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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폭풍
선택의 시간 메시지 방문자 에메랄드 뷰 표적 모래시계 기억 속의 여인 사파이어 밍크 추적조사 그림엽서 재회 접점 물가에서 |
Shizuko Natsuki,なつき しずこ,夏樹 靜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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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어둠에 감싸인 살롱 안을 천둥이 관통했다.
잠깐 동안 다이고는 일어선 채 망설였지만 두꺼운 융단에 발을 끌다시피 하며 걷기 시작했다. 일대가 전부 정전되어 버렸는지 창문으로 흘러드는 빛도 없었다. 의자와 테이블 윤곽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암흑이었다. 손으로 더듬어 가며 여자 대각선 앞으로 짐작되는 의자에 앉았다. 막상 앉아 보니 상당히 가까운 위치인 것 같았다. 아까부터 은은하게 느껴지던 겔랑 향수가 근처에서 감돌았고, 여자의 숨이 다이고의 볼에 전해졌다. 그런 모든 것들에 달콤하고 왠지 쓸쓸한, 묘하게 고귀한 냄새가 담겨 있었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서 잔을 두었을 때, 여자의 팔꿈치를 살짝 스쳤다. 얇은 천 안쪽의 가는 팔이 저릿한 감각을 다이고 안에 남겼다. “우연이로군요.”---p.18 “그럼 당신도 이해해 주시겠죠. 제가 그 남자를 죽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심정을. 인간의 갖가지 죄 중에서도 어리고 귀여운 아이를 괴롭히는 죄만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없으니까요. ─『카라마조프의 형제』 중에서 이반과 알료샤가 신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었지요. 경건한 수도사 알료사조차 순진무구한 아이를 괴롭히고 죽인 인간에게는 ‘총살해야 마땅합니다!’라고 외치지 않습니까. 그래요. 이 세상에는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인간도 존재하는 겁니다.” “옳은 말씀이에요. 다만 용서하지 않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용기……. 그거야말로 지금 다이고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일지도 모른다.---p.25 갑자기 매섭게 차가운 공기 밑바닥에서 여자의 잔향이 감돌았다. 아까 그녀가 말한 ‘순수함과 용기’라는 말이 다이고의 의식에 길게 여운을 남겼다. 용기란 어떤 뜻이었을까……? 아득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다이고는 여전히 반쯤 넋이 빠져 있었다.---p.29 바르비종의 밤, 그 어둠의 감촉이 다시 생생하게 피부에 되살아났다.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셔도 저는 이미 누구보다 당신을 이해하고 있지 않나요?’ ……어린 아들을 깨우치듯 속삭이는 후미코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아,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나고 싶다. 다시 그녀와 만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역시 자신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그녀에게 이르는 길이 없다. 후미코는 놀랄 만한 대담함과 용기로 다이고와 나눈 암묵의 약속을 지켰다. 요시미 교수의 튀어나온 눈이며 두꺼운 입술이 눈앞에 떠올랐다. 권력과 돈을 향한 끝없는 욕망.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약자의 생명과 생활도 벌레처럼 짓밟는 잔인한 정신. 포피코 분석에서 다이고를 뺐을 때의 뻔뻔한 표정. 알래스카 전출을 권하던 엷은 웃음. 쉴 새 없이 신음하던 어린 환자의 목소리며 다이고의 손목을 잡고 진실을 묻던 어머니의 눈빛이 차례차례 눈앞에 어른거렸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다.---p.153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진정한 자신, 세속과 일상성을 전부 뛰어넘어 참된 순수함으로 영원한 것을 갈구하는 시인 같은 영혼이 그를 지배하고 행동하도록 내모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평생을 살며 단 몇 번만 반짝반짝 빛나는 영원을 만날 기회를 잡는다. 그 기회에 용감하게 결단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빈곤하게 퇴색된 일상성의 먼지 속에 묻혀 생을 마쳐야 한다. 일생 선택받은 인간이 될 수 없다. ---p.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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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 수상
우연히 만난 남녀가 어둠속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 후 일어난 살인 그리고 뜻밖의 결말을 그린 참신한 미스터리 로맨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 파리에서 낯선 남녀가 운명적인 만남을……. 어느 가을, 프랑스 파리 교외의 어느 호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 낯선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 암흑 속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에 숨긴 살의를 고백한다.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마치 꿈이나 환상 같은 사랑을 나눈다. 결국 이름만 알고 얼굴은 알지 못한 채 이별, 귀국 후 일어나는 2건의 살인 사건. 각각의 사건에서 가장 의심스럽다고 여겨지는 인물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존재하는데……. 1989년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Prix du Roman d'Aventures) 수상. 2006년 제10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수상. ‘나쓰키 시즈코’ 1989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을 받은 ‘나쓰키 시즈코’의 장편 추리소설 「제3의 여인」은 프랑스 파리 교외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어둠 속에서 보낸 꿈같은 사랑과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그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일어난 살인, 그리고 뜻밖의 결말을 그린 참신한 미스터리 로맨스 작품이다. 1978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1987년 처음으로 영어 번역되며, 뉴욕의 밸런타인 북스에서 원제와 똑같이 「The Third Lady」로 출간되었고, 1989년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La Promesse de l'ombre(암흑 속의 약속)」이란 제목으로 샹젤리제 출판사에서 출간, 그해 모험소설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남자의 여자에 대한 연모의 정. 그리고 이어지는 상실. 로맨스적인 요소와 매력적인 플롯,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제3의 결말. 섬세한 심리묘사, 트릭적 기교 등 일본추리소설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제3의 여인」.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남녀가 마음에 감춘 살의를 고백하고 암흑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덧없는 사랑을 나눈다. 「제3의 여인」의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는 도입부의 무대 설정 등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로맨스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이국 호텔에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며, 남자는 대학 조교수, 여자는 여류 번역가이고 적어도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고백하는 살의 또한 결코 돈이 목적이나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위해서라고 단언할 수 없다. 낭만이 가득한 사랑 이야기에 필요한 것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구성의 작품에서는 보통 두 공범자격인 등장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몇 번의 만남이나 과거 교류로 어느 정도 분명하게 밝혀지는 법이지만 「제3의 여인」에서는 암흑에서 딱 한 번의 만남뿐이라 서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말로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 설정된다. 주인공 다이고는 프랑스 출장길에 우연히 만난 후미코에게 강한 연모의 정을 느낀다. 귀국 후 다이고 앞으로 부동산 회사에서 다이고의 비서가 맨션을 보고 싶다는 의뢰가 있었다는 편지가 도착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나가 보니, 같은 시각 요시미 교수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다이고에게는 확고한 알리바이가 생겼지만 요시미 교수를 죽인 인물은 후미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다이고에게는 후미코도 ‘환상 속 여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조차 진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 이후, 유력한 용의자가 된 다이고. 범인을 쫓는 경찰과는 다른 시점에서 로맨틱한 재회를 꿈꾸고, 경찰은 ‘환상의 여인’인 범인의 모습을 계속 찾게 된다. 작가는 남성 심리를 능숙하게 파악하고, 주인공의 정신적 갈등과 도취, 안타까움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추리소설의 트릭적 기교와 함께 매력적인 플롯을 보여준다. 또한 「제3의 여인」의 제3의 신선함은 결말의 의외성이다. 하코네 호숫가의 산장에서 후미코와의 재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암흑 속에서 자극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또 다른 생각지도 못한 비극적인 사실을 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듯 결말의 의외성을 훌륭하게 발휘한 「제3의 여인」은 참신한 미스터리 로맨스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