시작한다. “초상을 치르는 자는 호의호식하고 지내면서도 부고에는 반드시 남을 속여 “거적대기에서 지내어 마음이 혼미하다”라고 적는다. 의사에게 액자를 증정할 때는 “의술이 기백과 황제를 능가하다”라고 쓰지 않으면, “한번 손을 대면 바로 낫는다”라고 쓴다. 궁벽한 촌구석의 조그만 두부가게에도 음력설에 나붙어 있는 대련에는 항상 “장사는 흥성해서 온 세계로 통하기를, 재원은 넘쳐나서 온 삼강에 이르기를”라고 씌어 있다. 이처럼 국민들이 응용하는 문학의 꼴불견은 모두 아부하고 허위적이며 과장적인 귀족ㆍ고전문학에서 온 것이다.” -천두슈, 「문학혁명론」 백화문논쟁: 죽은 문자는 살아 있는 문학을 낳을 수 없다 신문학운동의 주축은 백화문운동이라 할 만큼 논쟁이 가장 집중되고 찬반 양론으로 나뉘는 과열 양상을 보였다. 5ㆍ4시기 백화문운동은 그 이전 시기와 중요한 변별점을 지닌다. 청말 백화문 운동은 주로 식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문일치를 주장하였기에 쉽게 읽고 쓰기에 편한, 당시 민간에 통용될 수 있는 문체 수립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5ㆍ4시기에 이르면 백화문운동의 목표는 단순한 언문일치를 넘어선 ‘국어ㆍ국민’의 창출이 된다. 그리고 새로운 문체 탐구 이면에는 작가의 주체 문제가 부각된 창조적 글쓰기 방식과 사유 방식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었다. 백화문 반대는 고문파뿐 아니라 유학생과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에 있던 인물들 가운데서도 거셌다. 후스의 절친한 벗이자 함께 미국에서 유학한 메이광디(梅光迪)는 1916년 후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문자 혁신이 옛날의 어투를 버리고 진부한 말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이 옛사람이 사용한 글자를 모두 버리고 속어와 백화로 대신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친구 런훙쥔(任鴻雋)은 “도구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수만 있다면 백화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라고 한다. 『신청년』동인들 사이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갈리는 등 문언-백화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찬반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입장들이 상호 병존하며 점차 사상관념, 나아가 문화전통의 문제로 확대되어갔다. “우리는 문자는 문학의 기초이므로, 문학혁명의 제일보는 문자 문제의 해결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죽은 문자는 살아 있는 문학을 낳을 수 없다고 확신하므로, 살아 있는 문학을 만들려면 반드시 백화를 문학을 창조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먼저 문자와 체재의 대해방이 있어야 이것으로 신사상, 신정신을 담을 수가 있다.” -후스, 「나는 왜 백화시를 지으려 하는가」 장르개혁논쟁: 신문학 구축과 장르의 재편성 5·4신문학운동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토론은 문학 장르의 개혁으로 확대된다. 그중에서도 토론이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시와 희곡으로, 특히 이 책에 실린 푸쓰녠의「희곡개량의 제 문제에 관한 고찰」「?곡개량 재론」, 어우양위첸의 「나의 희곡개량관」, 장허우짜이의「나의 중국 구극관」에 당시 희곡개량을 둘러싼 논쟁이 잘 드러나 있다. 후스는 진화론의 시각에서 무대 위의 공중제비 넘기, 장대타기, 칼춤과 같은 무술동작의 과시를 고대의 힘겨루기 기예로부터 연원하는 과거 ‘유물’의 괴현상으로 해석한다. 이 오래된 ‘유물’은 무술동작과 얼굴분장, 가창, 징과 북소리 등, 그간 중국 전통극의 정수로 여겨져 온 모든 것들을 포함하며, 오늘날 완전히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다. 저우쭤런은 구극의 화려한 얼굴분장, 춤, 과장적인 대사는 야만민족들의 요소라면서, “세계 희곡 발달사에서 중국 구극은 야만적이므로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구극에서 다루는 음란, 살상, 폭력, 귀신 등의 고사는 야만극의 근본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세상인심에 해롭기만 할 뿐이다. 그 야만단계를 벗어나려면 유럽에서 먼저 출현한 문명 사물(신극)을 수입해야 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외에도 ‘과도극’의 개작 문제, 서구극본의 편극, 연극계 인재 양성, 연극배우의 훈련 등과 관련된 다방면의 논의들을 보면 근대 신문학 전통의 구축과정에서 장르의 재편성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장르와 양식의 각축으로부터 텍스트에 부여된 정전의 합법성이 재평가되고 신문학으로서의 권위와 서열이 재배치되면서, 그 동안 문단에서 줄곧 무시되던 희곡이 소설과 함께 격상되어간다. “신극의 구성은 정밀해야 하고 함의가 깊어야 하므로, 사상이 빈곤한 중국인이 보고 오해할 수 있으니 “귀를 당겨” “얼굴을 맞대고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보건대 중국인은 서양의 문제극을 볼 때 비판적 시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극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 모두는 두뇌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극주의를 고취하는 기구를 만들어 구극이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을 적극 선전해야 한다.” -푸쓰녠,「희곡개량의 제 문제에 관한 고찰」 『신청년』이 말하는 신문학 『신청년』에서 말하는 신문학은 자칫하면 급진적 ‘서구화’로 인식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저우쭤런은 서구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여기에 서구화냐 아니냐는 의미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新’은 창조적인 가치이며 궁극적으로 이념형이기 때문에, ‘서구화’라는 기준으로 신문학 논의를 읽은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당시의 논자들이 세계사적 안목으로 중 · 서 문학 비교를 통해 서구문학의 어떤 점을 흡수하였고, 어떻게 세계문학의 한 부분으로서 중국문학을 새롭게 건설하려 했는지를 살펴봄이 생산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