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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작하기 전
광인일기
『광인일기』같이 읽기
아Q정전
『아Q정전』같이 읽기

저자 소개 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루쉰의 다른 상품

문학박사 저서 『소옹 시의 이해』『매요신 시의 이학적 세계관 표현 연구』『3천년의 사랑시』 『엎드려 읽는 철학시』 번역서 『아Q와 광인의 외침』『지연문명』『20년간 내가 목격한 괴이한 일들』이 있으며, 그 외 중국 고전시와 철학에 관한 논문 다수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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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85쪽 | 140*205*20mm
ISBN13
9791196418946

책 속으로

오늘 밤 너무나 밝은 달빛.
나는 이것을 보지 못한 채 30여 년을 보내었었다. 오늘 보고 나니 정신이 너무나도 맑아진다. 이제야 이전 30여 년이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인일기」중에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무릇 모든 일은 반드시 연구를 해야 명백해 질 수 있다. ---「광인일기」중에서

너무 무거워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무게의 뜻은 내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무게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발버둥을 쳐서 빠져 나왔다.
온 몸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기필코 말해야만 했다.
"당신들은 당장 고쳐야 하오, 진심으로 고쳐야 하오! 당신들은 알아야만 하오, 미래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광인일기」중에서

그러나 한 걸음만 다르게 옮길 수만 있다면,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당장 고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광인일기」중에서

사람을 먹지 않은 아이가 혹 아직 남아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자…… ---「광인일기」중에서

아Q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지만 손에 쥐어진 붓은 마냥 떨리기만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Q를 위해 종이를 땅바닥에 펼쳐주었다. 아Q는 엎드려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며 동그라미를 그려나갔다.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살까 전전긍긍해 하면서 둥글게 둥글게 그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망할 놈의 붓은 너무 무거웠을 뿐 아니라 제대로 말도 듣질 않았다. 부들부들 거리면서 겨우 동그라미의 두 끝을 이으려고 할 찰나에 그만 한 선이 밖으로 삐져나오고 말았다. 그래서 동그라미는 그만 호박씨 모양이 되고 말았다. ---「아Q정전」중에서

그러나 아Q는 지금 이 순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더욱 더 무시무시한 눈빛들을 보았다. 무디지만 끝은 예리한 그 눈빛들은 자신의 말을 씹어 먹어버리고, 이제는 자신의 몸뚱이 이외의 모든 것을 다 잘근잘근 씹어 먹으려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그를 따라 오고 있었다. 이 눈빛들은 마치 우글우글 한데 뒤엉켜 그 곳에서 자신의 영혼마저 뜯어 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Q정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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